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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같은, 곰보빵 같은 ‘멋의 맛_조성묵’展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입력 2015.12.15 16:46:0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원로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전시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를 마련했다.
‘멋의 맛_조성묵’전도 그 일환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현역 작가 조성묵의 진취적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의자 같은, 곰보빵 같은 ‘멋의 맛_조성묵’展

1 ‘메신저 9314(Messenger 9314)’, 브론즈, 250x120x110cm, 1993. 2 ‘메신저 & 커뮤니케이션(Messenger & Communication)’, 오브제 , 200x100x100cm, 1995.

조성묵(75)은 한국 현대조각의 전위적인 흐름을 이끌어온 대표 원로 작가로 손꼽힌다. 1940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조소과에 재학 중이던 1960년, 만 20세의 나이로 제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머리와 팔이 생략된 여성상으로 특선을 수상하면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몸을 ‘S’ 커브로 비틀어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드러내면서 걸어 나오는 듯한 이 여성상은 근육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여성 누드상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후에는 한국 미술계 최초의 전위 조각 단체인 원형회, 전위 미술 단체인 AG(아방가르드협회) 등에 참여하며 한국 미술사의 한 축을 형성했다. 1960~70년대 대세를 이루던 추상 조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한 작가는 1980~90년대 음료수 캔, 신발, 책, 문틀, 양변기 등 산업화가 낳은 공산품들을 작품의 재료로 적극 사용함으로써 일상 속 사물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12월 1일부터 내년 6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멋의 맛_조성묵’전은 1970년대 후반에는 ‘메시지’ 연작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작가의 독창성이 빛나는 ‘메신저’ 연작을 비롯해 독특하고 참신한 재료로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해온 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오랜 세월 조소계의 중추로 활동하면서 구축한 중후한 멋의 세계는 중량감 있는 의자 형상의 조각을 통해 그 깊이를 드러내며, 그가 사용한 독특하고 감각적인 재료들은 그의 작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유희적 맛을 느끼게 한다.

의자 같은, 곰보빵 같은 ‘멋의 맛_조성묵’展

‘빵의 진화(The Progress of Bread)’, 폴리우레탄, 가변설치, 2009.

1970~80년대 연작 ‘메시지’로 인식의 문제 제기

조성묵 작가가 그의 대표 연작인 ‘메시지’를 발표하는 데 몰두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메시지’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은 돌이나 청동을 재료로 사용하되, 종이를 접었다가 펼쳤을 때 생기는 주름과 접힌 자국 등을 연상시키는 환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돌과 금속이라는 재료가 가진 속성을 뒤바꿔놓는 인식, 그것이 바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작가는 이 ‘메시지’ 연작으로 1980년 동아미술제 대상을 수상하면서 미술계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는 이듬해인 1981년, 마흔 줄에 들어선 적지 않은 나이에 마침내 첫 개인전을 연다.



1980~90년대 의자의 형상에서 착안한 ‘메신저’ 연작

1985년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확연히 드러난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사용한 금속이나 돌 같은 단단한 재료들과 대조적인 성질을 지닌 종이나 흙 등을 쓴 것. 초기 연작 ‘메시지’가 물질의 성질을 뛰어넘는 인식의 문제를 다뤘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선보인 연작 ‘메신저’는 이처럼 부드럽고 무른 재료를 주로 사용하고, 의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변화의 전기를 모색하던 중 우연히 버려진 의자에서 조형적 가능성을 발견한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의자의 형상에서 착안한 ‘메신저’ 연작의 제작과 발표에 주력했다. 이들 ‘메신저’ 연작은 조성묵의 작가 인생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작가에 의하면 의자는 수직과 수평의 지지대, 기능성과 비기능성, 결합 등 조각적 측면의 모든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 완벽한 대상물이다.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지만 조각의 관점에서 보면, 시각적이고 영적인 면의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발견으로 의자는 평범한 일상의 요소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의자는 가구 중에서도 인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어서, 인체의 형상이라는 비교적 전통적인 조각의 요소를 도입하는 데도 훌륭한 해결책이 돼주었다.

작가는 의자를 선택함으로써 인체 조각의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선과 선이 연결되는 의자의 기본 구조 덕분에 덩어리를 빚거나 깎아내는 전통적 조각의 관습에서도 비켜갈 수 있었다. 의자는 비어 있는 공간과 선이 빚어내는 현대적인 조각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 더없이 유용한 소재였던 것이다.

미술 평론가 김복영은 ‘메신저’의 의자를 ‘비유적 인간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작가가 인간의 현실적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한 적절한 모티프로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의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작가노트를 통해 의자가 가진 상징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자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은 형태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성을 갖는다. 우리가 어떤 장소나 어떤 상황에서 의자를 대할 때 의자는 다른 존재로 보인다. 그것은 말하자면 근심이나 희망, 강압이나 저항 따위를 보여주는 존재로 변신한다.”

이러한 작가적 판단은 1990년대 중반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키엘미술관, 이탈리아 무디마 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국제무대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1990년대 이후 국수 ‘커뮤니케이션’과 ‘빵의 진화’

‘메신저’ 연작을 통해 스스로를 대표하는 독자적 조형 양식을 정립한 조성묵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신을 모색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그는 국수를 재료로 한 ‘커뮤니케이션’ 연작을 발표하면서 독특한 감각의 설치 작품을 발전시켜왔다. 작가에게 국수는 매우 서정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온화하고 평화로운, 약하고 쉽게 부스러지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충분한 아름다운 재료다. 요리로 가공되기 전의 국수는 하얀 빛깔과 가느다란 선이 반복되고 쌓아올려져 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커뮤니케이션’은 재료로서 국수의 가능성을 꿰뚫어본 그가 일상의 공간에서 집기들이 온통 뽀얀 빛의 국수로 뒤덮인 모습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이다.

조성묵 작가는 최근 합성수지를 재료로 한 작품으로 소재의 이면에 숨겨진 의외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산업용 발포 우레탄 등으로 제작한 연작 ‘빵의 진화’는 표면을 빵처럼 그을려 갓 구운 곰보빵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들은 조성묵의 작품 세계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귀중한 자료다.

조성묵은 한국 현대조각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작가임이 분명하지만, 과묵한 성격 때문인지 언제나 미술계의 시류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작가로 언급되곤 한다. 심지어 그의 작품 대부분이 전위적 요소로 충만해 있어 조각에 대한 기성의 시선과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메신저가 되어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원했다. ‘메신저’ 연작이 주로 설치 형식으로 전시되는 것도 인간의 환경과 상황을 보여주면서 소통하기를 원한 작가의 의도가 십분 반영됐기 때문이다.

조성묵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표현의 순수한 자태를 지니고 있으며 작품은 이를 탐구하여 시각적 감동을 전달하는 자유”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작가 자신의 삶과 유리되지 않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한국 현대조각의 최전방에서 활약하던 초창기부터, 나이를 잊은 듯 열정적인 작품 활동으로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꾀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 것도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일상성, 그 사소한 것들에 대한 세심한 감각이다. 이처럼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조성묵의 진취적인 작가 정신은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면면들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창조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의자 같은, 곰보빵 같은 ‘멋의 맛_조성묵’展
1 ‘메신저 · 커뮤니케이션(Messenger · Communication)’, 브론즈, 1995.

2 ‘빵의 진화(The Progress of Bread)’, 폴리우레탄, 가변 설치, 2008.

3 ‘빵의 진화(The Progress of Bread)’, 폴리우레탄, 가변 설치, 2009.

4 ‘빵의 진화(The Progress of Bread)’, 폴리우레탄, 가변 설치, 2009.

5 ‘빵의 진화(The Progress of Bread)’, 혼합재료, 가변 설치, 2009.

6 ‘빵의 진화(The Progress of Bread)’, 혼합재료, 가변 설치, 2009.

디자인 · 김수미

여성동아 2015년 12월 6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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