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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바보’ 휴머니스트 이성 구로구청장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지호영 기자

2015. 11. 13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에 발을 디딘 이성 구로구청장이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면, 공무원 한 사람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 공무원은 더 많은 국민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을 지닌 그는 요즘 구로구를 교육 일류 도시로 만드는 일에 전력 중이다.

우리 시대의 ‘바보’ 휴머니스트 이성 구로구청장
이성(59) 구로구청장의 별명은 ‘바보 구청장’이다. 그는 여느 고위 공직자들처럼 카리스마도 없고 봉사 행사에 참여하면 눈도장을 찍는 일이나 사진 촬영 대신 팔을 걷어붙인 채 묵묵히 일만 하다 온다. 이성 구청장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분명하다.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자 학사 장교를 지원, 그것도 군의관에게 통사정해서 군 복무를 했고, 서울시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던 2000년에는 1년 동안 휴직을 하고 아파트 전세금 9천만원을 털어 가족들과 전 세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대통령 비서실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0년 민선 5기 구로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플래카드를 내걸지 않는 조용한 선거운동에도 60.8%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조용하지만 추진력 있는 리더십, 구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행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열의를 갖고 추진 중인 교육 일류 도시 구로 만들기 정책에 대한 믿음과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 정책을 추진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성적만 강조하는 것은 교육의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아이들 성적 올리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구로구의 상황은 절박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인생에서의 성공이 성적순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더군요. 학창 시절 공부도 못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사업이 잘 안 돼 몇 번씩이나 망하고 했던 친구가 지금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가 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 친구는 중간에 어렵고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그만큼 성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들 마음은 또 다르죠. 아이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고, 고등학교가 그것을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한 마음일 것입니다. 그동안 구로구가 그걸 잘 못했어요.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성적이 뒤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아이가 초등 · 중학교 때 조금만 공부를 잘하는 것 같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고, 중 · 하위권 학생들만 남은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죠. 저희가 교육에 공을 들이는 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민선 5기 시절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과 협의, 구로구를 교육혁신지구로 지정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우수 교사들을 투입했다. 또한 관내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교 발전 방향을 공모해 선발된 학교에는 예산을 지원했다. 이런 노력들은 예상보다 일찍 결실을 맺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4년제 대학 진학률, 명문대 진학률 등이 모두 눈에 띄게 상승했으며 무엇보다 교육 문제로 갈등하다가 구로구를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일례로 구로동에 위치한 구일중학교에서 구로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60%가 채 안 됐으나 지난해에는 93%까지 치솟았다. 지난 6월 오픈한 구로학습지원센터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그가 목표로 하는 교육 일류 도시 실현이 그리 먼 이야기만은 아닐 듯하다. 구로학습지원센터는 대학진학상담실, 그룹스터디룸, 동아리 멘토방 등의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메가스터디 스타 강사들의 특강, 자기주도 학습법 교육, 대학생 멘토단의 공부법 지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구로구는 이런 성적 향상 노력의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 상담센터, 진로직업 체험센터,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 대안학교 등을 설립해 공부에서 소외된 학생들을 챙기고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처조카 입양 온가족 배낭여행 간 사연



우리 시대의 ‘바보’ 휴머니스트 이성 구로구청장
‘공무원’ 하면 안타깝게도 복지부동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성 구청장은 한 사람의 공직자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재직 시절 낙산 지역에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 성곽 복원의 길을 연 것도, 세종로에 중앙분리대를 없애고 광장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비리 공무원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바로 파면 혹은 해임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한 것도 그다. 그는 공무원은 국민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 더 많은 특혜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직원들에게 국민들이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도록, 더 사업이 잘될 수 있도록, 더 빨리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설사 규정에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도울 길이 있는지,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요. 돌아보면 여러분 주변에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공무원들이 있을 겁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성 구청장의 바보라는 별명에는 사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눈팔지 않고 우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그의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경북 문경 출신인 그는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를 전전하며 서른 번 넘게 이사를 다녔다. 6형제 중 둘은 가난 때문에 잃었고, 그 자신도 신문 배달 등을 하며 독학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2000년 처남 부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둘을 입양해 자신의 아이들까지 4형제를 키워냈다. 당시의 일을 묻자 어느새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 봅니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에 앞서, 마음을 주었던 아이들이 있었죠. 서울시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의 자녀들이었는데, 부모가 이혼한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방황하던 차에 저희 부부와 인연이 닿게 됐어요. 한동안은 함께 놀러도 다니고 왕래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소원해졌죠. 아이들은 우리 부부를 마음으로 많이 의지했을 텐데, 관계를 끝까지 지속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어요. 그 부채감 때문에 아이를 하나 입양할까, 하고 아내와 의논을 하던 즈음에 처남 부부가 사고를 당했고, 그 아이들을 저희가 데려오게 된 겁니다. 지금 와 돌아보면 우리는 조카들을 데려올 운명이었고, 그 앞의 일들은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라고 벌어진 사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0년 가족들과 세계 일주 배낭여행을 떠났던 데는 새로 가족이 된 아이들에게 끈끈한 형제애를 느끼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그의 이런 의도는 적중해 아이들은 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서로에게 완벽하게 적응했다. 또한 그가 여행 후 펴낸 ‘이성 단장의 온가족 세계 배낭 여행기’(자음과 모음)는 베스트셀러에 올라 가족 여행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1년 ‘꿇고’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꼈지만, 그런 것들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멋진 경관들도 좋았지만, 매일 24시간 365일 가족이 함께 걷고, 먹고, 자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가 됐고, 세계 40여 나라 2백여 도시를 직접 둘러본 게 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말라고, 아니 만들어서라도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합니다.”

공단이 밀집해 있던 과거의 구로구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전초기지였으며,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족한 삶은 그곳에서 가발을 만들고 봉제를 하던 여공들의 노고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구로구는 디지털 산업의 핵심으로, 이곳의 원천 기술 없이는 최첨단 휴대전화도 TV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구로구와 이성 구청장의 삶은 참 많이 닮았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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