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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행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보영 My It Bag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홍태식

입력 2015.10.26 10:32:00

흔히 ‘잇 백’ 하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해외 명품 브랜드를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분명 국내에도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여러 백이 있다.
MCM, 제이에스티나, 니나리치, 헤지스, 질 스튜어트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 1세대 핸드백 디자이너인 조보영이다.
그에게 우리나라 핸드백업계 성장과 궤를 함께해온, 그가 탄생시킨 ‘잇 백’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대박 행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보영 My It Bag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발렌티노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에르 파올로 피촐리, 마크 제이콥스의 케이티 힐리어, 멀버리의 조니 코카. 이들의 공통점은 핸드백을 비롯한 액세서리 전문 디자이너 출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누가 있을까? MCM, 니나리치, 제이에스티나, 헤지스, 질 스튜어트를 이끈 조보영(52) 디자이너가 첫손에 꼽힌다. 현재 LF(엘지패션) 액세서리(헤지스, 질 스튜어트) 부문 CD로 활약 중인 조보영 상무는 우리나라 1세대 핸드백 디자이너이자 마케팅의 귀재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28년간 디자이너로 걸어온 길,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엮어 수필집 ‘잇 백’(출판사 예경)을 펴냈다.

지난 9월 중순 서울 강남구 신사동 LF 본사에서 만난 조보영 상무는 예상대로 스타일리시한 외모에,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흔히 디자이너 하면 떠오르는 ‘시니컬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의외다”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일할 때 모습은 나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만이 잘 알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조보영 상무의 특이점 중 하나는 ‘철학을 공부한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이화여대 철학과(신문방송학 부전공)를 졸업한 그는 어려서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입시를 앞두고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고, 재수 끝에 미학을 공부하고자 철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결국 졸업 후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귀금속 디자인을 공부하며 디자이너란 직업에 한발 다가갔고 1988년 우리나라 ‘핸드백 사관학교’라 불리는 ‘청산’에 입사하면서 핸드백 디자이너가 됐다.

“청산으로부터 합격 소식이 왔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어요(웃음). 당시만 해도 국내 핸드백과 구두업계에서는 디자이너라는 존재 자체가 생경했는데, 저 자신이 디자이너가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청산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 최대 핸드백 생산 회사였어요. 명품 브랜드의 물건을 OEM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내수사업부를 만들어 ‘블루틴’이라는 브랜드로 국내 핸드백 시장을 개척하던 시기였죠. 본사는 서울에, 공장은 부산에 있었는데 입사 초 부산 공장에서 직접 생산 과정을 체험했던 게 이후 핸드백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이후 그는 잡화 분야 국내 최대 해외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소유한 ‘프레이저’로 자리를 옮겨 유럽 패션 선진국의 브랜딩을 습득했고, 1997년 MCM에 합류해 10년 넘게 MCM의 성장을 이끌었다. 2011년 주얼리 브랜드인 제이에스티나가 핸드백 사업에 진출하면서 그를 영입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MCM 시절 직접 글로벌라이징을 추진하며 혹독하게 단련됐던 조보영 상무는 제이에스티나 핸드백 사업 또한 짧은 기간 내에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2년 전부터 LF 헤지스와 질 스튜어트 액세서리 부문 ‘헤드’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질 스튜어트는 제가 합류할 당시 론칭 5년 차였지만 성장이 멈춰 있었어요. 매출 규모도 헤지스에 비해 작았는데, 사이즈가 작은 만큼 효과는 빨리 나타났죠. 매장 수를 늘리거나 사람을 바꾸지 않았지만 브랜드를 맡은 후 연 매출이 50~70% 정도 성장 중입니다. 헤지스는 영국 헤리티지가 강한 브랜드로, 처음 헤지스를 맡고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하면 고객층을 확대시킬 수 있느냐였어요. 여러 궁리 끝에 모델을 아이돌 가수 씨엘로 선정했는데 그게 적중했어요. 씨엘은 또래 아이돌에 비해 카리스마가 있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 칼 라거펠트 등의 뮤즈로 알려지면서 패션성까지 갖췄다는 점에 주목했죠. 특히 씨엘이 직접 인스타그램에 광고 사진을 올려서 하룻밤 사이 20만 명이 넘는 해외 팬들에게 퍼져나갔고, 매출도 상승하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어요.”

지갑에 집중하는 이유

질 스튜어트의 성장에는 그가 만들어낸 ‘심벌’의 역할이 컸다. 처음 조 상무는 심벌의 근간이 되는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 과거 3년간의 광고물, 상품, 카탈로그 등을 리뷰한 끝에, 론칭 초기 광고에 등장했던 앵무새 모티프와 다이아몬드 패턴을 부각시켜 히트 아이템을 탄생시켰다. 특히 과거에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던 다이아몬드 패턴의 지갑을 리뉴얼해서 내놓자 중고생들을 시작으로 지갑의 인기가 확산됐고, 핸드백으로도 그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다.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감이 덜한 지갑부터 공략하는 건 조보영 상무가 터득한 마케팅 노하우라 할 수 있다. 업계에서 그를 ‘지갑의 미다스’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갑은 이미 성숙한 브랜드에서는 굳이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요. 바꿔 말하자면 그동안 저를 원했던 회사는 핸드백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정체기에 접어들어 변화를 필요로 하는 곳이었죠. 그때마다 저는 실패율을 낮추기 위해 가장 먼저 소품에 집중했어요. 그 이유는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로 어린 친구들을 공략하기 위한 건데, 중 · 장년층은 새로운 상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반면 중고생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거든요. MCM 지갑과 제이에스티나 지갑도 같은 방법으로 매출 성장을 이뤘고, 헤지스와 질 스튜어트 역시 긍정적인 반응이 오고 있어요. 최근 SNS에 올라오는 지갑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을 유심히 살피는데, ‘4년 쓴 000 지갑아 잘 가. 질 스튜어트로 갈아탔어’ ‘요즘 헤지스 것도 예쁘던데’ 등의 후기를 읽을 때마다 뿌듯하고 젊은 층이 원하는 취향이 무엇인지 재점검하게 돼요.”

내일 할 일을 오늘 하라!

대박 행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보영 My It Bag

1 MCM 시절 디자인 미팅 작업 중인 조보영 상무. 2 제이에스티나 주최 파티에서 셀렙으로 참가한 다코다 · 엘르 패닝 자매와 함께. 3 앵무새와 다이아몬드 패턴을 심벌로 내세운 질 스튜어트 매장.

조보영 상무는 “유행의 바로미터는 중고생”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대학생인 큰딸과 중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을 보며 유행의 흐름을 감지한다. 몇 년 전 노스페이스의 다운 점퍼가 중고생 사이에서 대유행하면서 비싼 가격 때문에 ‘등골 브레이커’로 불린 것처럼, 큰딸이 중학생일 때부터 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는 1~2년 후 유행 상품이 돼 줄줄이 대세 브랜드가 되는 상황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한번은 중학생이던 큰딸의 운동화를 사러 갔는데, 당연히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사달라 할 줄 알았는데 컨버스를 원하더라고요. 그 후로 2~3년 정도 지나자 컨버스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20~30대에게도 잇 아이템이 됐어요. 둘째딸도 몇 해 전부터 ‘데상트’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역시 대세 브랜드가 됐죠. 국내 브랜드가 수입 브랜드와 경쟁하려면 브랜드가 자리 잡아 싹을 틔우는 인큐베이팅 기간이 필요한데, 이때 중고생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브랜드가 돼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그동안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이뤄낸 성과를 살펴보자면, 규모 면에서는 단연 MCM을 최대로 꼽을 수 있다. 1976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MCM은 월계수로 감싼 로고와 시그니처, 브라스 플레이트, 코냑 컬러의 비세토스 모노그램 패턴 등 이미지가 확고한 브랜드로, MCM의 국내 라이선스를 갖고 있던 성주 D&D가 2005년 역으로 독일 본사로부터 상표권을 사들인 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조보영 상무가 디자인 실장으로 입사할 당시 연 매출 2억원이던 MCM은 그가 2009년 제일모직 니나리치로 옮길 즈음 2천억원으로 1천배에 달하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에게 처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함을 안겨준 곳 역시 MCM이다.

조보영 상무는 성취감이 가장 컸던 시기로는 브랜드 론칭부터 확장, 성장까지 차례대로 일궈낸 제이에스티나 시절을 꼽았다. 제이에스티나는 주얼리 사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핸드백으로 확대했는데, 당시 조 상무는 디자인 부문뿐만 아니라 사업부문장까지 맡아 사업 전체를 이끌어가는 일을 했다.

“어깨가 무거웠지만 그 의무감 덕분에 더 열심히,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마케팅 업무까지 총괄했는데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모두 동원했고 결과도 만족스러웠어요. 당시 핸드백업계는 4강이라 불리는 MCM, 닥스, 루이까또즈, 메트로시티가 1천억원대를 넘는 매출을 올리며 시장을 점유하고, 그 외 브랜드들이 10위권까지 몇 년간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신규 브랜드 진입이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 더욱 의미있죠.”

디자이너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오직 성공만 있을 뿐 실패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며 “이번에 책을 내면서도 가장 염려됐던 부분이 자칫 ‘나 혼자만의 성과’인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정권자로서 매 순간 판단의 기로에 섰던 건 맞지만 나를 믿고 따라와준 많은 디자이너와 직원들이 있었기에 성공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일과 가정을 병립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남들보다 하루 빠른 시계’에 있었다.

“젊은 시절 직장 상사로부터 배운 것 중 하나가 ‘내일 일을 오늘 하라’였어요 부하 직원들 입장에선 굉장히 무서운 말 같지만(웃음), 습관이 되면 스스로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야근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에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만 않아도 남들보다 빨리 일을 끝마칠 수 있거든요. 회사에서 보면 습관적으로 야근을 하는 직원들이 있어요. 일 처리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맺고 끊음이 정확해야만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그는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서 모두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통 디자이너 하면 호불호가 강하고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실력이 시니컬함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는 오히려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조직을 이끌어가는 힘이 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지적 능력과 재능이 상당한데, 이들로부터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를 끌어내느냐는 수장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일을 지시할 때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줘야 해요. 처음 청산에 입사했을 때, 한 상사가 어떤 설명도 없이 핸드백을 한 아름 던져주면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거예요. 잠시 고민한 끝에 상사를 찾아가서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죄송하지만, 어디에 쓸 그림인지 알려주시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요(웃음). 그 상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더니 기록용이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한발 더 나아가 ‘다음부터는 제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의 한 토막인지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효율성이거든요.”

주말 브런치는 꼭 책임지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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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으로 그가 지켜온 원칙 중 하나는 가족의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이다. 특히 출장일 때를 제외하고 주말 브런치는 그와 가족 모두가 기다리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토스트를 굽거나 오믈렛, 키시(프랑스 가정식 파이), 샐러드와 과일을 준비하는 정도지만 남편과 아이들의 반응은 늘 뜨겁다고 한다. 한번은 파리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바게트를 사와 다음 날 아침 그걸로 아침 식탁을 차린 적도 있다고.

“평일에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주말에라도 아이들에게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사실 저도 결혼 초에는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선책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큰아이의 경우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중학생 때 MCM 글로벌라이징 사업으로 해외 출장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해주려고 했어요. 한번은 아이 학교 행사 스케줄에 맞추려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탔어요(웃음). ‘짜잔’ 하고 나타난 엄마를 보고 좋아하던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대학교 연합 동아리 후배였던 남편은 지금은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토요일 저녁마다 집 근처에 있는 성북천을 따라 산책을 자주 즐기는데, 조보영 상무가 회사 일로 고민을 할 때면 금융권에서 일하는 남편은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쉽게 해법을 내놓을 때가 있다. 조 상무는 “남편과 얘기하다 보면 여자와 남자가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것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1세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남기를 희망한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체계적인 이론서도 쓰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K패션의 위상이 높아졌는데 이럴 때일수록 젊은 디자이너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조보영 CD가 꼽은 내 인생의 ‘잇 백’ 4

MCM 자카드 백팩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MCM이 명품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자카드 백팩의 공이 크다. 당시 ‘프라다’의 나일론 백이 유행한 덕분에 합성 소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편견이 많이 사그라들기도 했고, 고유 번호가 새겨진 금장의 브라스 플레이트 덕분에 MCM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제이에스티나 수지 지갑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수지가 들고 나와 히트친 제이에스티나 지갑. 이미 단종된 제품이었지만 온갖 방법을 동원해 ‘수지 지갑’ 홍보에 나섰고 수지지갑의 성공은 신규 진입이 어렵다는 핸드백 시장에 제이에스티나가 화려하게 입성할 수 있게 해줬다.

니나리치 마리아 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백을 만들었을 때다. 니나리치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제일모직에서 근무할 당시 니나리치를 대표하는 연한 핑크 빛의 리본백인 마리아 백을 만들어 브랜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제이에스티나 주얼리 클러치백

개개인을 위해 주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클러치백. ‘디자인드 바이 보(Beaux · 조보영의 프랑스 이름)’라는 금장을 새겨 넣었을 만큼 자부심을 갖고 만든 제품이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고가의 특수 가죽을 사용했고 스와로브스키 스톤을 부착해 화려함을 더했다. 제이에스티나 모델로 기용된 다코타 · 엘르 패닝 자매 등을 비롯해 여러 셀레브러티들로부터 사랑받았다.

대박 행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보영 My It Bag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10월 6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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