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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조환이 펼치는 ‘철판산수’의 세계

글 · 김성욱 자유기고가 |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5.10.16 11:23:00

철판을 이용해 자연을 표현하는 ‘철판산수’로 유명한 한국화가 조환.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조환이 한원미술관 전시를 통해 ‘그림자 수묵화’를 선보인다.
한국화가 조환이 펼치는 ‘철판산수’의 세계
철판으로 수묵화를 표현해 한국 미술계에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한국화가 조환(57). 1980년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월전미술상 등을 받으며 명실공히 한국화 대표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던 그는 붓과 먹 대신 철판 조각을 이용해 사군자를 완성했다. 철판의 부피감과 무게감, 즉 양감은 먹이 갖고 있는 깊이를 대신하며 진중하면서도 거침없이 전통의 요소를 재창조했다. 여기에 조환이 일찍부터 공을 들인 서예의 필획은 작품 속에서 선의 흐름으로 드러났다.

한국화가인 그가 붓을 놓고 돌연 철판을 들고 나타난 것은 2008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귀로-흔적’ 때부터다. 5년의 뉴욕 유학 생활 동안 ‘그리기’와 잠시 거리를 두고 공간을 품는 조소 작업에 몰두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그 이면에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 나아가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변화가 깊게 자리했다.

삶 속의 모든 것이 작품 소재

‘철판산수’는 조환을 꾸미는 수식어다. 처음 철판산수를 선보인 지 7년, 이제 조환은 또 한 번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다. 10월 16일까지 한원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그는 수년 동안 공을 들여 완성한 18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그중에는 빛과 공간, 그림자를 통해 완성된 작품(Untitled : mixed media, 290×578cm, 2015)도 있다. 관객과 작품 사이를 흰 천으로 막고 철판 조각이 아닌 그림자를 전면에 내세운 시도다. 그로 인해 흰 천에 은은하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종이에 스며든 먹처럼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로 탄생했다.

“철은 강하고,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차가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그런 철의 성질이 작품으로 표현될 때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기에 우리 삶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작품 소재로 삼아 표현하는 거죠. 작업실 가는 길에 만난 연꽃, 앞뜰에 핀 나팔꽃, 길에 떨어진 소나무 가지와 솔방울 등 쉽게 만나지만 그래서 더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저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했어요.”



사실 조환은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수묵 인물화를 중심으로 쉼 없이 활동했다. 1990년대 ‘동시대의 삶’을 주제로 현실 속 인간의 모습, 특히 메마르고 척박한 노동자나 소외된 인간들에 주목했다. 하지만 사회가 급변하면서 소외된 인간들의 삶을 화폭에 옮기는 것에 회의를 느껴 1997년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인간’을 제대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는데, 어느 순간 힘들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고 해서 그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인간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잠시 그림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한국화 대신 조소를 공부했다. 그리고 철, 흙, 돌, 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붓과 먹만을 고집하는 것도 숭고한 일이죠. 하지만 전통 속에 계속 빠져있으면 답습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처음 조소를 배우겠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과 같은 작품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대신 당장 조각 공부가 한국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제 작품에 베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죠. 다행히 많은 재료 중에 철이 저와 잘 맞더라고요.”

종이 걱정 없이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었던 시절

조환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재주도 남달랐다. 당시 어린 그가 유명 레슬링 선수들의 그림을 그려놓으면 친구들이 딱지, 구슬 등으로 바꿔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림 그리기는 계속됐다. 마땅히 그림 그릴 도구가 없던 시절, 공책은 물론이고 교과서까지 남아나는 게 없었다. 온통 그림 연습을 하는 습작 노트가 됐다. 한번은 스토리를 넣어 만화를 그렸더니 반 아이들이 서로 빌려가 읽느라고 공책이 너덜거렸다고 한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보니 마땅히 그림 그릴 만한 도구가 없어서 부지깽이로 바닥에 그리거나 교과서 빈칸에 그리는 식이었어요. 공부 안 한다고 어머니께 매일 혼이 났지만 그림 그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2남 1녀 중 장남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그림만 그리는 통에 어머니의 한숨은 늘었다. 철없는 아들은 혼나는 와중에도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인 왕자표 크레파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조환은 사춘기를 지나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서 딱히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재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화실 다닐 돈이 없는 거예요. 당시 어머니께서 맘잡고 공부하라며 없는 살림에 시계를 사주셨는데 그걸 팔아서 지금으로 말하면 미술학원에 다녔어요. 얼마 후부터는 화실 선생님이 제 형편을 아시고는 돈을 내지 말고 그냥 다니라고 하셨죠. 그때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화실에서 먹고 자며 그림만 그리고 살았어요.”

어렵사리 대학에 입학했지만 어머니 혼자서 꾸려나간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학비를 마련하기도 빠듯했던 조환은 학교에서 늘 친구들에게 화선지를 빌리러 다니기 바빴다. 당시 그의 꿈은 “종이 걱정 없이 평생 그림만 그리며 사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 한 점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지금, 조환은 더 이상 종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며 변화를 꿈꾼다. 현재 성균관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 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잖아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같이 배우고 같이 성장하는 걸 느낍니다. 예술이라고 해서 감각만으로 강의를 할 수는 없거든요. 강의 준비를 하면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좋은 기와 영감도 얻고요.”

조환은 자신의 작품이 대중 속에서 함께 호흡하기를 바랐다. 새로움이란 새것이 아니라 묵은 것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말하는 한국화가 조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한국적 미의식과 세계관의 끈을 놓지 않는 한국화가 조환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한국화가 조환이 펼치는 ‘철판산수’의 세계
1 Untitled_steel, polyurethane_159X80cm_2015

2 Untitled_steel, polyurethane_88X110cm_2014

3 Untitled_steel, polyurethane_85X209cm_2015

4 Untitled_steel, polyurethane_117X92cm_2014

5 Untitled_steel, polyurethane_164X111cm_2015

6 Untitled_steel, polyurethane_141X259cm_2015

7 빛과 공간, 그림자를 통해 완성된 작품(Untitled : mixed media, 290×578cm, 2015). 관객과 철판수묵화 사이를 흰 천으로 막고 그림자를 전면에 내세워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탄생시켰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10월 6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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