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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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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Sexibility

글 · 미소년 | 일러스트 · 곤드리

2015. 09. 08

낮에 미팅을 하다가 내가 말했다. “이혼남이라 끼니 때우는 것도 힘들어.” 나 빼곤 다 여자였는데, 왜 그렇게 자학을 하냐는 식으로 위로했다. 나는 왜 굳이 그런 말을 했을까?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고, 나 스스로 그 상황을 태연하게 말하는 상태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이혼하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야, 요즘은 이혼한 거 흉도 아니야”였다. 단어는 조금씩 달랐을 수도 있는데 내용은 그랬다. “요즘 싱글 여자들은 이혼남을 좋아한다며?” 같은 어이없는 위로도 받았다. 흉이다. 흉이 아니면 뭔데? 자랑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누가 이혼했다고 하면, 그래서 위로를 하고 싶으면,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낫다. “소개팅시켜줄까?”

소개팅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당연한 말이긴 한데, 이혼하면 소개팅하는 게 어렵다. 주선자나 나나 문제가 뭐냐면… 이혼남이란 얘기를 미리 여자한테 할 것이냐 말 것이냐다. 나는 거짓말하는 게 자존심 상하니까 굳이 숨기지 말자고 한다. 그래서 아직 소개팅을 못 해봤다. 그러니까 소개팅시켜달라고. 이혼한 여자도 괜찮으니까. 괜찮나…? 안 괜찮은 거 같아. 미친놈. 정신을 못 차렸네.

이혼하고 나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많이 들은 말은, 뭐게? 미안합니다. 이딴 걸 퀴즈라고 내고. 괴로워서 그런다. “결혼 또 할 거야?” 이 말을 참 많이도 합디다. 이게 이혼한 사람한테 할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여기 적는다. 다시 할 거다. 하기 싫은 사람도 있겠지. 나는 할 거다. 가정을 꾸리고 싶다, 그게 다다. 고민은 된다. 걱정도 된다. 결혼할 수 있는 걸까?

못 할 것 같다. 일단 결혼식이 문제다. 두 번 하는 게… 내가 그게, 가능해? 물론 나도 두 번째 결혼식에 다녀온 적이 있고, 진심으로 축하했다. 첫 번째 결혼식보다 더 간절하게 축하했다. 그러니까 내가 두 번 결혼해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축하를 굳이 결혼식장에서 받고 싶지 않다. 혹시 결혼을 하더라도 예식을 치를 생각은 없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나 같은 ‘돌싱’을 만나야겠지? 처음 결혼하는 여자는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장하고 싶을 테니까. 만약 그녀가 나를 배려하기 위해, 하객 2백 명을 예식장으로 부르는 번거로운 일을 안 하겠다고 말해도 내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까 1백 걸음쯤 물러나서 이혼이 흉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이혼은 명백하게 죄다. 헤어진 사람에게도, 미래에 혹시 결혼하게 될지 모를 사람에게도.

결혼 못 할 것 같은 이유는 또 있다. 며칠 전에 후배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형, 결혼하면 좋아요?” 그 자식,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가만두었다. “네가 결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삶의 가치가 어떤 거야?” 나는 물었다. 후배는 대답했다. “그런 걸 생각해야 돼요? 저는 그냥 좋아서. 저한테 잘해줘서….” 머리가 아팠다. 나도 후배와 똑같은 마음으로 결혼했다. 후배는 결혼하면 잘 살 것이다. 나는 못 살았지만. 하지만 나는 이 말만은 해주고 싶었다. “결혼하기 전과 결혼한 후가 똑같은 여자가 지구에 있는지 모르겠어.” 아마 그런 남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못 믿겠다. 나도 못 믿겠고 여자도 못 믿겠다. 결혼하면 왜 달라질까. 모든 것을 이해해주던 천사가 갑자기 단호해진다. 가족이 됐으니까, 지킬 게 많아진다는 건 안다. 그런데 돌아보면 한때 부부였던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자존심? 균형? 소외? 이런 것들이었을 텐데, 헤어지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잘해줘…서 결혼하는 건 말도 안 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편협한 논리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깰 권한은 없다. 나는 나의 신께 기도했다.



이번엔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 이야기다. 몸매도 예쁘고 얼굴도 예쁜데 약간 백치미도 있고, 차도 있고, 돈도 있고, 직장도 좋은 데를 다녀서 흑심을 품고 있다. 걔가 두 달 전쯤에 굳이 밤에 혼자 사는 이혼남 집에 오겠다고 했다. 남자 후배들이랑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전부 내보냈다. 아쉬웠지만, 방을 치우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솔직히… 섹스하는 생각도 했다. 집에 오겠다니까. 그리고 그 후배는 얼마 전 파혼했다. 이유는 집 때문이었다. 결혼하기로 한 남자가 준비한 집이, 그녀의 말에 의하면, “엄마가 마음에 안 들어해가지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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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천사는 미혼이다!

후배가 왔다. 짧은 치마를 입고. 후배가 들어왔다. 배고프다며 치킨을 시켜달라고 했다. 시켰다. 돈을 후배가 냈다. 섹시해 보였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는데 후배는 안 마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멀뚱히 앉아 TV를 보다가 의미 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혼했고, 걔는 파혼해서 그럴까?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후배는 나랑 섹스하고 싶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따라 딱히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어서 내 집에 온 것 같았다. 이혼하면, 이런 김칫국을 꽤 자주 들이켠다. 이혼하기 전엔 욕망이 불타오르기 전에 억눌렀다. 내가 눌렀고, 이 사회의 관습이 눌렀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마구 풀어헤쳐져 있다. 결혼한 남자들은 나에게 말한다. “넌 좋겠다.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도 되잖아. 즐겨.” 하지만 이 여자 저 여자가 다 나를 만나주지는 않는다. 만나준다고 해도 그게 과연 즐거운 일인지 모르겠다. 별로 안 즐거운데. 그것은 마치 대출받은 돈으로 차를 사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갚아야 할 감정들이 쌓여 가는 것이다. 나는 그 채무가 무겁다.

그녀에게 말했다. “집 때문에 결혼을 안 한다는 거, 말로만 들었는데, 내 주변에서 겪은 건 처음이야.”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모르겠어. 엄마가 싫어하셔서.” 그녀는 방관자였다. 신기했다. 솔직히 나는 혼수, 정확하게는 남자네 집이 돈을 더 많이 내지 않아서 파혼하는 걸 말로만 듣고, TV로만 보면서 여자를 욕했다. 아니 욕했다기보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이 없으면 나랑 결혼할 생각하지 마, 이런 의사 표현 아닌가? 그렇다면 그동안 쌓아온 사랑의 감정은 어디로 가는 걸까? 슬프지 않아? 괴롭지 않아? 이별하는 거. 나는 그런 여자들의 뇌 속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친한 후배를 통해 그녀들이 견뎌내는 방식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저 방관한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파혼이 아니야. 만나다가 헤어진 거지.”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 후배를 여자로서 좋아한다. 섹시해서. 돈도 많아서. 심지어 그 후배는 착하다. 믿거나 말거나 착하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할 때, 여자는 누구라도 다른 사람이 된다. 정도의 차이,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우리 남자들이 사랑했던 그 여자가 아니다. 물론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렇고. 뭐, 남자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결혼을 또 하는 게 가능해? 산을 마침내 넘었는데, 또 산이 나타나는 게 결혼이잖아. 내가 신혼집을 마련했을 때 전처의 어머님이 전화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작은 집에서 살 수 있겠어? 집이 그렇게 작은 게 말이 되냐고?” 나는 왜 죄송한 마음이 들었는지, 머리를 숙였다. 통화 중이었는데. 그분에게만 죄송한 게 아니라 내 엄마에게도 죄송했다.

나는 안다. 천사도 결혼할 땐 악마가 된다는 걸. 그리고 나는 안다. 모든 천사는 미혼이라는 걸. 내가 찾고 있는 건 천사다. 천사와 두 번째 결혼식을 하겠다. 그러나 천사는 결혼하지 않는다. 하물며 천사가 두 번째 결혼하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줄 리 없다. 만약 기적적으로 받아준다고 해도, 천사 주변에는 늘 악마들이 있다. 악마… 그 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에게 딸을 주세요. 큰 집 살 돈이 없습니다. 결혼식도 안 하려고요. 천사에게 잘해줄 자신도 없습니다. 천사가 우리 엄마네 집에 자주 오면 좋겠습니다. 내가 다시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천사를 만난 게 아니다. 그들은 이겨냈을 것이다. 저 거추장스러운 현실의 감정들을. 그들은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굉장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못해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디자인 · 유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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