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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희석의 반전 드라마

“지질한 불륜남? 실제로는 딸 바보, 교회 오빠예요!”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두경아 자유기고가

입력 2015.08.18 16:17:00

악역을 잘해내는 데도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최근 종영한 SBS 아침드라마 ‘황홀한 이웃’에서 밉살맞으면서도 코믹한 악역을 맡아 ‘제2의 손현주’라는 별명을 얻은 윤희석.
드라마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한 ‘자연인 윤희석’을 만났다.
배우 윤희석의 반전 드라마
훤칠한 키, 단정한 이목구비, 서글서글한 웃음…. 윤희석(41)은 전형적인 ‘훈남’, 더 구체적으로는 ‘교회오빠’ 스타일이었다. 기자가 인사말로 첫인상을 전하자, 그가 크게 웃으며 답했다.

“아, 그래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못생긴 게 성격도 못됐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만 나오면 ‘재수 없다’고 채널 돌리는 분들도 있었고요(웃음).”

지난 6월 종영된 SBS 아침드라마 ‘황홀한 이웃’ 이야기다. 그는 극 중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남자’ 서봉국을 맡아, 지난 반년간 시청자들의 원망을 한 몸에 샀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캐릭터 소개가 ‘분에 넘치게 잘생긴 외모’로 돼 있어서 더 욕을 먹었던 것 같아요. 진짜 꽃미남이 맡았어야 했는데(웃음). 어쨌든 6개월간 서봉국으로 살아온 터라, 아직 그 습관이 남아 있어요. 서봉국처럼 인상을 쓰거나, 다소 코믹한 말투가 가끔 튀어나오죠.”

착해 보이고 싶은 마음 이겨야 진짜 연기 나와



윤희석은 ‘황홀한 이웃’에서 옆집 여자와 바람이 나 가정을 버린 후에 적반하장으로 아내(윤손하)의 새 남자(서도영)에게 복수도 했다가, 말미에는 병든 아내를 위해 지고지순한 남편으로 돌아오는 스펙트럼 넓은 역할을 해냈다. 그 연기가 얼마나 감칠맛 났던지, ‘제2의 손현주’(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의 손현주)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악역을 악역답게 소화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신체적으로 무리가 와요. 혈압이 올라가죠. 일주일분 세트 촬영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데, 한 회당 소리 지르는 신이 하나씩만 있어도 하루에 다섯 번을 하는 셈이잖아요. 가짜로 하면 티 나니까 다 진짜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드라마 내내 소리만 지르는 건 아니니까, 감독님이 ‘컷’ 하면 감정을 빨리 추스르고 거기서 벗어나야 해요.”

악역을 연기하며 어려운 점은 또 있었다. 이번에는 심리적인 부분.

“배우도 사람이잖아요. 악역을 하면서도 그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선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진짜 그렇게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여기서 더 약하게 할까?’ 하는 유혹이 들기도 해요. 쉽게 말해 욕먹기 싫은 거죠. 그걸 이겨내야 해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도 갈등이 있었는데, ‘서봉국이 단순한 악역으로 끝나지 않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진지하게 이야기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제가 너무 무겁게 이야기했나요?” 하며 웃는다. 그렇다고 이번 드라마가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다.

“시원섭섭해요. 눈을 뜨면 촬영장에 가야 할 것 같았어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정말 좋았죠. 윤손하, 박탐희, 서도영…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었어요. 늘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했어요. 작품을 하면서 정이 들어서 드라마 끝나고 스태프들과 다 함께 만리포로 MT를 다녀왔어요. 20대로 돌아가 캠프파이어도 하고, 수건돌리기도 했네요(웃음). ‘조개껍질 묶어~’ 이런 노래도 부르고요.”

사랑이 넘치는 남자

배우 윤희석의 반전 드라마
윤희석의 실제 모습은 드라마 속 자유로운 영혼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가정적이다. 윤희석은 2011년 결혼해 네 살배기 딸 하나를 두었다. 그는 딸 앞에서는 꼼짝없이 ‘딸 바보’가 된다. 촬영을 나갈 때 아이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드라마 속 ‘선한’ 모습을 녹화해두었다가 틀어주면서 “아빠, 이거 찍으러 가는 거야” 하고 달랜다고.

“항상 딸과 대화할 때 솔직하게 말해주고,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네 살짜리 꼬마가 뭘 알아?’ 하지만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쁜 이야기인지 좋은 이야기인지, 저 사람이 화났는지 편안한지’ 다 알고 있어요.”

그는 딸 육아에 관해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다운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 그것이 ‘윤희석식 육아’의 목표다.

“아이에게 뭔가를 강요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감정의 표현이 적어지고, 마음의 문을 닫게 돼요. 엄한 교육은 충분히 나중에 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지금은 자신의 다양한 감정들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시기라고 생각하죠.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버릇이 나빠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칭찬하거나 사랑을 주는 게 도움이 되죠. 흔히 아이를 훈육할 때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힘으로 제압하라’고 하잖아요. 딸이 두 살 때 그걸 해본 적이 있거든요. 그 어린아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버티더라고요. 그때 좀 후회했어요. 누구에게나 맞는 교육법은 아닌 것 같아요. 자녀의 성향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그는 다정한 아빠일 뿐 아니라,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다. 윤희석의 아내는 선교 활동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가 작품 활동에 공백이 생겨 정신적으로 힘들 때 곁에서 많은 응원을 해줬다고 한다.

“부부는 ‘반려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을 평생 가져가고 싶어요.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력과 헌신이 필요한 게 부부 관계 아닐까 해요. 아이, 아내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아요. 어머니는 항상 남자도 여자와 함께 살림하고 집안일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늘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덕분에 저도 아내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자주 해요. 그런 말들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자존심 때문에 망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감정은 오래 묵으면 더 해결되기 힘들죠.”

그는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화목한 가정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는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형은 장난으로라도 동생에게 손 한번 대지 않을 정도로 선했다. 그는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전형적인 ‘교회 오빠’로 성장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가족끼리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사고 치지 않고 집안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형이 목사거든요. 커서도 집안을 책임질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어깨는 무거웠지만,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1기 졸업생인 그는 “배우의 길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 연극 ‘터미널’로 데뷔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2010년 단막극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시작으로 드라마 ‘천사의 선택’과 ‘해를 품을 달’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 전까지는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뮤지컬이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공사장에서 파지를 주워다 팔기도 하고,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식당에서 고기 굽는 일도 했죠. 택시 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많은 걸 느꼈어요. 매일 채워야 하는 사납금 때문에 자판기 커피 한잔에도 부들부들 떨게 되더라고요.”

그는 지난 어려운 시간을 떠올리며 절망적인 날들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그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려 애썼다. 그는 “돈벌이 수단이었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으면 너무 괴로웠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좋게 말하면 인생 공부를 한 셈이죠. 배우에겐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왜 가난해?’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먹지, 왜 굶어?’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는 식당에서 반찬 더 달라는 것도 어려워해요. 서빙이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잔일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40대에 시작된 황금기

배우 윤희석의 반전 드라마
‘황홀한 이웃’ 종영 후 윤희석은 미처 쉴 틈도 없이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8월 25일~11월 8일 ·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공연에 돌입했다. 2013년 ‘글루미데이’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무대다.

“최근 어둡고 무거운 역할을 많이 해서 유쾌한 작품을 만나고 싶었어요. ‘형제는 용감했다’는 주인공들뿐 아니라 조연들까지 캐릭터가 살아 있어 앙상블이 기대돼요.”

‘형제는 용감했다’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3년 만에 만난 석봉과 주봉 형제가 안동 종갓집 유산과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대결을 그린다. 그는 이 공연에서 형 석봉 역을 맡았다. 그는 이미 공연과 드라마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뮤지컬 무대는 잘하는 배우들이 많다 보니 내 연기가 부끄럽다”고 겸손해한다.

“첫 대본 연습 때 다들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 돼서 보는 느낌이었어요. 웃겨서 대사를 못 받아칠 정도였으니까요. 무대가 익숙하고 편안해질 때까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조금만 노래하면 숨이 차는데, 공연을 계기로 체력도 회복해야 하고요.”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만 해도 벅찰 것 같은데, 윤희석은 ‘브로맨스 클럽’이라는 밴드로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 조만간 정규 1집 발매를 할 예정인데, 밴드 이야기만 하면 싱글벙글이다. 음악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20대 초반 밴드로 데뷔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기를 당하거나 이용만 당했어요.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이후로는 노래도 안 하고 기타도 안 쳤죠. 그때 막연히, 마흔이 되면 음악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예전에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드러머 형을 만나 음악을 하게 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내나 매니저는 제가 밴드 연습하러 갈 때가 가장 신나 보인다고 해요. 주변에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권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예능은 재능이 없어서 못해요.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되더라고요(웃음). 그나마 일상을 관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괜찮을 것 같아요. 집 앞 텃밭을 일구는 일은 잘하거든요. 또 기회가 된다면 아이를 위해 ‘아빠가 읽어주는 구연 동화’ 녹음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만든 음악을 배경으로 동화를 읽어준다면, 아이도 좋아할 것 같아요.”

윤희석은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인 것 같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들떠 있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배우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공백이 올 수 있죠. 그 공백을 생각해서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러니 제게 들어온 모든 역할이 다 소중할 수밖에요(웃음).”

배우 윤희석의 반전 드라마
사진 · 지호영 기자 PMC프로덕션 제공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장소협조 · 맨메이드 우영미(02-515-8897)

여성동아 2015년 8월 6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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