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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김현철의 쇼핑 심리학

탐닉과 권태 사이, 초콜릿

글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 사진 · REX

2015. 07. 29

초콜릿의 상징은 ‘자기 보상’이다. 지친 자신에게 스스로 하사하는 달콤한 포상인 셈이다. 그런데 뇌 속 자기 보상 회로는 중독 현상을 유발하기 쉽다. 만약 초콜릿이 심하게 끌린다면 당신은 현재 통제 불능의 탐닉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니 애국가를 불러서라도 반드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지만 않다면 초콜릿에 대한 갈망은 현재 모습보다 좀 더 생기 있고 관능적으로 변신하고 싶어하는 당신의 욕망을 뜻한다. 이처럼 초콜릿은 경우에 따라 우리에게 무엇을 주문하는지 180도 다르니 의미를 추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탐닉과 권태 사이, 초콜릿
초콜릿은 야누스다

초콜릿은 요물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심지어 한 사람의 내면에서도 호감과 비호감이 교차한다. 실제로 16~17세기 유럽에서는 초콜릿이 몸에 좋은지 나쁜지에 관한 의견 대립이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이 논쟁은 지겹도록 계속되다가 불과 몇 년 전에서야 비로소 풀렸다. 슬플 때 초콜릿을 섭취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추측이, 2011년 벨기에 루벵대학 연구팀에 의해 입증됐다. 감정과 음식 간의 연관성을 조사하던 중 피곤하고 불안하거나 과로를 했을 경우 사람들은 과일보다 초콜릿 바를 먹으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수화물(초콜릿에는 탄수화물이 60% 정도 함유돼 있다)에 대한 갈망이 비전형적 우울증의 증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뇌 영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셈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여름은 지금처럼 몹시 더웠다. 작가 세비녜 부인은 연일 흐르는 땀을 닦으며 시집간 딸에게 편지를 썼다. 혼수를 챙길 때 초콜릿 그릇을 깜빡하고 빠뜨린 것이 미안하다고 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이 지난 후 부인은 초콜릿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갑자기 불안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초콜릿만큼 저주받은 음식도 없으니 절대로 먹지 말라고.

이 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프랑스 어느 마을에서는 한 부인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심한 폐부종으로 바로 사망했다. 숨을 못 쉬니 몸 전체가 검푸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부인은 단지 죽은 아기의 피부색만으로 임신 기간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은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섣부른 단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3일 만에 그녀는 무고한 초콜릿을 용서(?)하고, 다시 예전처럼 초콜릿 애호가가 된 것이다! 마치 로알드 달의 소설을 영화화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신비로운 ‘웡카 초콜릿’처럼 그들의 마음 역시 정신의학적으로 설명 불가할 정도로 변덕스럽다.

심지어 초콜릿은 죽음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영화 ‘초콜릿 고마워’에도 찰리처럼 초콜릿 공장을 갖고 있는 폴란스키와 미카 부부가 등장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찰리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미카는 다소 섬뜩한 캐릭터로 겉으로는 따뜻하지만 속을 도통 알 수 없는 차가운 여성이다. 뭔가를 숨기며 음모를 꾸미나 그 실체가 명확지 않다. 매일 밤 가족들에게 간식으로 예외 없이 초콜릿을 주곤 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자상한 태도 뒤에 존속살인의 무시무시한 살의가 숨어 있다. 미카에게 있어 초콜릿은 가족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독약을 먹일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다.



초콜릿은 사랑이다

초콜릿은 요상한 녀석이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의 맛을 표현하는 구절도 오죽하면 ‘달콤 쌉싸름한(Bitter sweet)’,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그래서 초콜릿은 신이 내린 최고의 음식이란 찬사와 동시에 악마가 내린 저주받은 음식이란 소문 또한 끊이지 않았다. 음식계의 ‘트러블 메이커’였던 것이다.

저주받은 음식이란 가설이 지지를 받은 근거 중 하나는 대부분의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 작가 사드와 초콜릿의 인연 탓일 가능성이 크다. 가학을 뜻하는 사디즘(sadism)의 창시자 사드 역시 초콜릿 애호가였다. 그가 쓴 작품 중 일부 아니 어쩌면 대부분은 감옥에서 집필됐다. 30년 넘게 감옥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가 투옥된 이유는 놀랍게도 다름 아닌 초콜릿이었다. 그는 파티에 온 사람들에게 최음제와 초콜릿을 몰래 섞어 먹였다. 그 결과 무도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란한 난교 행위에 빠졌다. 이 사실이 탄로난 사드는 투옥됐고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하지만 옥중에서도 그는 여전히 부인을 시켜 초콜릿을 가져오길 주문했다. 부인은 지칠 법도 했지만 오랜 시간 사드에게 정성을 바쳤다. ‘초콜릿에 탐닉하지 말지어다’를 외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치료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 ‘초콜릿’에서의 비안느처럼 이 녀석은 상식을 넘어서는 달콤한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카카오 열매에서 초콜릿을 걸러내어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략 16세기부터다. 당시엔 초창기였으므로 액체 그 자체로 마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쓴맛이 낯설고 색이 짙어 그저 와인 대용으로 쓸 방법 이외는 없었다. 짝퉁 와인으로 취급받던 초콜릿이 갑자기 뜨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맛을 가미한 후 오묘한 맛이 입소문을 탔다는 설이 있지만 성욕을 자극한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라는 설이 아주, 매우, 훨씬 더 유력하다.

탐닉과 권태 사이, 초콜릿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한 장면.

초콜릿은 욕정이다

초콜릿이 성욕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이미 15~16세기 초 잉카 시대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분야만큼은 카마수트라를 비롯, 예전 사람들이나 현대인이나 변하지 않는 초유의 관심사인 것 같다. 일례로 아즈텍 왕 몬테수마(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뭘 어떻게 해주마도 아니고)는 하렘이라는 공간에서 여성과 사랑을 나누기 전 여러 잔의 코코아를 마셨다고 한다. 욕정은 크게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그리고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 줄여서 PEA)이라고 부르는 세 가지 호르몬에 의해 발생한다. 이들 세 가지 호르몬의 수치가 올라가면 이성은 마비되고 행복감에 도취된다. PEA는 뇌 속에서 분비되기도 하지만 초콜릿 속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서로 주고받는 이벤트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남성의 마음을 더욱 자극하게 만드는 초콜릿 속 페닐에틸아민의 검증된 성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초콜릿 속 PEA는 그 자체가 주성분이라기보다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의 효능을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전이 어쨌든 간에 욕정을 자극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만은 틀림없으니 정신만 바짝 차리면 매우 고마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1674년경 영국에서 고체 초콜릿을 생산한 이후 유럽의 로맨틱하고 성공적인 남자 귀족들은 죄다 작은 자갈 모양의 초콜릿을 통에 넣고 다니곤 했다. 추운 겨울도 아닌데, 남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 불현듯이 달콤한 코코아나 핫 초코 한 잔이 그리울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를 초딩 입맛이라 폄하할 이유는 없다. 현재 내 마음이 보다 안정적이며 온화하길 바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초콜릿 우유 또한 현재 삶에 보다 만족하고 싶을 때 마시면 꽤 유용하다. 그러니 남의 취향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내 결핍이 갈망하는 메뉴를 고르도록 하자.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탐닉과 권태 사이, 초콜릿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과 현실, 소유와 존재를 애써 구분하는 대신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정신적 증상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남들에겐 장바구니에 담아 충동구매를 막으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바로구매’를 클릭하는 헤비 쇼퍼.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세상 안내서 시리즈’ ‘뱀파이어 심리학’ 등이 있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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