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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展

시대의 비극과 함께한 천재 화가를 재조명하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입력 2015.07.16 10:50:00

생전에는 월북 화가로 수난을 겪다 사후에야 이름을 떨친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쾌대.
50여 년간 가시밭 같은 삶을 견디며 가족과 민족을 향한 진심을 화폭에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가 7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펼쳐진다.
꼭 봐야할 ‘올해의 전시’ 중 하나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展
이쾌대(1913~1965)는 인체를 완벽에 가깝게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해 리얼리즘 미술의 대가로 불린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과 ‘운명’ ‘군상-해방고지’ 등 그가 남긴 걸작은 사연이 있는 듯한 인물들의 표정, 역사와 시대가 녹아 있는 분위기로 보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7월 22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전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쾌대는 일제강점기 한국적 서양화를 모색하고, 해방 후에는 새로운 민족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 했던 화가다. 진지한 탐구 정신과 뜨거운 열정으로 당시 화단을 이끌었고, 출중한 그림 실력과 독자적인 주제 의식으로 한국 근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알려진 건 1988년부터다. 그때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1953년 월북해 이름조차 거론되는 것이 금기시되다 1988년 해금된 뒤에야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展
이쾌대는 누구인가?

1913년 경북 칠곡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난 이쾌대는 서울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학창 시절 인물화에 매료된 그는 일본의 유명 전람회인 ‘니카텐’에서 인물화인 ‘운명’(1938), ‘석양소풍’(1938), ‘그네’(1940)로 연이어 입선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귀국한 후에는 이중섭, 최재덕 등 일본 유학파 출신 화가들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적인 감성이 녹아든 세련된 서양화를 선보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는 해방의 감격과 역사적 문제를 주제로 한 ‘군상-해방고지’ ‘조난’ ‘창공’ 등의 대작을 발표하며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쾌대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예술가의 역할과 사명을 고민하면서 창작 의욕을 불태우는 한편 홍익대학교 강사,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화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남북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국군의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당시 병환 중인 노모와 만삭인 아내 때문에 피란을 가지 못한 그는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강요로 공산 치하의 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해 김일성,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리는 강제 부역을 했다. 그것이 문제가 돼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이쾌대는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하며 그 무렵 태어난 막내아들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과 조각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는 1953년 남북한 포로 교환 때 북한을 택했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展
그가 어떠한 속박도 없이 회화에 몰두한 시기는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9년까지로 20년이 채 안 된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남긴 작품들은 화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고도 심오한 탐구 정신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쾌대의 10대 초기 습작부터 30대 후반에 남긴 작품까지 그동안 산발적으로 전시돼왔던 대표작들을 망라했다. 아울러 가족이 간직해온 잡지 표지화, 편지 등 각종 유품과 드로잉이 처음 공개된다.

이쾌대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아내 유갑봉 씨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그림을 팔아 자식들이 굶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유씨는 월북 작가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감시 속에서도 자신과 네 자녀의 생계를 어렵게 꾸려나가며 이쾌대의 작품들을 고스란히 지켜냈다.이쾌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이기도 했던 유씨는 1980년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다락방에 숨겨 40년 가까이 보관한 남편의 작품들은 1988년 월북 작가에 대한 해금이 이뤄진 후 세상에 나와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아내를 각별히 사랑했고, 한국의 역사와 민족의 운명을 고민했던 거장 이쾌대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그가 ‘비운의 천재 화가’이기 이전에 수많은 드로잉과 습작을 통해 기량을 연마한 노력형 화가이며, 시대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세련된 예술을 추구한 화가였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관람료 무료, 전시 문의 02-2188-6239

디자인 · 최정미

여성동아 2015년 7월 6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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