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색이나 스모키 화장 말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방법이 따로 있다. 바로 립스틱이다. 립스틱은 여타 시술은 물론 어떤 화장품보다 가격 대비 성능비가 아주 높다. 오죽하면 소비심리학에선 ‘립스틱 효과’라는 용어까지 나왔을까. 자존감이 낮아지면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또한 곱지 못할 것이란 피해의식이 생기는 법이다. 이처럼 기분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립스틱은 비교적 훌륭한 임기응변의 심리적 방패 구실을 한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입술이 관능과 유혹, 욕정의 대표 아이콘이란 사실을. 빨간 립스틱은 관능미 그 자체다. 당신이 만약 마릴린 먼로처럼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뭇 남성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술을 오므리는 버릇이 있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 주변은 언제나 남자들로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행여나 여기에 윙크하는 습관까지 갖고 있다면 감당할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립스틱은 애욕과 진한 스킨십을 갈구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립스틱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거나 이미 로맨스에 빠져 있을 때 저절로 손이 가는 아이템이다. (물론 익히 아는 것처럼 [로맨틱 = 성공적]은 아니지만) 반면 푸른 계열의 립스틱은 치명적 섹시함을 연상시킨다. 뱀파이어 입술의 색이다. 인간들 사이에 섞이고 싶은 욕구와 타인을 착취해 우월해 보이고 싶은 욕구를 함축한다. 냉철함과 의존심을 동시에 표현하기 때문이다. 반면 검은 립스틱은 완전 죽은 색이다. 만약 모임에서 검은 립스틱 짙게 바른 분이 있다면 애써 말 걸어봤자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굳이 원하지 않은 모임에 억지로 끌려나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난히 립밤을 자주 찾는 나, 구석으로 몰리고 있지는 않은지?

립스틱 위에 발라 입술에 촉촉한 윤기를 더해주는 립글로스 또한 자기 주장에 자신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필수 아이템이다. 립스틱에 립글로스까지 바른 여성 중 일부가 의외로 말이 없고 조용하다. 애인이 자기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고 토로하는 여성 중 일부를 차지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립스틱 위에 립글로스를 바르는 걸 당연하다고 느낀다면 한 번쯤은 떠올려보자. 상대에게 너무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지. 일상에서 달변가가 될 필요는 없다.
참고로 만약 당신이 립스틱도 모자라 입술 피어싱에 유달리 눈이 간다면 현재 심리가 그다지 편치 않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높다. 비록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혀를 자르지는 못해도 방정맞은 입만큼은 어떻게 막고 싶은, 일종의 처벌 욕구가 무의식적 원동력일 수 있다. 타인에게 말로 상처를 준 기억이 자꾸 나거나 뼈저리게 후회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입술 피어싱을 하고 다니며 일언(一言) 중천금(重千金)을 몸소 실천한다. 원죄(原罪)의 진원지인 입술에 고통을 준 뒤에 무거운 감각을 안겨주는 것은 속죄의 의미뿐 아니라 말의 신중함을 항상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반면 ‘나의 말 한마디는 그만큼 파급 효과가 있다’는 과시 욕구 또한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신은 사랑이 있던 자리에 들어온다’는 아일랜드 속담처럼 우리는 애착을 느끼는 대상에게 곧잘 의심을 하곤 한다. 입술은 태어나서 무조건적인 믿음을 경험하게 만든 그 누군가와 가장 처음 접촉했던 신체의 일부다. 입술의 본질은 말이요, 말은 진솔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진솔하려는 노력,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존중하고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를 차분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은 당신의 입술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립스틱뿐 아니라 입술에 관련된 모든 제품에 눈이 간다면, 갈구하는 애정만큼이나 불신 또한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지는 않은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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