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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대한민국 상류사회 그리고 수애의 욕망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10. 18

욕망이 넘실대는 ‘상류사회’와 화려한 연예인의 삶. 영화 ‘상류사회’의 주연을 맡은 배우 수애가 닮은 듯 다른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화 ‘님은 먼 곳에’(2008)와 ‘심야의 FM’(2010)으로 국내 영화제의 양대 산맥인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수애(39). 그가 2년간의 정적을 깨고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복귀작은 8월 29일 개봉된 영화 ‘상류사회’로, 각자의 욕망에 사로잡힌 부부를 통해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민낯을 풍자한 변혁 감독의 신작이다. 

수애가 맡은 배역인 미술관 부관장 오수연은 남편 장태준(박해일) 교수와의 결혼 생활도, 전 남자 친구인 미디어 아티스트 신지호(이진욱)와의 잠자리도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욕망의 화신이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그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국가대표2’ 이후 2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상류사회’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나리오를 검토할 때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인지를 가장 먼저 살피는데 그 점에서 확신이 들었어요.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유명한 변혁 감독님의 연출력도 기대가 됐고요.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박해일 씨에 대한 깊은 신뢰도 한몫했어요. 언젠가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었던 배우라서 오빠에게 제가 먼저 같이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죠. 

박해일 씨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요. 

기대 이상이었어요. 저희는 각자의 욕망만을 쫓는 보편적이지 않은 부부를 연기해요. 감독님이 요구한 것도 날이 서 있는 불꽃 튀는 부부였고요. 그런 모습을 표현하려고 만나면 티격태격하는데 그런 부분까지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감정 표출을 위해 욕도 하고 때로 맞담배도 피우고 하는 설정들도 이채로웠고요. 

스스로 분석한 오수연은 어떤 인물인가요. 

자신이 가진 욕망의 민낯을 당당히 드러내는 여성이에요. 손가락질받을 걸 알면서도 자기 욕망을 위해 달려가고, 그러다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도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아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오수연이 왜 욕망의 화신이 됐는지를 유추해봤어요. 아마도 오수연은 대학 시절엔 성공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신 남들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실력도 뛰어난 학생이었겠죠. 그런데 미술관에서 일하며 재벌들을 상대하다 보니 실력만큼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의 벽에 자주 부딪혔을 거예요. 부모를 잘 만나 관장이 된 이화란(라미란)을 보며 박탈감과 분노가 일었을 테고요. 그런 감정이 욕망으로 변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1등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라고 생각하니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배우로서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은 어떤 것인가요. 

현재는 ‘상류사회’가 잘되는 것이 가장 큰 욕망이죠. 하하하. 사실 그동안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어요. 신인 시절을 돌아보면 연기를 전공하지도,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한 상황에서 주인공으로 촬영 현장에 투입돼 늘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현장을 즐기지 못했어요. 제가 즐기지 못하는 배우라는 걸 스스로 처음 인식한 게 ‘감기’(2013)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였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상대 배우였던 장혁 선배가 저더러 “우리 대본에서 벗어나 좀 즐겨보자”고 제안했어요. 오빠도, 저도 대본에 집중하는 스타일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거든요. 조용한 카페에서 상황극을 벌이며 저희를 옭아맸던 틀을 깨는 시간을 가졌는데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제 목표가 ‘눈앞에 있는 걸 잘해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배우 생활과 개인적인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어때요. 

아직도 완전히 즐기진 못하지만 그러려고 노력해요. 그런 노력을 통해 상대 배우와의 원활한 소통이 연기 호흡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상류사회’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부부가 한방에 싱글 침대 두 개를 놓고 따로 자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각방을 사용하진 않고요. 그럴 땐 서로 같은 선상에서 같은 곳을 보고 달려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지 내지는 파트너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부부죠. 오수연이 자신의 민낯을 남편에게 들킨 뒤에도 두 사람이 계속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지점에서는 ‘이상적인 부부’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오수연이 사랑 없는 쇼윈도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관장이 되려고 물불을 안 가리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평도 있더군요. 

저도 그랬어요. 타워팰리스에 살고, 레인지로버를 타고 다니고, 남편은 전도유망한 경제학 교수고, 본인도 큐레이터 부관장이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데도 1등이 되고 싶어하잖아요. 학창 시절에도 시험을 보고 나면 꼭 2, 3등이 울었어요. 꼴등은 안 우는데 2~3등은 분해서 울죠. 감독님도 그런 심리를 다루고 싶어하셨어요. 

오수연처럼 현재 갈망하는 것이 있나요. 


저는 오수연과 달리 현실에 순응하는 편이에요. ‘님은 먼 곳에’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심야의 FM’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는데 그것은 제가 갈망한다고 가질 수 있는 상이 아니잖아요.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선택돼야 가능한 일이고요. 그래서 전 더 큰 뭔가를 갈망하기보다 어떤 작품이 들어와도 해낼 수 있는 준비된 배우이고 싶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제 마음이 행복하고 단단해지기 위한 준비인 것 같아요. 심신이 건강한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저는 아침형 인간이라 굉장히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해요. 미세먼지 때문에 오수연처럼 조깅은 하지 않고 필라테스를 해요. 그러곤 저의 개인적인 시간들을 보내죠. 책도 읽고, 뉴스도 보고, 여행도 혼자 자주 다녀요. 여행은 뭔가를 느끼고 사색할 수 있어서 좋아해요. 핫 플레이스보다는 한적한 곳을 선호하고, 차량으로 이동하기보다는 무작정 걸어요. 

극 중 배우 이진욱 씨와 프랑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격정적인 베드신을 찍었어요. 그 장면이 부담됐을 법도 한데요. 

오수연은 재개관 전시회를 통해 관장 자리에 오르려 했고, 그러기 위해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 신지호의 참여가 절실해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신지호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그런데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벗고 학창 시절 캐주얼 룩으로 옛 애인과 함께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심리적으로 여러 감정이 작용하면서 뜨거운 밤을 보내게 돼요. 이번 작품에서 꼭 필요한 신이고 노출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진 않았어요. 사전 논의 없이 촬영이 진행됐다면 현장에서 위축됐겠지만 감독님과 미리 협의를 마친 상태로 스태프들의 배려 속에서 편안하게 찍었어요. 

오수연은 자신의 불륜 동영상을 남편과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틀어요. 영화를 보면서 수애 씨라면 그때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더군요. 


오수연처럼 당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오수연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가 이 여자를 멋있다고 여긴 것도 생애 최악의 수치와 모멸감을 느낄 그 상황을 당당함과 솔직함으로 극복하기 때문이에요. 그 덕분에 연기하면서 대리 만족을 할 수 있었어요. 

동영상을 틀기 직전 오수연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던데요. 

실은 그 신을 찍기 전 많이 울었어요. 감정을 배제하고 당당함을 어필해야 하는데 마음이 계속 울컥울컥하더라고요(웃음). 

오수연이 어깨를 쫙 펴고 미술관 계단을 우아하게 오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이힐을 클로즈업했을 땐 이 여자가 얼마나 완벽하게 자신을 포장하며 사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당당해 보이려고 워킹과 자세는 물론 의상과 소품의 디테일까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제가 평소엔 하이힐을 신지 않거든요. 감독님이 여성성이 부각되지 않길 원하셔서 헤어스타일도 단발로 하고 목선이 드러나지 않는 터틀넥 의상을 늘 착용했어요. 그런 소소한 부분들이 캐릭터 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수애 씨는 ‘단아함’의 대명사로 통해요. 이번 작품이 그런 이미지를 깨는 계기가 됐을 듯해요. 

기존 이미지를 굳이 깨고 싶진 않아요. 거기에 새로운 색을 덧입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단아함도 제가 가진 면이니 소중하지만 그 안에 갇히긴 싫어요. 다양한 도전을 즐기며 연기 폭을 확장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다른 수식어도 생겨날 테죠. 

어떤 수식어가 붙길 원하나요. 

‘어, 역시!’ 또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길요.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사랑, 결혼, 욕망이었어요. 수애 씨도 사랑과 결혼이 별개라고 생각하나요. 

사랑과 결혼이 이어지는 것 같진 않아요. 사랑의 감정이 커진다고 해서 결혼에 골인하는 게 아닌 듯해요. ‘연애 따로, 결혼 따로’를 바라진 않지만 결혼은 사랑처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결혼은 운명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남성상은요. 

소통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영화 속 부부를 이상적으로 본 것도 항상 같은 편이 돼주기 때문이에요. 저도 장태준 교수처럼 제가 민낯을 드러내고 속내를 보여도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고 싶어요. 내 편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야 소통이 가능할 것 같아요. 

영화에서 부부는 각자 바람을 피워요. 불륜 행위는 ‘내 편’인 배우자에 대한 배신 아닌가요. 

배신 맞죠. 그런데 이들 부부에겐 사랑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크고 중요하기에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도 둘 다 분노하지 않은 거겠죠. 영화에서 다루고자 한 것도 그런 이율배반적인 욕망이고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존재는 누군가요. 

어릴 땐 부모님이었는데 지금은 저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갇혀 있지 않으려고 늘 열린 마음으로 무엇이든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요.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최근 관심사는 뭔가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초월명상’을 배우러 다녔어요. 저만의 만트라(주문)를 갖고 수련하면서 평화와 평정이 제 삶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어요. 배우 생활도 중요하지만 자연인으로서의 제 삶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게 됐고요. 

올해로 데뷔 20년째예요. 배우로서 성인이 된 셈이에요. 앞으로 어떤 배우로 대중에게 다가가길 소망하나요.
 
연기를 시작한 후 한결같은 바람은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금도, 앞으로도 자꾸 궁금하고 기대감이 생기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것이 배우로서 저의 목표고, 꿈이에요.

사진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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