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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SENSE&SEX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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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미소년 | 일러스트 · 송다혜

입력 2015.05.13 13:54:00

평일 저녁 30대 중후반 남자 넷이 맥주를 마셨다.
여자가 한 명도 없으면 남자들은 무슨 얘기를 할까?
남자 넷이 만났다. 우리는 만나기 전부터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 안 봐서, 만나야 할 것 같아 만났다. 우리는 정말… 삼십대 중후반인데도 남자들끼리 만난다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땐 남자 넷이 만나도 괜찮았다. 우리는 우리를 위로할 수 있었다. “여자, 꼬시자”라고.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안 만나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 한화 이글스 야구 경기를 보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났다. 집에 들어가도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가 잔소리하고, 또 아내가 잔소리하고, 또 아내가 잔소리하고… 이러니까, 밖에서 술이나 마시자,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자들 알겠죠?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면 좋겠어요? 그럼, 여러분이 나가세요. 그럼, 남자들도 집에 일찍 가서 쉴 수 있어요. 프로 야구 중계도 볼 수 있고.

아무튼 우리는 만났다. 내가 제일 일찍 갔다. 회사가 일찍 끝나서 늦을 수도 없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저녁 7시 약속이니까 8시쯤 되면 기어오겠지, 혼잣말을 하면서 일식집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마치 ‘뉴 페이스’ 여자가 와서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다른 남자 셋이 7시 15분쯤 전부 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할 게 없어서.”

우리는 아사히 생맥주를 시켰다. 별 의미 없이 ‘브라자’를 외쳤다. 한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여자가 없으면 이제 술자리에 못 있겠어.” 이 말에 모두 동의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우리가 가장 최근 만난 게 1년 전인데, 그때 싸웠다. 금방 화해한 걸로 봐서는 별 시답잖은 이유였던 것 같다. 아, 그때 우리는 프로 야구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랬네… 네 명 중 두 명이 축구 기자인데, 야구 얘기를 하면서 싸웠구나. 여자가 있었다면, 겨우 그런 일로 싸우지 않았을 거다. 여자를 사이에 두고, 중세 시대 기사들처럼 결투를 하면 모를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땐 왜 결투를 했을까? 왜 승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거지? 남자 둘 중 한 명을 여자가 고르면 되는 거 아냐? 그게 옳은 거 같은데. 아무튼 남자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이가 들수록 쓸데가 없어진다.

남편 주머니에서 사우나 쿠폰이 나온다면…



이날도 역시 싸울 뻔했다. 하지만 내가 참았다. 유부남인 한 남자가 마찬가지로 유부남인 한 남자와 한 달 전에 ‘사우나’를 갔다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 딴 얘긴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남자들은 왜 결국 다 자기 입으로 실토하는 걸까? 갔다 왔단 말을 안 했으면 싸울 일도 없는데. 꼭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근데, 그때 사우나 괜찮지 않았어?”

“뭐야, 사우나 갔다 왔어? 둘이?”

“바보, 그 얘기를 여기서 하면 어떡해?”

대략 이딴 식이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난 것이다. 아니, 왜 둘이서만 가? 우연히 만나서 술 마시고 별생각 없이 갔다 왔다고 그 둘은 말했다. 하지만 나도 사우나를 좋아한단 말이다. 그나저나 사우나가 뭔데?

지금부터 주부들을 위한 꿀팁 들어가시겠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주부님들도 계시겠지만. 사우나는 퇴폐 업소다. 일단 계산을 하고 들어가면 사우나가 나온다. 거기서 몸을 씻고 따뜻한 탕 안에 들어가 노곤한 몸뚱이를 내버려두고 있으면 웨이터 같은 남자가 나타나 방으로 안내해준다. 수술 침대랑 비슷하게 생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여자가 들어온다. 저 위에 말한 유부남 남자는 사우나에서의 첫 경험을 이렇게 술회한다. “난 무슨 연예인 들어오는 줄 알았어.” 그렇다. 여자가 무지 예쁘다. 어지간한 룸살롱에서 볼 수 있는 여자들보다 예쁘다. 대신 이 여자들은… 이걸 뭐라고 말하지… 아, 섹스는 안 한다. 다만 다른 방법으로 남자의 욕구를 해결해준다. 자세한 건 상상에 맡길게요. 아니면 남편분께 여쭈세요.

“와이프가 이러는 거야. ‘당신은 사우나를 왜 이렇게 자주 다녀?’ 완전 놀라서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쿠폰을 들고 흔들더라고.”

사우나, 라고 적힌 쿠폰엔 도장이 8개나 찍혀 있었다. 10개 찍으면 한 번 무료다. 그러니까 빨래할 때 남편 옷에서 사우나 쿠폰이 나오면, 아, 이건, 그거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암튼 쿠폰을 갖고 있으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그 나이 남자가 커피 쿠폰 말고 뭐가 필요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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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빼고 사우나에 갔지만 나는 화내지 않았다. 다른 남자 한 명도 화내지 않았다. 저 나쁜 둘이 다음에 한번 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화제는 ‘이혼’으로 넘어갔다. 한 명이 최근 이혼했기 때문이다. 남자 셋은 한 명을 위로하려고 애써 담담한 척했다.

“요즘 이혼은 흠이 아니잖아”라고 말했고, “그런 말 정말 많이 듣지만, 이혼한 내 입장에선 위로가 안 돼. 흠이야. 왜 흠이 안 돼?”라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와이프랑 섹스 안 해. 우리는 아이도 없잖아. 그냥 사는 거야. 우리 와이프는 우리 엄마, 아빠 보러 아예 안 가.” 남은 남자 셋은 약간 놀랐다. 결혼 그까짓 거 대체 뭘까? “그런데 이혼하니까 슬프기는 한데 예쁜 여자랑 소개팅도 할 수 있고, 집에 밤늦게 들어가도 되고, 일요일에 혼자 라면 끓여 먹어도 되니까 좋기도 해.” “그건 정말 좋은 거지.” 우린 부러워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가 그런 생활을 즐기기를 바랐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최근에 이혼한 사람은 사실 나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 보니까, 우리 넷 다 아내 욕은 하지 않았다.

“내가 혼나는 건, 우리 엄마가 와이프한테 자꾸 교회에 가라고 하기 때문이야.”

“술 먹고 늦게 들어갔으니까 혼날 일 했지 뭐.”

“일요일에 늦잠 자느라 강아지 산책 안 시켰거든.”

“난, 빨래 통에 옷을 뒤집어서 넣었어.”

모두 한마디씩 했다. 남자들은 나쁘거나 착한가 보다. 그리고 아내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하나 보다. 나는 괜찮으면서도 슬프고, 마지막으로 울었던 날이 언제였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또 잊고 다른 얘기를 했다.

남자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야구 중계를 보았다. 한화 이글스 경기였다. 지고 있었다. 한화는 왜 만날 지는가? 우리는 한참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야구 선수는 최저 연봉이 얼마야?”

“5천만원?”

“아냐, 2천4백만원 정도일 거야.”

아, 생각보다 적구나. 모든 선수가 부자는 아니구나. 야구 판이나 이따위 사회나 고액 연봉자는 적은 거구나. 우리는 서로의 연봉을 물었다. 사실 대충 알지만, 서로 말을 안 했다. 내가 제일 적게 버는 것만은 분명했다. 연봉도 적고, 아내도 없고.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야구는 한화가 역전승했다. 우리는 집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38만원이 나왔다. 안주를 3개밖에 안 시켰는데, 넷이서 맥주를 40잔 정도 마셨다. 이상하다, 누가 마셨지? 우리는 술집에서 나왔다. 도로에는 빈 택시가 많았다. 누구도 선뜻 택시를 타지 않았다.

“나 집에 보내고 한 잔 더 마시려는 거 아니지?” 말했고 “내일 출근해야지”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 알았다. 혼나지 않으려면 집에 가야 한다. 그런데 머뭇거리는 건,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집에 가야 한다. 내일 아침에 회사도 가야 한다. 내가 제일 먼저 택시를 탔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가려고. 우리 넷이 언제 또 만나게 될까?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디자인 · 김수미

여성동아 2015년 5월 6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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