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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 크리스 레오네 부녀의 Never Ending Story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5.04.15 13:54:00

한집에 살면서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아버지와 딸이 음악을 매개로 마음을 열었다. 올해 그룹 부활의 데뷔 30주년을 맞은 김태원과 최근 크리스 레오네라는 예명으로 정규 1집 앨범을 세상에 내놓은 싱어송라이터 김서현. 체형도, 성격도, 창작에 대한 열의도 똑 닮았지만 음악적 색깔은 서로 다른 두 뮤지션의 ‘힐링’ 토크.
김태원 · 크리스 레오네 부녀의 Never Ending Story
화이트데이를 이틀 앞둔 3월 12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음악 연습실. 검푸른 어둠이 깔린 바깥 풍경과 달리 대낮처럼 환한 이곳에서 아버지와 딸이 연주자와 관객으로 만났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50)은 올해 첫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그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큰딸 김서현(18)은 기타 치는 아버지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눈과 귀로 연주를 감상했다.

“지금은 아빠가 만든 노래들이 음악적으로 훌륭하다고 인정하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아빠 노래가 싫다고 했어요. 진짜 아빠 음악이 싫어서라기보다, 아빠는 천재적인 작곡가인데 그 앞에 서면 작아지는 제 자신이 싫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 안에 있던 두려움을 아빠에게 들키기 싫어서 강한 척을 했다고 할까요(웃음).”

김서현은 크리스 레오네(Kris Leone)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다. 2013년에 발표한 싱글 앨범은 물론 최근 낸 정규 앨범 ‘디엔드(The End)’도 자작곡들로 채웠다. 2년여 준비 끝에 나온 이번 앨범에는 그가 중학교 때 만든 노래인 ‘미러클’과 ‘해바라기’도 수록돼 있다. 같은 길을 걷는 음악적 동반자로서 김태원의 평가는 이렇다.

“사실 ‘이 친구(김서현)’가 제 뒤를 이어 음악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음악적으로 도움 준 게 전혀 없거든요. 이번 앨범의 마지막 녹음 작업 때 한번 간 게 전부예요. 그걸 무관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성격상 다른 사람의 영역에 침범하는 걸 안 좋아해요. 다른 사람이 제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싫어하고요. 우리 집안이 고집이 세서 이 친구도 저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고 곡이 완성된 다음에 들어봤는데, 신세계를 보는 듯했어요. 저런 발성과 감성을 저 나이에 낼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고 부러웠어요. 작사와 작곡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한 것도 놀라웠고요.”

아빠와 둘이 살며 뒤늦게 불효 깨달은 딸



김태원 · 크리스 레오네 부녀의 Never Ending Story

김태원과 크리스 레오네 부녀는 청소년기 일렉트릭 기타 치는 법을 독학으로 익힌 점마저 닮았다.

김태원이 예전에 출연했던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서 딸의 노래를 듣는다면 어떤 평가를 할지도 궁금했다. 그는 “‘위대한 탄생’은 가창력을 보기 때문에 좋은 점수는 못 줄 것 같다”고 냉정한 결론을 내렸다.

“이 친구는 저처럼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이에요 게다가 제가 도전하지 않은 가창도 해요. 지금은 자기가 만든 음악의 감성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직접 노래를 부를 뿐이죠. 싱어송라이터로 평가한다면 고수지만요.”

그는 김서현이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딸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처음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서현은 “아빠는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며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화를 떠올렸다.

“사실 제가 처음 작곡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예요. 저희 가족이 필리핀에서 살 때인데, 아빠가 피아노로 만든 제 노래를 듣고 소파에 앉아 우셨어요. 피아노를 여섯 살 때부터 6년간 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재미없어져서 그만뒀는데, 학교 음악 선생님이 노래를 만들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셔서 오랜만에 다시 피아노를 쳤죠.”

김서현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남동생, 엄마와 함께 필리핀으로 건너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못다 한 고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년간 유학하며 하숙 생활을 했다. 그가 음악에 심취해 창작의 열의를 불태우게 된 것도,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접하고 독학으로 치는 법을 익힌 것도 그때다. 그는 “혼자 타국에서 지내다 보니 몹시 외로웠다. 그래서 음악을 친구로 삼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태원은 “당시 여건상 딸을 홀로 유학시킬 수밖에 없었다”며 나름의 이유를 밝혔다.

“아내는 그 무렵 아들을 받아줄 학교를 전남 장수군에서 어렵사리 찾아내 그리로 갔고, 그곳의 비좁은 오피스텔에서 지내야 했어요. 저도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이 친구를 한국에 데려올 수가 없었고요. 무엇보다 이 친구가 극심한 사춘기를 겪을 때라 저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물론이고 엄마를 무척 힘들게 했어요. 엄마는 아픈 아들을 보살피기도 벅찬데 이 친구와 자꾸 부딪히니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거죠.”

그는 이어 “당시 모든 문제의 단초가 된 것은 한국에서 예능으로 돈 번다고 가족들의 고충을 들여다보지 못한 나일 수도 있다”면서 “이 친구도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었으니 동생에게만 시선이 가 있는 부모를 보면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텐데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듣던 김서현도 ‘고해성사’에 나섰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지내는 게 막판에는 너무 힘들어 필리핀으로 돌아가서도 우울증이 계속됐어요. 한동안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사춘기에는 모든 원망의 화살을 엄마, 아빠, 동생에게 돌렸는데 그때는 제 자신을 원망했죠. ‘외로운 건 내 탓이다’ 하고요. 그때도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아빠와 살면서 부모님을 힘들게 했던 게 정말 죄송하더라고요.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요. 제가 잘못한 게 많거든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는지 묻자 김서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었다. 이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흐느끼는 딸과 그를 감싸안은 아버지는 잠시 온기를 나눴다.

묵직한 한마디로 딸을 반성하게 하는 아빠

김태원 · 크리스 레오네 부녀의 Never Ending Story

50세를 넘으면서 경청의 재미를 새록새록 느낀다는 김태원. 그는 싱어송라이터 김서현을 “고수”라고 평가했다.

김태원은 “이 친구가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것도 필리핀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와 둘이 살 때 알았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우리가 살던 오피스텔 방이 좁아서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었어요. 서로 아웅다웅한 것도 그때고요. 그 당시도 이 친구가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음악을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게 사람을 소개해줬죠. 그때부터 기본기를 다져 만들어낸 노래가 바로 2년 전 싱글 앨범에 수록한 ‘굿바이’예요.”

▼ 아빠에게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도움을 청한 적이 있나요.

김서현 없어요. 실은 아빠한테 배우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엄청 무섭게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박)완규 삼촌에게서 아빠가 ‘녹음실의 악마였다’는 얘기를 들어서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두려웠어요. 혼내실 때 무섭거든요(웃음).

김태원 살면서 이 친구를 두 번 혼냈어요. 이 친구가 유치원에 다닐 때인데, 저와 약속한 시간에 30분 늦게 왔어요. 친구 집에 잠깐 들르느라고 빙 돌아왔다는 거예요. 크게 혼냈죠. 두 번째는 둘이 살게 돼서 이건 지키자고 약속한 걸 이 친구가 안 지켜서 또 혼냈고요. 공부를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네가 네 자신과 한 약속은 지켜라’ 하고요. 그럴 때는 살벌하게 언어를 날리죠. 욕은 하나도 안 쓰면서요(웃음).

김서현 아빠는 매를 드신 적도 없어요. 논리적이면서도 단호한 말로 정말 제가 잘못했구나 하게 만드세요. 평소에는 별 얘기를 안 하던 분이 꾸짖으시니까 그 말이 가슴에 더 깊이 와 닿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좀 잘못한 일이 있는데 아빠가 한마디 하셨죠. 자기 자신한테 거짓말하지 말라고요.

김태원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평소 말수가 적은 분이었는데 한마디를 해도 굉장한 무게감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껏 대마초 사건 외에는 사고 친 적이 없어요. 공부로 효도한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크게 개의치 않았고요. 지금은 공부 못하는 걸 다들 불효처럼 생각하는데, 저희 부모님은 못하는 걸 어쩌겠냐며 담담하게 넘기셨어요.

▼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택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나요.

김태원 스스로 무언가에 몰입해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자체를 축복으로 여겼어요. 그것도 제 아버지의 영향이 커요. 공부는 애초에 안되고, 만화를 잘 그리니 아버지는 제가 그쪽으로 나갔으면 하셨어요. 근데 제가 뜬금없이 기타를 치니까 내색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가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셨던 기억이 나요.

▼ 평소 자식에게 공부나 진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 적이 있나요.

김태원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찾아가야지, 부모에게 그걸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쉽진 않죠. 하지만 공부하라는 말은 한 적이 없어요. 저도 공부하기 싫어했으니까요. 하하.

김서현 심지어 저더러 학교에 가지 말라고도 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학교 가기 싫다고 했더니 ‘가지 마. 아프다고 해’ 그러시더라고요. 양심에 찔려 그냥 학교에 갔죠(웃음). 아빠가 평소에는 무뚝뚝한데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필리핀에서 밤늦게 같이 랩톱으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자막에 뜬 영어를 이상하게 발음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호호.

김태원 · 크리스 레오네 부녀의 Never Ending Story
기억력만 빼고 똑 닮은 ‘붕어빵’ 부녀

두 사람은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살고 있다. 평소 서로 대화를 많이 하냐고 묻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내젓는다. 그렇다고 대화가 메마른 수준은 아니다. 김태원은 주로 듣고, 김서현은 조금씩 마음을 여는 단계다.

“50세를 넘으면서 제 자신이 변하는 걸 느껴요. 여성 호르몬의 영향인지, 남의 말을 듣게 돼요. 예전에는 아내가 하는 말을 신중하게 듣지 않았어요. 심각한 얘기가 아니면 딴생각하며 들었죠. 근데 요즘은 아내가 하는 얘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어요. ‘아! 그래?’ 하고 리액션도 크게 하고요(웃음). 이 친구와도 예전에는 교감이 없었는데 같이 지내니까 그만큼 가까워진 느낌이에요.”(김태원)

“저도 같이 살다 보니 아빠에게 제 얘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아빠 표정이 어두운 편이라서 제가 신나는 얘기를 해도 시큰둥해 보여요. 특히 작년에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김서현)

지난해는 김태원이 음악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낸 한 해였다. 부활의 9대 보컬 정동하가 탈퇴한 데 이어, 그가 “흥하든 망하든 곁을 지켜주는 분신 같은 친구” 라고 말하던 김지훈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지훈은 그룹 ‘더 퍼스트’의 리더였고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사춘기보다 더 심한 가슴앓이를 했어요. 그 와중에 서현이가 있었던 거죠. 그나마 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게 저로서는 이 친구에 대한 배려였어요. 어차피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걸 견뎌야 하는 것도 제 몫이니까요. 이 친구에 대해선 걱정 안 해요. 남보다 일찍 진로를 결정하고 고군분투하는 만큼 앞으로 더 기대해도 좋은 싱어송라이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김태원)

“사실 저도 싱글 앨범을 낸 후 마음고생을 좀 했어요. 악플 때문에요. 아빠는,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저보다 더 심한 악플에 시달렸던 유명 그룹 리더의 사례를 들려주며 ‘그에 비하면 네 경우는 약과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다. 병이 있는 사람들이다. 네가 그런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음악을 만들어라’ 하고 조언해주셨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김서현)

이들 부녀는 날씨가 풀리면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다. 김태원은 “음악적으로는 저와 색깔이 너무 달라서 도움 줄 게 별로 없지만 아빠로서는 언제든 도와줄 의향이 있다”며 “나도 어릴 때 우울증 증세가 있었는데 그걸 푸는 방법은 운동만 한 게 없더라”고 말했다.

이어 김태원이 “게임처럼 재미있는 운동을 구상 중”이라고 하자 김서현은 “골프를 같이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아버지의 깜박거리는 기억력을 다시금 꼬집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김태원은 김서현의 경복초등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이 친구가 방과 후 수업으로 학교 옥상에서 골프를 배웠어요. 이 친구를 데리러 매일 학교 옥상에 가는 게 삶의 낙이었죠. 이듬해 필리핀에 가서도 골프를 배웠어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1백 야드까지 공을 날려서 주위를 놀라게 하곤 했죠(웃음).

그는 김서현을 “김태원의 카피본”이라고 표현했다. 성격과 재능, 인종차별이나 환경문제 등 범세계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은 점 등 전체 성향의 80%는 그를 닮았다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김서현은 공부 잘하는 엄마의 머리를 닮아 그보다 우월하다고 인정하면서 “이 친구는 나와 달리 앞으로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발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방황 끝, 새롭게 ‘부활’한 아버지와 딸

김서현은 내년 음악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다. 뮤지션이자 싱어송라이터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안티가 무서워 한국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한국을 벗어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담해졌죠. 미국 유학은 도피가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꿈꿔온 일이에요. 미국에 가서 ‘컨템퍼러리 뮤직’을 배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음악을 할 겁니다.”

부활 데뷔 30주년을 맞아 전국 투어 공연을 계획 중인 김태원도 나름의 포부를 밝혔다.

“올해부터는 공연도, 방송 출연도 예전처럼 활발히 할 거예요. 지난해에는 ‘부활’이 전의를 상실해 녹초가 됐지만, 올해는 새로 영입한 10대 보컬 김동명과 함께 다시 태어난 만큼 새 음악과 새로운 기분으로 뛰려고 해요. 새로운 출발의 의미가 담긴 이 친구의 앨범제목 ‘디엔드’처럼, 부활도 방황을 끝냈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부활’할 겁니다.”

디자인 · 김석임 기자

여성동아 2015년 4월 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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