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두인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는 어쩌면 그리도 많은 구두를 모았을까. 단순히 그녀만의 취미라고 보기엔 남녀불문, 너무나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예나 지금이나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구두는 지난 호에서 언급한 가방과 함께 ‘합리적 소비.exe’를 단숨에 망가트리는 악성 코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신데렐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과거 신화나 민담에 수없이 등장했던 것이 바로 구두다. 씁쓸하지만 자살 기도를 목적으로 다리 난간에 올라서기 전, 다른 건 몰라도 신발 하나만큼은 가지런히 놓는다. 구두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그 속에서 느끼는 나를 상징한다. 내 몸과 지구란 이름의 세상을 잇는 유일한 매개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구두를 잃어버리는 꿈은 진료실의 단골 메뉴다. 이런 꿈은 현재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태도를 취하고 싶을 때 발생한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정체성에 혼란이 생겨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때 곧잘 현몽한다. 행여나 지금 신고 있는 구두가 다소 낡았다 하더라도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이리저리 뛰어온 나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유일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2015년 단숨에 한반도 스크린을 장악한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로 시작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콜린 퍼스가 시종일관 뭇 여성들의 시선을 강탈한 건 그저 멋스런 영국 악센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하지만 실은 구두야말로 슈트와 함께 진정한 멋의 완성이다.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구두 앞 장식이 없는 심플한 옥스퍼드 슈즈)가 킹스맨들 사이에서 암호로 통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악역을 맡은 여성의 어마무시한 킬힐(실제로 인명 살상 기능이 있는!!!)의 위협과 맞서야 했다. 말장난 같지만 결국 ‘킹스맨’ 속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은 ‘신사화’와 위협적인 ‘하이힐’의 싸움이었다. 비록 남자 주인공은 ‘현실은 영화와 달라’ 라는 대사를 무책임하게 날렸지만 적어도 심리적 현실은 영화에서 본 바와 같다.
하이힐은 두 개의 남근(男根)
여성들이 신는 부츠와 킬힐(하이힐)은 심리의 세계에서는 남성과 대적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 녀석들은 남성에 대한 경쟁심을 상징한다. 그 이면에는 남성에 대한 혐오가 있을 수도, 아니면 선뜻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남근을 향한 선망이 깔려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보면 하이힐은 두 개의 남근(男根)이다. 미국 팝 가수 레이디 가가가 페니스 모양의 힐을 갖춘 구두를 신고 무대를 활보했던 건 이런 연유에서다.
부츠나 하이힐이 남근을 상징한다는 건 남성의 페티시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이힐 페티시가 있는 남성은 단지 여성이 벗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성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는다. 발기의 필요충분조건인 성적 흥분이 되려면 적어도 불안과 긴장이 처리돼야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알몸의 여성을 마주하면 심히 위축되고 만다. 섹스가 불러일으킨 거세 불안을 제대로 처리 못해 긴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임기응변이나마 상대방에게도 페니스와 유사한 것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안심(?)하고 긴장이 완화돼 발기가 가능하다. 여성과 사랑을 나누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남근과 유사한 것이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통굽은 은밀한 야심이다
반면, 힐이 두드러지지 않는 구두도 여성들 사이에서 꽤 인기다. 통굽 신발, 정식 명칭은 플랫폼 슈즈로 아웃솔과 힐을 붙여 밑창 전체를 높게 한 구두를 일컫는다. 부츠컷처럼 아랫단이 넓은 바지를 입으면 구두가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어 롱다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늘씬하게 커 보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플랫폼 슈즈의 중요한 속성이다. 하이힐처럼 그리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왜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통굽 신발은 주로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거나 높은 지위를 바라지만 굳이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간택된다. 그러니 통굽이 드러나는 게 자꾸 신경 쓰여 굳이 바지 밑단을 내리려 노력할 이유는 없다. 우월을 향한 은밀한 바람이 행여나 들킬까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면 또 몰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플랫폼 슈즈는 임기응변이지만 자신감을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일하는 여자의 구두는 따로 있다’란 저서에도 소개된 바 있을 정도로 커리어우먼의 완소 아이템이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과 현실, 소유와 존재를 애써 구분하는 대신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정신적 증상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남들에겐 장바구니에 담아 충동구매를 막으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바로구매’를 클릭하는 헤비 쇼퍼.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세상 안내서 시리즈’ ‘뱀파이어 심리학’ 등이 있다.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는 어쩌면 그리도 많은 구두를 모았을까. 단순히 그녀만의 취미라고 보기엔 남녀불문, 너무나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예나 지금이나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구두는 지난 호에서 언급한 가방과 함께 ‘합리적 소비.exe’를 단숨에 망가트리는 악성 코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신데렐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과거 신화나 민담에 수없이 등장했던 것이 바로 구두다. 씁쓸하지만 자살 기도를 목적으로 다리 난간에 올라서기 전, 다른 건 몰라도 신발 하나만큼은 가지런히 놓는다. 구두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그 속에서 느끼는 나를 상징한다. 내 몸과 지구란 이름의 세상을 잇는 유일한 매개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구두를 잃어버리는 꿈은 진료실의 단골 메뉴다. 이런 꿈은 현재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태도를 취하고 싶을 때 발생한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정체성에 혼란이 생겨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때 곧잘 현몽한다. 행여나 지금 신고 있는 구두가 다소 낡았다 하더라도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이리저리 뛰어온 나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유일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가 암호로 등장한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하이힐은 두 개의 남근(男根)
여성들이 신는 부츠와 킬힐(하이힐)은 심리의 세계에서는 남성과 대적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 녀석들은 남성에 대한 경쟁심을 상징한다. 그 이면에는 남성에 대한 혐오가 있을 수도, 아니면 선뜻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남근을 향한 선망이 깔려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보면 하이힐은 두 개의 남근(男根)이다. 미국 팝 가수 레이디 가가가 페니스 모양의 힐을 갖춘 구두를 신고 무대를 활보했던 건 이런 연유에서다.
부츠나 하이힐이 남근을 상징한다는 건 남성의 페티시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이힐 페티시가 있는 남성은 단지 여성이 벗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성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는다. 발기의 필요충분조건인 성적 흥분이 되려면 적어도 불안과 긴장이 처리돼야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알몸의 여성을 마주하면 심히 위축되고 만다. 섹스가 불러일으킨 거세 불안을 제대로 처리 못해 긴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임기응변이나마 상대방에게도 페니스와 유사한 것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안심(?)하고 긴장이 완화돼 발기가 가능하다. 여성과 사랑을 나누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남근과 유사한 것이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통굽은 은밀한 야심이다
반면, 힐이 두드러지지 않는 구두도 여성들 사이에서 꽤 인기다. 통굽 신발, 정식 명칭은 플랫폼 슈즈로 아웃솔과 힐을 붙여 밑창 전체를 높게 한 구두를 일컫는다. 부츠컷처럼 아랫단이 넓은 바지를 입으면 구두가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어 롱다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늘씬하게 커 보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플랫폼 슈즈의 중요한 속성이다. 하이힐처럼 그리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왜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통굽 신발은 주로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거나 높은 지위를 바라지만 굳이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간택된다. 그러니 통굽이 드러나는 게 자꾸 신경 쓰여 굳이 바지 밑단을 내리려 노력할 이유는 없다. 우월을 향한 은밀한 바람이 행여나 들킬까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면 또 몰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플랫폼 슈즈는 임기응변이지만 자신감을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일하는 여자의 구두는 따로 있다’란 저서에도 소개된 바 있을 정도로 커리어우먼의 완소 아이템이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과 현실, 소유와 존재를 애써 구분하는 대신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정신적 증상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남들에겐 장바구니에 담아 충동구매를 막으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바로구매’를 클릭하는 헤비 쇼퍼.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세상 안내서 시리즈’ ‘뱀파이어 심리학’ 등이 있다.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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