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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기저귀 찬 채 영유 입학··· 7세 고시 만든 대치동 테크트리의 실체

정세영 기자

2025. 05. 02

만 5~6세 아이들이 대치동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른다는 일명 7세 고시. ‘그사세’로 통한다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취재했다.

“7세 고시 다들 보셨나요?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인 줄 알면서도 너무 불안해지네요.” “영유(영어유치원) 보내는 엄마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유난스러워 보여도 애들 장래 생각하면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죠.” 얼마 전 KBS 시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을 통해 방영된 7세 고시를 둘러싼 맘 카페의 반응은 다양했다. 실제 방송에 등장한 사교육 메카 1번지 대치동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작 5~6세에 불과한 아이들이 일명 빅 3, 빅 10으로 불리는 유명 영어학원에 입성하기 위해 수능 뺨치는 혹독한 레벨 테스트(이하 레테), 즉 7세 고시를 치르고 있는 것. 더불어 초등학교 저학년이 서울대학교 학생조차 어려워하는 수학 문제를 풀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북 군산에서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이수경(38) 씨는 “주변에서 7세 고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유튜브를 찾아봤다”며 “그간 딸을 평범하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치동 아이들과 비교해보니 부모로서 해준 게 없는 것 같아 미안하고 우울하다”고 털어놨다. 

수능 못지 않은 험난한 7세 고시 입학 길

대치동 영어학원 PE*I, I*E, 에*센, 렉*킴 등 학부모 사이에서 빅 3, 빅 5로 꼽히는 곳에 들어가려면 만만치 않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2년 전 자녀가 해당 시험을 치렀다는 학부모 A 씨는 “영어유치원에서 몇 년간 공부한 아이들,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아이들조차 레테에서 떨어질 정도로 시험은 난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리딩, 라이팅, 리스닝, 그래머, 스피킹 실력을 골고루 측정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SR, AR 등은 아이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 주로 등장하는 용어다. “저희 아이가 SR 2.2인데 빅 3 합격 가능할까요?” 하는 유형의 질문이 대표적이다. SR은 ‘Start Reading Test’의 약자로 약 30분간 영어 원서 읽기 능력, 이해도 등을 평가한다. 만일 테스트에서 아이의 레벨 지수가 3.2로 나왔다면 미국 초등학교 기준 3학년 2개월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AR은 ‘Accelerated Reading Test’의 약자로 미국 르네상스러닝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독서 관리 프로그램을 칭한다. 아이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책마다 난이도를 레벨로 나눠 구성했다. SR과 마찬가지로 AR이 2.4가 나왔다면 미국 초등학교 2학년 4개월 수준을 뜻한다. A 씨는 “빅 3, 빅 7 학원들도 SR, AR 등을 기준으로 2점대, 3점대 학원으로 분류된다”며 “이는 미국교과서를 어떤 레벨에서부터 가르칠 것인지를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아이의 수준에 따라 레테를 볼 학원 역시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통 7세 고시를 무난하게 치르려면 SR 3점 이상이 나와야 한다”며 “예비 초등학생이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추적 60분’에서 소개된 한 사설 학원의 모의고사 시험은 A4 용지 한가득 여러 개의 영어 지문을 제시한 뒤 이를 읽고 30여 개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학원마다 중시하는 영역에 맞춰 레테를 준비하는 요령도 필요하다. 라이팅에 더 높은 점수를 배정하거나 리스닝에 방점을 두는 등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 또 ‘외고 입시에 특화된 A 학원’ ‘미국 사립학교 진학 준비에 유리한 B 학원’ 등 학원의 특징이나 커리큘럼의 차이도 존재한다. 따라서 레테를 치르기 전에 각 학원의 특성과 테스트 난이도, 시험 및 숙제 등의 빈도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학원비 역시 만만치 않다. 학원비는 학년, 수업 횟수 등에 따라 다양하게 책정되는데 보통 주 2회 기준 40만~50만 원대다. 교재비는 별도며, 주당 수업 횟수에 따라 학원비도 변동된다. 

어려운 테스트를 통과하고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까지 대기하는 일도 있다. 레테를 치른 순서가 아닌 아이의 특성과 레벨을 고려해 반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학원에 입성하더라도 수업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할 경우 강제 퇴원도 감수해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끝내자” 4세 고시 준비하는 3세들

7세 고시를 뛰어넘은 4세 고시도 존재한다. 4세 고시란 유명 영어유치원(이하 영유)에 들어가기 위한 테스트로 갖춰둬야 할 것이 많다. 기본적으로 시험 자체를 치를 수 있게 준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대소변 가리기, 엄마 없이 20〜30분 혼자 앉아 있기, 어른이 같이 손목을 잡고 알파벳을 쓰는 연습 등이다. 만약 입원 전까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기저귀를 찬 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인기 있는 영유에 들어가려면 지적 능력과 영어 수준을 가늠하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심지어 일부 영유에서는 본사에서 실시하는 영재테스트에서 상위 5% 이내에 들어야 입학 시험 치를 자격을 부여한다. 대표적으로 영어 전문 기관인 Y*M에서 운영하는 애플*리는 3세부터 보낼 수 있는 영유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부모들이 애플*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GA*E 입학 시험을 볼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 GA*E는 영어를 수단으로 다양한 놀이와 학습을 하는 유치원으로, 대치동 톱 영유 중 하나로 꼽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4세 고시를 대비해준다는 프렙(prep) 학원이나 과외까지 등장했다. 영유 입성을 준비하며 과외를 알아봤다는 학부모 B 씨는 “가격은 보통 시간당 7만~10만 원대로,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몇 년도에 어디 영유에 붙었다거나 특정 영유의 레테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홍보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4세 고시를 통과해 원하는 영유에 합격한 아이들 대부분은 2~3년간 영유를 다닌 뒤 또다시 7세 고시를 치러 빅 3, 빅 5 영어학원에 들어간다.

4세 고시부터 7세 고시까지, 학부모들이 이토록 ‘영어’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하지만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의 의대, 이공계 선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2023년 종로학원이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1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자녀의 이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모는 88.2%에 달했다. 이과 중에서도 의학계열 49.7%, 공학계열 40.2%, 순수 자연계열 10.1% 순으로 선호도가 나뉘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영어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춰놓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리 영어 공부를 해둬야 3~4학년 때부터 수학, 과학 등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대다수가 이 같은 로드맵대로 공부해야 좋은 대학에 간다고 믿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 2018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최상위권의 변별력이 수학, 과학 과목으로 집중되는 추세다. 이에 학부모들은 영어라도 빨리 마스터해야 한다는 생각을 점점 더 공고히 하게 됐다. 수학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주말마다 방배동에서 대치동으로 아이를 라이딩한다는 학부모 C 씨는 “요즘 의약대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영유를 나와 빅 3 영어학원에 들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수준의 영어를 끝내놓는다”며 “이후 4학년쯤 황*고시(유명 수학 전문학원인 생각하는 **의 입원 시험)를 치르고 중고등학교 수학을 마스터하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게 최상의 루트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그간 정부는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으나 늘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해 교육부는 영어 사교육 증가에 따라 3~4세 영어 프로그램을 개발해 올해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전면 배부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교습비 단가 등을 지도·단속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또 사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입시라는 점에서 수능 제도를 손보기도 했다. 지난 2023년 교육부는 사교육 전담 팀을 만들어 킬러 문항을 없애고, 사교육 카르텔을 타파하겠다는 취지의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범위를 넓히고 난도를 낮추겠다는 교육부의 개편안을 근거로 학원가에서는 “되레 학습량이 많아져 선행학습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주장을 펴는 실정이다. 이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전은옥 선임연구원은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학교급을 뛰어넘는 교육과정을 익히도록 부추기는 선행 사교육 경쟁 열풍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영재학교 입학 전형과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사교육 시장을 합리적인 기준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슬로 가는 ‘대치동 학습 로드맵’의 실체

꼭 의대 입시를 목적에 두지 않더라도, 대치동에서는 아동 연령별 학습 로드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영유를 졸업한 뒤 빅 3, 빅 5 영어학원에 입학해 영어를 심층적으로 공부하면서도 국어 공부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학부모 B 씨는 “영유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국어 학습에 약해 유치원 때부터 논술을 배운다”며 “문해력이 떨어지면 다른 과목 전반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문*원, 논술*랑, 지혜의 * 등 유명 국어· 논술 학원을 찾아 역사, 사회,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논리력과 표현력을 기른다. 초등학교 3~6학년이 되면 C&*, M*C, 리*엠, 천개의 **, 기*랑, 포** 국어논술 등 선호하는 학원이 달라진다. 보통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1순위는 영어에서 수학으로 바뀐다. 이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학원이 바로 ‘생각하는 **’이다. B 씨는 “생각하는 **의 입원 테스트는 11월에 실시한다. 이를 위해 미리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실제 생각하는 **의 입원 시험은 평균 100점 만점에 20점 전후를 맞아도 합격할 만큼 난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정도로는 합격이 어렵고, 최상위권을 위한 교재로 대비해야 입원의 문에 가까워진다. 심지어 편입 과정까지 개설돼 있다. 생각하는 **에 들어가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초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고 그 후 보다 높은 수준의 공부가 시작된다. 그 밖에 시*스, C*S, 소*사고력수학, 필**클래식 등이 대치동 대표 수학학원으로 꼽힌다. 

취학 전에는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을,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이미 수능 영어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 하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하다. 아동학대와 다름없다며 강도 높게 비난하는가 하면, 혹독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국책 연구 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는 영유아 2150명을 대상으로 한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과 발달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며 “영유아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교육을 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 주목받았다. 이는 아동의 지능이나 부모의 소득 수준 등 다른 변수를 통제하고 오로지 사교육의 독립적 효과만을 살펴본 결과로, 보고서에는 영유아기에 이뤄지는 사교육이 자아존중감이나 삶의 만족도 등 사회 정서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분석이 실렸다. 오히려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동의 삶의 만족도가 더 빠르게 향상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3~5세 때 사교육을 경험한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결과적으로 학업수행능력 수준 면에서 미미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가 하면 과도한 사교육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2011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연수 교수팀이 초등학교 1학년 학생 671명을 대상으로 사교육과 아동 정신 건강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그 결과 하루에 4시간을 초과해 사교육을 받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우울 증상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관련 단체와 집단은 잇달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이하 유치원교사노조)은 7세 고시와 관련해 “유아기 교육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전인적 발달을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며 “현재 과도한 유아 사교육 환경은 이러한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이들은 유치원의 명칭을 ‘유아학교’로 변경할 것을 주장했다. 또 유치원교사노조는 국공립 유치원의 비율을 최소 80% 이상으로 확대하고, 단계적으로 유아 의무교육을 도입할 것을 교육 당국과 국회에 요구했다. 아예 7세 고시를 전면에 내건 곳도 있다. 아동학대 7세 고시 국민 고발단(가칭)은 3월 1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사교육업체에 대한 국민 고발장 접수, 극단적 선행학습 사교육 규제를 위한 법 개정, 사교육 필요 없는 공교육 만들기 국가 종합대책 제안 등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교육이 아니라 학대” vs “어쩔 수 없는 선택” 

과도한 사교육비도 문제다. 3월 13일 교육부가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1인당 사교육비를 집계해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 따르면 2세 이하 25%, 3세 50%, 5세 81%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으며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 수준이다. 국영수 등의 일반 과목 및 논술 과목의 월평균 비용은 34만 원, 이 가운데 영어는 41만4000원을 차지했다. 특히 영유의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으로 월등히 높다. 여기에 각종 교재비, 활동비 등을 더하면 한 달에 200만~250만 원은 거뜬히 든다.  

그럼에도 다수의 학부모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선행학습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학원 라이딩을 자청한다. 최근 종영한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라이딩 인생’에는 대치동 학원가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를 집필한 성윤아, 조원동 작가는 조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인공인 열혈맘 정은이 대치동에서 가장 많이 본 엄마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내 아이가 이렇게 잘 따라주는데 조금만 더 독해지면 어떨까? 아이가 나중에 분명 고마워할 거니까 잠깐 나쁜 엄마가 되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4세 고시, 7세 고시 다음엔 어떤 고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7세고시 #대치동로드맵 #영어유치원 #사교육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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