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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글·김명희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제공

2015. 03. 17

노벨문학상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판매 부수로 보나 선인세에서 드러나는 이름값으로 보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학계의 ‘톱스타’임이 분명하다. 낯가림이 심해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그가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에 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요즘의 ‘토토가’ 신드롬을 보며 새삼 무라카미 하루키(66)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990년대 가수들이 정점을 찍고 사라져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긴 기간 동안 하루키는 늘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맥주와 굴튀김·마라톤과 수영·재즈와 고양이에 관한 나른한 수다로 감성을 자극하다가,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소감) 같은 근사한 말로 감동을 안기기도 하며. ‘노르웨이의 숲’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거치는 동안 인기에 비례해 그의 몸값은 점점 높아져갔다. 장편소설은 물론이고 단편집, 여행기, 잡문집, 에세이 등을 통해 독자와 전 방위로 교류하면서도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을 직접 드러내는 것은 꺼려왔던 하루키. 그의 팬들에게 지난 1월 15일부터 2주간은 ‘깜짝 파티’ 같은 시간이었을 듯하다. 그가 ‘무라카미 씨의 거처’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에 답한 것이다. 주소(www.welluneednt.com)마저도 ‘하루키스러운’ 이 사이트에는 2주 동안 3만여 개의 질문이 올라왔다. 하루키에 대한 궁금증부터 고민 상담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하루키는 질문에 답하며 “메이지진구 구장에 꽉 들어찬 관중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기분이었다. 왜 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시작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이 일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00km 마라톤을 달려보려고 할 때와 비슷한 호기심인데, 그런 호기심은 저를 밝은 광기로 몰아넣죠. 그래서 호기심이 충족됐냐고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즐거우셨다면 그것으로 고생한 보람을 대신하겠습니다.”

‘무라카미 씨의 거처’는 하루키의 책을 다수 출간한 출판사 신쵸사에서 운영하며, 고민 접수는 1월 31일 마감됐지만 하루키는 당분간 밀린 질문에 계속 답을 할 예정이다. 사이트는 3월까지 운영된다. 하루키가 답한 질문 가운데 흥미로운 것들을 골라 소개한다.

Q.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중요한지 따위를 생각하고 있다간 결혼을 할 수 없을 거예요. 결혼은 알 수 없는 연못 또는 늪에 머리부터 던져넣는 다이빙 같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Q. 주변에 굉장히 예쁜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그 친구와 저를 비교하다 보니 외모부터 성격까지 제 모든 면이 싫어졌어요. 별 볼일 없는 제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누군가를 동경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당신의 기분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내게는 다른 사람보다 열등한 부분도 있지만, 좋은 점도 일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지만 그렇게 마음먹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친구와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겠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내던져버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이제 그런 시기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무라카미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생’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된다면, 누가 당신 역을 맡으면 좋을까요.

제 일생을 다루는 건 무척 지루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영화 ‘노르웨이의 숲’의 미츠야마 겐이치 씨를 보면서 아내가 ‘얼굴이 비슷한 건 아닌데, 당신의 젊은 시절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요. 정말 그런가요?

Q. 만화를 그리는 사람입니다. 창작의 비결 중 ‘이것만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제 소설 쓰기의 비결이랄까, 규칙 중 하나는 마감을 정해놓지 않는 것입니다. ‘마감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만, 저는 그 기분을 잘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강제할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움이야말로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제대로 끈기를 갖고 시간을 투자하면 후회할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Q. 결혼 8년 정도 지났지만 아이가 없습니다. 자녀가 없는 인생은 어떻습니까.

저 역시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가 없는 가정은 다 저마다 여러 이유와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로 묶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을 솔직히 말한다면, 인생의 질이 아이가 있고 없고에 달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서로 삶의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이지요.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어느 쪽이든,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가는 것 아닐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Q. 40세가 되니 마음이 심란하네요. 무라카미 씨는 40대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제가 40세가 됐을 무렵 ‘노르웨이의 숲’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여파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인간관계 같은 것도 많이 꼬여 정신적으로도 매우 우울했죠. 인생 최대의 위기였고, 정말 홀로 어두운 우물의 바닥에 떨어져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선 그런 시기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듣기에 따라선 ‘베스트셀러를 써놓고, 떨어지긴 무슨?’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Q.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데,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해 꽤 성가신 일입니다. 정식으로 최종 후보가 된 것도 아니고, 그저 민간 도박사들이 확률을 정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Q. 갱년기 증상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남편과 딸, 고양이와 살고 있는데 이들의 인내심도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무라카미 씨도 나이 들면서 몸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기분이 불안정한 시기가 있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군요.

사견이지만, 갱년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고양이는 이유를 모를 것 같아 유감입니다.

Q. 무라카미 씨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의 분위기와 말투 등을 무척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나오는 가사하라 메이입니다. 무라카미 씨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은 모델이 있나요.

멋진 여성을 그리는 비결은 역시 멋진 여성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까지 많은 멋진 여성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Q. 남편이 성욕이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의 성욕 사정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하십시오.

Q. 예전에 에세이에서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말처럼 샐러드를 가득 먹는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컨디션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식생활의) 기본은 채소와 생선입니다. 가끔 고기가 먹고 싶어지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니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꽃가루 알레르기, 두통, 숙취, 변비도 없군요.

Q. 말을 쓰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언어 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역시 종종 언어 폭력을 당합니다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갑니다. 하지만 인종이나 출생 등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이유로 심한 말을 듣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풍조는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Q. 최근 아베 총리는 ‘여성이 빛나는 사회’(여성이 살기 좋은 사회를 목표로 취업과 출산 등을 장려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병이 들어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여러 사정 때문에 아이도 못 낳았지요. (아베의 말처럼) 빛나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저 같은 여성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제 주위의 ‘빛나는’ 여성들은 모두 아베 총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 따위한테 빛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라고요. 그건 분명히 참견이죠. 여성이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정한 기회를 얻어 일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있는 사무실의 직원들은 옛날부터 여성이 대부분이었죠. 솔직히 말해서 남자는 제가 하는 일에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을 여자가 할 수 있으니까요.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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