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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진양혜의 그 여자 그 남자

젊은 거장 손·열·음

기획·김지영 기자 | 글·진양혜 아나운서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5.02.17 09:50:00

손열음 하면 피아노가 떠오를 만큼 그는 어느새 대중적인 스타가 됐다.
클래식 음악가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얼마 전까지 떠오르는 샛별로 소개되던 그가 세계인이 인정하는 ‘젊은 거장’이 되기까지의 숨은 노력을 들여다봤다.
젊은 거장 손·열·음
피아니스트 손열음(29).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손열음은 11세에 참가한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여러 번 최연소 수상을 했을뿐더러 우리나라 국적으로 피아노 부문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기리기 위해 1958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011년 준우승을 차지한 것. 지휘자 정명훈 씨의 수상 이후 37년 만이다. 당시 정명훈 씨는 입국해서 광화문 카퍼레이드를 했다.

손열음은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도 최고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의 대중적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 우리 문화 풍토에서 그는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직접 연주를 들어보고 싶어하는 아티스트로 꼽힌다. 지난해 방영된 화제의 드라마 ‘밀회’에서 혼자 독학한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가 자주 언급한 피아니스트도 손열음이었다. 김희애가 연기한 오혜원의 대사 “손열음이 대단한 건 뜨거운 걸 냉정하게 읽어서야. 그래야 진짜 뜨거운 게 나오지” 덕분에 그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더욱 커진 영향도 있다.

그러나 이미 그가 2013년 처음으로 직접 선곡하고 프로그램 노트까지 쓴 독주회가 유료 관객 80%를 넘긴 사실은 그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의 첫 독주회 리뷰를 실었고, 무려 7곡을 들려주며 관객을 열광시킨 앙코르 무대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으로 국제대회 피아노 부문 역대 최고의 수상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넘어 아티스트 손열음의 브랜드를 확고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손열음은 우리나라 외교 문화 사절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만찬과 빈 대통령궁에서 열린 한·오스트리아 수교 1백20주년 기념 행사에서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를 ‘젊은 거장’이라 부른다. 그는 지난 연말 한국에서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공감각 사용해 악보 외워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떠오르는 샛별’ 손열음이라고 소개했는데 이제는 ‘젊은 거장’으로 불려요. 위상이 달라진 걸 느끼나요?

네. 저는 저를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특별한 부담 같은 것은 별로 없는 편인데 이제는 건강관리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거리 이동을 많이 하고, 스케줄도 몰리는 데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우니까 운동하고 식사를 잘 챙겨야겠더라고요.

▼ 12월 내내 연주회가 있었어요. 레퍼토리도 다르고 연주회 성격도 다 달라서 정말 강행군이었을 것 같아요.

하루이틀 빼고는 거의 매일 연주가 있었어요. 협연 무대는 그래도 덜 부담스러운데 독주곡들은 제가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 젊은 거장도 떨리나요?

어릴 때는 하나도 안 떨었어요. 그런데 피아노 연주는 악보를 다 외워야 하잖아요. 피아니스트들이 떠는 이유의 90% 이상이 암보(暗譜) 때문이에요. 악보를 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요.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들은 악보 보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피아노 치는 친구들끼리 악보 보고 하는 연주는 떨릴 이유가 없겠다고 농담을 해요.

▼ 피아노는 거의 외워서 연주하죠? 왜 그럴까요?

페이지를 넘기는 게 너무 많아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계속 넘기면서 할 순 없으니까요. 콩쿠르 규정에도 외워서 연주하게 돼 있어요.

▼ 도대체 악보를 어떻게 외우죠?

피아니스트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인데 많이들 질문하세요. 저 같은 경우는 머릿속에 사진이 찍히듯 영상이 남아요. 공감각을 써서 눈으로, 손으로, 머리로 함께 진행되니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음악가와 시대적 배경들을 공부하니까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하는 과정이 수반되는 거죠. 악보를 잊어버리는 순간 논리적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악보를 빨리 외우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이 꼭 무대 위에서 (연주가) 잘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 우리나라에서 연주할 때와 외국에서 연주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사실 처음 보는 관객들 앞에서는 그렇게 떨릴 이유가 없어요. 반면 한국 무대에서는 더 떨리죠. 저를 아는 분이 많고 어릴 때부터 봐오신 분들도 많아서 제가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드려야 하고. 하하.

▼ 무대 매너가 세련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나요?

몇 년 전부터 디자이너 서정기 선생님이 무대 의상을 챙겨주세요. 걸음걸이 등 무대 매너에 대한 조언도 받았고요. 이번에 프로필 사진 작업을 다시 했는데 사진작가 김용호 선생님이 직접 진행해주셨어요. 감사하게 주위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작곡가의 새로운 면 발견하는 재미 즐겨

▼ 연주 중간에 다른 곡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곡이 하도 많아서 가끔 헷갈리긴 해요. 그런데 곡의 구조나 논리가 파악되지 않으면 암보 자체가 안돼요. 구조는 머릿속에 들어 있으나 손에 안 익었을 때가 더 헷갈려요.

▼ 연주할 곡들의 구조나 논리 전개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군요.

작곡가와 곡에 따라 차이는 있어요. 본능적으로 연주하는 연주가도 있지만 저는 제가 잘 모르는 곡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제가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에 빠져 있는데, 원래 오케스트라곡이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거예요. 그럴 땐 작곡가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죠. 일단 주변에 알 것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 작곡가의 작곡 당시 상황을 알아보고 음반도 듣고, 사실 악보를 제일 많이 봐요.

▼ 악보를 볼 때마다 다른가요?

네. 처음에는 구성을 구상하는 느낌이에요. 보면 볼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되죠.

▼ 작곡가마다 곡에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간단히 알려줄 수 있나요?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곡들을 보면 정말 완벽해요. 쉽게 이해되고 마치 신이 쓴 곡 같아요. 베토벤의 곡들은 어렵기는 하나 나중에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복잡하고 불완전해서 더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작곡가들을 공부하다 새로운 면을 볼 때가 가장 재미있어요. 그래서 자꾸 작곡가들을 병치해요. 이 작곡가는 이렇고 저 작곡가는 저렇다고 비교하는 게 재미있어요.

▼ 새로운 곡들을 많이 시도하죠?

의도적으로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졌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곡이라고 할 수 없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좋은 곡도 있어서요. 가급적이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곡들을 프로그램에 한두 곡씩 넣으려 하는 편이에요.

▼ 작곡을 한다거나 연주 외의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고 싶진 않나요?

타고난 재능은 다 다른 것 같아요. 제게 주어진 재능은 기존의 곡들을 재해석하는 거죠. 가끔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스스로 깨우치면서 이런 쪽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할 때가 솔직히 있거든요. 무엇보다 연주하고 싶은 피아노곡들이 너무 많아요. 다른 쪽 재능은 없는 것 같아요.

▼ 지금의 스승인 ‘아리에 바르디’(77·독일 하노버 음대 교수)와 지난해 듀오 리사이틀도 했어요. 선생께서 열음 씨를 처음 만났을 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피아니스트라 극찬하셨던 걸로 아는데 아직도 선생님이 필요한가요?

바르디 선생님께 셈여림이나 타건, 페달 밟는 방법 등 뭐 그런 걸 배우는 건 아니에요. 선생님과의 인연은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에 선생님을 만났을 때 첫 수업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음악의 내막을 파헤치는 가슴 떨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됐죠. 프레이즈 하나의 짧은 셈여림을 갖고 한 시간을 이야기하셨어요. 왜 그런 지시어가 그 자리에 있는가에 대한 말씀이셨어요. 그동안 피아노를 어떻게 쳐야 할까에 집중했다면 선생님을 만나고 난 후로는 무엇을 연주해야 할지 고민했죠. 피아니스트처럼 늘 혼자 연주해야 하는 경우는 특히 객관적으로 들어주고 조언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전 행운아죠. 믿을 수 있고 마음이 통하는 멘토를 일찌감치 만났으니까요.

마지막 연주 가장 잘한 연주자로 기억되고파

▼ 연습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연습을 할 때는 정말 쉬지 않고 하고, 안 할 때는 며칠씩 쉬기도 해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어서 체력을 안배하며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들 하시는데 저는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어서 한번 시작하면 7~8시간까지도 해요. 더 이상 연습하기 어렵다 싶을 때는 2~3일 휴식을 취하기도 하죠.

▼ 휴식은 어떻게 취하나요?

다른 사람들과 같아요. 먹는 것도 좋아하고, 쇼핑도 하고 여행도 하고!

젊은 거장 손·열·음
▼ 친구가 많겠어요.

그럼요. 친구는 중요하죠.

▼ 강원도 원주 출신이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선생님께 사사했어요. 지금은 독일에서 유학 중이지만 조기 유학을 한 건 아니에요.

네. 예술가에게 있어서 정체성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한국인으로서의 뿌리가 확실하니 참 행운인 거죠. 저의 아이디어나 창의력 같은 것이 어린 시절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지금은 독일에서 수학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제게는 큰 공부예요. 독일 친구들은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죠. 제 연주를 놓고 많은 분들이 거침없고 당당하다 표현해주시는데, 본래 제가 그렇다기보다는 독일의 환경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아서인 것 같아요.

▼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궁금한 것 있으면 이해될 때까지 질문하는 아이였어요. 이해될 때까지 계속 ‘왜?’라고 묻는 아이였는데 부모님은 한 번도 무시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항상 대답해주셨어요. 당연한 것은 없다고 하셨죠. 저의 부모님의 양육 방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신데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온 가족이 농구를 좋아해 원주 동부 팀의 열혈 서포터즈예요.

▼ 그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돼야지, 라고 생각했나요?

어린 시절 피아노가 집에 있었어요. 피아노 갖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 피아니스트가 돼야지, 하고 마음먹은 기억이 없어요. 당연히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가끔 저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란 말을 해요. 피아노뿐만 아니라 저는 음악 자체가 좋아요. 바이올린을 정말 좋아해서 바이올린 곡도 많이 듣죠. 개인적으로 독일 가곡이나 소품 실내악 곡 역시 정말 좋아해요.

▼ 칼럼도 쓰고 있죠? 독자층이 두텁고, 칼럼니스트 손열음의 팬이라 자처하는 분도 많아요. 저도 애독자인데 사람과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음악가로서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지금은 1천 자 정도에 맞춰서 쓰고 있어요. 진짜 쓰고 싶은 소재로 글을 쓰면 너무 길어져요.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클래식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입문 방식에 있다고 여겨져요. 음악가들은 당연히 알아야 하지만 일반인들은 음악의 전개 방식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왜 썼는지를 아는 게 나은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드리고 싶어요.

▼ 클래식 음악을 모르면 창피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 현재 준비된 계획이나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나요.

올해 국내에서의 연주 계획은 그리 많지 않아요. 유럽 무대에 많이 설 예정이에요. 궁극적으로 연주자로서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마지막 연주를 가장 잘한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재단을 설립하고 싶은 꿈도 생겼어요. 저처럼 국내파 친구들이 마음껏 유학하고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하는 재단이요. 또 제가 청중과 소통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작은 무대를 워낙 좋아해서 연주장을 갖춘 레스토랑을 갖고 싶은 소망도 간직하고 있죠.

◇ EPILOGUE

젊은 거장 손·열·음
그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초,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맥주잔을 기울이며 솔직하고 자유로운 젊은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친구는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요즘의 그를 보면 그날 밤 내리던 눈이 뭉쳐져 스스로 굴러가다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눈덩이가 돼 나타나 눈앞에서 환하게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러시아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마지막 무대에 오르며 “더 이상 이 아름답고 역사적인 무대에서 연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경연이 끝나지 않았으면 싶었다”고 말한 그. 비록 원하는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러시아에서 더 이상 잘 연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쉬움이 없다”는 말을 남긴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들이 주최국의 텃세를 조심스레 이야기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준우승 외에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최고 연주자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첫 독주회의 앙코르 무대를 연주회 3부처럼 꾸며서 맘껏 연주했으면서도 더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는 소회를 밝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마련한 작은 독주회가 부담스럽다더니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 아쉽다는 말을 연발하기도 했다.

반면 자신과 같은 국내파 후배 아티스트를 돕고 싶어하고, 세월호 사고와 같은 사회적 아픔을 함께 느끼며 연주회에서는 위로의 곡을 꼭 연주하고, 평범한 20대가 즐기는 일상 역시 즐길 줄 아는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 천재성과 현실성이라는 균형 잡힌 양 날개를 활짝 편 그의 아찔한 고공비행이 더욱더 기대될 따름이다.

디자인·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2월 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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