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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아버지! 지 약속 잘 지켰지예”

기획·김유림 기자 | 글·두경아 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5.02.13 11:48:00

흥행의 귀재 윤제균 감독이 2009년 영화 ‘해운대’에 이어 ‘국제시장’으로 또 한 번 천만 관객을 넘겼다.
그 덕분에 ‘쌍천만 감독’이라는 국내 최초 유일의 기록을 갖게 됐지만 그는 너무 들뜨지 않으려 한다고 고백한다.
지난 3년간 제작한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참패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그가 ‘국제시장’의 성공 비결,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얘기했다.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아버지!  지 약속 잘 지켰지예”
70대 노인 덕수는 빛바랜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지며 독백한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그러곤 평생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이다. 덕수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이 대목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이는 다름 아닌 윤제균(46) 감독의 독백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제시장’의 배경이 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 장면을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에 자신을 투영했다.

“덕수의 대사는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여동생 결혼 잘 시켰고, 어머니 잘 모시고 있고, 영화가 잘돼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고…. 저도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힘들었거든요.”

윤 감독은 이 영화를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치는 헌사’라고 밝혔다. 주인공 이름인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도 자신의 부모 이름에서 따왔다.



“첫아들을 낳고 아버지가 되어 보니 아버지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아버지 세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국제시장’은 지난 1월 14일, 개봉한 지 28일 만에 관객 수 1천만 명을 넘겼다. 이로써 윤 감독은 전작 ‘해운대’와 함께 두 번째 천만 관객을 기록한 국내 유일의 ‘쌍천만 감독’이 됐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기획 단계에서 투자를 받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해운대’ 때는 ‘정말 관객이 천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아버지께 바치는 작품인 만큼, 정말 잘 만들었다는 칭찬만 들으면 좋겠다 싶었죠.”

윤 감독은 이 영화의 공을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돌린다. 특히 주인공 덕수 역을 맡은 황정민의 연기는 그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고 한다.

“황정민 씨는 한 신 한 신 찍을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보통 기대치가 100이라면 120을 보여주는 배우들은 있어도, 200을 보여주는 배우는 흔치 않거든요. 정민 씨는 늘 200을 보여줬어요. 20대 청년의 로맨틱 코미디부터 70대 노인의 회한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냈어요.”

주인공 덕수와 영자, 부모님 이름에서 따와

영화 촬영 과정은 스크린에 표현되는 것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특히 덕수가 흥남철수 때 잃어버린 동생을 ‘이산가족 찾기’에서 화상 통화로 만나는 장면을 찍으며 배우나 스태프 모두가 실제 상황처럼 감정 이입을 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두 배우를 서로 못 만나게 했어요. 촬영하면서 화상 통화로 처음 얼굴을 보게 했는데, 서로가 남매라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주문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촬영과 동시에 두 사람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한편 이 영화를 두고 일각에서는 ‘역사 미화’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역시 윤 감독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고 말한다.

“장점만 있는 사람이 없듯이 장점만 있는 영화도 없다고 생각해요. 취사선택의 문제죠. 단지 한번은 고생했던 부모님 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마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영화는 크게 네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흥남철수, 파독 광부·간호사, 월남전 파병, 이산가족 찾기다. 윤 감독은 “영화에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특히 파독 광부·간호사 에피소드가 재조명돼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 광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어요. 사고도 많았지만, 우울증에 의한 자살도 많았다고 해요. 영화에서 간호사들이 시체 닦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런 헌신적인 모습 덕분에 한국 간호사들을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렀어요. 6·25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가 끊겨 차관을 빌리려고 할 때,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를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았어요. 이때 간호사와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에 감동해서 독일이 엄청난 금액의 차관을 빌려줬다고 해요. 담보가 이분들의 월급이었던 거죠. 그 덕분에 중화학공업 발전이 있었던 거고요.”

또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로 불리는 흥남철수 장면에서는 아비규환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절제를 많이 했다고 한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마음 아팠던 부분이 있었어요. 흥남철수가 열흘 남짓 이루어졌는데, 이 시간을 벌기 위해 6천 명의 미군 사상자를 냈어요. 대부분이 동상이었다고 해요. 그 덕분에 10만 명의 북한 피란민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죠.”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이게 내 팔자인기라.’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가장으로서 희생하는 삶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서를 외국인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국제시장’은 제65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아마 외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희생(sacrifice)’과는 또 다른 의미일 거예요. 나는 비록 헐벗고 못 먹어도 내 자식은, 내 동생들은 책임진다는 그런 마음이, 그 옛날 우리나라 가장과 장남들이 품었던 인생 모토가 아닐까 싶어요.”

윤제균 감독 역시 ‘덕수’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내 팔자가 좋은지 알게 된 건 얼마 안 됐다”는 말이 조금은 의아하게 들린다. 윤 감독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중소기업 임원이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10대와는 달리, 20대는 파란만장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퇴직 후 주식 투자로 전 재산을 날린 뒤 그가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아버지가 남긴 건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무급 휴가가 안겨준 뜻밖의 인생 역전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아버지!  지 약속 잘 지켰지예”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친구 집에서 3년이나 얹혀살았고, 6개월 정도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살았거든요. 알바하고, 공부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죠. 20대 때 제대로 건진 건 아내 하나예요(웃음).”

캠퍼스 커플로 만난 아내와는 연애 7년 만에 결혼했다. 첫 신혼집은 33m2(10평) 남짓 되는 아현동 반지하였다. 그마저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1천5백만원을 대출받아 마련했다. 졸업 후 LG애드에 취업하면서 인생이 조금 편안해질 만할 때 외환 위기가 터졌다. 그리고 그에게 1년간의 무급 휴가가 주어졌다.

“시간은 있되 돈이 없으니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러고 보면 원래 돈이 많았다면 그때 저는 시나리오도 쓰지 않았을 거고, 지금처럼 감독도 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도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저도 나름 좋은 팔자예요. 하하.”

윤 감독은 자신의 가장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준 아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에게 잘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한번은 아내에게 물었어요. ‘뭘 보고 나와 결혼했어?’ 아내 대답이 ‘정말 사랑했다’고 하대요. 하하. 운전은 할 줄 아니 ‘정 안 되면 택시 운전이라도 하겠지’라고 생각했대요(웃음). 사실 결혼할 때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아내도 배울 만큼 배웠고, 부모님 눈에는 부족한 게 없어 보였을 테니까요. 신혼 때는 한 차례 위기가 오기도 했어요. 연애 기간이 길었으니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당신은 참 착하고 성실한데 가장으로서 능력이 없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처음으로 아내를 보내줘야 하나 싶었어요. 만약 그때 파독 광부나 베트남전 참전 용사 모집 공고가 있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낸 지금, 부부는 행복하다. 윤 감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커플이 되고 싶다”면서 그 모델을 영화 속 덕수·영자 부부로 꼽는다.

‘갑의 횡포’ ‘열정 페이(급여가 청년 노동 착취 수준임을 비꼬아 표현한 것)’ 등이 뜨거운 이슈인 요즘, 그래서 ‘국제시장’은 더욱 특별하다. 영화계만큼 ‘열정 페이’가 보편화되어 있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은데, 이 영화는 막내 스태프까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그대로 시행한 첫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보면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 제한, 12시간 넘길 시 초과수당 지급, 일주일에 1회 휴식일 보장, 4대 보험 가입 등이 기입돼 있다. 약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모두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감독으로서 뿌듯함이 크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영화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의 이름까지 외우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영화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2001년도만 해도 저 역시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어요. 미생의 시절을 지내오며 상대적인 박탈감도 있었고, 아무도 저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괴로운 적도 많았죠. 중요한 건 현재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아버지!  지 약속 잘 지켰지예”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관객이 행복해지는 영화 만들고 싶어

다만 그에게는 사람을 판단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16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하는 동안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고 인간적인 배신도 당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을 볼 때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했어요. 그런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착한데 뭔가 음흉한, 그런 느낌이 있죠. 그래서 몇 년 전 깨달았어요. 맑은 사람과 탁한 사람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걸. 그 기준은 ‘일관성’이에요. 일관성 있는 사람은 누굴 대하든 잘 변하지 않아요. 또 고마움을 아느냐, 하는 것도 기준이 돼요. 맑은 사람은 남에게 받은 도움을 쉽게 잊지 않거든요.”

두 편의 흥행 대작을 만든 국내 유일의 영화감독이지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를 시작으로 신인 감독 시절부터 ‘색즉시공 1·2’(2002·2007) 등을 흥행시켰으나 지난 3년간 제작한 영화 가운데는 ‘댄싱퀸’ (2012)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흥행작이 없다. 특히 많은 예산이 투입된 ‘7광구’(2011)의 참패로 큰 타격을 받았다. “경사 앞에서도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천천히 내려가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그의 말이 빈말은 아닌 듯 보인다. 대중의 감성을 누구보다 잘 읽어낸다는 칭찬에도 그는 자신의 눈높이가 대중과 비슷할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영화를 만든 감독과 상당히 닮아 있어요. 내가 슬프면 다른 사람도 슬프고, 다른 사람이 웃으면 저도 웃더군요. 식자층이나 비평가가 아닌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2시간이란 짧은 시간이나마 각박한 현실을 잊고 감동과 웃음을 얻고자 극장을 찾아오잖아요. 티켓 값 9천원이 아깝지 않도록 관객들에게 그 시간만큼은 진짜 행복을 드리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두 아들을 둔 그는 자신을 “가장 위대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평범한 아버지”라고 소개한다. 아버지가 만든 영화 ‘국제시장’을 본 뒤 아이들이 내린 평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마디가 ‘쓰나미는 안 와?’였어요. 하하. ‘해운대’가 더 재미있다는 거죠. 앞으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한국의 ‘쥬만지’ 같은 영화도 만들고 싶어요.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스케일과 내용 면에서 차별화되는 가족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디자인·박경옥

여성동아 2015년 2월 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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