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1 남의 집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Q 저도 잘 모르는 이웃집 아이를 잠시 맡았는데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놀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아이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했더니, 오히려 그 아이 엄마는 태연하게 찾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어려서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기만 하다가 꿈에서 꿈이라는 걸 깨닫고 안도했습니다.
A “Dream in a dream!” ‘인터스텔라’로 화제를 모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 ‘인셉션’ 속 대사입니다. 타인의 꿈에 침투하는 기술을 갖고 있던 그들은 각자를 둘러싼 환경이 꿈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두려운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일컫는, 소위 ‘외부 현실’에서도 말이죠.
꿈에서 꿈인 줄 알고 자유로이 즐기는 경험,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텐데요. 이런 정신 현상을 자각몽(自覺夢)이라 합니다. 최근 미국심리학회 저널은 앞서 언급한 영화 ‘인셉션’ 속 설정이 단지 허구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링컨 대학의 패트릭 버크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에 따르면, 자각몽을 꾼 사람들의 무려 25%가 현실을 빨리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력이 소위 ‘무경험자’에 비해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현실 검증 능력’이란 용어와 일맥상통합니다.
사연 주신 분은 꿈에서 이웃집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심지어 내가 낳은 아이도 어떻게 될 지 잘 파악이 안 됩니다. 까딱 잘못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크고 작은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하물며 평소에 잘 몰랐던, 그것도 이웃집 아이를 맡았다는 상황은 현재 일상의 불안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이분의 표현 그대로 ‘불확실하고 까딱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는’ 중책을 맡았는지도 모릅니다. 꿈에서 백화점 쇼핑을 하다 아이를 잃어버렸는데도 그 아이 엄마는 오히려 태연하게 괜찮다고 합니다. 시장, 백화점, 슈퍼마켓 등 뭔가 풍성한 공간들은 쾌락, 안락함, 즐거움, 엄마의 상징입니다. 어쩌면 이분은 잠시의 휴식조차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은 채, 잘 모르는 낯선 임무를 그르칠까 봐 몹시 불안해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아이의 엄마는 같이 당황하며 화를 내는 대신, 불안에 떨고 있는 주인공을 달랬습니다. ‘자기 위로 기능’이라 불리는 이 정신 기능은 정신의학에서 매우 중요시 여기는 부분입니다. 불안을 치료할 때 쓰이는 약물이나 요법들은 하나같이 이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망의 회복을 촉진시킵니다. 불안한 사람도 나지만 달래는 사람 또한 나입니다. 이는 자각몽을 꾸었다는 점과 함께 현실에서의 불안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입니다. 헌신도 지나치면 ‘헌신짝’처럼 해지기 십상입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사교 모임에서 총무를 맡으면 주로 이런 꿈을 꿉니다.
case2 멋진 중년 남성과 사랑에 빠졌어요
Q 30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머리는 희끗하지만 남자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60대 남성과 알콩달콩 사랑에 빠지는 꿈을 꿨습니다. 평소 연상남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건 아닌데, 마치 20대 때의 연애처럼 설레는 감정이 들더군요. 꿈속에서도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긴 했지만요.
A 아버지 또래 남성과 사랑에 빠지셨네요. 꿈은 소망을 매우 함축적으로 잘 풀어내는데, 이 꿈도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비록 평소에 연상남을 향한 환상은 없다 할지라도 분명 속마음은 그런 남성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연상의 그는 어쩌면 설렘이란 감정을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현재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쉬운 부분들을 보상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듬직한 지혜와의 만남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case3 시원하게 소변 보는 꿈을 꿨어요
Q 길을 걷다가 요의를 느껴서 화장실을 급하게 찾았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이 금방 보이지 않아 무척 마음이 조급했어요. 그러다 간신히 찾은 곳은 특급 호텔 화장실에 버금가게 아주 세련되고 깨끗했습니다. 그곳에서 소변을 봤는데, 아주 오래 그리고 시원하게 보았습니다. 양도 무척 많았고요. 제가 제 소변을 들여다보는데, 무색무취였죠. 어렴풋하지만 꿈속에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건 무슨 꿈일까요?
A 화장실은 꿈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장소 중 하나입니다. 어릴 때 엄마로부터 받은 배변 훈련에서 우린 적절한 자율성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다면 배변 훈련은 통제력의 훈련소로 변질됩니다. 특히나 그 통제의 대상은 ‘감정’입니다. 소변은 대변과 마찬가지로 내가 방출하고 싶은 감정입니다. 주로 분노나 울분, 괘씸함 등과 같이 절박하고 불쾌해 빨리 쏟아냈으면 하는 그런 감정들로 휩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 다행히도 사연 주신 분은 아주 좋은, 특급 호텔 화장실처럼 럭셔리한 곳에서 소변을 보았습니다. 무색무취 완전 정제된 소변을 보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과연 나의 감정을 ‘럭셔리하게’ 잘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으셨을까요? 사연 주신 분의 현재 정황을 모르는 이상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이겁니다. 우리 내면의 감정을 우리가 원하는 무결점 장소에서 세균 하나 없는 일급수로 만들어 방출할 순 없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이별은 없다’는 내용의 아이유 노래는 바로 이런 점을 호소합니다. 다소 더러운 장소라도 소변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내 안에서 나오는 소변 또한 완전 깨끗할 수 없습니다. 감정에 고결함과 추악함의 잣대를 붙이는 한 일상의 막연한 긴장과 절박한 요의(尿意)는 계속될 것입니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꿈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믿음으로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뱀파이어 심리학’등이 있다.
■ 디자인·최진이 기자
Q 저도 잘 모르는 이웃집 아이를 잠시 맡았는데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놀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아이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했더니, 오히려 그 아이 엄마는 태연하게 찾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어려서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기만 하다가 꿈에서 꿈이라는 걸 깨닫고 안도했습니다.
A “Dream in a dream!” ‘인터스텔라’로 화제를 모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 ‘인셉션’ 속 대사입니다. 타인의 꿈에 침투하는 기술을 갖고 있던 그들은 각자를 둘러싼 환경이 꿈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두려운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일컫는, 소위 ‘외부 현실’에서도 말이죠.
꿈에서 꿈인 줄 알고 자유로이 즐기는 경험,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텐데요. 이런 정신 현상을 자각몽(自覺夢)이라 합니다. 최근 미국심리학회 저널은 앞서 언급한 영화 ‘인셉션’ 속 설정이 단지 허구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링컨 대학의 패트릭 버크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에 따르면, 자각몽을 꾼 사람들의 무려 25%가 현실을 빨리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력이 소위 ‘무경험자’에 비해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현실 검증 능력’이란 용어와 일맥상통합니다.
사연 주신 분은 꿈에서 이웃집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심지어 내가 낳은 아이도 어떻게 될 지 잘 파악이 안 됩니다. 까딱 잘못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크고 작은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하물며 평소에 잘 몰랐던, 그것도 이웃집 아이를 맡았다는 상황은 현재 일상의 불안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이분의 표현 그대로 ‘불확실하고 까딱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는’ 중책을 맡았는지도 모릅니다. 꿈에서 백화점 쇼핑을 하다 아이를 잃어버렸는데도 그 아이 엄마는 오히려 태연하게 괜찮다고 합니다. 시장, 백화점, 슈퍼마켓 등 뭔가 풍성한 공간들은 쾌락, 안락함, 즐거움, 엄마의 상징입니다. 어쩌면 이분은 잠시의 휴식조차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은 채, 잘 모르는 낯선 임무를 그르칠까 봐 몹시 불안해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아이의 엄마는 같이 당황하며 화를 내는 대신, 불안에 떨고 있는 주인공을 달랬습니다. ‘자기 위로 기능’이라 불리는 이 정신 기능은 정신의학에서 매우 중요시 여기는 부분입니다. 불안을 치료할 때 쓰이는 약물이나 요법들은 하나같이 이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망의 회복을 촉진시킵니다. 불안한 사람도 나지만 달래는 사람 또한 나입니다. 이는 자각몽을 꾸었다는 점과 함께 현실에서의 불안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입니다. 헌신도 지나치면 ‘헌신짝’처럼 해지기 십상입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사교 모임에서 총무를 맡으면 주로 이런 꿈을 꿉니다.
case2 멋진 중년 남성과 사랑에 빠졌어요
Q 30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머리는 희끗하지만 남자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60대 남성과 알콩달콩 사랑에 빠지는 꿈을 꿨습니다. 평소 연상남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건 아닌데, 마치 20대 때의 연애처럼 설레는 감정이 들더군요. 꿈속에서도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긴 했지만요.
A 아버지 또래 남성과 사랑에 빠지셨네요. 꿈은 소망을 매우 함축적으로 잘 풀어내는데, 이 꿈도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비록 평소에 연상남을 향한 환상은 없다 할지라도 분명 속마음은 그런 남성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연상의 그는 어쩌면 설렘이란 감정을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현재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쉬운 부분들을 보상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듬직한 지혜와의 만남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case3 시원하게 소변 보는 꿈을 꿨어요
Q 길을 걷다가 요의를 느껴서 화장실을 급하게 찾았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이 금방 보이지 않아 무척 마음이 조급했어요. 그러다 간신히 찾은 곳은 특급 호텔 화장실에 버금가게 아주 세련되고 깨끗했습니다. 그곳에서 소변을 봤는데, 아주 오래 그리고 시원하게 보았습니다. 양도 무척 많았고요. 제가 제 소변을 들여다보는데, 무색무취였죠. 어렴풋하지만 꿈속에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건 무슨 꿈일까요?
A 화장실은 꿈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장소 중 하나입니다. 어릴 때 엄마로부터 받은 배변 훈련에서 우린 적절한 자율성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다면 배변 훈련은 통제력의 훈련소로 변질됩니다. 특히나 그 통제의 대상은 ‘감정’입니다. 소변은 대변과 마찬가지로 내가 방출하고 싶은 감정입니다. 주로 분노나 울분, 괘씸함 등과 같이 절박하고 불쾌해 빨리 쏟아냈으면 하는 그런 감정들로 휩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 다행히도 사연 주신 분은 아주 좋은, 특급 호텔 화장실처럼 럭셔리한 곳에서 소변을 보았습니다. 무색무취 완전 정제된 소변을 보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과연 나의 감정을 ‘럭셔리하게’ 잘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으셨을까요? 사연 주신 분의 현재 정황을 모르는 이상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이겁니다. 우리 내면의 감정을 우리가 원하는 무결점 장소에서 세균 하나 없는 일급수로 만들어 방출할 순 없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이별은 없다’는 내용의 아이유 노래는 바로 이런 점을 호소합니다. 다소 더러운 장소라도 소변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내 안에서 나오는 소변 또한 완전 깨끗할 수 없습니다. 감정에 고결함과 추악함의 잣대를 붙이는 한 일상의 막연한 긴장과 절박한 요의(尿意)는 계속될 것입니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꿈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믿음으로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뱀파이어 심리학’등이 있다.
■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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