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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그녀를 보라

“주름마저 아름다운 아네트 베닝처럼 늙고 싶어요”

글·김지영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4.12.17 11:10:00

암 투병 후 잇따라 비상업 영화에서 열연, 얼굴 주름도 연기라서 시술을 거부하는 여배우다운 배짱, 그리고 더 말할 나위 없는 성실함.
김영애, 그녀를 보라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후 1백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 김영애(62)는 전성기가 아니었던 때가 없을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특히 데뷔 43주년을 맞은 올해 그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올 들어 처음 1천만 고지를 넘은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주인 순애로 열연한 데 이어 11월 개봉한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

더욱이 세 편의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마트 직원들의 정신적 지주인 20년 차 청소원(영화 ‘카트’)과 미국으로 입양된 큰아들과의 상봉을 목전에 두고 치매로 길을 잃는 노모(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딸이 갓 낳은 아이를 실수로 잃은 후 서서히 미쳐가는 어머니(영화 ‘현기증’) 등으로 캐릭터 간의 간극이 컸다. 그럼에도 그는 세 인물을 마치 서로 다른 세 사람이 연기하듯 소화해내 호평을 받고 있다.

11월 1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미녀의 탄생’에서는 이들과는 또 다른 캐릭터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기존의 강한 카리스마와 모성애 대신 속물근성으로 무장한 시월드의 수장으로 신선한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 것.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여성동아’와 만난 그는 시종일관 환하게 웃었다.

원래 싫증 잘 내는 성격, 연기 변신 즐겨

▼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다.



예전엔 가을이 싫었다. 쓸쓸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데 지금은 예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에 매달린 단풍잎 하나, 거리를 뒹구는 은행잎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예쁜 걸 왜 진즉에 못 알아봤을까 싶다. 이제야 철이 든 모양이다(웃음).

▼ 영화 세 편이 11월에 잇달아 개봉하고, 드라마 출연까지 더해져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듯하다.

세 영화가 한 달 새 개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기증’은 원래 5월 개봉을 목표로 지난해 9월과 10월 두 달간 바짝 찍었고, ‘카트’는 올해 1월과 2월,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4월부터 6월까지 찍어 촬영이 한 번도 겹치지 않았다. 이후 5개월 동안 쉬다가 ‘미녀의 탄생’에 출연했는데 이게 다 한꺼번에 세상에 나와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영화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 특히 ‘현기증’은 정말 돈 생각 안 하고 출연했다. 교통비 정도만 받았다. 그게 잘돼야 러닝개런티라도 받을 것 아닌가(웃음). 그런 비상업 영화가 손익분기점이라도 찍어야 다른 투자자들이 제작할 용기를 낼 텐데 어디서 개봉하는지도 알기가 힘들 정도니 안타깝다.

▼ 맡은 배역들을 각기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소화해내는 비결은 뭔가.

그냥 그 인물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난 연기할 때 계산을 안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연기해서 리허설을 할 때조차 매번 다른 모습이 나온다. 다섯 번을 연습하면 다섯 번이 다 달라서 감독이나 스태프가 곤혹스러워한다(웃음).

▼ 작품을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현기증’에는 배우로서 밑바닥까지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출연했다. 그런 시나리오를 다시 만나기 힘들고, 이미 내 나이가 젊지 않으니까. ‘변호인’에는 ‘로열 패밀리’나 ‘해를 품은 달’에서 보여준 강한 모습 대신 예전에 자주 맡던 모성애 강한 어머니로 돌아가고 싶어서 출연했다. ‘카트’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게 흥행할까 싶었고, ‘변호인’ 때처럼 이런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누가 볼까 하면서 출연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볼 줄 모르는 것 같다. 흥행은 안 되겠지만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빵빵 터지는 걸 보면(웃음). 이후 코미디를 몹시 하고 싶을 때 ‘우리는 형제입니다’ 시나리오를 받았다. 내용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처음에는 할머니 역이라서 할까, 말까 망설이다 출연을 결정했다.

▼ ‘미녀의 탄생’에서 맡은 배역은 기존의 현모 이미지와 판이하게 다르다. 바람기도 있고, 살림에는 젬병이며, 겉치레와 허세에 능한 속물근성도 지녔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코미디라서 마음에 들었다. 분량도 많지 않고 두 달간 찍으면 되니까. 원래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다. 시집가서 신랑이 일주일 만에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을 정도다. 그래서 연속극을 지루해한다. 예전에는 인기가 있으면 일일드라마를 1년 넘게 했는데 그런 걸 못 견뎌한다. 그렇다고 두 번 이혼한 게 결혼이 싫증나서는 아니다(웃음). 기자들 때문에라도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

“함께해서 행복했다”는 후배들의 말이 최고의 찬사

김영애, 그녀를 보라
불현듯 그가 인터뷰 섭외 과정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미녀의 탄생’을 찍는 게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 했던 그 말, 지금도 유효할까.

“캐릭터도, 촬영 현장도 재미있다. 극 중 남편인 한진희 씨가 드라마를 많이 해서 그동안 몰랐던 드라마와 연기자 이야기를 곧잘 들려준다. 촬영 도중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 때 같이 수다를 떠는 재미가 쏠쏠하다. 십수년 전 드라마를 같이한 적이 있어서 호흡이 잘 맞는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니까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반가워한다. 최근에 드라마에서 강한 역을 많이 해 처음 본 후배들은 무서운 이미지로 보는데 먼저 나를 다 드러내면 무섭다는 느낌을 갖지 않더라. 사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후배들이 어려워할 수 있다.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느끼는 일은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 인기 있다고 선배를 무시하는 후배도 있다던데.

아직 그런 후배를 못 봤다. (한)예슬이도 무척 착하더라. 촬영도 열심히 하고 연기도 잘한다. 간혹 선배를 봐도 누워서 고개만 까딱하는 배우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데 난 정말 운 좋게 그런 황망한 일을 당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염정아, 문정희, 도지원 같은 후배들이 내 칭찬을 많이 해줘서 고마웠다. 나와 함께해서 ‘행복했다’고 하더라. 후배들의 그런 말이 ‘신이 내린 연기력’이라는 극찬보다 더 기분 좋다.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싶다.

▼ 작품을 빨리 비워내는 편인가.

원래는 끝나면 바로 비워내는데 ‘현기증’은 다 비우기까지 오래 걸렸다. 바닥까지 가보려다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연기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몰입해서 우울증도 앓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촬영할 때 강원도 화천에서 아예 두 달을 살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순서대로 찍다 보니 서서히 미쳐가는 연기를 하며 정말 미치는 것 같았다.

▼ 현장에서 모니터를 안 본다고 알려져 있다.

그거 보면 속상하다.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찍을 수도 없고, 다시 촬영해도 더 잘할 자신이 없다. 원래 연기할 때 안달복달하는 스타일이다. 점잖지 못하게 끊임없이 초조해하고 매번 촬영할 때마다 처음인 것 같다. 타고난 연기자가 아닌 것 같다.

▼ 연기를 즐기지 않나.

연기하는 걸 되게 좋아하지만, 연기를 놀면서 편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가장 행복하다. 죽기 전까지 연기하고 싶다. 남한테 폐를 끼치거나 연기하다 죽는 일만 없다면.

▼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엔 술 마시며 풀었는데 암 수술 후에는 마시면 안 돼서 집에 있을 때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만 본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보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 NG를 잘 안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사를 외우는 노하우가 있나.

기억력은 나쁜데 대사를 외우는 머리는 따로 있나 보다. 후배 연기자들이 나더러 ‘리허설 때 보면 대사를 안 외운 것 같은데 슛 들어가면 NG를 안 내는 게 신기하다’고 하더라. 근데 이번에 반성했다. 한진희 씨는 집에서 대본을 다 외워온다. 난 그 정도로 성실하지 못하다. 처음 대본을 볼 때는 상황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한 번에 집중에서 대사를 외운다.

기도와 명상, 스트레칭으로 건강 관리

그는 데뷔 후 43년 동안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주연을 맡아온 몇 안 되는 배우다. 하지만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출연 도중 췌장암 초기라는 판정을 받으며 연기 인생 최대 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다른 배우들과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바로 수술대에 오르지 않은 그는 두 달을 더 버텨 드라마 촬영이 끝난 직후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장장 9시간이 걸렸다. 수술 직후엔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십이지장부터 담도, 담관, 췌장 일부를 잘라내 물만 먹어도 고통이 뒤따랐다. 한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뼈와 가죽만 남았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운동과 식사 조절로 체중을 49~50kg으로 늘려 연기 활동을 재개했지만 지금도 무리하면 살이 금세 빠져 체력 관리에 항상 공을 들인다.

김영애, 그녀를 보라

김영애는 치매로 길을 잃는 노모로 출연한 ‘우리는 형제입니다’와 서서히 미쳐가는 어머니로 등장한 ‘현기증’, 20년 차 청소원으로 나온 ‘카트’까지 최근 개봉한 세 편의 영화에서 각기 다른 배우가 연기하듯 역을 소화해냈다.

▼ 운동을 꾸준히 하나.

운동을 좋아하는데 잘하진 못한다. 몸무게가 다시 47kg으로 줄어서 살을 찌워야 한다. 예전에는 운동을 열심히 해도 몸무게가 500g도 줄지 않더니 지금은 잘 늘지 않는다. 자기 전에 근력을 키우려고 팔 운동을 좀 하고 자면 다음 날 몸무게가 쏙 빠져 있다. 지금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집 앞 북한산 휴게소까지 다녀온다. 왕복 3~4km 거리라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 거리를 예닐곱 번씩 쉬면서 올라간 적도 있는데 지금은 쉬지 않고 올라갈 정도가 됐다. 가끔 팔굽혀펴기도 하고 히프업 운동도 한다.

▼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는데 지금은 잠을 잘 자는 편인가.

잘 잔다. 올여름부터 6개월 동안 기 수련을 한 후 수면제를 끊었다. 어떤 날은 7~8시간을 잔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못 잔 잠을 이제야 자나 싶을 정도다. 감사한 일이다. 처음에는 잠을 못 자던 내게 졸음이 온다는 게 신기했다. 어느 순간 어질어질하다가 기절하는 것처럼 되더라. 어제도 밤 10시쯤 됐는데 참을 수 없을 만큼 졸려서 스트레칭을 해야지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새벽 3시 40분이었다. 4시 반쯤 다시 잠들어 아침 8시 반에 일어났다. 난 수면제를 오래 먹어서 환각 증세 비슷한 후유증이 있는데, 기도와 명상을 생활화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면 달게 잔다.

자기 전에 108배를 하거나 ‘금강경’을 읽을 때도 있다. 예전에는 15분 만에 108배를 했는데 지금은 25분 정도 걸린다. 정신 수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108배나 ‘금강경’을 권하고 싶다.

▼ ‘금강경’ 중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어디든 머물지 말라는 대목이 가장 좋다. 좋은 일을 해도 그걸로 생색을 내거나 대가를 바라지 말고, 성냄이나 노여움이나 사랑에조차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가 가장 괴롭다. 내 몸이 상할 뿐 아니라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지 않은가. 40대에 ‘금강경’을 읽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최근 21일 동안 매일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불경 중 최고다.

▼ 요즘 중년 여배우들은 대부분 주름 펴는 시술을 하던데, 초연해 보인다.

나도 주름을 보면 속상하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다른 배우와 비교가 되니 어쩔 수 없다. 더욱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다. 예뻐 보이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딱 한 가지 포기 못하는 게 연기다. 주름을 펴려다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서 연기가 부자연스러워지는 건 더 용납할 수 없다. 사실 ‘변호인’을 관람할 때도 내 주름만 보이더라. 그럼에도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찍을 때까지 피부과에 안 가다가 ‘미녀의 탄생’에 출연하면서 갔는데 내가 지우고 싶었던 눈가 주름은 안 없어지고 다른 곳에 이상한 자국이 나서 어제는 촬영을 아예 못 했다. 의사에게 먼저 ‘연기하는 데 절대 지장을 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으니까 대책이 안 서는가 보다(웃음).

“자옥이와 나는 평생 연기해야 할 운명”

인생의 3분의 2를 배우로 살아왔지만 그는 동료 배우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했다. 결혼 생활을 할 때는 가정에 얽매여야 했고, 이후엔 일하느라 바빴으며, 지금은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대신 한번 맺은 인연은 오래간다. 후배 연기자 염정아와 선배 연기자 반효정, 정혜선이 그런 사람들이다.

▼ 최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자옥 씨와도 친분이 있나.

평소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20대 때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고, 나이도 같고 처지도 비슷해서 그 마음을 잘 안다. 원래 투병 중인 것을 알고 있었다. 작년에 신라호텔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 ‘이제 우리 좀 만나자’ 그랬는데 각자 바쁘다 보니 못 만났다. 그러던 와중에 사망 소식을 들어 마음이 무척 아팠다. 막 눈물이 나더라. 아들 결혼식이 내년 3월인데 그걸 못 보고 갔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나. 신이 생을 조금만 더 허락하셔서 아들 결혼식만 보고 갔어도 얼마나 좋았을까.(어느새 핏발이 서린 그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 올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떤가.

전보다 좋아졌다. 그런데 자옥이가 갑자기 떠나니까 좀 겁이 나서 드라마 촬영 날짜를 약속한 대로 주당 이틀로 줄여달라고 했다. 한번 암을 앓은 사람은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는데 지금은 괜찮아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몸을 피곤하지 않게 하려고 늘 조심한다. 운동을 지나치게 하는 게 문제라는 것도 알았다. 기 수련 선생님도 그것을 걱정하더라. 운동량을 대폭 줄이고, 항암에 좋은 비타민 주사를 계속 맞으면서 몸에 맞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다. 아들도 한국에 들어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 올해도 두 달간 머물다 갔는데 내가 음식을 잘 먹지 못할 때라 맛있게 먹어주진 못했다.

연애는 언제든 ‘오케이’, 결혼은 ‘노 생큐’

사춘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었을 때도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어른스럽게 굴었던 그의 아들은 어느새 장성해 가정을 꾸렸다. 세계적인 요리 명문 학교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를 거쳐 미국 뉴욕의 CIA를 졸업하고 지금은 맨해튼의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1월 말 ‘변호인’ 개봉 직후 그를 만났을 때 “두 번째 이혼할 때도 그 아이는 엄마만 행복하면 된다면서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나 역시 아들을 엄하게만 대해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 아들과 자주 연락하나.

물론이다. 며느리와도 매일 ‘카톡’을 한다. 2012년에 수술하고 나서는 아이들이 내게 더 신경 쓴다. 내가 일을 많이 하니까 불안해한다. 미국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아직은 내 일이 없는 곳에서는 존재 이유를 못 찾겠다. 산속에 혼자 있으라고 하면 더 빨리 늙어 죽을 것 같다. 촬영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놀다 보면 기운이 난다. 자옥이가 최근 연극에 출연할 때 사람들은 몸이 아픈데 왜 일을 할까 하며 의아해하더라. 근데 난 그 마음을 이해한다. 자옥이도 나도 일을 하며 카메라 앞에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지 않은가.

▼ 아들이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나.

격려해줬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까 힘들어도 참고 하겠지. 엄마로서 나는 낙제점인데 아들이 사회인으로 잘 커줘서 고맙고 좋은 배우자 만난 것도 감사하다. 며느리와 고부 갈등 같은 거 모르고 산다. 딸이 없으니까 친딸 같다. 지금껏 아들 뒀다고 유세한 적도 없다. 둘이 잘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 인생을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게 뭔가.

나를 돌보지 않은 것이 아쉽다. 우리 아이들과 4~5년 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나를 위해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게 후회되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나만을 위해 살자고 결심했는데, 평생 그렇게 살지 않아선지 그게 잘 안 된다. 이제 좀 내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는 거지, 그전엔 방치에 가깝게 살았다. 내 몸이 주인을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싶다. 날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 올가을이 가장 예뻐 보이는 것도 자신을 아끼면서 생긴 변화인가.

그건 아니다.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니구나, 이 세상에 나왔으니 충실하게 살자, 지구에 폐를 끼치면서 살지 말자, 내가 이승을 떠날 때 세상 구경 잘하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다.

내가 2012년 수술대에 올라 마취하기 직전에도 나 자신에게 ‘김영애, 너 수고했다. 참 열심히 살았다’고 칭찬해줬다. 9시간 동안 한 번의 말썽 없이 수술할 수 있었던 것도 편하게 마음먹어서일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감정이 메마르는 게 아니라 더 풍부해지는 것 같다. 점점 더 순화되는 것 같다.

▼ 그 변화의 원동력 가운데 연애도 있나.

언제든 연애할 준비가 돼 있다. 하하하. 얼마 전 닥종이 예술가 김영희 씨가 나오는 대담 프로그램을 봤는데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눈빛이 반짝반짝 살아 있더라. 그러니 예술을 하시겠지만 예전과 달리 무척 생기 있어 보였다. 왜 그런가 했더니 연애를 하시더라.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나도 저렇게 나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영애, 그녀를 보라

미국에 사는 며느리와 매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모녀처럼 지낸다는 김영애.



내년 봄 아들 부부와 유럽 여행 계획

그에겐 연하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김영애가 2011년 드라마 ‘로열 패밀리’를 시작할 때 우연히 만났고, 암 수술을 받은 그를 남자친구가 간병하면서 가까워졌다. 그의 어리광을 다 받아줄 만큼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던 그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현재 진행 중인지 궁금했다.

“그 친구가 미국으로 떠났다. 올봄 건강이 안 좋았을 때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 지금도 이틀에 한 번은 연락하며 지내지만 이제는 이성이 아닌 동성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그동안 못 다녀본 곳을 여행하고 싶다. 내년에 덥기 전에 우리 가족 셋이서 스페인을 갈지, 그리스를 갈지 고민하며 날짜를 맞추고 있다. 한 나라를 2주 동안 세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여행 외엔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다. 그동안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지 않았나. 남이 못하는 이혼도 두 번이나 하고, 풋풋한 연애도 해보고(웃음).

▼ 이제 결혼은 더 이상 안 할 건가.

절대로. 두 번이나 해봤으면 됐지 뭘 또 하나. 참고 사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두 번 씩이나 결혼에 실패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열등감이 있다.

▼ 흔치 않은 경험을 했으니 다른 배우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닌가.

(웃음). 20대 때 만난 어떤 작가가 ‘여배우의 가장 훌륭한 조건은 결혼해서 아이 하나 낳고 이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어이없게 들렸는데 이제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야만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와 결혼하든 좋은 날만 있을 순 없다. 그럼에도 인생의 고비를 함께 넘기고 시골에서 같이 늙어가는 노부부를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나.

그래도 모범적으로 살진 못했다. 좋은 엄마도, 좋은 아내도 아니었다. 배우로서만 충실해온 인생이다. 내가 주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연기 하나라도 잘해야 하지 않나. 나이를 먹어도 주름에 연연하지 않고 연기하는 모습과 그 주름마저 아름다운 메릴 스트립이나 아네트 베닝처럼 늙어가고 싶다.

여성동아 2014년 12월 6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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