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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다 그러므로 행동한다

“2년전 갑상샘암 선고, 어려운 이웃 돌아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죠”

글·김유림 기자|사진·김도균, 한국SOS어린이마을 제공

입력 2014.12.16 16:00:00

평소 봉사와 벽을 쌓고 지내던 사람도 연말이 되면 한 번쯤 나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올해로 10년째 아동구호단체 한국SOS어린이마을과 굿네이버스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탤런트 변정수는 1년 내내, 온 가족이 똘똘 뭉쳐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선머슴처럼 씩씩하고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찬 그이기에 봉사활동도 평범치 않다.
나는 엄마다 그러므로 행동한다
연예인의 봉사활동 참여가 갈수록 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취지를 넘어 좀 더 보람된 인생을 살고자 자발적으로 봉사에 동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탤런트 변정수(40)도 연예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동하는’ 봉사자다. 올해로 10년째 굿네이버스와 국제아동구호단체 한국SOS어린이마을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그는 단순한 홍보 모델에 그치지 않고 씩씩하게 팔을 걷어붙인 채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그가 주체가 돼 버려진 신생아들과 영유아를 위한 SOS어린이마을 바자회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양천구 신월3동에 자리한 한국SOS어린이마을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정 형태의 양육 환경을 제공하고, 지역 사회의 가정 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가족들을 지원하는 민간사회복지기구로, 전 세계 1백3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월 중순 드라마 ‘전설의 마녀’ 녹화가 진행 중인 경기도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만난 변정수는 녹화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위 동료들에게 한국SOS어린이마을 후원을 독려하느라 바빴다. 마침 변정수 팬클럽에서 배우 및 스태프를 위한 밥차를 준비했는데, 식사를 하러 모인 이들에게 한국SOS어린이마을 후원을 위해 만든 다이어리를 나눠준 것. 다이어리 커버는 현재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전공 중인 그의 큰 딸 유채원(18) 양의 작품으로, ‘The arc of life’란 제목의 그림은 버려진 아이들에게 희망의 달을 주고 싶다는 유양의 마음이 담겨 있다. 또한 다이어리 판매 수익금은 유기된 ‘SOS Baby’들을 위해 기부된다고 한다. 이날 중견 탤런트 정혜선은 식사를 마친 뒤 좋은 곳에 쓰라며 다이어리 값 명목으로 변정수에게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가족 화합을 위해 아이들과 필드를 걸으며 골프를 즐긴다고 하는데, 저희는 운동 대신 함께 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특별할 건 없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 아이들과 함께 한국SOS어린이마을에 찾아가요. 농담 삼아 밥 먹으러 간다고도 하죠(웃음). 원장님이 해주시는 밥이 정말 맛있거든요. 갓난아기에게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는 등 그날 하루만큼은 그 아이에게 오롯이 엄마가 돼주려고 해요. 아홉 살인 둘째 딸 정원이도 이제는 능숙하게 아기들을 잘 돌봐요. 집에서는 잘 하지도 않는 청소며 걸레질도 알아서 하고요(웃음). 처음 방문했을 때는 아이들이 ‘연예인이다’ 하고 신기해했는데, 이제는 ‘정수 이모’ 하고 동네 아줌마처럼 대해줘요.”

운동 대신 선택한 가족 봉사



그가 처음 봉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다. 뭔가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해마다 관심을 갖고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어느 순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몇 년 전부터는 ‘더 이상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테이블을 펼치고 숟가락을 놓아보자’는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후원의 밤’ 형식의 조촐한 파티를 여는데, 그때 저희 가족도 무대에 올라요. 어린 정원이를 앞세워 우스꽝스러운 동물 모양의 옷을 입고 율동도 하고, 큰아이는 50명 정도 되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연극, 기타 연주 등 다양한 무대를 마련하죠. 아이들도 이제는 나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굳이 봉사의 의미를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들이 직접 몸으로 행동하면서 왜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더라고요.”

지난 9월 말 연 바자회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신생아와 영유아들이 사랑의 가정 안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안정된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 베이비박스는 유기된 신생아가 길거리에 방치돼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응급센터인데, 2011년 입양특례법이 실시되면서 출생신고에 부담을 느낀 미혼모들이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버리고 가는 사례가 대폭 늘었다. 실제로 한국SOS어린이마을에도 지난해부터 탯줄도 미처 떨어지지 않은 영유아들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해도 12명 중 10명이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이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베이비박스의 폐해에 화가 단단히 난 변정수는 어떻게든 아이들이 편하게 머물 공간을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부 보조금을 제외하고 부족한 1억원을 모으기 위해 바자회를 열었다. 드라마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지인까지 동원해 40여 개 업체를 바자회에 참여시켰고, 대기실을 누비며 선후배 연기자들에게 바자회 물건을 팔았다. 변정수의 열정에 감동한 전인화는 가방을 6개나 주문했고, 변정수와 20년 지기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는 1천만원을 쾌척했다. 딸 채원이는 다이어리 수익금 외에도 현재 출연 중인 jtbc ‘유자식 상팔자’ 출연료를 전액 기부했다. 바자회 당일 마이크를 손에서 떼지 않고 하루 종일 사회를 보며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변정수는 결국 당초 목표 금액을 뛰어넘는 1억4천만원을 모았다. 이 돈은 아이들 새집 증축 및 인테리어 비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나는 엄마다 그러므로 행동한다

1 아홉 살인 둘째 딸 정원이도 지극정성으로 갓난아기를 돌보는 등 자연스레 봉사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다. 2 한국SOS어린이마을 ‘후원의 밤’ 행사 무대에 올라 아이들과 함께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변정수. 3 온 가족이 함께 나눔을 실천하기에 더욱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은 한국SOS어린이마을 홍보대사 위촉 기념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남편 유용운 씨.



나는 엄마다 그러므로 행동한다
“12명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불러요(웃음). 사실 한국SOS어린이마을이 우리나라에 생긴 지 올해로 23년이나 됐지만 많이 알려지지 못했어요.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보육원과 달리 ‘엄마’를 중심으로 가정을 이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엄마들이 절실히 필요해요. ‘Let’s be a mommy’란 캠페인도 벌이고 있는데, 한 아이에게 20명의 봉사자가 엄마가 돼주자는 거예요. 한 달 후원비가 2만원인데 20명이면 40만원이잖아요. 그 정도면 아이들 분유·기저귀 값에 병원비도 어느 정도 해결되거든요. 20명의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아이를 돌보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 백일잔치, 돌잔치도 다 해주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커서 어릴 적 자신들의 생일 사진을 보고 ‘비록 친부모 밑에서 자라지는 못했지만 나도 귀하게 자랐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좋겠어요.”

암 수술 미루고 결연 맺은 아이들 만나러 간 ‘열혈 맘’

변정수는 해외아동구호에도 열심이다. 굿네이버스와 함께 ‘맘센터’를 짓기 시작한 지 올해로 5년째. 2010년 1억원을 기부하며 ‘엄마의 마음으로 지구촌 빈곤 아동을 보듬겠다’는 의미로 ‘맘(Mom) 프로젝트’를 출범한 변정수는 네팔에 맘센터 1호, 필리핀에 2호, 에티오피아에 3호를 건립했다. 조만간 캄보디아에 4호와 5호가 들어설 예정이다. 맘센터는 저개발국 빈곤 아동들에게 보건, 육아, 의료, 교육 등을 지원하는 시설로, 엄마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직업교육센터와 도서관 등의 아이 돌봄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 변정수는 앞으로 맘센터 100호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매년 결연 맺은 아이들을 직접 보러 가는데, 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 멀리에서 맨발로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뭉클해요. 처음 맘센터를 짓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2009년 만난 네팔에 사는 ‘뿌자’ 때문이에요.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였는데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너무도 간절히 원했어요. 엄마가 담석증을 앓는 몸으로 인도에서 돈을 버느라 아이를 돌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뿌자는 저와 이틀밖에 같이 있지 않았는데도 제가 떠나려고 하니까 펑펑 울더라고요. 낯선 이방인을 보고 운다는 건 그만큼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이 아이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2012년 맘센터 1호 완공을 앞둔 시점에서 그는 갑상샘암을 선고받았다. 갑상샘암은 흔히 ‘로또 암’이라 불릴 정도로 완치율이 높지만 당사자인 그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변정수는 “당장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결연 맺고 있는 아이들은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술을 미루고 맘센터 1호를 보러 갔다”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오히려 그 일을 겪은 뒤 건강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 30명의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있는 ‘열혈 엄마’ 변정수는 연기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MBC ‘전설의 마녀’에서 사고뭉치 재벌가 맏딸 역을 맡아 한지혜를 괴롭히는 얄미운 시누이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최근 맡는 캐릭터마다 화려한 외모와 강렬한 연기로 화제를 낳고 있는 변정수는 “심심한 캐릭터는 재미없다. 악독한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사더라도 나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변정수는 두 딸과도 친구처럼 지내는 쿨한 엄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마냥 자유를 허락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무책임한 엄마예요. 아이가 올바른 사고방식을 지닌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분명 부모가 길잡이가 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이들은 간섭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직 판단력이 흐린 미성년자라면 엄마의 잔소리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제 큰아이의 경우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성 친구를 사귀는 건 얼마든지 ‘오케이’예요. 요즘 아이들은 무조건 말리면 안 되더라고요. 대신 남자친구를 사귀더라도 학생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고 공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하죠. 둘째는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막내라 그런지 마냥 귀여워요(웃음). 성격도 저랑 판박이예요. 정리 정돈 좋아하고, 자기 물건 챙기는 것도 잘해서 잔소리할 게 없어요. 다들 ‘변정수 미니미’라고 불러요. 하하.”

현재 그는 경기도 광주 오포읍에 자리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도심을 떠나 전원에서 살고 싶었던 그는 3년 전 직접 집을 지었다. 일터인 서울과 멀어졌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게 만족스러운 생활이라고 한다. 텃밭도 가꾸고 집 전체를 둘러싼 꽃과 나무 덕분에 그야말로 자연에 파묻혀 살고 있다고. 2년 전에는 넓은 정원에서 결혼 17주년 기념 리마인드 웨딩도 올렸다. 일반적인 리마인드 웨딩이 아니라 기부를 목적으로 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는데, 중견 탤런트 김수미가 주례를 서고, 송윤아·이보영이 신부 들러리로 함께 했으며, 이날 하객들로부터 받은 축하금은 전액 맘센터 3호 건립을 위해 기부했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변정수는 남편의 두 번째 프러포즈를 받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한번 건강을 잃어보니까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겠더라고요. 가족이 있었기에 힘든 시간도 잘 견딜 수 있었어요. 한편 내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어려운 환경의 이웃들도 돌아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죠. 봉사는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니에요. 내가 가진 것 중 일부를 이웃과 나눈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아요.”

여성동아 2014년 12월 6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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