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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정지훈인 이유

글·김명희 기자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에이스토리 제공

입력 2014.10.15 11:27:00

10여 년간 무대와 방송, 스크린을 오가며 내공을 쌓은 정지훈.
그가 훈훈함과 사려 깊음이라는 또 다른 매력을 장착하고 드라마‘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컴백했다.
새삼 정지훈인 이유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CF 대사는 연인 사이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일거수일투족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스타를 향한 열렬한 팬심도 나이 들어 축축 늘어진 피부와 벗겨진 머리 앞에선 속절없이 사그라지게 마련. 반면,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스타가 세월과 함께 연륜과 내공을 쌓으며 성숙해가는 모습을 접하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기자에게 정지훈(32)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2002년 ‘나쁜 남자’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이래 몇 년 동안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온갖 가요 상을 휩쓸 당시, 그는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그만큼 그는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스타답지 않게 노련했으며 얄미울 정도로 성실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글로벌 스타가 됐다.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쌔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졌으며 중국 영화 ‘노수홍안’의 주연을 맡아 활동 무대를 대륙으로 넓혔고, 지난 8월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더 프린스’에서는 브루스 윌리스, 존 쿠삭 같은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누구와 어디서 작업을 했다는 사실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에 걸맞은 내공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로 드라마에 컴백한 그와의 인터뷰에선 그런 성숙함이 물씬 묻어났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연기와 발성 연습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되고 나서 3개월 정도 발음과 발성 연습을 했어요. 한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발음이 확실히 좋아지더라고요.”

2002년 시트콤 ‘오렌지’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이래 ‘상두야 학교 가자’ ‘풀하우스’ ‘이 죽일 놈의 사랑’ ‘도망자 Plan.B’에 이르기까지 정지훈은 발음이나 연기력으로 논란이 된 적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가나다라…’를 한 음절씩 끊어서 말하며 발성과 발음을 다잡고, 연극 배우로부터 연기 과외 지도를 받는다.



“‘닌자 어쌔신’에서 액션 연기를 하면서 기본기가 튼튼하면 어떤 동작이든 빨리 배우고, 화면에도 멋있게 나온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당시 칼과 창은 물론이고 태권도, 합기도, 쿵푸까지 다양한 무술을 배웠죠. 연기는 공부해서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럼에도 기본기가 튼튼하고 대사 전달력이 좋으면 어떤 배역에도 잘 녹아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삼 정지훈인 이유

데뷔 10년을 훌쩍 넘긴 정지훈은 무리한 욕심을 내기보다 꾸준히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새삼 정지훈인 이유
‘닥터 챔프’ ‘여인의 향기’의 박형기 PD와 노지설 작가가 다시 호흡을 맞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사랑했던 연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절망에 빠져 살아가는 남자가 그녀의 동생을 만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정지훈은 군 제대 후 첫 드라마 복귀작으로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30대 초반에 마지막으로 동화같이 착한 드라마를 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갈등 구조가 심각하지 않은 점이 좋았어요. 요즘 수위가 높은 드라마들이 많은데 그런 건 피하고 가족들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요즘 어느 가정을 들여다봐도 식구들 간에 대화가 많지 않잖아요. 저만 해도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다녀올게요’ ‘다녀왔습니다’ ‘식사하셨어요?’ 세 마디 외에는 별로 대화가 없어요. 드라마를 보는 시간만이라도 편하게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극 중 정지훈이 맡은 이현욱은 국내 최고 연예 기획사 대표의 아들이자 가요계의 미다스 손이라고 불리는 인물로, 죽은 연인의 동생 세나(크리스탈)가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면 이들과 대립 관계에 있는 음악 프로듀서 서재영(김진우)은 히트곡에 대한 욕심으로 표절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갈등 구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화려한 가요계의 이면이 드러난다. 정지훈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깨면 좋겠다. 대중은 연예인들이 편하고 돈도 많이 버는데 뭐가 힘들까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갈등하고 힘들어 하는지가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고 말했다.

“방송계 뒷이야기를 리얼하게 다룬 작품으로 ‘온에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우리 드라마는 가요계의 ‘온에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이 무대 뒤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계신지, 저도 깜짝 놀랄 정도예요. 요즘 연예인을 지망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연예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얼마나 화려하게 사는가가 아니라 ‘저렇게 힘들구나’ ‘저만큼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느낄 수 있거든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피니트의 엘은 정지훈이 운영하는 기획사의 대표 아티스트로 등장한다. 두 사람의 쫄깃한 긴장 관계를 현실과 오버랩시켜보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

“아시다시피 아티스트와 소속사 대표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 않아요. 그런 것들도 대본에 재미있게 표현돼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과거 소속사 대표였던) 진영이 형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하하하.”

“저보다 후배들이 돋보이면 좋겠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촬영장에서 막내였던 그는 어느덧 고참 배우가 됐다. 이번 드라마도 부모 세대를 제외하고는 그가 가장 맏형이다. 그만큼 책임감이 뒤따른다. 드라마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어려운 질문엔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었고, 후배들의 대답이 부족하다 싶으면 살짝살짝 보충 대답을 해가며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끌어갔다. 가수 출신 배우 선배로서, 드라마에 함께 캐스팅된 크리스탈, 엘 등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을 당부하기도 했다.

“제가 12년 전 처음 드라마에 출연할 때도 많은 분들이 우려를 했어요. 우려와 기대는 한 끗 차이지만 그것이 배우들이 성장하는 데는 큰 영향을 미쳐요. 시청자들의 우려보다 기대가 크다면 배우는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 거고, 그 힘이 동력이 돼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칼날 같은 시선으로 보지 마시고, 나날이 (연기력이) 늘어가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이제는 저보다 후배들이 돋보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지만 그 친구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하죠. 촬영장에서 후배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가수 출신 연기자라고 주눅 들 이유는 없지만 겸손할 필요는 있다’고요. ‘시청자들이 혹평을 하면 받아들이라’는 말도 해요. 그 친구들이 드라마 끝날 때쯤 많이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뿌듯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할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애정은 선배들로부터 후배들에게로 대물림되는 것이다. 2008년 ‘스피드 레이서’ 촬영 당시, 그는 한국에서는 톱스타였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동양에서 온 신인 배우에 불과했다. 그런데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수전 서랜던은 아침에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먼저 웃으며 “레인, 오늘 좋아 보이네?” 하는 식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연기와 인생에 관한 조언도 틈틈이 해주었다. 그녀의 이런 소탈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면서 정지훈은 배우로서의 자세를 배웠고, 그 역시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극 중 아버지 역으로 등장하는 박영규는 이런 정지훈을 보며 “어린 친구가 참 성숙하다. 지훈이를 보면 어린 나이에 고생한 흔적이 묻어난다.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과 철학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데, 지훈이는 해냈다. 세월이 가도 변치 않을 엔터테이너가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정지훈 역시 자신은 굴곡이 많았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은 욕심을 많이 내려놓게 됐다고 고백했다. 정지훈은 2007년 월드 투어 공연 취소 책임을 놓고 공연 기획사와 소송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그간 각종 소송과 구설에 자주 휘말리며 마음고생을 했다.

“저처럼 업앤드다운이 많은 연예인이 있을까요. 이제 저는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길 원하지 않아요. 튀지 않고 무난하게, 지금 이 정도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가끔 기대하지 않았는데 잘하는 게 있으면 따뜻한 칭찬 정도는 받고 싶어요.”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김태희

새삼 정지훈인 이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김태희를 따라 가톨릭 세례를 받은 정지훈. 주변에선 조심스레 두 사람의 결혼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야심만만했던 정지훈이 이토록 부드러운 남자로 변한 배경에는 사랑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배우 김태희와 3년째 교제 중이다. 두 사람은 2011년 한 소셜 커머스 업체 CF를 찍으며 처음 만났고, 정지훈이 열정적으로 구애를 한 끝에 2012년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지난 7월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김태희를 따라, 정지훈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 순교성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당시 성당에는 김태희의 부모와 배우 안성기 등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인을 따라 세례를 받을 때는 결혼을 앞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양측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독실한 믿음 없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천주교 세례를 받는 데는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필요한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두 사람의 사이가 그만큼 각별함을 알 수 있다. 양가 부모의 허락 하에 만나는 만큼 두 사람이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김태희는 40부작 중국 사극 ‘서성 왕희지’를 촬영 중이다. ‘천국의 계단’으로 중국에 이름을 알린 그는 이 드라마에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예가로 꼽히는 왕희지의 아내 씨루이 역을 맡았다. 정지훈 역시 가수와 연기자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도 한국 드라마 사상 최고가인 32억원에 중국에 판매됐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은 최강 한류 커플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정지훈은 멋진 외모의 엔터테이너를 보는 것도 흐뭇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연륜에 걸맞게 성숙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여성동아 2014년 10월 6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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