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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작가 홍승우 만화와 과학을 비비다

글·김지은 자유기고가|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14.10.15 10:46:00

어린 시절 만화책을 보면서 과학자를 꿈꿨던 아이는 자라서 아이들에게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가가 됐다. 어렵고 딱딱한 과학 이야기를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로 풀어주는 어린이 과학동아 ‘생생’ 시리즈의 작가 홍승우,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비빔툰’ 작가 홍승우 만화와 과학을 비비다
만화가 홍승우(46). 아이들에겐 ‘다운이 가족의 생생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어른들에겐 그보단 ‘비빔툰’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다. 1997년부터 14년 동안 한겨레에서 가족 만화 ‘비빔툰’을 연재하며 대한민국 대표 가족 만화 작가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그는 요즘 어린이 만화에 심취해 있다. 어른들을 울고 웃게 만들던 그 따스한 감성이 아이들에겐 개구쟁이 동생 같고, 멋진 아빠 같고, 다정한 엄마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어린이 과학동아’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 잡지를 창간한다며 연재 만화 작업을 제의했을 때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좋아요! 할게요!” 하며 승낙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어린이 과학 만화가 ‘다운이 가족의 생생탐사’였다. 그 뒤로 ‘녹색전사 에코’ ‘수학영웅 피코’ ‘SOS 애니몽’까지 그의 만화 인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린이 과학동아’와 함께였다. 요즘은 ‘다운이 가족의 생생 양자역학’을 연재하고 있다.

어린이 과학 만화, 어렵지 않아요!

“왜요?”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던 어린이 과학동아 편집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양자역학 만화를 제안했을 때 그가 던진 첫마디다. 어른인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양자역학을 아이들에게 왜 가르쳐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사실은 한참이나 연재를 해온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어려운 양자역학의 원리를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은 그가 연재를 마치는 그날까지 계속될 판이다.



“힉스 입자가 얼마 전에 발견됐다고 해요.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정말 어마어마한 사건이죠. 편집부에서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줄 때가 되지 않았냐, 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어요.”

힉스 입자란 1954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존재를 예언한 입자로, 지난해에야 그 존재가 입증됐다. 힉스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물질의 기본을 이루는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매개체로 추정되는 입자로,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밝히는 현대 입자물리학 이론의 열쇠가 될 것이란 기대 때문에 과학계는 물론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갈릴레오나 뉴턴의 이론도 과거에는 얼마나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나 싶더라고요. 16~17세기엔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가 나온다는 것조차 황당무계한 생각이었잖아요. 무엇이든 처음엔 이해시키기도,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쉬워지고, 당연해지고 그러지 않을까요? 컴퓨터도 그 원리나 이론은 잘 모르지만 지금은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건 쉽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무언가 어마어마한 과학적 지식을 숨겨놓고 있을 것만 같은 그의 입에서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귀가 쫑긋 세워질 만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술술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방면으로 박학다식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가 아이처럼 깔깔대며 웃었다.

“에이, 제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저 혼자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겠어요. 이론적인 부분은 도움 말씀을 주시는 분들이 다 따로 계시죠. 편집부에서 보내주는 자료의 양도 엄청나고요. 그분들과 이야기 흐름이나 방향에 대한 회의도 하고 막히는 부분은 물어도 보고 그러면서 꾸준히 배우는 거죠.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하고 작업량이 어마어마해서 제가 모든 과학적 지식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가 학습 만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수학영웅 피코’를 그리면서였다고 한다. 스스로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수학이 알고 보면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 학문인지 만화를 그리면서야 알게 됐다.

‘비빔툰’ 작가 홍승우 만화와 과학을 비비다
“사실 숫자에 참 약해요. 지금도 셈이 잘되는 편은 아니거든요. 아마 예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걸요. 그런데 거기에는 우리나라 제도 교육의 문제점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수학교육이 수학의 개념을 1시간 정도 가르치고 나서 나머지 시간은 계산하고 문제 푸는 데만 집중하는 방식이라면 외국은 계산이 아니라 개념을 잡는 데 더 치중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왜’라는 질문이 계속 나오고 흥미가 생기고 재미있어지는 거죠. 저도 어린 시절 수학을 계산하는 학문으로만 생각해서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러다 ‘수학영웅 피코’를 그리면서 수학의 원리를 깨치고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됐죠.”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15년 전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때도, 요즘처럼 생물학과 수학·역학을 넘나들며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를 파고들 때도 그가 그리는 만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다.

그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 만화 연재를 시작했고, 그 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자연히 가족이 생기고 아이가 자라고,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아웅다웅하는 그의 시시콜콜한 가족사는 신문지면을 통해 꼬박꼬박 세상에 알려져왔다. 그러다 2011년, ‘비빔툰’ 연재를 그만두면서 그가 가족을 자꾸 만화 소재거리로 바라보는 자신을 돌아보며 힘들어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통 소식을 알 수 없는 그의 가족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기저귀 차고 코 찔찔 흘리던 만화 속 귀여운 아기들은 얼마나 컸을까.

“큰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작은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지금은 아이들 엄마랑 캐나다에 있고요.”

“기러기 아빠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친다. 그나마 몸이 한곳에 매여 있어야 하는 직업은 아니다 보니 작업을 하며 자주 캐나다와 한국을 오갈 수 있어 기러기보단 독수리에 가깝단다. 왜 아이들이 유학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가 대안 학교를 고집해 일반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저와 몇 년간 그 문제로 충돌했어요. 저희 부부는 다른 부분은 다 찰떡궁합인데 아이들 교육 문제에선 가치관이 조금 달랐거든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진 대안 학교를 다니더라도 중학교 때부턴 일반 학교를 다녔으면 했는데 막상 입학을 시켜보니 큰아이가 버거워하더라고요. 고심 끝에 다시 대안 학교를 보냈는데 그 전까지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던 아이가 밝게 변하니까 아내 뜻을 따르길 잘했다 싶더라고요. 물론, 이건 저희 집 아이들의 경우지 모든 아이가 같은 건 아닙니다. 아이들마다 특성이 다르니까요. 중요한 건 내가 아닌 아이들 생각이란 걸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닫게 됐다고 할까요.”

다행히 그는 ‘비빔툰’ 연재 시절보다 현재 더 신나고 재미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학습 만화를 그리면서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깨친 건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제 만화의 독자들인 아이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단 얘길 꼭 하고 싶어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이들로부터 손으로 비뚤배뚤 쓴 팬레터를 받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의 작업실 한쪽 벽에는 로봇찌빠를 비롯한 어린 시절 추억의 만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그에게 과학자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그 만화들이다. 물론 꿈을 모두 이룬 것은 아니지만 그 만화들 덕분에 그는 아이들에게 과학을 꿈꾸게 하는 만화가가 됐다.

아이들 얘길 하다 보니 문득 생각난 듯 독자들에게, 그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꼭 놀러오란 얘길 전해달란다. 5년 전 문을 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박물관은 어린 시절 추억의 만화부터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만화까지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풍부한 문화 전시 공간이다. 이번 주말엔 그의 말대로 아이들 손잡고 부천으로 추억의 만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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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작가 홍승우 만화와 과학을 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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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2014년 10월 6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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