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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특집기획 | 세계의 여성 리더

섬세한 여성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메르켈 총리까지

글·김명희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제공

입력 2014.09.16 10:35:00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여성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독일의 메르켈 총리,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등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 리더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들 우먼 파워의 바탕에는 배려와 공감, 신뢰와 혁신이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다.
섬세한 여성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민주주의가 발원한 고대 그리스에서도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근대로 와 프랑스 혁명에 참여했다가 혁명으로 쟁취한 평등의 혜택이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지 않자 로베스 피에르와 맞서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성 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1748~1793)는 죽기 전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사당에 오를 권리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 후로도 여성은 1백 년이나 더 정치의 암흑에서 지내야 했다. 여성에게 처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였으며, 구즈의 나라 프랑스는 1944년이 돼서야 그 대열에 합류했다.

여성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것은 1백 년이 채 안 되지만 지금 세계는 여성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먼 파워가 강하다.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 등 국가수반은 물론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미국의 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자넷 옐런 의장, 세계보건기구(WHO)의 마거릿 챈 사무총장 등도 여성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미국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외에도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 의원, 커스틴 길리브랜드 상원 의원 등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여성이 5명이 넘는다. 여성은 약하고 의존적이라는 편견을 깨고, 섬세하면서도 강력하게 세계를 이끄는 여성 리더십을 분석했다.

원칙과 신뢰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

섬세한 여성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지난해 영국 국빈 방문 때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한 박근혜 대통령.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지난 5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하면서 박근혜(62) 대통령을 11위에 올렸다. 이 잡지는 박 대통령을 ‘경제 회복과 국민 행복 시대 구현을 국정 과제로 걸고 국내총생산(GDP) 1조6천억 달러의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철학은 원칙과 신뢰로 대표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오랫동안 청와대에서 생활하며 쌓은 정치 감각과 애티튜드도 정치인으로서의 강점이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필하며 느낀 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로서의 애티튜드,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과정 같은 것들을 지켜보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대통령의 세련됨과 우아함은 같은 여자가 봐도 놀라울 정도예요. 아침에 수석비서관 회의를 하실 때 보면 모든 사안을 꿰뚫고 있으며 고심한 흔적이 느껴져요. 또 사람들을 만날 땐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하세요. 한번은 아프리카 8개국 대사를 만나는데, 미리 드린 자료에도 없는 내용을 꼼꼼하게 준비해 오셨더라고요. 어느 나라가 영어를 쓰고, 어느 나라가 불어를 쓰는지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인사말을 하시고, 우리나라 기업이 가서 우물을 파주고 있는 나라에는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하시더군요. 그분의 진지함과 국가에 헌신하는 자세를 보면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은 리더십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두 외신의 관점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지는 4월 23일 ‘세월호 침몰, 한국의 무절제를 드러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일은 국가와 국가 경제의 운영에 대한 광범위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캠페인에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대통령직을 맡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포브스’는 4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비극에 대해 사죄하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당일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격앙된 어조로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빠른 구조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책임과 헌신, 도덕적 용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하며 ‘르몽드’와는 다른 시각을 보여줬다.

세련된 경제 대통령 크리스틴 라가르드

섬세한 여성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그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괜찮게 여기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58)는 201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IMF 총재에 선출됐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IMF 총재는 세계 금융 시장 안정을 감독하고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임기는 5년. 라가르드의 총재 발탁은 여성들에게는 유난히 좁은 문이었던 금융 분야의 유리 천장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라가르드는 프랑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파리 10대학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고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법률 회사 베이커앤드맥킨지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 여성 최초로 이사와 회장 자리에 올랐다. 2005년부터 여성 최초 프랑스 산업통상부장관, 농업부장관, 재무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재무부장관 재임 시절, 여성이며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위기 속에서도 프랑스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2009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로부터 ‘올해 유럽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채식주의자에 술을 전혀 하지 않으며 10대 때 배운 스쿠버다이빙과 수영 실력은 수준급. 요가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 이혼했으며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은빛 머리카락에 샤넬 의상과 구두, 에르메스 백을 즐겨 드는 덕분에 스타일 면에서도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다.

지난 7월 그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리더십 조언 중 최고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힘든 시기마다 아버지가 해줬다며 ‘나쁜 놈들 때문에 기죽지 마라’는 말을 소개했다. 라가르드의 부친은 그가 어렸을 때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그 일을 겪으며 책임감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겨야 한다. 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과 싸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얼마 전에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IMF 직원들에게 강연하면서 ‘체중 감량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라’고 말했습니다. 전 그가 옳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용모 및 정체성과 화해하는 것이 첫 걸음이며, 다음 걸음은 정직이고, 진실을 말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럽의 엄마’ 앙겔라 메르켈

앙겔라 메르켈(60) 독일 총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무려 11회(2014년 1위)나 이름을 올린 그는 2005년 독일 총리로 선출됐으며 2013년 3선에 성공, 2017년까지 임기를 수행한다. ‘엄마 같은 리더십’으로 ‘무터(어머니)’라는 애칭을 얻은 메르켈은 진지하고 합리적이며 무엇보다 민생을 챙기는 행정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늘 7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이어가며 ‘유럽의 엔진이자 지갑’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독일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그리스 재정 위기로 유럽 전체가 흔들릴 때 유럽연합의 연대를 강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엔 허리끈을 졸라맬 것을 주문했다. 이들 유럽연합 국가들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메르켈의 리더십은 더욱 주목받게 됐다.

메르켈 총리를 25년간 지켜본 언론인 슈테판 코르넬리우스는 그의 저서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메르켈의 리더십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메르켈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주류보다는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여성이며, 동독 출신에, 이공계(물리학자)를 전공했고, 이혼녀(심지어 메르켈은 전남편의 성이다). 코르넬리우스는 메르켈이 어릴 때 겪은 발달장애로 치밀한 준비성을 가질 수 있었고,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을 지켜보며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으며, 자연과학을 공부한 덕분에 우연의 힘에 의존하기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토론과 타협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메르켈 총리의 성향은 그가 즐겨 쓰는 ‘점진적’이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문제를 해결할 때, 양측의 의견을 조율할 때 그는 성급히 앞서나가기보다 끈기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나간다.

그는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 가장 슬프고 기쁜 현장에 함께하는 리더이기도 하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군인들을 위해 위로 방문을 하고 그릴 파티를 열기도 했으며, 2010년 독일군들이 전투에서 사망했을 땐 휴가 일정을 줄여 장례식에 참석했다. 메르켈은 아직도 그 유가족과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그는 비극적 상황에 대비, 출장 중 항상 검은색 정장을 갖고 다닌다. 겸손 또한 메르켈의 미덕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너무 많은 성공을 거두고 나면 어떤 두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많은 행운이 다가오고 좋은 시절을 누릴 때면 그 후에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르넬리우스는 메르켈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분석했다. 오페라와 축구 경기 관람, 알프스 하이킹을 즐기며 박학다식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하지만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은 극도로 꺼리고 친밀도에 따라서 대화의 수위를 정확히 조율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는 신중하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남성보다 여성 정치인의 외모에 대해 더 혹독하다. 그 역시 정치 초년병 시절에는 동독에서 온 여자라는 꼬리표, 촌스러운 옷과 헤어스타일 탓에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외모를 꾸미지 않고도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했으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외모나 이미지 또한 정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기 시작했다.

섬세한 여성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1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끈기를 갖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다. 2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왼쪽)과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반독재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남미에 민주적 리더십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남미의 강철 여인’ 미첼 바첼레트&지우마 호세프

지난 3월 칠레 대통령에 두 번째 취임한 미첼 바첼레트(63)의 삶은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무신론자인 데다가 두 번의 이혼 전력이 있는 그가 독실한 가톨릭 국가의 대통령에 두 번이나 당선될 수 있었던 건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 그리고 신념 덕분이다. 그의 아버지는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반역죄로 몰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의대생이던 그 역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좌파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당해 고초를 겪었으며 호주와 동독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9년 피노체트 정권이 정치범들에 대한 사면을 실시하자 그때 다시 귀국, 고문당하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아이들을 돕는 단체에 몸담았다.

칠레에 민주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보건부장관, 국방부장관 등을 거쳐 2006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2010년 칠레 대지진 때 현장을 직접 누비며 이재민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등 따뜻한 리더십을 보여줘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또한 재임 기간 침체됐던 칠레 경제를 연간 5% 이상 성장시켰고, 국부 펀드를 조성해 위기에 대비했다. 퇴임식이 열린 산티아고의 대통령 궁 발코니에서 작별을 고하는 그에게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대통령 고마웠어요. 2014년에 다시 만나요” 하며 환호를 보냈다. 칠레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연임은 안 되지만 중임은 가능하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유엔 여성기구 총재를 거쳐 2014년 국민들의 염원대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우마 호세프(67) 브라질 대통령은 반독재 운동, 두 번의 이혼 경력 등에서 여러모로 바첼레트 대통령과 겹친다. 불가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64~1985년 군사 독재 기간 중 게릴라 운동을 하다가 3년간 투옥되고 고문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반정부 투쟁 경력 때문에 ‘남미의 잔 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1980년대 초 정치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01년 노동당에 입당해 2003년 에너지장관, 2005년에는 수석장관을 역임했다. 브라질은 모계 중심 사회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성우월주의가 강하다. 호세프는 2010년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부모들이 이제 딸들의 눈을 보며 ‘그래, 이제 여자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집권 직후 강력한 추진력으로 부정 혐의가 있는 장관들을 과감하게 경질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인은 선거에 입후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부패 척결에 앞장섰다. ‘빈곤 없는 부국 건설’을 슬로건으로 우유와 설탕 등 생필품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등의 정책으로 특히 브라질 북부와 아마존 등 가난한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10월 재선을 앞두고 여론 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참고자료·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책담), 열정과 헌신(현문)

여성동아 2014년 9월 6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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