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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의원이 꿈꾸는 세상

“기적처럼 승리했으니, 모두가 ‘승자’ 되는 기적도 만들어야죠”

글·김지영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4.09.16 10:03:00

2011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나경원 의원이 처음으로 경험한 인생의 쓴맛이었다.
그간 장애인 권익을 위해 앞장서며 가정으로 돌아가 아내이자 엄마로 지내던 그가 정치에 재도전한 이유, 좌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들려줬다.
나경원 의원이 꿈꾸는 세상
영원한 승자는 없다. 영원한 패자도 없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낙선하며 정계를 떠났던 나경원(51) 새누리당 의원이 2년 9개월 만에 국회로 돌아왔다. 7·30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동작을 지역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나 의원은 노회찬 정의당 후보와 접전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2004년 17대, 2008년 18대에 이어 세 번째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당선 후 2주가 채 되지 않은 8월 12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 의원은 전과 다른 분위기였다. 딱 떨어지는 정장 대신 캐주얼한 의상에 단화를 착용하고,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머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부러 염색을 안 하느냐고 묻자 나 의원은 “원래 헤나로 염색하는데 선거가 끝나고도 계속 바빠서 염색할 시간이 없었다”며 웃었다. 인터뷰는 자연스레 선거 이야기로 흘렀다.

노회찬 후보와의 득표율 차는 1.2%에 불과했지만 그보다 한 달여 전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선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17% 가까이 뒤진 지역에서의 승리라 의미가 컸다. 더구나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처음 실패를 경험하고 치른 선거였기에 정치인으로서 재기의 가능성을 점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한마디로 답했다.

“이긴 게 기적이죠.”

정치권 밖에서 세상을 보다 깊이 들여다봐



▼ 정치인으로서 처음 실패를 경험한 후 느낀 게 많을 것 같아요.

“정확히 33개월의 공백이 제게는 굉장히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거리를 두고 정치권을 바라볼 수 있었고,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권익 향상과 지위 개선 등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었거든요. 사실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이름이 거창해서 공공 기관이라도 되는 줄 아는데 실은 비정부기구(NGO)예요. 어떻게 보면 완전한 ‘을’의 위치에서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 경험을 살려 국민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정치권 밖에서 세상을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던가요.

“정치권에 들어간 지 10년 만에 낙선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그사이 저도 모르게 세상과 소통하는 길에서 멀어졌더군요. 작은아이가 유치원생이고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정치를 시작해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에 엄마로서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줄 일이 있었어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론 제가 된장찌개를 끓여본 적이 없는 거예요. 집에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니까 정치 활동하면서는 아무것도 안 했더라고요. 그게 몹시 미안했어요. 아이들이 엄마 손맛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 된장찌개를 열심히 끓여줬더니 처음에는 맛있다고 먹던 작은아이가 나중엔 맛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돼지고기김치찌개. 엄마이자 아내로서 자신에게 준 점수는 50점이다. 하지만 지난 33개월간 남편,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애쓴 점을 감안하면 점수를 그보다 더 줘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정치권 밖에 있으니까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선지 이번 선거에서는 남편의 조언이 예전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었죠. 남편이 나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됐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대화의 양이나 시간보다 서로 깊이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슨 조언을 해줬는지 묻자 나 의원은 “그냥”이라고 얼버무리며 허허 웃었다. 전보다 한결 넉넉해 보이는 웃음이다.

▼ 선거운동을 다니다 건강이 상하진 않았나요.

“여름 선거라서 날이 얼마나 더운지, 게다가 갱년기 증상까지 있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선거 후 아직도 제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선거 때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홍삼을 많이 먹었고, 탕 목욕을 좋아해서 새벽 6시에 사우나 갔다 오고 그랬어요. 오래 걸어서 다리에 뭉쳐 있던 근육이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풀어지더라고요. 저희 동네는 배드민턴 클럽 같은 체육 시설이 다 산꼭대기에 있어서 거기 갔다 오는 게 운동이 됐어요. 땀을 안 흘리고 악수만 하고 다니면 몸이 경직되는데 땀을 흘리니까 선거운동이 진짜 운동이 됐죠. 하하하.”

▼ 피부가 ‘갱년기 여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운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수 있나요.”

▼ 2011년 논란이 됐던 ‘1억 피부과’ 원장을 그 당시 취재차 만났는데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더군요. 그 일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어떤 심경이었나요.

“그런 데 다닐 만큼 여유가 없어요. 제 손톱을 보세요. 요즘 여자들은 웬만하면 네일 케어를 하는데 저는 바빠서 그런 것도 못해요. 지금도 손톱깎이로 손톱 깎는 게 대부분이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네일 숍에 가요. 그때(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도 격무에 시달려 어깨가 자꾸 뭉치고 머리가 딱딱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입이 비뚤어진 거예요. 어깨 뒤쪽이 자꾸 뭉치는 증상도 점점 심해졌고요. 그래서 뭉친 근육을 정기적으로 풀어줘야 하고 비타민 주사도 맞아야 하는데 그런 걸 한 번에 다 해준다고 해서 (그 피부과에) 갔던 건데….

사실 살림하는 여자가 그렇게 큰돈을 피부에 쓴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저는 팩 같은 것을 사서 자주 붙여요. 명품도 잘 몰라요. 제가 지금 변호사를 하고 있다면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형편도 안 되고, 외모를 악착같이 꾸미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래도 제가 하면 예쁘다고들 하시던데요(웃음). 그런 말을 들으면 ‘사람이 명품이라 그렇다’고 하죠.”

▼ 명품 옷을 전혀 안 입나요.

“상의는 좋은 거 입으면 하의는 싼 거 입는 식으로 섞어 입어요. 길거리에서도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고 그래요. 이번에 선거운동 할 때도 보세집에 마음에 드는 옷이 걸려 있기에 비서에게 사오라고 시켰어요. 제가 옷을 보는 눈썰미는 좀 있어요. 근데 요새는 그 감각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것도 자꾸 해봐야 느는데 10년 정치하면서 완전히 없어졌다가 최근에 쉬면서 좀 생겼어요. 하지만 정치를 다시 시작했으니 또 없어질지 모르죠.”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가족

나경원 의원이 꿈꾸는 세상

나경원 의원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며 장애인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담긴 ‘블루캠페인 10가지 약속’을 많은 사람이 실천하기를 고대했다.

선거 과정에서 그를 도운 이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그는 다른 지역구에서 출마하는 섭섭함을 뒤로하고 동작구까지 원정 응원하러 왔던 서울 중구 주민들(그는 당초 중구를 지역구로 20대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과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 가족들을 먼저 떠올렸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제가 출마하는 걸 반기지 않았어요. 또 떨어지면 상처받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러더니 막상 출마한 뒤에는 마음으로 응원해주더군요. 선거 기간에 가장 미안했던 게 가족이에요. 새벽에 나와 밤 12시가 넘어 들어가니까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거든요.”

다운증후군으로 발달 장애를 겪은 나 의원의 큰딸 유나 양은 성신여대 실용음악과에서 드럼을 전공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1년 앞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들이 일하는 엄마에게 불만이 없는지 묻자 나 의원은 “내가 바빠서 속상한 얘기를 들어주지 못할 때는 언짢아하지만 둘 다 일하는 엄마를 많이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 큰딸 유나 양을 교육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힘든 입시를 치렀나요.

“특별한 게 없어요. 장애인 특례 입학인걸요. 원래 유나가 대학 두 군데에 합격했는데 저는 장애인이 많이 가는 학교에 보내려고 했고 유나는 일반 대학에 가고 싶어했어요. 결국 유나의 뜻을 존중해줬는데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 어떻게 드럼을 배우게 됐나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드럼을 배우라고 권했어요. 유나가 특기로 삼을 만한 걸 생각하다가 활달한 성격이라서 클래식보다는 팝이 더 맞겠다는 생각을 했고, 발산할 수 있는 걸 해보자 해서 드럼을 선택한 거죠. 드럼이 배우기 어려운 악기인데 요새 드럼 치는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나 의원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파일을 뒤적이더니 유나 양이 학교 축제에서 드럼 연주를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줬다. 흰 티셔츠를 입고 가요 ‘마법의 성’에 맞춰 드럼을 신나게 치는 유나 양은 해맑은 표정에 단발의 웨이브 머리가 잘 어울리는 숙녀였다.

나 의원은 딸이 태어난 뒤로 하나하나가 다 넘어야 할 산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유나 양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 의원은 그런 딸에게 “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늘 곁에서 보살피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에 엄하게 대하지 않고 적당히 봐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한다.

“사실 예전에는 유나가 같이 학습 도우미실(장애인 학급의 별칭)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발달 정도가 좋았는데 요새는 다른 엄마들이 열심히 해줘서 그런지 우리 딸 발전 속도가 더뎌서 미안할 때가 많아요. 친구들과의 관계는 늘 가장 큰 스트레스인 것 같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 게 많으니까 스트레스가 더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려워서 선생님께도 우리 아이의 특징이나 성향을 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게 말씀드렸죠.”

▼ 어릴 때부터 일반 학교에 다녔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에 친구 관계에 더 어려움을 느낀 건 아닌가요.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서 잘 지냈지만 남들은 모르는 부분이 있거든요. 유나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도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는데 아이들이 자꾸 실내화를 갈아 신겨준다는 거예요. 실내화를 갈아 신겨주고는 ‘유나야, 안녕’하고 돌아서서 막 뛰어가는 거죠. 근데 유나가 바라는 건 실내화를 갈아 신겨주는 게 아니라 교문 앞까지 함께 걸어가는 거거든요. 바로 그런 게 우리가 장애인을 대할 때 놓치는 부분이에요. 그런 갭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구멍을 채워주는 게 엄마인 제가 할 일이죠.”

“우리 모두 승자가 되는 세상 꿈꾼다”

나경원 의원이 꿈꾸는 세상
지난해 스페셜올림픽을 개최할 때도 그는 “장애인에 관한 건 ‘리스닝(listening)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시각이 아닌 장애인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의 특성이 뭔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음은 이런 이들을 위한 나 의원의 조언이다.

“장애인은 상대의 작은 언행을 남보다 더 과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개개인마다 특성이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시켜서 이래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죠. 아이들이 장애인 친구를 도와주고 그 친구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많이 겪어봐야 해요. 그러니까 장애인을 무조건 보호해주고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할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해요.”

▼ 요즘 신체는 멀쩡해 보여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군에서의 불미스러운 사건들, 끊이지 않는 성범죄, 세월호 사건도 결국 그런 문제와 맞닿아 있고요. 해법은 없을까요.

“요새 우리 사회에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법이나 제도도 당연히 바뀌어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빠른 성장을 하면서 소홀히 했던 정신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문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페셜올림픽의 슬로건이 ‘투게더 위 캔(Together We Can)’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의미죠.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나만 잘하면 돼. 나만 이기면 돼’라는 생각을 넘어 ‘함께 이기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해요. 함께해야 한다는 문화 운동이 있지 않고는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고 제도를 개선해도 아무 소용없어요.”

▼ 정계에 발을 들인 걸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왜 없겠어요. 세상 사람이 다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갖듯이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도 하겠죠. 지난 33개월 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고는 하지만 점점 힘에 부치더라고요. 그러다 정치권에 있을 때 제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가 가장 쉬웠다는 걸 새삼 깨달아 다시 정치권에 들어온 거예요.”

▼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가요.

“‘나’만 승자가 되지 말고 ‘우리’가 승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여당이고 야당이고 자기만 이기려고 하니까 잘 안되는 거거든요. 여야가 함께 승자가 된다면 국민이 승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판사 출신 정치인이자 학원재단 이사장의 딸이라는 화려한 배경, 연예인에 견줄 만한 미모까지 나 의원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가진 게 많은 여성’으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사실 많은 혜택을 받았죠. 그래서 그만큼 더 많이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동아 2014년 9월 6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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