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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Wave 이끄는 무서운 한국 디자이너 5

글·박주희

입력 2014.09.04 09:57:00

패션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한국에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혹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컬렉션을 발표하는 창의적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다는 것.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매장들과 직접 연결돼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잘 팔리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기도 한다. 독창성이 경쟁력인 패션 세계에서 시장 분석과 트렌드 읽어내기에 능한 우리나라의 디자인 풍토가 독으로 작용한다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의 해석에 한 표 던진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닌 디자이너에게 시장을 의식하는 상업적 감각까지 있다면 대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피가 판치는 국가라는 오명의 역사가 있었기에, 럭셔리 브랜드가 서양 패션을 주도할 때 기업의 기획 인력이 중심이 된 내셔널 브랜드가 패션 시장을 이끈 한국만의 역사가 있었기에, 한국 디자이너에게는 실험적인 작품을 매력적인 상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유전자가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패션위크에서 대한민국의 패션 파워를 확대해가고 있는 다섯 명의 젊은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이들의 행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1 KYE by 계한희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런던에서 교육받은 계한희는 서구의 스트리트 취향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국내외 팝스타를 비롯한 젊은 소비자들을 매료하고 있다.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남성복을 전공하고 한국에 정착한 계한희는 한국 정부의 패션 진흥 프로젝트인 ‘컨셉코리아’에 선정되어 뉴욕패션위크에 데뷔했다. 그는 전쟁, 인종, 학교폭력, 왕따, 청년실업 등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서 주제를 찾지만 이를 장난처럼 과장되고 화려하게 해석한다. 그런데 이 재미를 유지하는 계한희의 컬렉션에서 서양인들은 한국적 DNA를 읽어낸다. 바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를 대중문화에 담아내는 정의롭고 따뜻한 심성. 따라서 시끄러운 컬렉션의 외형에도 결코 과하거나 위험의 느낌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을 아우르며 기성 세대에 불만을 표현하는 스트리트 문화지만 KYE에는 1960~70년대 서구에서 일었던 하위 문화의 일탈과 같은 과도함이 없으며, 거칠고 저급하기보다는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테일, 마무리로 상업적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따뜻한 심성은 최근의 컬렉션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젊은이들의 아픈 상처를 키치한 ‘반창고’로 치유하거나, 반목하는 서로 다른 것들을 거친 ‘사슬’로 연결하는 기지가 명쾌하다. 키치하지만 결코 저속하지 않고, 스트리트를 지향하지만 하이엔드에 서 있는, 진정 유쾌하고 신비로운 한류 디자이너 계한희에 주목하라.

Korean Wave 이끄는 무서운 한국 디자이너 5
2 EUDON CHOI by 최유돈

타임옴므, 보티첼리맨 등 내셔널 브랜드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경험을 쌓은 최유돈은 영국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여성복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디자인 정체성을 발견했다. 재학 중 프로젝트의 작품이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판매되는 등 두각을 드러냈고, 졸업 후에는 유학생으로서 쉽지 않은 ‘All Saints’‘Twenty8twelve’의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기회를 얻었다. 2010 봄/여름 컬렉션으로 자신의 레이블을 론칭한 최유돈은 짧은 기간 동안 가파른 성장을 했고 삼성패션디자인펀드에 3년 연속 선정되면서 한국 독립 디자이너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무엇보다 최유돈 자신을 고무시킨 성과는 미국 스타일닷컴에 정기적으로 컬렉션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이 글로벌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는 기준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에디터들이 특히 좋아하는 디자이너 최유돈에게는 ‘요란하지 않은 방법으로 여성을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디자인이 독특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 예측된다’ 등 애정이 흠뻑 담긴 평가가 따라다닌다. 컬렉션마다 주제를 가지고 독창성 넘치는 옷을 만들지만 동시에 상업적 감각으로 적정선을 넘지 않는 한국 디자이너의 DNA가 최유돈을 통해 주목받고 있다. 언젠가 유럽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도 있는 기세다.



Korean Wave 이끄는 무서운 한국 디자이너 5


3 J. JS LEE by 이정선

2014 가을/겨울을 위한 런던패션위크의 오프닝을 장식한 J. JS LEE의 디자이너 이정선. 그는 국내 내셔널 브랜드에서 옷의 구성을 연구하고 옷본을 만드는 모델리스트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신입사원 시절 이정선은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선배가 만든 옷본을 반복해서 그려보며 옷의 원리를 터득하는 ‘악바리’로 유명했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석사과정을 밟던 시절에도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보여줄 때 스케치 대신 일일이 옷을 만들고 그 과정을 사진으로 찍는 등 다른 디자이너보다 몇 배의 노력을 했다. 이성적 원리로 옷에 접근하는 이정선만의 디자인 방법은 옷의 내부에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는 그만의 시그니처를 이루게 했다. 이정선만의 지극히 지성적인 테일러링은 ‘은근한 럭셔리’로 표현되는 한국적 감수성을 자아내며 서양인의 관심을 끌었다. 런던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정선은 삼성패션디자인펀드에 선정되었고, 영국패션협회의 지원을 받으며 자랑스런 한국인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있다.

Korean Wave 이끄는 무서운 한국 디자이너 5
4 Juun. J by 정욱준

국내의 쉬퐁, 클럽모나코와 닉스에서 오랜 기간 남성복을 디자인했고, 서울패션위크에서 자신의 첫 브랜드인 론 커스텀을 론칭하며 저력을 확인한 정욱준은 패션 선진국에서 유학하지 않았지만, 하이엔드 레이블인 Juun. J로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론 커스텀 시절부터 증폭된 ‘정욱준 신드롬’은 ‘준지 키즈’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남성의 패션 수준을 한 단계 올렸고 남자 디자이너 수를 대폭 키웠으며, 새로 론칭하는 독립 브랜드에서 남성복 비중을 높였다. 정욱준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클래식 아이템의 재해석이나 부피감 연구에서도 극단적인 패턴과 조형을 늘 시도하지만, 정교한 테일러링과 정확한 비례를 추구해 상품성을 놓치지 않는다. 정통 트렌치코트를 점프슈트로, 케이프 코트로, 슬리브리스 롱 베스트로 변형, 풍자하고 정통 신사복과 정통 옥스퍼드 셔츠를 1940년대의 주트 슈트와 1920년대 통바지로 재해석하는 등 역사와 문화에 해박하다. 정욱준은 한국 디자인의 가장 큰 경쟁력인 ‘요란한 침묵’, 즉 시끌벅적함 속에 은근히 스며 있는 섬세함과 정신성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다.

Korean Wave 이끄는 무서운 한국 디자이너 5
5 D.GNAK by 강동준

이태원, 명동의 패션 거리가 오락실보다 더 좋았던 꼬마, 의류 공장에서 팔자뜨기와 심지 붙이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미팅보다 더 즐거웠던 대학생, 파슨스 졸업 후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D.GNAK의 강동준이 남성 패션의 중심 도시 밀라노에서 글로벌 디자이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014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의 피날레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아예 밀라노패션위크로 무대를 옮기고 본격적인 글로벌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 전통 남성복의 여유 있는 실루엣과 서양의 섬세한 테일러링이 잘 조화된 D.GNAK의 강동준은 데뷔 이후 꾸준히 서울패션위크에 컬렉션을 올렸지만, 새로운 패션 인재 발굴에 열심인 런던, 밀라노의 바이어, 언론인, 에이전트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글로벌 무대에서 강동준은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의 접점에 위치한 대중적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품질이나 구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혁신적 시도로 보다 넓은 남성복 시장에 도전하는 강동준에게서 지금 주목받는 한국 디자이너의 유전자가 엿보인다.

Korean Wave 이끄는 무서운 한국 디자이너 5
●박주희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책, ‘Fashion Korea’(가제)의 글로벌 출판 작업을 시작으로 한국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동아 2014년 9월 6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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