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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박사의 Good Time

일도 사랑도 다시 시작

글·김유림 기자|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14.08.19 10:40:00

스타 성형외과 전문의 홍성호 박사가 최근 오랜 소원을 풀었다.
서울 강남 병원을 접고 지난 5월 경기도 용인에 아틀리에 개념의 아담한 병원을 새로 연 것.
그뿐 아니라 홍 박사는 배우 이미숙과 이혼 후 6년 만인 지난해 새로 가정을 꾸려 18개월 된 아들까지 뒀다.
일과 가정 모두 새로운 출발점에 놓인 그를 만났다.
홍성호 박사의 Good Time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기흥IC에 가까워지면 오른쪽으로 갤러리풍의 하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초원 위의 하얀 집’인 이곳은 성형외과 전문의 홍성호 박사가 새로 문 연 ‘홍성호 성형외과’. 그걸 보니 2007년 이미숙과 이혼 뒤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전부터 꿈꿔온 병원 신축을 실천에 옮기며 이혼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중”이라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수익성만 따진다면 성형의 메카인 강남을 떠날 이유가 없겠으나, 홍성호 박사는 오래전부터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에서 환자들을 대하고 싶었다고 한다. 개업한 지 두 달 된 새 병원에서 만난 홍 박사는 기자를 보자마자 집들이 손님을 맞이하듯 병원 구석구석을 구경시켜줬다. 병원을 “이 집이~”라고 칭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새 공간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구상은 오래전부터 해왔고 설계만 2년, 공사는 1년 걸렸어요. 중간에 시행착오도 있었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허물고 다시 짓기도 하면서 애를 먹었지만 저만의 개인 작업실이 완성돼 뿌듯해요. 사실 이번 이전은 환자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커요. 병원이 집 같을 수는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 환자들을 모시고 싶었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커지는 생각이, 환자의 기쁨이 곧 저의 기쁨이라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또 수술 후 환자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저 역시 기분 좋고 뿌듯하거든요. 치열하고 성공 지향적인 삶은 그동안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여유롭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꽃·나무 사이에서 진료 보며 일상 속 여유 찾아

전체 벽면을 흰색으로 칠한 이유는 해가 떠 있는 위치에 따라 건물의 색깔이 바뀌는 묘미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홍 박사는 이번 건축을 위해 여러 인테리어 관련 책자를 보고 스크랩도 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정원에는 초록 잔디와 야생화, 홍 박사가 수집한 도자기 등이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요즘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정원을 살피는 거예요(웃음). 화단 꾸미는 재미가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정문 앞에 백일홍을 세 포기 심어놨는데, 4월에 처음 심을 때만 해도 앙상한 가지만 있더니 두 달 지나니까 잎이 풍성해지고 빨간 꽃도 피었어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뒤뜰에는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들이 제멋대로 피어 있고, 요 녀석들 보는 재미에 출근이 기다려지기까지 하죠. 하하.”



진료는 철저히 예약제로만 하고 있다. 일대일 원스톱 서비스를 강조하는 홍 박사는 상담부터 치료, 수술, 사후 관리까지 환자와 관련된 모든 것에 직접 관여한다. 상담 코디네이터 등 모든 분야가 분업화돼 있는 요즘 성형외과 트렌드와 달리 그는 환자 한명 한명에게 의사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말한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자상한 말투로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진료하는 덕분에 한번 그를 찾아온 환자는 다른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저한테 수술받은 환자가 딸이나 엄마, 혹은 친구들을 모시고 올 때 보람을 많이 느껴요. 단지 환자가 더 늘어서가 아니라 환자분 스스로 그만큼 만족스런 결과를 얻으셨다는 얘기니까요. 거리상으로 꽤 멀어졌는데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또 먼 곳까지 와주신 만큼 더욱 정성껏 진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예인 성형의 일인자로 불리는 홍성호 박사는 그동안 많은 연예인들의 외모를 책임져왔다. 그의 손을 거쳐 연예계에 데뷔하거나 톱스타 대열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은데, 특히 가슴 성형에 있어 명성이 높다.

“가슴 수술은 4~5월에 가장 많이 받아요. 여름에 자신감 있게 노출할 수 있으니까요. 흔히 성형외과 의사를 ‘칼을 든 정신과 의사’라고 하는데, 환자에게 자신감을 안겨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성형 트렌드의 가장 큰 변화는 연령대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홍 박사는 “요즘 중·노년층을 보면 인생을 즐기려는 분들이 많다. 특히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경우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젊음을 되찾아 남은 인생을 마음껏 즐기다 가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그 역시 몇 년 전부터 동안 유지를 위한 주름 개선 시술에 주력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자식들이 돈을 모아 눈썹 거상술을 해주는 걸 보고 의사인 그도 감동했다고 한다.

“처음엔 이 나이에 무슨 쌍꺼풀 수술이냐며 난색을 표하던 분이 막상 시술 후에는 눈이 시원해서 날아갈 거 같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나이가 들어 눈이 처지면 눈꺼풀이 짓무르고 시야도 가리게 되는데, 눈썹 거상을 해주면 보는 범위도 넓어지고 눈을 치켜뜨느라 생기는 이마 주름도 안 생기거든요. 무엇보다 자식들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예쁘더군요.”

홍성호 박사의 Good Time


매달 모여 회포 푸는 의가 3형제

1978년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홍성호 박사는 5년간 대학교수로 일하다 1983년 서울 명동에 처음 병원을 연 이후 지금껏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해로 40년 가까이 외길을 걷고 있지만 정작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홍 박사는 고려대 의대 진학 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2년 동안 다니다 의사인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결국 의술가의 삶을 택했다. 덕분에 맏형인 홍명호 내과 의사, 동생 홍지호 치과 의사까지 3형제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어려서부터 음악, 미술 등 예술 부분에 관심이 많았지만 ‘너는 꼭 의사가 돼야 한다’는 아버지 명을 어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의사 면허증만 보여드리고 다시 영화 쪽으로 돌아서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그나마 성형외과를 택한 건 후회 없어요.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점에서는 어떤 예술과 비교해도 덜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일을 하면서 나름의 심미안을 키울 수 있었고, 지금까지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시니 감사한 일이죠. 한때는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 아버지예요. 어릴 때 아버지는 새벽에도 환자에게 전화가 오면 왕진 가방을 들고 나가셨어요. 그럴 때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많이 따라다녔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큰 교육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환자들에게 절대로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으셨어요. 허리를 굽혀 신발도 신겨드리고 손도 잡아드리면서 의술이 아닌 인술을 펼치시려 했죠. 요즘도 날마다 아버지 초상화 앞에서 문안 인사를 드리고 출근해요.”

홍 박사네 3형제는 매달 셋째 주 수요일마다 가족 모임을 갖는다. 막내인 홍지호 박사는 탤런트 이윤성의 남편으로도 유명한데, 그와 나이 차가 무려 14세나 나지만 모두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만큼 3형제가 모였다 하면 얘기가 끝날 줄을 모른다고 한다. 홍 박사는 “외과, 내과, 치과 등으로 분야도 다양하다 보니 서로 주고받는 정보들이 많다. 학술지에 실린 최근 논문 내용부터 소소한 집안일까지, 대화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나이가 들수록 형제가 최고인 것 같다”며 웃었다.

병원 이전과 함께 6월 기흥으로 생활 터전도 옮겨온 홍 박사는 지난해 큰 변화를 맞았다. 이혼 6년 만에 새 가정을 꾸린 것. 상대는 평범한 여성으로 지난해 1월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이 내용을 홍 박사에게 확인하자 그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재혼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난 결혼 생활 중 여러 차례 구설에 휘말렸을 뿐 아니라 이혼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기에 개인사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평온함과 여유는 숨길 수 없었다. 그 역시 가정을 꾸린 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음을 인정했다. 아내는 그가 이혼 후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곁에서 많은 위로가 돼준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들한테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해요(웃음). 마음이 밝아지니까 얼굴도 환해지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개인사로 바람 잘 날이 없었고, 심적으로도 요동쳤던 게 사실이에요. 이제야 안정감을 찾은 기분이에요.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 역시 제가 선택한 인생이고 아름다웠으니까요. 다만 요즘 들어 깨닫는 게,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하다는 거예요.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를 보면서 자식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도 새삼 느껴요. 솔직히 예전에는 돈으로 자식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 큰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다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럼에도 아이들이 잘 커줬고, 이제는 누구보다 아빠를 이해한다고 하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죠. 막내가 태어났을 때는 아이들이 축하한다며 동생 선물도 보내왔어요.”

새 가정, 18개월 된 아들과 누리는 행복

홍성호 박사의 Good Time
초등학생 때 이미숙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아들과 딸은 둘 다 디자인을 전공해 현재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아들은 얼마 전 의류 브랜드를 론칭해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딸은 뉴욕에 있는 마이클 코어스(MK) 본사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라고 한다.

“큰 아이들과는 수시로 연락하고 지내요. 아들은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제가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제 옷을 한 벌 만들어왔는데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웃음). 딸과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대신 모바일 메신저로 수시로 대화를 나눠요. 딸아이는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모양이에요. 어디에서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산다면 부모로서 더 바랄 게 없죠.”

원래도 동안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만난 홍 박사는 실제 나이에 비해 10년 이상 젊어 보였다. 비결이 뭔지 묻자 ‘스트레스 멀리하기’와 ‘충분한 수면’을 꼽았다. 그는 “타고난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덕분에 웬만한 일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 잠은 저녁 9시 뉴스를 보면서 졸기 시작해 아침 7시 반까지 잔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맨손 체조와 걷기 등의 운동을 하고, 간간이 골프도 치면서 40대 못지않은 신체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다. 피부 관련 시술 역시 동안 외모를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

“성형외과 의사가 관리를 안 할 수 없죠(웃음). 저 역시 보톡스나 필러 등 간간이 시술을 받습니다. 외출할 때 선크림 바르는 것도 잊지 않고요. 외모나 건강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요. 요즘은 중년 남성분들도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가져요. 남자 연예인 중에서도 6개월 정도 휴가 내서 대대적으로 얼굴을 손보겠다는 분들이 계세요(웃음).”

이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홍 박사는 요즘 집 주변 등 새길을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서울에서만 살다 처음으로 도심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면서 과거에는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하는 중이라고. 일과 가정에서 모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홍성호 박사.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맞고 싶다는 그에게서 새로운 삶의 활력이 느껴졌다.

여성동아 2014년 8월 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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