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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세상 어디까지 가 볼까

여행 동화 작가 데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4.08.18 11:25:00

처음 부모 품을 떠나 서머스쿨에 간 소녀.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모든 게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세상이 선사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그리고 20년 만에 그 기억을 꺼내들어 어린이를 위한 여행 동화책을 펴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이자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광고 마케팅으로 주목받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이야기다.
얘들아, 세상 어디까지 가 볼까
조현민(31)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한 건 2008년 그가 ‘미국, 어디까지 가 봤니’라는 대한항공 광고 시리즈를 기획한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이후로도 그는 2010년 뉴질랜드 광고 편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여성으로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스타리그 결승전을 여는 등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그의 주도로 만들어진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캠페인이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광고가 매출에 기여한 공로를 심사해 시상하는 국제 광고상인 에피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길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그가 이번에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 동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오키나와’(홍익출판사)를 펴냈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 자신의 모습과 닮아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을 쓴 조현민입니다”라며 허리를 반쯤 꺾어 꾸벅 인사를 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1남 2녀 중 막내딸,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및 여객마케팅부 전무, 진에어 본부장이라는 길고 많은 공식 직함과 배경이 아니더라도 모델 같은 몸매 덕분에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성싶다. 그러잖아도 요즘 부쩍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사인을 해달라는 이들도 있단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그 모든 것을 떠나 세상에 처음 책을 낸 신인 작가의 모습 그 자체였다. 고개를 드는데 반달 모양의 눈에 쑥스러운 웃음이 가득하다. 손에 들고 있는 책과 스커트, 그리고 얼굴 색깔이 모두 핑크다. 머릿속에 그렸던 정장 차림 커리어우먼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얘들아, 세상 어디까지 가 볼까
“저와 한 시간만 얘기해보시면 알 거예요. 친구들도 대놓고 허당이라고 놀려요. 아직도 소녀 취향이 있어서 헬로키티 같은 걸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책은 초등학교 5학년생인 지니라는 소녀가 항공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선발돼 일본 오키나와로 배낭여행을 떠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곳의 문화를 배우는 내용이다. 지니라는 이름은 ‘알라딘’에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램프에서 따왔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여행 책을 써보라는 제안은 몇 번 받았어요. 그런데 그건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올 초 오키나와에 갔다가 그곳에 반해서 ‘한국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몰랐던 일본을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속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그걸 꺼낼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일본과 아이들이었던 거죠. 아이들이 이걸 보고 정말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어요.”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소녀 지니는 조현민 전무와 많이 닮았다. 그의 언니인 조현아(40)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호텔사업부문 총괄부사장도 책을 받아보고는 카톡으로 ‘지니를 보니 딱 네 어린 시절 같아 웃음이 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조현민 전무가 부모와 떨어져 혼자 해외여행을 한 것도 지니처럼 초등학교 5학년 때가 처음이다.

“6주간 스위스 서머스쿨을 간 적이 있는데, 부모님은 데려다주기만 하고 바로 한국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낮에는 친구들과 실컷 재미있게 잘 놀다가 밤만 되면 부모님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가 전화해서 울면 부모님은 ‘그냥 올래?’ 하고 물어보시곤 했는데, 그건 또 싫더라고요. 아빠와 엄마 곁을 떠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처음으로 맛보는 자유가 달콤하기도 했거든요.”

우리는 여행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고 모험을 하고 다시 돌아와 살아간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의 세상은 그 전의 세상보다 훨씬 넓고 크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고 커진 덕분이다.

“서머스쿨에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룸메이트는 일본 출신으로 스위스에 사는 친구였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 엄마가 유명한 배우인 프랑스에서 온 친구도 있었어요. 친구들과 쇼핑을 나갔다가 용돈이 모자랄 것 같은데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혼자 뭔가를 결정한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고, 그런 것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결과적으로는 저만의 시야를 키울 수 있었죠.”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조언 해주는 아버지

얘들아, 세상 어디까지 가 볼까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의 주인공은 조현민 전무의 어린 시절을 닮은, 핑크색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소녀다.

질문을 하면 “그렇죠!” “맞아요!” 라며 상대의 말을 긍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애티튜드가 인상적이다. “대필 작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쓴 게 맞느냐?”는 돌직구를 날렸더니 “다른 사람을 시켜 썼다면 이렇게 인터뷰 자리에 나올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기획안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는데 몇 군데 거절당한 끝에 지금의 홍익출판사에서 가능성을 봐 준 덕분에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덧붙인다. 그리고 아버지 조양호 회장에게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했다.

“2년 전 처음 책을 기획할 때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께 콘셉트를 말씀드리고는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2주 후에 아버지가 어떻게 돼가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죠.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전공을 선택할 때, 진로를 결정할 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셨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마케팅 사관학교라 불리는 큰 회사에서 제대로 배워보라고 말씀해주셨죠. 이번 책에서 지니가 아버지의 제안으로 공모전에 응모하는데,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거예요.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는 박물관, 미술관 등에 저를 많이 데리고 다니며 미적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기억해보고 행복했던 순간, 끼고 살았던 책들,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요즘 아이들은 다를 것 같아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를 찾아보고, 투니버스나 재능TV 같은 어린이 채널을 틀어놓고 지냈다.

“제가 아이들을 얼마나 몰랐냐면, 큰조카가 6개월 됐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트랜스포머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했을 정도예요. 오빠도, 새언니도 정말 황당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번 책을 내면서는 작심하고 시장조사를 철저히 했어요. 아이들 책을 살펴보니 정보가 많이 들어가 있어 너무 딱딱하거나, 아니면 아예 만화가 많더라고요. 물론 만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만화만 읽는 건 편식하는 습관처럼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펴낸 책은 여행을 하면서 공부도 하는, 교양서와 만화책의 중간 단계 정도예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어요.”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지만,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글을 깨우친 이후로 뭔가 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니인 조현아 부사장이나 오빠 조원태(39) 대한항공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부사장은 늘 막내인 그를 불렀다. 조현민 전무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게 재미있었고, 읽는 건 더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신 카드는 물론이고, 뭔가 글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항상 제가 집안 대표로 했어요. 좀 더 자라서는 언제나 책을 들고 다녔고요. 한때는 온 가족이 미술을 배우기도 하고, 언니는 음악을 공부했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는 책이 더 좋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었을 정도예요. ‘해리포터’ 시리즈도 정말 좋아해서, 4권이 발매되던 날 밤을 꼬박 새워 읽는 바람에 다음날 시험을 망칠 정도였어요. 지니가 일본이 아니라 영국에 갔다면 마법사가 됐을지도 몰라요. 하하하. 애거서 크리스티도 정말 좋아하고요. 비행기를 탈 때도 킨들로 책을 많이 읽어요. 저는 영화보다 책이 더 좋더라고요. 제 상상력이 영화보다 훨씬 화려해요. ‘해리포터’ 시리즈가 영화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극장에 갔었는데, 막상 보고는 ‘애걔, 저것밖에 못 날아?’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혼여행지로 아껴둔 몰디브

완성된 책을 받아본 가족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뿌듯해했다고 한다. 특히 언니가 많이 축하해줬다고.

“언니와 저는 약간 성향이 달라요. 언니는 첫째라서 그런지 저보다 훨씬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우아해요. 다른 자매들은 싸우기도 한다는데 저는 언니와 싸운 적이 거의 없어요. 엄마 같아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언니가 절 잘 챙겨줬어요. 그래서 (언니가) 유학 갈 때 펑펑 울기도 했었죠. 이번 책을 받아보고 언니, 오빠가 모두 ‘다음에는 남자아이를 위한 여행 책도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둘 다 아들만 있거든요.”

이제 겨우 첫 권이 나왔을 뿐인데, 그의 머릿속은 벌써 후속 편 준비로 분주하다. 2권은 영국의 식민지 시대였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윌리엄스버그를 다룰 예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지니 캐릭터가 뽀로로처럼 다양하게 활용되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다.

“책은 우선 3권까지 구상을 해뒀는데요, 몇 권까지 쓸 수 있을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사랑해주느냐에 달려 있어요.”

집안의 사랑받는 막내딸이자, 화이트 테리어 머핀과 그가 낳은 블루베리 머핀을 비롯한 수많은 강아지들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인 그는 아직 결혼보다는 일에 욕심이 더 많아 보였다. 그래도 여행을 많이 다닌 만큼 신혼여행지로 꼽아둔 곳은 있을 것 같았다.

얘들아, 세상 어디까지 가 볼까
“몇 년 전에 부모님이 몰디브에 다녀오셔서 굉장히 아름답다며 제게도 꼭 한번 가보라고 하시는데, 신혼여행 때 가려고 아껴두고 있어요. 타히티도 가보고 싶고 체코 프라하에서 시작해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유럽 횡단 여행도 해보고 싶은데, 신혼여행에서 그렇게 강행군을 하면 많이 싸운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신혼여행은 당분간 이루기 어려운 꿈이고요, 친구와 서른다섯 살까지 싱글이면 그때 유럽과 아시아를 운항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러 가자고 약속했는데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여성동아 2014년 8월 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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