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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의 욕망

글·구희언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더바디샵 제공

입력 2014.05.16 10:43:00

현빈이 제대 후 첫 작품에서 ‘왕’이 됐다. 드라마 작가부터 영화감독까지 함께 작업한 사람들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그를 칭찬하는 이유는 뭘까.
현빈의 욕망
우리 사회에서 정조는 어떤 이미지일까.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걸 어린 나이에 목격했던 비극적 이야기, 반대파의 끊임없는 암살 위협 등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여러 작품의 소재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2007년에는 드라마 ‘한성별곡’ ‘이산’ ‘정조암살미스터리-8일’ 등 세 편의 드라마가 정조를 다뤘고, 올해도 정조를 다룬 영화 두 편(‘역린’ ‘의궤, 8일간의 축제’)이 개봉을 앞뒀다. 우리에겐 드라마 ‘이산’의 이서진으로 뇌리에 박힌 정조의 이미지를 현빈(32)이 영화 ‘역린’을 통해 바꿔놓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현빈을 공식 석상에서 만났다. 영화 ‘역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그는 입대 전보다 더 마른 모습이었다. 가뜩이나 갸름했던 얼굴은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표정에서는 한결 여유가 묻어났다. ‘역린’은 그의 제대 후 복귀작이다. 제목의 뜻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 즉, 왕이 노여워하는 약점 또는 노여움’을 의미한다. 영화는 정조 재위 초인 1777년 발생한 정조 살해 음모 사건인 정유역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현빈이 살해 위협을 받는 고뇌하는 왕 정조를, 조정석이 살인 기계로 길러진 냉혹한 살수 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정재영, 한지민, 조재현, 김성령, 박성웅 등이 출연해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 바라기로 나왔던 한지민은 영화 ‘역린’에서는 정조를 없애지 못해 안달 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역으로 나온다.

“입대 전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게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였는데, 실질적으로 촬영이 가장 늦게 끝난 건 드라마 ‘시크릿가든’이었어요. 그 때가 2010년 9월 말이었는데, 제대하고 보니 2013년 9월 말에 제가 ‘역린’ 촬영장에 있더라고요. 그동안 군 생활하며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3년 만의 촬영이었는데, 그리웠던 공간에 다시 와 있다 보니 기대와 긴장이 공존했던 것 같아요.”

그는 “너무 욕심나 있던 상황이고, 바라온 상황이라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잘해야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있던 상황이라 그걸 지나치게 표출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걱정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첫 촬영이 큰 비중 있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워밍업하는 느낌으로 임할 수 있었죠.”



연기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현빈의 욕망

화장품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더바디샵의 모델이 된 현빈. 광화문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도 특유의 꽃미소를 보여줬다

그는 “정조라는 인물이 드라마, 영화에 많이 나온 걸 알고 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정조 자체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라 많은 작품에서 소개가 됐잖아요. 제가 (기존에 정조를 연기한 배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가 정조의 24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껏 나온 작품 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는 정조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반드시 살아야 하고, 그 와중에 정권을 확고하게 지켜야 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지켜야 하는 모습들이 여태까지 그려진 정조와 다른 점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영화 ‘역린’에서는 현빈의 ‘화난 등 근육’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 원래도 몸이 나쁘지 않은 배우지만,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서 특별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왕이라면 그렇게 발달된 등 근육을 갖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나리오에 딱 한 줄이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정조. 세밀한 등 근육. 완벽하다.’ 그 ‘세밀한’이라는 3음절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촬영 석 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한 달 반은 식단을 조절하고, 촬영이 있는 날에도 운동을 계속했죠. 그렇게 했더니 어떻게 조금 화가 나 있었네요(웃음).”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이 독하게 맘먹고 주인공을 혹사시켰나 보다 싶었는데, 정작 이 감독은 “현빈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정조가 문무에 뛰어난 왕이라 그런 등을 보여준다면 이 사람이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알릴 수 있는 기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너무 노력해서 안쓰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딱 한 장면, 짧은 순간을 위해 현빈은 3개월을 아낌없이 투자한 것이다.

현빈과 인터뷰를 했거나, 촬영을 함께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드라마 ‘시크릿가든’ 종영을 앞두고 김은숙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1~4회 촬영분을 편집실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현빈은 내가 생각했던 김주원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역린’의 이재규 감독 역시 캐릭터 영상 인터뷰에서 “현빈이 표현한 표정, 내뱉는 말투가 내가 상상한 정조에 아주 가까웠다”고 말했다.

현빈의 욕망
캐릭터에 대한 현빈의 몰입도는 NG를 거의 내지 않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연기한 정재영은 “빈이는 폭포 같은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NG 한 번을 안 내더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에 현빈은 “잘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은근히 넘어가는 것”이라며 머쓱해했다.

2012년 말 전역 현장에서 현빈은 소감을 말하다 눈물을 흘려 그 이유에 궁금증이 쏠린 바 있다. 4월 방송된 KBS2 ‘연예가중계’에서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은 당시 흘린 눈물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대해서 기쁘다’는 의미의 눈물은 아니었어요. 절대 울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연기 이야기를 하면서 울컥했어요. 군 시절 연기를 못 하면서 감정이 눌려 있었나 봐요.”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휘말린 여느 연예 병사들과 달리 착실하게 해병대 생활을 마친 현빈. 이제는 더 이상 그를 가로막을 것이 없다. 그가 물 만난 고기처럼 스크린에서 마음껏 표출한 배우로서의 본능을 확인할 일만 남았다.

여성동아 2014년 5월 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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