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 스포츠의 천국, 홋카이도’라는 제목의 조각상.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형상화한 것이다.
삿포로 눈축제는 1950년 이 지역의 중고생들이 시내 중심부에 있는 오오도리(大通) 공원에 눈으로 만든 조각들을 전시한 것이 그 기원이다. 홋카이도는 눈이 워낙 많이 내려서 매년 제설 비용 때문에 골치를 앓아왔고, 오오도리 공원은 시민들이 집 앞의 눈을 가져다 버리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쌓인 눈을 이용해 학생들이 미술 교사의 지도 아래 눈 조각 작품을 만들었고, 이에 호응해 당시 국영철도회사가 삿포로 역사 앞에 작품들을 전시했다.
골치 아픈 눈을 조각으로 만든 발상의 전환
눈축제는 첫해에 5만 명이 넘는 구경꾼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룬 것을 계기로 점차 겨울 이벤트로 정착했다. 당시 댄스, 스키 가장행렬, 영화 상영회 등의 행사도 함께 열렸는데, 참가자와 구경꾼들이 미끄러져 부상을 당하는 일이 속출하자 도중에 중지되기도 했다. 축제는 해가 갈수록 규모와 내용 면에서 발전을 거듭했고,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1974년부터 친선을 목적으로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참가하면서 국제적인 이벤트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한, 1980년대 초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 눈 조각을 감상하는 새로운 변화를 가미하면서 이 축제의 인기가 더해지자 축제 기간도 초기 5일에서 일주일로 연장됐다.
그러나 국제적인 행사로 각광받는 이면에는 ‘바가지 요금’이라는 고민도 있다. 높아진 인기에 편승해 축제 기간이 임박하면 숙소 예약조차 어렵다. 홋카이도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일주일 전부터 삿포로 시내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좀처럼 빈 방이 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축제 개막 전날과 개막일로 일정을 잡고서야 어렵게 숙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올해 삿포로 눈축제는 2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렸다. 행사 전날 삿포로에 도착한 나는 중국, 대만, 홍콩, 호주에서 몰려온 외국인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과장하면 구경꾼의 절반이 외국인이었다. 숙소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지난해 이 눈축제를 구경한 사람들이 2백30만 명을 넘었고,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한화로 2천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10년째 홋카이도에 살고 있지만 삿포로 눈축제를 직접 구경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일반적으로 축제 기간 중에는 숙박 등의 문제로 구경할 엄두도 내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 연재라는 감회 덕분에 보통의 여행과는 다른 기분을 느끼며 삿포로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와 먼저 오오도리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오도리 행사장 쪽으로 물결처럼 잔잔히 흘러가고 있었다. 기온은 평소보다 낮은 편이고 바람은 거의 없었다. 때마침 내린 눈이 구경꾼들 볼과 어깨에 살포시 앉았지만 누구도 털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울에도 눈을 거의 볼 수 없는 지역이나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환상적인 광경일 것이다. 행사장에 가까워질수록 삼삼오오 무리 지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깃발 아래 개미떼처럼 이동하는 단체 여행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먹거리 매점’이 늘어서서 구경꾼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추운 날씨 덕분에 매점마다 초만원이었다. 눈 구경도 구경이지만 축제 때마다 설치되는 음식 매점은 각국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외국 팀은 빈대떡 같은 반죽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기를 되풀이하는 퍼포먼스로 구경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탄성을 끌어내기도 했다. 다양한 메뉴가 뒤섞여 자아내는 국적 불명의 음식 냄새가 축제의 또 다른 묘미였다.
시내는 이미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행사장을 구경하는 동안 굵어진 눈발 속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때 유달리 시야에 들어오는 불빛이 있었다. 마치 크리스털로 만든 궁전 같은 작품(작품명 ‘Heart Palace’) 앞에서 막 결혼한 듯한 젊은 남녀가 지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이 축제에 맞춰 결혼식을 올린 것 같다. 이들의 결혼을 축복이라도 하듯 이내 강렬한 빛줄기가 하늘을 찌를 듯 뻗어나가 ‘테레비타워’ 꼭대기를 비추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두 줄기 빛에 노출된 하얀 눈들이 자연스럽게 ‘다이아몬드 더스트’ 현상(얼음의 미세한 결정이 공중에 떠도는 현상)을 연상케 해 구경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많이 걸은 탓인지 출출해졌다. 개인적으로 삿포로 야경 감상을 위해 최고의 장소로 꼽는 테레비타워 3층의 레스토랑으로 찾아갔다. 오오도리 공원 내에 자리한 이 타워는 1950년대 후반 텔레비전 방송 전파를 발신하기 위해 세워져 내부에 영화관까지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주변에 높은 빌딩이 없어서 삿포로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축제를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모처럼 한국으로 유학을 갔던 제자들과 함께 불야성의 축제 행사장을 내려다보면서 마신 맥주 한 잔이 유난히 달콤한 저녁이었다.
2 눈축제 기간에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붐빈다. 3 인도의 관광도시 아그라에 있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를 재현한 작품 앞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 무용수들이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4 마치 크리스털로 만든 궁전 같은 작품 ‘Heart Palace’.
1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얼음과 조명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2 헬로키티 모양의 귀여운 조각상.
다음 날 아침은 눈발 하나 날리지 않는 쾌청한 하늘이 열렸다. 지난밤 흩날리는 눈발 속에 펼쳐졌던 환상적인 야경이 거짓말 같았다. 다시 한 번 작품들을 감상하러 걷기 시작했다. 축제 첫날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이동하고 있었다. 나도 밀리면 밀리는 대로 발길을 내맡겨보았다.
먼저 대만의 관광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현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작품의 정중앙에 70만 점에 가까운 미술품이 소장돼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새겨져 있는 작품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걸어다녀도 될 만큼 큰 대형 작품이었다. 이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을 표현한 작품을 감상했다. 1894년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벽돌 건물로 돔 형식의 이슬람 건축과 서구 양식을 결합한 무어 양식의 걸작이라고 한다.
다시 조금 발길을 옮기자 유난히 구경꾼들이 몰려 있는 곳이 나타났다. 공연이 열리나 싶어 앞쪽으로 가보니 인도의 관광도시 아그라에 있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라는 흰 대리석 건물을 재현한 작품이 서 있다. 무굴제국 4대 황비 누르자한이 부모를 위해 1620년대에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 눈 건축물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 때문이었다. 실제 이 작품 제작에 들어간 눈의 양이 5톤 트럭 4백50대 분량으로, 무게는 2250t에 이른단다. 마침 인도 전통무용단의 공연이 시작됐다.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 무용수들이 흐르는 음악에 맞추어 전통춤을 선보여, 인도를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인도 문화를 접할 소중한 기회였다. 이처럼 전시된 눈 조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국 음식과 전통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는 것이 이 축제의 장점이다.
이제 발걸음을 스스키노(すすきの) 거리로 옮겼다. 스스키노는 삿포로의 밤을 대표하는 번화가로, 음식점과 주점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의 참이슬 술병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포함해 거울같이 투명한 얼음 조각품들이 도로 중앙에 전시돼 있었다. 이 작품들처럼 투명한 미래를 꿈꾸며 삿포로 눈축제를 뒤로하는 나의 아쉬움을 알기나 하는지, 엄청난 구경꾼들이 방금 내가 떠난 자리를 채우며 몰려들고 있었다.
2년간의 연재를 마치며
도쿄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자연을 동경해 찾아온 홋카이도. 그렇게 나요로시의 닛싱(日進)이라는 무인역 곁에 둥우리를 튼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그동안 나는 교육 현장에서, 아내는 아담한 카페를 열어 때마침 불어온 한류 붐에 편승해 한국에 관심을 가진 일본 젊은이들과 주부들에게 한국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알리는 기회를 가져왔다. 이제 한류 붐은 드라마에서 음악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내가 재직하고 있는 나요로시립대학(名寄市立大學)의 동아리들 가운데 한국어 동아리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등록해 있을 만큼 우리 언어와 문화에 나 자신도 의아할 만큼 일본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소비형 상품이 아닌 의식에 오랫동안 잠재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라는 점에서 그 효과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한편 나는 ‘여성동아’의 지면을 통해 2년 남짓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진행되는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람을 소개해왔다. 우리 가족이 광활한 홋카이도 땅에서도 북쪽 지방 도시로 이주한 지 10년이 됐으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이곳의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때문이다. 연재 덕분에 꽤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사실은 큰 틀 안에서 돌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오히려 그런 미지의 보물을 캐내는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앞으로 이곳 생활에서 적지 않은 즐거움이 될 것 같다.
홋카이도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현지인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환경 혹은 아름다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외부인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선점한 뒤에야 그 가치를 깨닫는다. 그렇게 해서 자연이 보존되기도 하고 훼손되기도 하는 일이 현재도 이곳저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남은 숙제라면 이곳 사람들조차 깨닫지 못한 가치들을 찾아내 소개하는 것이랄까. 언젠가 그 기회가 또 다른 재회의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황경성 홋카이도 명예역장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와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 사업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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