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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조 교수, 행복을 부르는 힐링 풍수론

글·김명희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4.02.18 09:21:00

22년 전 학자에겐 최고의 명당인 서울대를 박차고 나온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
돌아보건대, 어쩌면 그 일은 그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람 따라 물 따라 떠도는 동안 그의 학문은 더욱 견고해졌으니 말이다.
‘내가 사는 곳은 과연 명당일까, 대박이 나려면 과연 어디에 살아야 할까’라는 우문을 안고 그를 만났다.
최창조 교수, 행복을 부르는 힐링 풍수론
최창조(64) 전 서울대 교수와 서울 신도림역 근처 한 횟집에서 마주 앉았다. 가격 대비 우럭회가 푸짐하게 나온다며 최 교수가 안내한 곳이다. 그런데 주인이 “교수님이 식사는 안 하고 술만 드셔서 걱정”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안주는 핑계고 알코올이 목적이었나 보다. 최 교수는 청하를 한 병 청하며 “그래도 독주는 안 하지 않습니까”라고 응수했다. 원래도 술을 좋아했지만 대학 강의를 그만둔 이후 시간은 많고 어디 꼭 가야 할 곳도 없어 술이 더 늘었다고 한다. 마음속에 술기운을 빌리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사직서 쓰고 서울대 그만둔 최초의 교수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1980년대 후반 그야말로 지리학계의 스타였다. 미신으로 치부되던 풍수를 풍수학이라는 학문으로 정립했고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덕분에 그는 1988년 전북대에서 서울대로 스카우트됐다. 그가 움직이면 땅값도 함께 들썩였고, 자연스레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았다. 1992년 갑작스레 서울대를 그만두자 그것 역시 화제가 됐다. 당시엔 그가 서구 지리학에 기울어진 연구 풍토에 한계를 느끼고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그랬을까 궁금했다. 세상엔 밖으로 드러난 이야기와 진실이 다른 경우가 생각보다 많으니까.

▼ 서울대를 사직하던 당시의 정황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풍수 전문가인 줄 뻔히 알고 (서울대로) 데리고 갔으면서 학문이다, 아니다 말이 많더군요. 각 과에서 다 건드리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었어요.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것까지 트집을 잡더군요. 교수 체면에 말이 되느냐고요. 전북대에서는 자전거 타고 다니는 교수가 많다고 했더니 ‘여기는 서울대’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강의를 하는 동안 제 나름대로 한 가지는 지켰습니다. 강단에 설 때는 꼭 넥타이를 맸죠.



▼ 그러니까 자의 반 타의 반 사직을 결심한 거군요.

사직 생각까지는 안 했는데, 동료 교수들 앞에서 발표 수업을 하라더군요. ‘다른 교수들도 다 같이 하는 거라면 하겠다’고 했더니 ‘우리가 왜 합니까’ 그러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사직서를 써서 가져갔더니 학장님, 총장님이 도장을 안 찍어주고 교무처 직원도 유학을 가거나 정부 요직에 임명돼 서울대를 나가는 경우는 있어도 제 손으로 사직서를 쓰고 나간 교수는 전례가 없다며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저 이후로는 공대 쪽에서 사업을 한다고 나온 분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재벌 회장들 산소 자리 관심 없어

서울대를 그만둘 때 제자 셋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의 가족에 제자들 가족까지, 딸린 식구가 많았지만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최고의 풍수학자라는 수식어를 간판 삼아 묏자리 잡기에 나섰더라면 쉽게 돈벌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풍수 공부를 시작한 이래 그는 조상 묘를 잘 써 복을 받겠다는 생각엔 회의적이었다. 최근까지도 전국의 지관들이 경기도 여주에 있는 그의 부친 산소에 찾아가 과연 최창조가 부모 묘를 어떻게 썼는지 연구했다. 하지만 그는 부친의 묘를 쓸 때 전혀 풍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여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파묘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수목장을 했다. 그 역시 사후엔 수목장을 할 생각이다. 풍수가 결국 사람과 자손을 포함한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것인데,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이들에게 이롭기에는 수목장만 한 게 없을 거란 생각에서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의외로 대기업이었다. 가장 먼저 연락을 해온 이는 고(故)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처음에 연락이 왔을 땐 여느 사람들처럼 산소 자리를 봐달라고 할 줄 알고 두어 번 거절했다. 그러자 손길승 그룹 전략기획실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이 찾아와 삼고초려를 했다.

▼ 고 최종현 회장도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가 봐요.

산소는 화장할 거라 필요 없고, 집터에도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럼 왜 불렀냐고 했더니 ‘기업하는 사람은 이익이 나지 않는 곳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이익이 나올 거라고 보냐?’고 물으니 ‘우리 것에도 좋은 것이 있다는 걸 연구하는 분들을 지원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매달 3백만원씩 지원을 해주셨죠. 그 덕분에 저를 따라 나온 제자들과 충북 보은의 민음사 박맹호 회장님 댁에서 1년 반쯤 살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죠.

▼ 한화 김승연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 있어요. 경기고 동문이기도 하고, 교수님 발 사이즈를 봐뒀다가 외국에서 돌아올 때 구두를 사왔다는 일화도 유명하던데.

친했어요. 가회동 댁에도 자주 갔어요. 회장님도 저희 집에 놀러 오고. 아들딸 결혼식 때 다 오고. 저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반된 스타일인데 그냥 마음이 끌렸어요. 그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에요. 그 양반을 만날 때마다 기억력과 조직력이 비상해서 놀라곤 했어요. 제가 술 취해서 횡설수설하면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서 ‘그게 이 뜻이지?’ 하고 되묻는데 아주 정확하더군요.

▼ 친구로서 김승연 회장은 어떤가요?

알려진 대로 굉장히 의리가 있지요. 7~8년 전쯤 하와이로 여름휴가를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제가 가족 동반으로 가면 좋겠다고 하고, 거기다 제 아들 녀석이 자기 친구도 데리고 가면 좋겠다는 청을 덧붙였는데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혹자는 돈이 많으니 뭔들 못하겠냐고 하겠지만 과연 돈이 많다고 그럴 수 있을까요. 그분 성격이 그렇습니다.

▼ 불미스러운 사건에 잇달아 연루됐는데 친구로서는 많이 안타깝겠어요.

둘째 아들 사건 같은 경우엔 ‘만약 내 아들이 그렇게 맞고 피투성이가 돼 돌아왔다면 나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창조 교수, 행복을 부르는 힐링 풍수론

서울 신도림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아들, 딸이 모두 잘 됐으니 그곳이 자신의 명당이라고 말한다.

▼ 한때 ‘최창조가 재벌의 지관이다’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직접 만난 대기업 회장들은 어떤 분들이던가요.

김승연 회장과 친한 건 맞고, 이건희 회장은 자주 뵀지만 친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두 집안 모두 자식 교육을 엄격하게 시키긴 하더군요. 사람들은 그런 집안에 태어나서 부럽다고 하는데 저는 안됐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김승연 회장은 아들만 셋인데 손님이 방문하면 명절이 아니라도 반드시 아들을 불러서 큰절을 시켰어요. 삼성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3남매도 굉장히 깍듯합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아들 결혼식 때 축의금을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고맙다는 뜻으로 마침 새로 나온 제 책을 보냈더니 답례로 술과 안주, 카드를 보내왔어요. 카드에는 꽤 긴 글이 써 있었는데 달필이 아닌 것을 보니 다른 사람을 시킨 것 같지 않더군요. 고마웠죠. 두 집안뿐만 아니라 차곡차곡 부를 쌓은 분들을 보면 자식 교육을 놀랄 정도로 엄격하게 하더군요.

▼ 재벌가의 자제들은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도 많을 테니, 아버지 세대보다는 풍수에 관심이 덜할 것 같습니다만.

대기업 회장들의 경우에도 산소 자리, 집터를 봐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나 공장부지 같은 것을 봐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결정하기 정말 어렵겠더군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안을 내니 다 좋을 수밖에요. 그래도 제 나름의 풍수적 기준을 말씀드렸죠.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그런 걸 이용해서 이득을 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그런 쪽으로 생각이 돌아가지도 않아서…. LG그룹 파주 공장을 검토할 때 정문 자리를 일러줬더니 직원이 ‘그럼 저쪽에 후문을 내면 되겠네요. 식당은 후문 쪽이 낫겠죠?’ 그러더군요. 속으로 ‘전자 단지를 만드는데 식당 이야기는 왜 하나’ 싶었어요. 그런 걸 알아차릴 눈치도 없었고, 알았더라도 거기 땅을 살 정도의 거금은 없었죠.

▼ 대기업 사옥이 풍수와 관련된 구설에 휘말렸을 때 비보책(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을 써주시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신라호텔이 대표적이죠?

남산터널에서 나오는 기(氣)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과학적 근거라기보다는 그때 전 세계적으로 호텔업이 불황이었어요. 이부진 사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믿느냐’고 물었더니 ‘안 믿는다’고 하더군요. 그럼 무시하라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다’고 해요. 그래서 호텔 정문 앞에 2m 정도 되는 돌무더기를 쌓았죠. 얼마 전에는 한 기업이 사옥을 새로 짓고 준공을 앞두고 있는데 ‘서향 기업이 모두 망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는 바람에 입주하기로 했던 업체가 계약금까지 포기하고 입주를 취소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망한 예로 대우, 갑을방직, 벽산건설, 해태 4곳을 들었더군요. 우리나라에 서향 건물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그래도 기업 측에서 비보를 청하기에 정문 앞에 코끼리상을 아담하게 세운 다음 ‘최 아무개라는 자가 비보를 써서 제압했다’는 소문을 내도록 했죠. 서쪽을 상징하는 동물이 호랑이인데 그걸 꺾을 수 있는 건 코끼리거든요. 비보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럴듯해야 하고, 종교적 색채를 띠어서는 안 되며, 이름난 사람이 이야기했다는 조건을 갖춰서 은근히 소문을 퍼뜨리면 가라앉게 돼 있습니다.

마음 편한 곳이 명당

그는 최근 신라 말 도선국사부터 조선의 무학대사, 이중환과 정약용, 홍경래와 전봉준에 이르기까지 자생 풍수의 맥을 정리한 ‘한국풍수인물사’(민음사)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그는 자생 풍수의 특징으로 앞서 말한 병든 땅을 치유하는 비보성, 그리고 주관성을 꼽았다. 명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곳이 바로 명당이라는 이야기다.

▼ 이건희 회장과 김승연 회장의 자택 중 어느 자리가 더 좋습니까?

청나라 군사, 일본 사람들, 미군 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자리 잡은 곳이 한남동입니다. 그만큼 좋은 곳이란 이야기죠. 이건희 회장 자택은 풍수에서 최고로 꼽는, 강의 물살이 굽이치는 퇴적층 맞은편에 자리 잡은 데다 풍광도 좋습니다. 반면 김승연 회장의 가회동 자택은 포근하게 감싸주는 맛이 있어요. 둘 다 좋은 곳이지만 저더러 고르라면 가회동을 선택하겠습니다. 제가 소심한 성격이라 탁 트인 곳보다는 포근하게 안아주는 곳이 좋거든요. 그렇지만 자생 풍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주관성입니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한남동이 더 좋으니 떠나지 않고 자녀들까지 다 거기 살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요즘에는 동네가 브랜드가 돼서 어디 사느냐가 그 사람의 수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집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동네마다 그곳 사람들만의 스타일이 있지 않습니까. 부자들이야 상관없지만, 억지로 그런 동네에 살려고 하면 외톨이밖에 안 됩니다. 제가 어릴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사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는 도시락을 싸온 아이들이 미안해서 밖에 따로 나가 점심을 먹었어요. 그러다가 사대부중에 진학했는데 거기 친구들은 바이올린도 배우고 별천지더군요. 친구들 품성은 오히려 사대부중 쪽이 나았던 것 같은데 도무지 어울리지 못하겠고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신데렐라 이야기를 처음 접했는데 제 상황과 겹쳐지면서 ‘얘는 이제 고생길에 접어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싶습니다.

▼ 그 생각이 풍수 연구의 출발점이 됐을 수도 있겠네요. 풍수는 처음 어떻게 접했나요.

어릴 때부터 학교 가는 걸 무척 싫어했어요. 선생님이든, 친구든 저한테 관심을 갖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부담스러웠죠. 수업 시간에 지목을 당해서 발표하는 것도 싫었고요. 국민학교, 중학교 다닐 때는 대놓고 학교를 빠지지 못해 고역이었는데 경기고는 선생님들이 출석 체크를 잘 안 해서 며칠이고 빠질 수 있었어요. 그런 날은 제가 살던 청량리부터 망우리 공동묘지까지 걸어가 한참 있다 오곤 했어요. 묘지에 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은 절대 평등하지 않아요. 배경도 외모도 재능도 모두 다르죠. 하지만 죽은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묘지 크기가 차이 나긴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죠. 그런 데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스승을 만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영락없는 노숙자인데, 그분께 술도 배우고 풍수도 처음 접했죠.

▼ 무덤에서 풍수의 영감을 얻은 셈이군요.

‘영광의 길은 무덤에 이어져 있을 뿐’(토머스 그레이)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무덤을 보면서 삶이란 결국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이기에 살면서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죠.

▼ 서울에서 ‘정말 이 동네는 살기 좋다’ 하는 곳을 꼽는다면.

저는 지금 사는 데(신도림동)가 가장 좋아요. 아들딸 모두 이곳에서 잘 자라 결혼까지 했으니까요. 특히 아들 녀석은 고3때까지 공부를 못해 제가 담임 선생님한테 불려가기까지 했지만 지금은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어요. 아파트 1층이라 제가 이사할 땐 로열층보다 시세가 1억 정도 저렴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래도 장점을 찾으려고 했어요. 약간 어둑해서 매일 청소를 하지 않아도 괜찮고, 엘리베이터 기다리지 않아 편하고, 손주 녀석이 맘 놓고 뛰어다닐 수 있고, 화재 시 대피도 쉽고…. 이젠 오히려 1층이 아니면 불안해지더군요. 집이든 사람이든 흠집을 잡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땅에 먼저 정을 주고 장점을 찾아보세요. 풍수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삶이기 때문에 자연과 사람이 친화하는 최고의 방법을 찾는다면 그게 바로 명당이죠.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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