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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챙겨 보고 아내 말 잘 듣는 우리가 모르던 엉뚱한 원순 씨

글·진혜린|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4.01.15 14:41:00

사람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가 다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러 갔다가 옆집 아저씨 원순 씨와 수다 한판을 떨고 돌아왔다.
드라마 챙겨 보고 아내 말 잘 듣는 우리가 모르던  엉뚱한 원순 씨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던 박원순 시장은 한번도 그럴싸한 서재를 가져보지 못해서 사다리가 있는 이층짜리 서재가 자신의 ‘로망’이라고 했다.

서울에 사는 아들 사진 보여주는 산골 마을의 할머니처럼, 아니면 재미난 만화책은 돌려봐야 맛이라며 옆구리 쿡쿡 찌르는 친구처럼 박원순(58) 시장은 뭔가를 자꾸만 보여주려고 했다.

“여기에 있는 게 죄다 이번에 우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건데요~ 이걸 보세요” 하면서 수십 개의 파일이 꽂힌 책장에서 고른 서류 뭉치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의 두께다. 현재 서울시는 한양도성·용산 미군기지 등 총 7건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에 마음이 쫓겼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든 소년 같은 표정으로 서류를 뒤적이는 박 시장을 말릴 재간은 없었다.

“시정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서울시의 문화 예술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데 얼마나 재미있어요. 하나하나 다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툭 치면 푹 쓰러질 것같이 높다랗게 쌓인 서류 더미가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 속에 폭 파묻힌 박원순 시장은 서류를 쌓는 데도 다 노하우가 있다며, 웬만해선 쓰러지지 않을 거란다. 첫인상이 동네 한의원 원장님 같다고 하니 “어디, 진맥 한번 해볼까요?” 하며 기자의 농담을 포근하게 받아 넘긴다.

원순 씨의 자유



여느 대학교 앞의 서점처럼 생긴 시장실 곳곳에서는 주인의 손때가 묻어났다. 박원순 시장이 “여기가 제 놀이터입니다”라고 소개한 시장실의 주인이 된 지도 어느덧 2년 남짓. 임기도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보궐선거로 취임해 보통의 시장보다 임기가 1년 반이나 짧다. 그 짧은 시간에 서울시도 많은 변화를 맞았지만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박원순 시장 자신이다.

“취임 초보다 머리가 많이 빠졌어요”는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정말 가장 큰 걱정일 수도 있다) “자유가 없어졌죠”는 진지한 걱정이다.

“저 한 사람 움직이는 데 고생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러자 보좌관이 “시장님 오시고 수행원이 많이 줄었다”고 추임새를 넣는다.

“예전에는 백팩 둘러메고 지하철 타고 혼자 막 돌아다녔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뭐 하나를 해도 같이 움직여야 하니까, 저 때문에 다 고생하는 거죠. 원래 저는 어디에 가도 맨 가장자리 맨 뒷줄에 서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자꾸 맨 앞자리 중앙에만 세우는 거예요. 그게 제일 불편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싫어하면 또 옆에 있는 사람들만 고생하는 거라, 마음을 바꿔먹고 이제는 정해준 자리에 가서 잘 서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가장 가운데의 가장 높은 자리를 꿈꾼다. 하지만 박 시장은 “그런 데 앉으면 졸지도 못한다”며 농을 했다.

“예전에는 회의에 들어가서도 기술적으로 잘 졸았어요. 한쪽은 뜨고, 한쪽은 깨어 있으면서도 그런 쪽잠이 아주 꿀맛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졸 수가 없네요(웃음).”

세상을 바꾸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때 박 시장은 종종 잠을 잊는다. 새벽 2, 3시에 잠드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이동하는 차 안에서, 회의실에서도 종종 졸았단다. 늘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 앉다 보니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박 시장은 늘 서울시의 중심에 서 있어야 했다.

“하는 일은 시장이 되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현장에서 문제점과 대안을 찾는,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똑같죠. 그런데 이제는 그 대안을 현실화해 실질적인 정책을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분란에 휘둘리다보면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적당히 타협도 해야 하죠.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말하자면 시장이 반드시 가져야 할 책임감이랄까. 예전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철학과 생각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시정 운영자로서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적당한 선에서 협상할 줄 알아야 시청이 제대로 굴러가니까.

드라마 챙겨 보고 아내 말 잘 듣는 우리가 모르던  엉뚱한 원순 씨

서울시민의 꿈이 적힌 포스트잇이 시장실 한쪽 벽면에 가득 붙어 있다. 서울시민들이 꿈꿀 권리를 갖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박 시장이 생각하는 자신의 소명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가 좀 더 강화되면 좋겠어요. 많은 결정이 중앙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다 보니 욕심을 접어야 할 때도 있고, 재정 부족의 문제는 가장 안타깝죠.”

1000만 명 서울 시민의 살림을 꾸려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못해 먹겠다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럴 때가 아주 없진 않죠. 국감(국정감사) 때 끌려가듯 가서 혼자 앉아 있어야 할 때는 아주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이 위치에서 그런 마음(힘들다거나 혹은 하기 싫다거나)을 먹으면 되겠습니까. 시정을 운영하며 갈등을 빚을 때도 있고,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도 많지만 진심을 다해서 꾸준히 대화하다 보면 합의점을 찾게 마련입니다.”

취하지 않고 누리지 않는다

드라마 챙겨 보고 아내 말 잘 듣는 우리가 모르던  엉뚱한 원순 씨

2013년 80주년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한 ‘여성동아’ 독자들을 위해 박원순 시장이 친필로 작성한 신년 메시지.

2년 반. 누가 봐도 굵직한 사안을 기획해 성과를 보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박 시장 또한 2년을 10년처럼 쪼개 쓰며 깨알같이 시정을 돌봤지만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을 터였다.

“이미 시장이 되기 전부터 본의 아니게 세계 여러 도시에 머물 기회가 많았거든요.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이라는 게 구상돼 있었던 것 같아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도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그런 도시의 모습이죠. 제가 예전에 ‘소셜 디자이너’라면서 꿈꿨던 게 있어요. 시를 새롭게 바꿔나가고 혁신시키려던 구상을 실현하고 싶었죠.”

그래서 박 시장은 최근 재임을 시민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것. 그 이유가 비단 ‘이상적인 도시’라는 꿈 때문일까? 박원순 개인이 이루고자 하는 일신의 목표도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박 시장은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어투로 “어떻게 그럽니까?”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개인의 위신과 안위를 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기자와 박 시장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기자는 시장을 군림하는 권력으로, 박 시장은 일할 수 있는 권력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시장의 자리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아요. 모든 것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권력을 누리는 자리도 아니고, 누릴 수 있는 권력도 없어요. 운신의 폭도 좁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이 있기에 감내하는 거죠.”

박 시장은 취임 후 서울시의 채무를 줄여 나가고 ‘올빼미 버스’를 운행하는 한편, ‘안심귀가 스카우트’를 만든 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무상급식’을 시도한 후 ‘친환경 무상 급식’을 이루지 못한 점이나 비수급 빈곤층을 위한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서울시민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최저 기준인 ‘서울시민복지기준’이 시정 전 분야에 적용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재임을 하지 못하면 미처 이루지 못한 과제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그 또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을까?

“어떻게 보면 저는 끊임없이 권력을 내려놓는 길을 걸어왔던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젊었을 때 권력의 맛을 봤죠. 20대 초반에 정선등기소(춘천지법) 소장이 됐고, 검사가 된 것도 20대 후반의 일이니까 옛날 말로 청년등과라고 하죠? 그게 좋았으면 계속했겠죠. 검사도 1년 만에 그만두고, 돈 잘 번다는 변호사도 오래하지 않았어요. 그 뒤로도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권력을 휘둘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정을 떼는 훈련을 했던 것 같아요. 권력에 취하지 않고 언제든 물러나서 지하철 타고 다닐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죠.”

은평구에 새 둥지 튼 시장 공관에서는…

드라마 챙겨 보고 아내 말 잘 듣는 우리가 모르던  엉뚱한 원순 씨
최근 서울시장 공관이 종로구 혜화동에서 은평구 은평 뉴타운으로 임시 이전했다. 33년간 사용해온 시장 공관은 한양 도성 보수·정비 촉진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그 자리를 내주었다. 박 시장과 강난희 여사가 머물고 있는 은평 뉴타운의 새 공관은 우물골 7단지 미분양 아파트로 전용면적 167㎡의 복층 구조다. 새로운 공관이 마련될 때까지의 임시공관이지만 시장으로서 공동주택에서 지낸다는 것이 불편할 법도 했다.

“이사 간 지 얼마 안 됐지만 불편할 게 뭐 있겠어요. 최근에는 이웃 주민들을 초대해서 저녁식사도 함께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여학생을 만났는데, 아주 공부를 잘하는 친구래요. 저희 집에 또 책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언제든지 찾아와서 책을 보라고 ‘박원순 도서관 자유 이용권’을 주었지요(웃음).”

얼마 전 미국에 머물던 며느리도 귀국해 아들 내외와 공관에서 함께 지낸다. 여전히 딸은 해외에서 유학 중이지만 새 식구를 맞이한 박 시장의 공관에 오랜만에 온기가 돌 것 같다. 박 시장의 아들 주신(28) 씨가 결혼한 것은 2013년 5월. 아직은 이르지만 손자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게 또 부모의 마음이다.

“예전에는 어린아이들 가운데 유난히 예뻐 보이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제는 아이들만 보면 다 예뻐요. 뭐, 본인들이 알아서 정할 일이라서 서두르라고 할 수는 없죠.”

“기다리고 계시죠?”라고 물었더니 눈을 질끈 감으며 웃어 보인다. 사실 시장이 되는 과정에서, 또 시장이 된 후에도 아내와 아들·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저야 하고 싶은 일이니까 다 감내한다고 쳐도, 가족의 삶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정말 어려워졌어요. 그게 참 미안해요. 예전 같으면 소송하고 따져서라도 바로잡았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해서 더 미안하더라고요.”

박 시장은 아들의 병역 문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병역 특혜 의혹으로 시끄러웠고, 파파라치 사진들이 돌면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2년 남짓한 세월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곧 도로 나온 거예요. 그때 제 생각은 그거 좀 있지, 왜 나왔나 싶었죠. 그렇다고 아프다는 애한테 다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재검을 받았는데, 그것도 아들에게는 상당히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죠. 그래도 (사람들의)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한테 물었어요. ‘혹시 나 몰래 부탁이라도 했냐’고. 그때 아내가 무척 화를 냈어요. 결국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그때 저희 가족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컸어요. 취급 주의 소포는 ‘프래자일(fragile)’이라 써서 조심히 다루잖아요.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라 깨지기 쉬운데, 여기저기 치이게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아는?” “밥 도” “자자”만큼은 아니지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 별수 없다던 박 시장은 “이 나이가 되면 다 그런다”며 아내에 대한 사랑도 내비쳤다.

“아내가 인테리어 사업을 했거든요. 저는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잘 몰랐어요. 또 공사 대금을 못 받고도 제게 말을 안 했더라고요. 그런 걸 제가 잘 몰라주고, 혼자 고생시켜서 많이 미안하죠. 그동안 못했던 걸 생각하면 아내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하려고 하죠(웃음).”

박 시장은 “젊은 시절에는 밖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가족에게 소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TV 결정권은 여전히 양보하지 못해 가끔은 투닥거린다고.

유명한 독서광인 박 시장이지만 TV도 즐겨 본다. 시사 프로그램만 열심히 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드라마 리스트가 많이 등장한다. 최근에는 ‘상속자들’ ‘기황후’도 보고 ‘총리와 나’도 봤단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중년의 남자, 그것도 서울시장의 귀가 후 모습에 엉뚱하고 귀여운 구석이 엿보인다.

“어찌 보면 제 인생 자체가 엉뚱한 삶이었어요. 누구나 따라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니까요. 시정에 있어서도 가끔은 다른 발상,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주변에서는 피곤해할 수도 있지만 그게 발전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요?”

여성동아 2014년 1월 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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