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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세상을 바꾸는 힘

“행운아임을 깨닫는 순간 성공은 시작된다”

글·김명희 기자, 맹하경 뉴스1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 파트, 뉴시스 제공

2014. 01. 15

1년 전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농담을 던져 화제가 됐다. 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두고 한 말이다. 다섯 살 때 미국에 건너간 한국인 김용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위치에 이르기까지 가슴속에 꾹 담아두었던, 청소년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세상을 바꾸는 힘
12월 3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용강중학교 미디어실. 김용(55) 세계은행 총재가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며 들어서자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강연은 인천 송도 세계은행 한국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김 총재가 자청해 마련됐다. 김 총재는 “환영해줘서 고맙다. 열세 살과 네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집에 가면 여러분처럼 반겨주지 않는다”는 말로 환호에 답했다. “교장선생님께 여러분이 영어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영어로 강의를 시작한 그는 “끝에 시험이 있으니 졸지 말고 잘 들어달라”는 농담도 덧붙였다.

Chapter 1

마이너리티를 경험하다


김용 총재는 미국 사회에서 ‘천재’ 혹은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화제의 인물이다. 다섯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브라운대에서 인류학을, 하버드대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이후 중남미 등에서 빈민을 위한 의료 구호활동을 벌여왔고, 200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맥아더 펠로상’을 받았다. 이 상은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큰 인물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일명 ‘천재 장학금’이라고 불린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거쳐 2009년 다트머스대 총장에 선출됐다. 아시아인이 아이비리그 총장을 역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2006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2012년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됐다. 돈과 약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제 집처럼 드나들던 그가 이제 빈곤 퇴치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고국에 돌아와 자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학생들 앞에 선 그는 우선 성장 스토리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서울대 치대 출신이고 어머니는 경기여고에서 전교 1등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버지를 만나 뉴욕에서 결혼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셨어요. 그런데 당시 한국이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어서 다시 저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신 거죠. 처음 미국에 갔을 땐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부모님이 영어로만 말씀하셨기 때문에 ‘김치’ ‘갈비’ 빼고는 한국어를 다 잊어버렸어요. 어릴 때 살았던 텍사스 주 댈러스는 지금은 좋은 도시지만 당시엔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했어요. 동양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했고, 그때부터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이후 그의 가족은 댈러스보다 안전한 아이오와 주 머스카틴으로 이사했다. 그의 부친 고 김낙희 박사는 아이오와대에서 치의학을 가르치고, 모친 전옥숙 여사는 퇴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교 시절 그는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운동에도 푹 빠져 지냈다. 미식축구팀 쿼터백, 농구팀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고, 골프도 열심히 했다. 공부와 스포츠, 리더십… 그는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세상을 바꾸는 힘
“지금 제 모습을 보면 믿지 않겠지만 어릴 때 저는 커서 미식축구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그런데 미식축구를 할 때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저는 쿼터백이라 고개를 들고 있으면 다들 저만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됐죠.”

브라운대에 입학해 더 많은 동양인, 그리고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이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열망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1984년부터 4년 동안 한국에 머물며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으려 애썼다.

“다른 학생들은 단기 어학연수나 한인 파티에 가는 걸로 해결할 고민을 저는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고서야 끝낼 수 있었죠. 한국에 와서는 연세대 어학당에서 1급부터 시작해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한국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한국은 정말 ‘빨리’ 발전하고 있었고, 똑똑한 분들도 많더군요. 제 도움이 별로 필요치 않다는 걸 깨닫고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마저 하기로 했죠.”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세상을 바꾸는 힘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세상을 바꾸는 힘

1 2 2012년 3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김용을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아이티 지진 때 구호활동을 펼치는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를 적극 추천했다고. 3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총재는 빈곤과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협력하고 있다.

Chapter 2

실용을 중시한 아버지, 이상을 강조한 어머니


미국으로 돌아간 후 그는 ‘나는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몫이 컸다. 그의 부친은 항상 아들에게 실용적인 것을 강조했다. 그가 브라운대에 다닐 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철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도 좋지만 의대는 끝마쳐라. 한국인이 미국에서 살려면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어머니는 퇴계 이황과 마틴 루터 킹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인류가 처한 빅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라”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실용적으로 일하라는 아버지, 이상을 생각하라는 어머니. 그는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아이티로 봉사 활동을 떠났고, 그곳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곳 사람들은 저를 ‘백인’이라고 부르더군요. 미국에서 저는 백인이 아니었지만 아이티인들 눈에는 비행기를 타고 온, 자신들보다 부유한 제가 ‘하얀 사람’으로 보였던 거죠. 내가 가정에서, 교육적인 면에서 얼마나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는지 깨닫게 됐고, 제가 인류에 가진 사명이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2002년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머물렀던 페루에서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당시 국장)을 만난 것은 이런 그의 깨달음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더군다나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됐다.

“그때 둘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완전히 바꾸고 싶었습니다. 2005년까지 함께 아프리카에 있는 에이즈 환자 300만 명을 치료하자고 했죠. 당시에는 전부 우리더러 미쳤다고 했지만 이 프로젝트로 현재까지 700만 명의 환자와 감염자를 치료했습니다. 거기서 얻은 교훈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올바른 일을 하려 한다면 목표를 낮추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설득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Chapter 3

반기문 총장과 함께 아프리카로!


김 총재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다트머스대 총장이 됐을 때도,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됐을 때도 모두 예상치 못했지만 기분이 좋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꼽는 성공 비결은 뭘까.

“어릴 때 노는 데 쓴 시간이 많았어요. 그 덕분에 생각과 체험할 기회가 많았고 내가 어떤 분야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죠.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열정 덕분에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고,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교육과 경험으로 세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봤어요. 그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말이죠. 한국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잖아요. 만약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용 총재는 빈곤과 질병 등 전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출신의 또 다른 글로벌 리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3년 5월 오랜 기간 분쟁과 기근에 시달린 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한 데 이어 11월 1일에는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기근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사헬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차드 등을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김 총재는 워싱턴DC에서 화상으로 회견에 참여했다. 사헬 지역은 사하라 사막과 남부 초원지대 사이의 지역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반기문 총장님과 함께 콩고·우간다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역사상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가 함께 여행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반 총장과 저는 평화의 부재와 갈등이 모두 빈곤에서 시작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고 개발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으로도 세계은행과 유엔은 인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김 총재는 ‘정말 빈곤을 끝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2030년까지 하루 5달러 이하로 사는 극도의 빈곤을 끝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선 인생의 더 큰 목표를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성공했냐고 물으면 저는 ‘행운아’였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기회와 교육 정도라면 어디서든 성공하기에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후 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가난뿐 아니라 기후와도 싸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기후 문제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여러분 세대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기후로 인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글로벌 리더 꿈꾸는 청소년 위한 조언


김용 총재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학생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바쁜 방한 일정을 쪼개면서까지 중학교에서의 강의를 자청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1. 잘 놀아야 한다

잘 노는 아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놀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경제 발전에는 교육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사당오락으로 대표되는 입시 스트레스, 교육비 부담 등은 문제라고 본다. 과도한 학습열과 틀에 박힌 입시 교육보다 놀이를 통한 창의성 교육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2. 외국어를 공부하라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영어와 다른 외국어 능력을 키워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3개 국어를 한다.

3. 목표를 세워라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결혼할 때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는데 그 이상을 고민하도록 자극을 주시면 좋겠다. 만약 정말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매일 아침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를 생각해라. 그것이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4. 끈기를 가져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것은 성공의 여러 요소 가운데 가장 실천하기 힘들면서도 중요한 것이다. 사람의 지능은 잘 변하지 않지만 끈기와 노력에 따라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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