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두브로브니크 속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tvN 인기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 첫 회. “크로아티아를 아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이미연은 “축구?”라고 짧게 답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생소한 곳. 하지만 최근 여행지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할 만큼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로망이 됐다.
크로아티아는 동유럽 발칸반도 서쪽에 보석같이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는 나라다. 남프랑스 해안이 부자들의 도시라면 크로아티아 해안은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소박한 서민들의 평화로운 공간이다.
해안을 따라 로마제국이 닦아놓은 길 위에 띄엄띄엄 세워진 도시들은 아직까지도 그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고 크로아티아가 어디 바다 쪽 경관만 있겠는가? 북동쪽 헝가리로 이어지는 판노니아 대평원 지역은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구릉을 따라 이어지고, 습지와 호수들은 자연의 보고다. 사바 강이 흐르는 수도 자그레브의 역사 지구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일일이 다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섬마을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에는 깊은 맛의 포도주가 익어가고 있다.
유서 깊은 수도 자그레브
1 캅톨 지구에 자리한 고딕 양식의 슈테판 성당.
도시는 크게 상부 도시와 하부 도시로 나뉜다. 구시가인 상부는 고즈넉한 반면 상업 지구인 하부 도시는 유럽 여느 도시 못지않게 활기가 넘친다. 상부 도시는 다시 캅톨(Kaptol)과 그라다츠(Gradac) 지역으로 나뉜다. 성직자의 지역인 캅톨에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슈테판 대성당과 대주교의 개인 정원이 있다. 대성당 앞에 위치한 돌라츠(Dolac) 시장은 새벽부터 상인들이 가판대를 질서 정연하게 설치하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인데, 낮 12시까지만 열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면 자칫 놓치기 쉽다.
슬라브어로 ‘성’을 의미하는 그라다츠는 ‘돌의 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16세기 오스만 튀르크의 위협 때 캅톨 지역의 모든 성직자가 그라다츠의 성으로 피신했다. 이후 유럽 사회에서 귀족의 권위가 성직자보다 높아졌고 그에 따라 이 도시의 중심도 성 지역이 됐다. 시장이었던 성 마르크스 광장은 대통령 궁과 총리 공관 그리고 국회가 있는,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됐다. 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길 끝에 가면 하부 도시 전경이 펼쳐진다. 그곳에 13세기 로트르슈차크 탑이 있다. 이 탑에서는 성 밖을 감시하는 한편 해가 지기 전 성문을 곧 닫을 것임을 알리는 포를 쏘았다. 지금은 매일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쏜다.
2 신시가지인 하부 도시의 운치 있는 카페 거리. 3 아름다운 타일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인 성 마르크스 성당.
1 이스트라반도에 위치한 로빈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2 이름 모를 돌계단에도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이제 자그레브를 벗어나 북쪽 해안의 주요 도시에서부터 ‘크로아티아의 주인공’ 두브로브니크까지 이동하려 한다. 크로아티아 북서쪽은 이탈리아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스트라반도다. 로마제국의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1세기 아드리아 해를 정복한 후 발칸 부서를 만들고 크로아티아 해안을 따라 도로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땅과 가까운 이스트라반도에 가장 먼저 길이 생기고 도시들이 세워졌으며 곳곳에 포도와 올리브 농장이 들어섰다. 그 영향으로 이스트라는 올리브와 와인으로 유명하며 동유럽에서 가장 ‘이탈리아적’인 곳이 됐다. 그 후로 베네치아가 약 800년 정도 아드리아 해에서 대장 노릇을 했기 때문에 크로아티아 해안 도시는 가는 곳마다 로마의 흔적과 베네치아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3 로빈의 부둣가 풍경. 4 예술가들의 공방이 위치한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성 유페미아 성당을 만난다.
1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2 물의 깊이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담아내는 호수.
이스트라반도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요정들이 살 것만 같은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만난다. 빽빽하게 자란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16개의 계단식 호수와 수많은 폭포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크로아티아의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연을 배운다. 비가 자주 와서 물이 풍부하고 이곳에만 서식하는 동물들이 많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록됐다. 호수에는 석회 성분이 녹아 있어 물의 깊이에 따라 반 고흐의 작품 속에 그려진 파란 하늘보다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이 펼쳐진다. 쓰다듬어달라는 듯 산책로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는 송어를 감상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 이곳은 한여름이 가장 아름답다. 밤이 되면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이 떼가 밤하늘 요정이 돼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세상을 만든다. 반딧불이를 보려면 국립공원에 자리한, 호수라는 뜻의 호텔 예제로(Jezero)에서 머물 것을 권한다. 맛있는 통송어구이도 잊지 말자.
3 4 한가로운 해안 풍경과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는 자다르의 명물, 바다 오르간. 5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생전 ‘세계 최고’로 꼽은 자다르의 야경 (크로아티아 관광청 제공).
자다르는 도시 외곽을 둘러싼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성 안쪽엔 도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원들과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자다르가 유명해진 것은 바다 오르간 때문이다. 설치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니콜라 바시츠는 2005년 오르간 파이프 27개를 75m에 걸쳐서 이곳에 묻었다. 파도의 크고 작은 움직임이 파이프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면 27개의 오르간 파이프에서 각기 다른 음이 흘러나온다. “뿌~, 승~, 삐~” 하고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마치 고래들의 노래처럼 신비하게 들린다. 그야말로 바다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연주하는 오르간이다. 해가 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팅 투 더 선(Greeting to the Sun)’이 작동한다. 니콜라 바시츠의 또 다른 작품으로 자다르 밤의 명물이다. 바닥에 설치된 커다랗고 둥그런 태양열 전지판에 저장된 태양 에너지가 발광다이오드를 통해 다양한 빛을 발산해서, 태양이 바다로 진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자다르의 밤을 즐겁게 만든다.
1 크로아티아의 상징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의 바다와 주황색 지붕 건물들이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자리 잡은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유럽인들의 찬사는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표현한다면 ‘자유’다. 크로아티아 지폐 50쿠나에 새겨진 17세기 인물 이반 군들리체의 자유에 대한 불멸의 시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오! 아름답다. 오! 사랑스럽다. 오! 달콤한 자유여. 신은 우리에게 최상의 보물인 너, 자유를 주었다. 너는 우리의 모든 영광의 진정한 원천이다. 너만이 두브로브니크의 유일한 장식이다. 모든 은, 모든 금, 모든 인간의 삶도 너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바꿀 수 없다.’
2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요새로 평가받는 두브로브니크 성벽. 3 전망대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도시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4 12세기에 지어졌다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과거를 뒤로하고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는 두브로브니크를 간단히 표현한다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 요새를 가지고 있는 손바닥만 한 땅’이다. 높은 성벽은 바람과 파도를 막으며 오랫동안 자유를 수호해왔다.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과 온화한 날씨가 수백 년 전통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돌 하나하나에 이야깃거리가 있고. 거리·골목·작은 광장·성당·궁전·박물관 등 발걸음 닫는 곳마다 매력을 발산한다. 심지어 비둘기와 도마뱀, 사이프러스 나무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다음 3가지 경험이 핵심이다. 첫째,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서 커피를 마시며 천혜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를 감상할 것. 둘째, 구시가를 감싸는 2km의 성벽을 돌면서 코발트색 바다를 내려다볼 것. 셋째,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서 성벽을 바라볼 것. 하나 더. 구시가 중앙로인 플라차 거리와 골목들을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해볼 것. 플라차 거리를 두고 한 시인은 “발걸음 소리를 듣지 않고 발걸음을 보는 세계 유일한 거리”라고 했다. 석회암 바닥이 오랜 시간이 지나며 반질반질해져서 주변의 사물을 모두 반사하기 때문이다. 한때 운하였던 곳을 메워서 만든 약 300m의 직선 거리는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자랑이다. 풍족한 생활을 영유한 상인들의 거리였던 덕분에 건물들이 모두 궁전 같다.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 이 도시의 이름은 ‘바위’를 뜻하는 ‘라구사’(Ragusa)였다. 두브로브니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5~16세기에는 지중해 전역에서 라구사를 모르는 곳이 없었다. 관광으로 다시금 호황을 누리고 있는 두브로브니크는 지중해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저녁에 시내로 나와 운치 있는 골목에 자리한 식당 라구사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어볼 것을 권한다. 사실 식사보다 완벽한 돌 커튼으로 둘러싸인 성벽 안의 야경 감상이 주된 목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1 2 3 플라차 거리의 골목 풍경들. 4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크로아티아의 해산물 요리와 와인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버금가는 맛을 자랑한다.
5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루차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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