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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굽혀 세상을 다시 보는 나경원

“함께 잘 되는 세상 꿈꾼다”

글·진혜린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3.12.17 09:29:00

나경원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때에 따라서는 가족을 향한 사랑까지.
그 정치색을 걷어내고 지금의 나경원을 만난다.
무릎 굽혀 세상을 다시 보는  나경원
나경원(50)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장이 처음 정치에 입문하던 2002년.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때는 그가 가진 정치색을 떠나 그 자신이 더 돋보이던 때였다. 요즘 말로 ‘엄친딸’이었고, 판사 출신에 당차고 얼굴까지 예뻐서 ‘성공한 여성 지도자상’으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탤런트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경원 회장에게 어떤 시선이 흐르고 있을까?

서울시장 선거 출마 물으니…

처음 나 회장의 책 ‘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 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손은 자연스럽게 달력을 넘기고 있었다. ‘6·4 지방 선거가 얼마 안 남았구나.’ 사실 지금의 나 회장은 정치의 중심에서 한 걸음 벗어난 자리에 서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후, 작년 총선에서 스스로 경선 출마를 포기하고 ‘2013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만 집중해왔다. 그 행보는 올해까지 이어져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장과 한국장애인부모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은 움직임조차 다가올 선거와 연관시킬 만큼 정치계 영향력은 여전했다.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요즘 나 회장을 둘러싼 가장 핫한 궁금증. “내년 6·4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계획인가?” 그것부터 물었다.

“(웃음) 저 정말 내년 선거에 관심이 없어요. 선거철이 다가오면 제 말을 믿게 되실걸요?”

너무나 단호하게 불출마 의사를 밝혀 질문을 던진 기자가 짐짓 무안했다.



“그래서 책 발간 시점이 좀 아쉬워요. 원래는 올 8월쯤에 내고 싶었는데 워낙 바빠서 때를 놓치고, 아예 선거 끝나고 책을 내자니 시기적으로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오해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지금 책을 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11월 20일에 나온 ‘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는 2013년 평창스페셜올림픽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어 더는 출간 시기를 늦추기 어려웠다. 경악할 뉴스도 하루아침에 검색어 순위에서 밀려나는 ‘냄비’ 정신 투철한 우리 사회에서 1년여 전 이야기를 화두로 삼는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

“스페셜올림픽이 끝난 당일 여론조사를 해보니까 국민의 70%가 스페셜올림픽을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넉 달 후 다시 조사해보니 50% 이하로 뚝 떨어진 거예요. 그만큼 쉽게 잊혀요. 그때의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8일 간의 대회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의 이야기와 친근해질 수 있는 도구가 더 많아져야 하죠. 그래서 공유하고 싶었어요. 제가 느낀 그 많은 것들을 다른 사람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전하고 싶었죠. 그리고 이 책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면 좋겠고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 좋겠어요.”

발간 목적의 순수성을 재차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것은 오롯이 책의 내용 때문이다. 다운증후군인 딸, 유나(20)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로서 경험해야 했던 몸서리쳐지는 울분과 좌절, 이를 극복해나가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정치적 시점으로 해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스페셜올림픽에 참여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마음을 움켜쥐는 감동 실화가 전혀 다른 의미로 이용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는 나 회장이 말한 바람대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공손하게 회자되어야 할 아름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뇌의 90%를 잃고도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 당당히 노래를 불렀던 박모세 군의 이야기나 올림픽 기간 중 고열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맨 섬 대표 코윈 선수의 아버지가 “아이의 죽음으로 행사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한 이야기들은 스페셜올림픽의 감동과 의의를 그대로 재현한다. 그리고 거기에 나 회장이 전하고자 했던 진정성이 담겨 있을 터다.

나 회장의 현재는 또 다른 선거 열기로 뜨겁다. 다름 아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집행위원 선거 때문이다. 1백60여 참여국 가운데 10명의 집행위원을 선발하는 선거로, 지난 8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나경원 회장을 국내 후보로 선정해 그 후 3개월에 걸쳐 선거운동을 해왔다. 선거는 11월 24일 치러진다.

“대중적으로는 많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2012 런던패럴림픽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어요. 그만큼 의미가 있는 행사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거는 다 어려운 것 같아요. 대륙별 할당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시아 후보가 너무 많이 나왔거든요(웃음). 그동안 선거를 많이 해봤는데, 이번만큼 선거 기간이 긴 적도 처음이에요. 일종의 선거 운동처럼 진행되지만 사실은 국제적 교류의 의미가 더 커요. 행사 발전을 모색하는 자리죠.”

장애인이 참가하는 국제 올림픽은 크게 3개가 있다. 발달장애인이 출전하는 스페셜올림픽, 청각장애인을 위한 데플림픽, 그리고 발달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제외한 장애인이 참가하는 패럴림픽이다. 패럴림픽은 4년마다 올림픽이 끝나고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에서 열린다. 경기의 공정성을 위한 나름의 분류인 셈이다.

나 회장 또한 스페셜올림픽을 추진하고 개최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나라에 스페셜올림픽이 진정 필요한가’를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을 만큼 범국가적인 관심이 미비했던 상황이었다. IPC 집행위원이 되기 위한 지금의 과정 역시 좋은 취지에 비해 연료 없이 운행되는 기차처럼 외로운 싸움이다.

“제가 정치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면 귀를 솔깃하는데, 장애인 이야기를 하면 ‘좋은 이야기네’ 하며 듣는 걸로 그치더라고요. 관심이 없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너무 고민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예 듣는 것도 싫어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제는 ‘한번 들어보자’는 분위기라 많이 발전한 셈이죠. 앞으로는 더 나아가 많은 분들이 동참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겨요.”

그가 생각하는 관심과 참여는 거창한 게 아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기부와 관심이 인생의 이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이 되는 것. 그는 최근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에서 개최한 걷기대회 ‘투게더위워크’ 때 3천 명이 모였는데 모금된 후원금은 1백30만원에 불과했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뭔가 거창해야 봉사와 기부라고 여기면 그것은 남의 일이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반면 작은 돈이라도,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나의 일’로 받아들이면 좀 더 쉬워지거든요. 그런 인식들이 보편화되길 바라는 거죠.”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유나

무릎 굽혀 세상을 다시 보는  나경원
나경원 회장의 시작도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도 다운증후군 딸을 키우는 엄마로 처음 세상의 벽과 만났으니까. 유나의 초등학교 입학 당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사립학교에 입학시키려던 나 회장에게 교장이 “엄마, 꿈 깨! 장애 아이 가르친다고 보통 아이처럼 되는 줄 알아?”라고 소리쳤을 때 세상의 경멸과 마주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악다구니를 쓰는 일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나 회장의 악다구니 수위가 다른 엄마들과는 조금 달랐을 뿐. 그는 법전을 펼쳐들고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결국 ‘판사’라는 직분을 공개하고 나서야 해당 학교에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그 후로도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세상의 편견과 싸워나가야 했다. 일전에 기자가 만난 발달장애 3급 아이의 부모가 “유나가 발달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성신여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갔다. 그 뒤로 몇 명의 아이들이 같은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이다. 발달장애인들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례다”고 했던 말이 생생하다. 나 회장의 노력을 지극히 딸만을 위한 개인적인 욕심으로 치부하더라도 그 결과는 분명 다른 장애인에게 희망이 된다.

“아, 그걸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네요(웃음).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교육부 장관한테 ‘장애인 특례입학 정수 조사를 왜 제대로 안 하느냐?’ ‘지적장애인 선발 인원은 어떻게 하고 있나?’ 등을 막 물어봤어요. 입시 조항을 보면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발달장애인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거의 안 하고 있더라고요. 당시 대학 총장 회의 때 장애인 특례입학 조항을 제대로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고 하더라고요. 스페셜올림픽도 유나 때문에 처음 알게 됐죠. 유나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제는 유나뿐 아니라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고 싶은 거죠.”

혹시 나경원 회장에게만 가능한 일인 건 아닌지 물었다. 그의 뜻을 뒷받침해주는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 지위가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는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도 보편타당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니까요.”

더 솔직해지자고 했다. ‘내 아이만 잘되면 그뿐’이라는 마음이 내재돼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아마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마음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뭐 하나라도 좋은 정보가 있으면 나누고 그래요”라며 몸을 낮춘다.

“스페셜올림픽을 준비할 때 한 스태프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조그만 일도 크게 만든대요. 하나만 해결하면 될 것을 10개로 만든다고요(웃음).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그게 또 재미있거든요. 그냥 우리 애 문제만 해결하면 될 걸, 그 일을 키우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정작 우리 애는 팽개치게 되더라고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나경원 회장의 삶에 근심덩어리가 될 줄 알았던 딸, 유나.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자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는 숙녀가 됐다.

“집에서 유나만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이에요. 밖에 나와서 또래 아이들을 보면 그제야 다르다는 걸 알 정도로요(웃음). 엄마가 신경 쓰지 않는데도 알아서 잘하는 걸 보면 예쁘고 고마워요.”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하고 있으며 영어 스피치도 수준급, 수영도 잘한다. 엄마가 위원장이라 공공연하게 자랑도 못하지만 당당히 투표에 선출돼 스페셜올림픽 국제청소년회담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오히려 유나는 제가 신경을 많이 못 써서 발달이 더딘 편이었어요. 아이들한테 어떤 자극을 주고 어떤 기회에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전혀 달라지거든요. 유나 또래의 비슷한 친구들을 보면 훨씬 잘하는 아이들도 많고요. 그것보다도 친구들의 관계가 더 걱정이죠. 친구의 메시지 하나에 뛸 듯이 좋아하다가도, 또 다른 메시지 하나에 울 것처럼 보이기도 있거든요. 요즘 뒤늦은 사춘기가 와서 아주 예민하기도 하고요(웃음).”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가장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엄마’일 수 있다는 것, 지금의 나 회장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무릎 굽혀 세상을 다시 보는  나경원

1 지난 1월 말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2 스페셜올림픽 성화맞이 행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성화 봉송 주자들과 기념 촬영.

그래도 정치인, 나경원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나 회장에게 ‘정치인으로서의 계획’을 물었고 그는 “정치를 다시 하는 게 맞나, 안 맞나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답했다.

“정치라는 걸 하면서 개인적으로 상처를 크게 받았잖아요. 다시는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 용기를 내는 게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바른 세상을 만들길 원한다면 정치처럼 효율적인 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정치를 다시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가 있던 그다음 날 나경원 회장이 새누리당 서울 중구 당원협의회 조직위원장 공모에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다른 응모자들 중에서 선발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정치계 출사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4년 초선의원 당시 혜성처럼 화려하게 나타났을 때와는 등장부터가 다르다. 2004년, 2008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승승장구하던 나경원 의원에게 떨어졌던 ‘피부과 사건’은 그야말로 핵폭탄이었다. 그때와 많이 달라진 상황이 억울하지는 않았을까?

“잘못된 것은 다 제 탓으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도 있지만 제 탓으로 해야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안 할 수 있거든요. 사법 시험을 볼 때도, 시험에 떨어지고 남 탓하는 사람들은 다시 봐도 시험에 못 붙더라고요. 자신이 어떤 부분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아야 다시 시험을 봤을 때 합격할 수 있잖아요. 저도 부족했던 부분을 찾아보는 거예요. 유권자와의 관계에서 조금 더 유연했어야 했고, 조금은 터무니없어 보여도 지역구의 민원에 더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하는 것들이죠.”

나경원이 생각하는 ‘바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에 정치를 계속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그가 말했다.

“우리 사회가 남보다 더 잘돼야 한다는 마음이 팽배한 ‘경쟁 사회’잖아요. 그것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기는 했지만, 갈등이나 자살 등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잖아요. 이제는 함께 잘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잘되는 세상’요. 그게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참고도서·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샘터)

여성동아 2013년 12월 6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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