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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fe in Hokkaido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2013. 12. 04

겨울에 접어들면 꼭 가고 싶은 곳이 다이세쓰산(大雪山)이다. 후지산이 일본을 대표하는 산이라면, 다이세쓰산은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산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이세쓰산은 홋카이도 중심부에 있고, 최고봉인 아사히타케(旭岳·해발 2291m)를 중심으로 주변에 2000m급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은 193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1 스가타미역에서 본 아사히타케 정경.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2 아사히타케 로프웨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르며 환상적인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홋카이도에서 11월의 시작은 곧 겨울의 시작이다. 이미 곳곳이 설국이다. 내가 사는 나요로 시에서 가까운 슈마리나이호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은 일본 최대의 인공 호수로 유명하다. 며칠 전 한국 정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 프로그램을 이용해 연수차 나요로시립대학을 방문한 울산 춘해보건대학 학생들이 11월에 눈 쌓인 숲과 호수를 보며 신기해하는 것이 이런 풍경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오히려 신기할 뿐이었다.

다이세쓰산국립공원 주변은 사계절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온천, 스키장 등 관광 자원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선주민인 아이누 사람들이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 부른 다이세쓰산은 육지에 있는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2000m급 산들이지만 워낙 북쪽 지역에 있어 일본 본토의 3000m급 산과 유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여름이 되면 산 정상 부근에 일본 최대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다채로운 고산식물과 꽃이 장관을 이루고, 각종 희귀 동식물이 많아서 도카치강 원류 지역을 포함한 다이세쓰산국립공원 일대가 특별보호지구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다이세쓰산 봉우리 가운데 북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가장 높은 아사히타케였다.

비에이 언덕 꽃밭 감싸고 있는 다이세쓰산

다이세쓰산국립공원은 홋카이도의 거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아사히카와에서 산을 바라보면 마치 서울 시내에서 북악산이나 관악산을 보는 것 같다. 다이세쓰산은 유명 관광지인 비에이와 후라노를 감싸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홋카이도 소개 책자에 단골로 등장하는 비에이 언덕의 꽃밭과 봉우리에 흰 눈을 얹고 있는 산이 바로 다이세쓰산의 연봉들이다. 이곳에 대해서는 몇 차례 소개한 바 있어 이번에는 아사히타케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사히타케는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말 그대로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어디를 가도 차로 2시간은 기본이어서인지 이번 여행은 옆 동네를 찾아가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어쩌면 홋카이도의 광활한 대지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슬로 라이프의 생활 습관을 몸에 배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안개비가 오락가락하는 고속도로를 달려 아사히카와 공항을 지나 10여 분을 달리자 아사히타케 입구로 들어서는 도로가 나왔다. 여름에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풍경에서 느껴지는 색채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호숫가를 끼고 얼마간 달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자 금세 펜션과 호텔이 밀집한 아사히타케 휴양촌이 나타났다. 도로 옆에 뭉게뭉게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다가가자 온천수가 작은 개울의 찬물과 어우러져 무대 위 인공 안개처럼 물안개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날은 흐린 날씨 때문에 아사히타케의 전모를 볼 수 없는 데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노천 온천을 찾아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그곳을 찾았던 황족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한 큼지막한 입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목조 건물로는 엄청나게 큰 규모의 실내 욕탕을 지나 노천 온천으로 나갔다. 아쉽게도 아직 수북이 쌓인 눈은 볼 수 없었지만 작은 사사숲 위에 잔설이 남아 초겨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노천 온천을 나와 로프웨이터미널을 향해 가다 왼편에 있는 아사히타케방문객센터에 들러 안내원으로부터 아사히타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들은 후 로프웨이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미널 안 1층에는 기념품 매장이 있고, 2층에는 티켓 판매소와 승강장, 그리고 안쪽으로 널찍한 식당이 있다. 케이블카가 오전 9시부터 한 시간에 3편씩 운행된다는 것을 확인한 뒤 식당의 가장 안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거미줄 같은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사히타케 중간 지점에 있는 스가타미(姿見)역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따뜻한 우동 국물의 온기가 온몸을 돌 즈음 호텔로 돌아와 아사히카와의 기상 예보를 체크했다. 다행히 다음 날 오전 중 ‘맑음’으로 예보했다. 아직껏 눈 덮인 높은 겨울 산에 올라가본 적이 없어서 적지 않은 설렘을 느끼며 다음날 일정을 위해 호텔 안 노천탕에 들어가 몸을 가벼이 만들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 같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저절로 떠진 눈을 창가로 돌리자, 화가가 기분 좋게 눌러 짠 팔레트 위 유채 물감을 가볍게 나이프로 긁어놓은 듯 날렵한 모양의 눈덩이가 짓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뭔가 확실한 결과물을 얻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돌아와 단단히 여장을 차리고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아침임에도 케이블카 승강장에는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 세 차례나 이곳에 왔지만 오늘처럼 완벽하게 정상을 본 적이 없다는 한 여행객의 말을 들으니 구름 한 점 없는 아사히타케를 보는 일은 그의 말대로 큰 행운인 모양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 설산 감상하는 짜릿함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가스를 내뿜는 지옥계곡.

천천히 움직이는 케이블카가 점차 고도를 높여갈 때마다 출렁이는 물결 같은 움직임 때문인지, 변해가는 경치 때문인지 실내에서 터져나오는 환성과 탄성도 덩달아 커졌다. 10분 정도 올라가 스가타미역에 도착해 역사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서자 거기는 이미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산 밑 마을과는 기온 차가 현격하지만 오히려 기분 좋은 한기가 느껴졌고, 본격적인 겨울 등산을 즐기기 위해 단단히 채비를 갖춘 사람들 사이로, 봄여름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는 스가타미노(姿見の池) 연못을 기억하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올라온 이들도 있었다. 눈부신 자태의 아사히타케 정상 바로 밑쪽에서는 두 줄기의 하얀 연기가 큰 기둥과 구름 모양으로 때로는 꼿꼿하게, 때로는 산허리에 드러눕듯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가스였다.

먼저 출발한 무리의 모습은 마치 개미가 줄지어 이동하듯 분주해 보이면서도 가지런한 행렬이었다. 한두 주 전만 해도 잔잔한 물결 위 산 정상의 풍경을 담아내던 스가타미노 연못은 흔적도 없이 눈에 덮여 있었다. 그럴 줄 알면서도 이곳에 찾아온 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등산 경험이 거의 없는 내가 갑자기 겨울산에 오르게 됐지만 낯설지도, 힘들지도 않았던 까닭은 깨끗한 눈과 공기에 정화된 나의 뇌가 적당히 분출시키는 아드레날린 덕인지도 모르겠다. 중간 중간 마련된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첫 번째로 잠시 발걸음을 멈춘 곳은 지옥계곡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소용접기에서 엄청난 압력으로 기체를 뿜어낼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조용한 아사히타케의 상징적인 소리처럼 끊이지 않고 귓전을 때렸다. 이곳이 지옥계곡이었다.

일본에서는 온천수와 유황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곳에 흔히 지옥계곡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노보리베쓰 온천에도 지옥계곡이 있는데 같은 곳으로 착각할 만큼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사히타케 지옥계곡이 노보리베쓰 지옥계곡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눈 덮인 이곳은 실로 하얀 지옥,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라건대 지옥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좋겠다.

이제 발걸음을 재촉하며 스가타미노 연못을 향했다. 생각보다 운동이 많이 됐는지 땀이 흐르기 시작해 급기야 겉옷 하나를 벗어들고 걸었다. 10여 분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연못은 간판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눈으로 쌓여 있었다. 이곳이 아름다운 연못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냥 눈밭에 지나지 않았다. 이곳의 전망대 중 가장 위쪽에 있는 제5전망대에서 잠시 연못 자리를 내려다보고 되돌리는 발걸음엔 왠지 모를 서운함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겨울이면 스키의 낙원이 된다. 스키장은 12월 중순 개장하는데 중급자 코스와 상급자 코스 각각 2개씩 총 4개의 코스가 있다. 로프웨이를 타고 표고 1600m까지 올라가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코스로 스키를 타고 하얀 지옥을 가로지르는 쾌감이 각별해 국내외 스키 여행객들로부터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아사히타케에는 이른바 걷는 스키인 크로스컨트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도 마련돼 있다. 여하튼 파란 하늘과 함께 완벽한 자태를 드러내준 덕분에 아사히타케는 오랫동안 매우 선명하게 기억될 것임에 틀림없다.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1 비에이 언덕에서 바라본 다이세쓰산. 2 창을 통해 다이세쓰산과 너른 들판이 가득 들어오는 갤러리 ‘러스틱 기히카’의 내부와 기히코 씨.

갤러리 ‘러스틱 기히카’에서 보는 다이세쓰산 연봉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3 눈 쌓인 슈마리나이 호숫가에서 즐거워하는 한국 학생들.

하산 후 이 고장에 오면 반드시 들르는 비에이 언덕을 찾았다. 홋카이도의 11월 첫 주는 가을의 막바지와 겨울의 입구에 서는 시기로 가을과 겨울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적기다. 아사히타케에서 내려와 20분 남짓 달리자 다이세쓰산 자락에 펼쳐진 적갈색 낙엽송으로 뒤덮인 비에이의 정경이 저녁놀에 물든 붉은 바다가 연상될 만큼 환상적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에이 언덕에서 최고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러스틱 기히카(Rustic 貴妃花)를 꼽는다. 주거 공간 겸 목공예품 갤러리로 우리 가족이 홋카이도로 이주한 후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홋카이도에 온 지 벌써 10년이 되어가니 우리 가족에게는 십년지기인 셈이다. 러스틱 기히카의 넓은 창을 통해 보이는 다이세쓰산 연봉들의 풍경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림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언제나 와키사카 기히코(脇坂貴妃子) 부인이고,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남편을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낮 동안 가까운 곳에 있는 작업장에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와키사카 씨 가족은 1992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남편이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기에 좋은 곳을 찾아 2년여를 돌아다니다가 지자체 직원의 소개로 여기 정착할 수 있었다. 참으로 운이 좋은 가족이다. 사실 우리 가족도 역시 홋카이도에 온 초기, 같은 목적으로 2년여 동안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왔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상 잔잔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 기히코 부인에게 이곳에서 사는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길게는 사계절, 짧게는 새벽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변화무쌍한 자연과 함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치”라고 대답했다. 사실 이곳에 살아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부분으로, 잠시 여행 와서 짧은 시간에 보는 단편적인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이다. 기히코 부인은, 같은 홋카이도라도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경치를 자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즐기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행복해했다.

커다란 ‘러스틱 기히카’의 창을 통해 보는 다이세쓰산 연봉은 대형 극장 스크린에서 감상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같다. 기히코 부인은 이른 아침 때로는 엷게, 때로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짙게 낀 안개 혹은 달밤의 적막함 속에서 들리는 소리(들리지 않는 소리 속에서 들리는 소리, 이른바 오감으로 느끼는 소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그는 농부의 사계절과 하루 일과를 창문으로 바라보면서, 자연과 흙과 농부의 조화로운 삶을 다룬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했다.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아버지의 예술 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가정이 남다르게 보이고 부럽기까지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남편과 아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포장하는 부인의 손길은 비에이 들녘에 내리쬐는 늦가을 햇볕만큼 따사롭고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신들이 노는 정원 다이세쓰산국립공원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도쿄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사업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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