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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홋카이도의 가을을 품다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3.11.05 17:58:00

진홍빛, 주홍빛,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의 자연은 소박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홋카이도의 가을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산과 들의 형태가 달라 그 느낌 역시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가장 홋카이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아칸국립공원이 자연스레 뇌리에 떠오른다.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아칸호에서 바라본 메아칸다케.



내게 가장 홋카이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칸국립공원(阿寒國立公園)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홋카이도 동부 지역에 있는 이 공원은 1934년 일본 유수의 국립공원들과 함께 홋카이도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금까지도 뭉게뭉게 연기를 뿜어내는 활화산과 우거진 숲, 푸른 호수가 어우러져 자연의 보고라 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아칸국립공원 내에 있는 크고 작은 호수 중에서 홋카이도 동부의 3대 호수로 불리는 아칸호(阿寒湖), 굿샤로호(屈斜路湖), 마슈호(摩周湖)는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거기에 심신의 피로를 풀어줄 온천이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은 보너스다.
이번 여행은 아칸국립공원에 초점을 맞췄지만, 계절이 계절인 만큼 단풍 구경도 할 겸 ‘여성동아’ 9월호 도카치 편에서 잠깐 소개한 계곡 소운쿄(層雲峽)를 거쳐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단풍 하면 내장산을 떠올리듯 홋카이도에서는 소운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소운쿄는 홋카이도 중부 지역의 중심 도시인 아사히카와에서 가깝고, 다이세쓰산국립공원(大雪山國立公園)의 중심에 있으며 겨울 빙폭 축제로도 유명하다.
소운쿄를 거쳐 홋카이도 동쪽으로 가는 길은 창밖으로 끝없이 볼거리가 이어져 무료할 틈이 거의 없다. 아사히카와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소운쿄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절벽과 어우러진 단풍이 터널처럼 나타났다. 단풍만큼 화려한 옷차림의 관광객들을 따라 들어가자 눈앞에 하얀 물줄기가 풀린 실타래처럼 가지런하게 쏟아져 내리는 두 개의 폭포가 나온다. 류세이(流星)와 긴카(銀河)라 불리는 각각 높이 90m와 120m의 폭포로 ‘일본 폭포 1백선’에 오른 명소다. 폭포를 지나 울긋불긋 단풍이 든 협곡 사이의 길로 진입하니 이번에는 양옆으로 펼쳐진 병풍 같은 바위와 어우러진 단풍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로 도로변에 차들이 여기저기 정차돼 있었다. 소운쿄에서 다이세쓰산을 오르려면 구로다케 로프웨이(곤돌라와 리프트)를 타고 정상의 3분의 2쯤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1시간가량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소운쿄의 협곡 사잇길을 30분 정도 달려 고개를 오르고 터널을 지나 반대편 정경이 시야에 들어오면 이 또한 별세계의 비경으로 유명한 미쿠니(三國) 고개를 지나게 된다. 내리막길을 10여 분 달리면 산허리 로그 하우스의 허브 전문 카페 ‘티 피(Tee Pee)’가 나온다. 지난여름 카페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쳐야 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카페 안에 들어서자 한국의 농가 처마에 수수 가지를 거꾸로 매달아놓은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허브가 천장과 벽에 가득 매달려 있었다. 주인은 30년쯤 전에 본토를 떠나 홋카이도 안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이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티피의 대표적인 음료를 요청하자 ‘스테비아’라는 여성스런 이름의 차를 권했다. 설탕보다 3백 배 정도 단맛이 강해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기라고 했다. 부스러진 작은 잎 조각을 혀끝에 올려놓고 잠시 음미하자 거짓말처럼 단맛이 났다. 이처럼 전원생활을 동경해 홋카이도에 정착한 뒤 카페를 열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데 놀라곤 한다.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1 남녀 혼욕이 가능한 누카비라 온천. 2 허브 전문 카페 ‘티 피’의 외관.



아칸호의 귀염둥이 초록 빛깔 마리모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3 소운쿄 협곡의 긴카 폭포 모습.





카페에서 나와 가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다 보면 누카비라 온천마을이 나온다. 이곳 또한 지난번 여행 때 족욕으로 만족해야 했기에 이번엔 반드시 노천탕을 경험해보리라 마음먹고 찾아갔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건물 안 복도를 따라가다 다시 밖으로 나오자 작은 개울이 흐르는 숲이 나타났다. 여행 도중 가볍게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인 환경과 적당한 가격이라는 동료의 추천 그대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온천이었다.
온천욕의 열기를 찬 바람으로 식히며 찾아간 곳은 어디까지가 목장이고 어디서부터가 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광활한 나이타이(ナイタイ)목장이었다. 드넓은 목초지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드러누워 있는 젖소들이 마치 드문드문 찍어놓은 점처럼 보인다. 이 목장은 해발 365m에서 최고 998m까지 산허리를 끼고 넓게 펼쳐져 있으며 총면적이 도쿄돔 야구장 3백50개 이상의 규모로 5월에서 10월까지 2천여 마리의 소를 방목한다. 산 정상의 레스토랑에서 목장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이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젖소들만큼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젖소들의 한가로움에 취해 있을 즈음 어느새 서쪽 하늘이 주황빛을 띠기 시작했다. 서둘러 목장을 나와 아칸국립공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샹송을 들으며 숲과 초원을 배경으로 한 시간쯤 달려 아칸호에 도착했을 때는 호수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호반의 상점 및 호텔 앞 상점가의 등불이 강렬한 빛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성수기가 지났음에도 웬만한 규모의 호텔은 모두 예약이 끝난 상태라 온천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상점가 모퉁이를 돌자 홋카이도 최대 규모의 아이누 집성촌 ‘아이누코탄’이 시야에 들어왔다. 1백여 명이 넘는 아이누인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주로 전통 목공예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여성동아’ 10월호에 소개한 시라오이 아이누민속촌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아이누인들의 전통 민속무용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이누코탄을 돌아본 뒤 민박집으로 돌아와 몸을 담근 44℃의 천연 온천수는 긴 여정의 피로를 녹여주고도 남았다.
다음 날 새벽, 알람 시계가 무색하게 이른 시각에 벌떡 일어나 다시 한 번 44℃ 온천수에서 몸을 풀고 마리모섬을 향해 오전 6시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탔다. 아칸호의 상징은 단연 귀염둥이 마리모다. 마리모란 담수성 녹초의 일종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실 같은 섬유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칸호의 마리모는 이 실들이 뭉쳐져 동글동글 공 모양을 하고 있어 앙증맞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온다. 아칸호의 마리모는 국가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유람선을 타고 도착한 마리모섬에는 마리모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보여주는 전시장과 실같이 흐트러진 마리모를 인공적으로 둥글게 뭉쳐 양식하는 큰 어항이 있었다. 이 호수에서 마리모가 얼마나 소중한 관광 자원인지를 쉽게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큰 어항에서 양식하는 마리모.



한편, 아칸호는 전역이 아칸국립공원에 포함돼 있으며 오아칸다케(雄阿寒岳), 메아칸다케(雌阿寒岳)를 포함한 화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메아칸다케는 2006년 소규모 분화를 한 적이 있는 활화산이다. 화산이 많은 지역답게 아칸코온천(阿寒湖溫泉), 가와유온천(川湯溫泉), 마슈온천(摩周溫泉) 등 가까운 거리에 유명 온천들이 널려 있다. 아칸호를 구경하고 잠깐 숲 속을 달리자 지난겨울 달빛과 설산 아래 온천 증기를 뿜어내는 광경에 감격했던 이오잔(硫黃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오잔은 해발 512m의 활화산으로 아이누어로는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화산에서 나오는 유황 성분 때문에 산이 산성화돼 황토색 위에 연녹색과 흰색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언뜻 보기에 사막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에서 이 산은 가장 저지대에서 고산식물을 볼 수 있는 특이한 식생으로 주목받는다. 겨울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온통 눈으로 뒤덮이지만 이곳 분기구 주변만큼은 뜨끈뜨끈한 온돌 같은 온기가 느껴질 뿐 눈이 쌓이지 않는다. 이날은 밝은 회색빛 하늘 아래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온천 구름이 주변의 붉게 물든 숲과 어우러져 파스텔 톤을 연출했다. 눈 덮인 분기구는 증기기관차의 연통처럼 끊임없이 연기 덩어리를 힘차게 밀어올리고 있었다. 분기구에 다가갈수록 금세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거친 지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지구의 위대함 앞에 작아져버린 심신을 이끌고 휴게소로 돌아온 나를 뜨끈뜨끈한 온천 달걀이 기다렸다는 듯 반가이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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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쿄돔 야구장 3백50개 이상 규모의 나이타이목장. 2 아칸호에 있는 아이누 집성촌 아이누코탄.



산신의 호수 마슈호와 비호로파노라마전망대

2001년, ‘홋카이도의 유산’에 선정된 마슈호는 화산 꼭대기에 물이 괴어 만들어진 칼데라호로 아이누어로는 ‘산신의 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이칼호 다음으로 투명도가 높아서 청색 외에 빛의 반사가 거의 없어 특히 청명한 날 독특한 푸른빛을 띠기 때문에 ‘마슈 블루’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마슈호는 해발 600m 전후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유입도 유출도 없는 폐쇄호로 사시사철 수위 변동이 거의 없다. 또 호수면에 내리는 빗물이 대기오염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덕분에 환경 변화를 관측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날은 아쉽게도 완벽한 마슈 블루를 보지는 못했지만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신비스러운 기운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끄러미 호수면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호수의 색깔은 언제나 푸르다. 거기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뿜어져나오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이 호수의 참 매력이다. 근본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받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참고로 이오잔과 마슈호 제1전망대 주차장은 유료인데, 티켓 한 장으로 두 곳 주차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제1전망대에서 보는 마슈호와 조금 떨어진 제3전망대에서 보는 마슈호는 높이와 각도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두 군데서 마슈호를 감상하고 비교하곤 한다.
마슈호전망대를 나와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홋카이도 동부의 절경을 뽐내는 비호로(美幌)고개와 굿샤로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비호로파노라마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스나유(砂湯), 이른바 모래 온천으로 유명한 굿샤로호를 지나야만 한다. 스나유는 호숫가 모래를 파면 온천수가 나온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잠시 바지를 걷고 족욕을 즐기며 하얀 백조처럼 바람결에 무리 지어 오가는 요트 군단이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비호로파노라마전망대다. 호수를 끼고 얼마간 달리다가 언덕길로 접어들자 갑작스레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사사라 불리는 키 작은 대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잔디밭처럼 곱게 언덕을 뒤덮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 고개 위 전망대에 도착해 차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정경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굿샤로호가 송두리째 시야에 들어오는 감동, 그것을 사진 한 장에 다 담아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뒤섞인 탄성과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 역시 이 바위 저 바위 옮겨 다니며 카메라 포커스를 맞춰보았지만 사진은 눈으로 보는 감동에 미치지 못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을 막 오르자마자 일본의 전설적인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당신을 잊기 위한 여행임에도 안개에 마음만 흔들린다’로 시작하는 노래 ‘비호로고개’의 가사가 적힌 비가 서 있었다. 거기서 끊임없이 노래가 반복돼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1 비호로고개에서 바라다본 굿샤로호의 전경. 2 굿샤로호의 모래 온천을 즐기는 관광객들. 3 유황 가스를 내뿜는 이오잔. 아이누어로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이다.



정상에 올라 도쿄에서 여행 온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니, 가을바람이 잊고자 했던 기억들을 떨어내듯 세차게 온몸을 휘돌아 감고 지나갔다. 찬 바람을 피해 들어간 식당에서 흘러내린 콧물을 훔치며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면서 문득 생각해보았다.
홋카이도를 구석구석 소개하는 이 연재를 시작한 후, 홋카이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지만 확답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저 나름대로 다 좋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세 호수와 이오잔, 그리고 호수를 끼고 달리는 숲길과 피로를 풀기에 충분한 온천이 널려 있는 아칸국립공원이라고.

소운쿄에서 아칸국립공원까지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도쿄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사업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여성동아 2013년 11월 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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