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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 중국

중국에서도 영어는 성공의 사다리

글·이수진 중국통신원 | 사진·REX 제공

입력 2013.11.01 10:29:00

2000년 출장차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 중국인들의 영어 실력에 놀랐다. 당시 기업가와 공무원들을 인터뷰하면서 의외로 그들의 상당한 영어 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후 13년이 지난 지금은 원어민 수준의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 비결을 살펴봤다.
중국에서도 영어는 성공의 사다리

중국 어린이들이 영국인 교사로부터 매너 교육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도 영어는 성공의 사다리


“답답한 사람은 상대방이야.”
올 상반기 중국에서 호평받은 영화 ‘중국합화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미국에서 돌아온 중국인 학원 강사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 상담을 신청한 학생에게 “못 알아들어서 답답한 사람은 상대방이야”라며 자신감을 북돋운다. 영어만 할라치면 문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발음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주눅이 들었던 경험이 있는 많은 관객들이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이 영화는 허름한 영어학원에서 출발해 중국 민간 사교육업체 최초로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신동방의 창립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꿈을 찾아 30년 동안 구르고 깨지는 중국 청년들의 분투기인 동시에 중국에서 영어가 어떤 식으로 ‘성공의 사다리’가 됐는지를 그리는 흥미로운 영화다. 영문 제목은 ‘American Dreams In China(중국의 아메리칸 드림)’.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중국은 미국과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영어에 목말라 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 온 한국 유학생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영어를 잘하는 중국 학생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베이징대나 칭화대에서는 영어 강의가 일반화돼 있고, 세계적인 석학이나 정치가들의 특강에서 거침없이 영어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열심히 중국어를 배워야 하는 처지인 한국 유학생들은 모국어인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로 강의를 듣고 막힘없이 질문하는 중국 학생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한다.
중국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유학대국’으로 지난해 해외 유학길에 오른 학생 수는 40만 명에 육박한다. 중국 교육부 유학서비스센터에 따르면 2012년 출국한 해외 유학생 수는 39만9천6백 명, 2011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1백여 개국에 퍼져 있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총 1백42만6천 명이다. 유학 지역으로는 미국이 30%로 가장 많고,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물론 방학을 이용해 단기간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데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꽤 있다. 리커창 총리가 대표적이다. 베이징대 77학번인 리커창은 독학으로 익힌 영어 실력이 상당해 통역 없이 강연이나 연설이 가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관심 분야의 신간서적이 나오면 원서로 독파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학창 시절 리커창은 길을 걸을 때도 영어를 웅얼웅얼 외우면서 다녔다고 한다.

한국 능가하는 영어 교육 열기

중국에서도 영어는 성공의 사다리

중국 부모들의 영어 교육열은 한국 부모 이상이다. 사진은 영어 유치원의 모습.





중국 교육부는 2002년 전국 초등학교에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실시하도록 했지만 대부분의 초등학교들이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거나 영어 과외를 하는 경우도 보편화돼 있다.
대학 교정에서는 아침이면 영어책을 들고 나와 큰 소리로 읽고 외우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같은 학습 방법은 10여 년 전 ‘크레이지 잉글리시’라는 학습법 열풍으로 번졌다. 오랜 시간과 노력, 돈을 들여 영어를 공부하고 시험 성적이 좋아도 정작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영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면을 떨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학습법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국 학교에서는 대부분 영국식 영어를 바탕으로 가르친다. 최근에는 미국 드라마 및 영화의 인기, 유학 등의 영향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는 역시 중국식 영어 ‘칭글리시(Chinglish)’다. 한국식 영어 콩글리시, 일본식 영어 징글리시, 싱가포르식 영어인 싱글리시, 인도식 영어인 힌글리시 등 지역마다 로컬화된 영어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얼마 전 인민일보 해외판에 나온 기사를 보면서 콩글리시는 교정의 대상으로 못난이 취급을 받지만 칭글리시는 거대한 중국 인구를 바탕으로 나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최근 ‘칭글리시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어에서 비롯된 영어 단어가 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국력 향상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제는 보편화된 ‘Long time no see(오랜만이야)’의 기원도 칭글리시에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 표현은 중국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사용한 중국어 ‘하오주부젠(好久不見)’을 직역해 사용한 것에서 비롯됐다. 한편 최근 사례로는 중국어 ‘게이리버블(geilivable)’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요즘 중국 내에서 새롭게 생겨난 유행어로 ‘대단하다, 멋지다’라는 의미인 ‘게이리’에 영어 접미사 ‘-able’을 덧붙여 만든 것이다. 반대말로 ‘언게이리버블(ungelivable)’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영어 열풍에 대한 우려도 있다. 최근 교육부 관료 출신 인사가 중국식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중국 전통 문화와 중국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 영어 논쟁에 불을 지폈다. 중국 교육부 대변인을 지내고 현재 교육부 직속 어문출판사 사장을 맡고 있는 왕쉬밍은 중국어와 한자가 점차 하찮은 존재가 되고 있다면서 영어 교육을 취소하거나 줄임으로써 중국어를 보호하고 중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사장의 주장에 대해 아이들이 너무 많은 학업 부담을 지고 있으니 어린 나이에는 모국어를 배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도 있다. 하지만 ‘영어 교육을 줄인다고 해서 중국어 실력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어린 나이에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라는 반대 의견이 더 많다. 중국에서도 영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를 거쳐 CJ 중국법인 대외협력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중 2, 중 1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여성동아 2013년 11월 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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