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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Trend Report | 구 기자의 캐치 업

혹시 당신도 로케팅족?

합리적인 ‘작은 사치’

글·구희언 기자 | 사진·REX 제공

2013. 10. 10

옷을 살 때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SPA 브랜드를 찾으면서도 비싼 향수나 명품 구두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면, 당신도 로케팅족일 수 있다.

혹시 당신도 로케팅족?


회사원 윤정은(27) 씨는 매달 월급날이 돌아오면 백화점으로 향한다. 명품 의류 매장부터 영 브랜드 매장까지 야무지게 윈도쇼핑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향수 코너. 지갑은 이곳에서 비로소 열린다. 명품 향수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30만 원. 윤씨는 “다른 데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 나에게 주는 선물 용도로 괜찮다는 생각에 향수를 산다”라고 했다.
이런 소비 패턴, 은근히 익숙하다. 주변에는 명품 재킷이나 코트 없이 SPA 제품으로 계절을 나며 절약한 돈을 명품 구두에 쏟아 붓거나, 셔츠는 백화점 할인기간을 골라 2만~3만원짜리만 사면서 넥타이만큼은 명품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한 친구는 향초를 향기별로 모아 진열장을 채우는 데 열을 올리고, 또 다른 친구는 기초부터 메이크업까지 각종 화장품을 로드숍에서 사는 대신 남들 앞에서 꺼내들 기회가 많은 콤팩트는 명품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브랜드 제품만 산다.
이 같은 소비 행태를 ‘로케팅(rocketing)’이라고 한다. 2003년 미국 보스턴컨설팅이 출간한 ‘트레이딩 업(Trading Up)’에 나온 신조어로, 생필품은 저렴한 것을 쓰면서 특정 용품에만 고급 소비를 집중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주로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의류나 생필품도 저렴한 것으로 골라 사지만, 한두 가지는 앞뒤 재지 않고 아낌없이 ‘올인’한다면 당신도 로케팅족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며 수년 전부터 있었던 ‘작은 사치’ 열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혹은 자동차같이 큰 제품 대신 조금만 돈을 모으면 살 수 있는 작고 소장 가치 있는 제품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포인트는 ‘쓸데없이 작고 예쁜’이다. 당장 없어도 죽지는 않지만 사면 뿌듯함이 오래가는 물건이 로케팅족의 장바구니에 담긴다. 주로 향초나 아트북, 차(tea), 향수 등 취미나 개인의 기호와 관련된 제품이 대부분이라 사놓고 보니 ‘사치품’인 경우가 더러 있다. 로케팅족은 물건을 사고 그걸 집에 모셔놓거나 매일 쓰면서 만족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푼다.
업계에서는 이런 소비자 심리를 활용해 ‘드미 쿠튀르’ 제품을 내놓고 있다. 드미(Demi)는 불어로 ‘절반’을 뜻하는데, 고급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와 고급 기성복인 프레타 포르테의 중간 어딘가를 생각하면 된다. 오트 쿠튀르를 망설이지 않고 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디자이너가 시즌마다 내놓는 컬렉션 디자인을 바탕으로 맞춤옷을 해주는 집도 늘었다.
지난해 갤러리아 백화점은 샤넬·디올 같은 명품 향수 전문 매장을 오픈했고, 도산공원 근처에는 1백만 원이 넘는 아트북을 판매하는 아트북 서점 ‘애슐린’이 입점했다. 초호화 예술 서적과 샴페인, 커피를 팔아 남성 직장인이 많이 찾는다. 아르마니 맞춤복 구입이 부담스럽다면 조르지오 아르마니 코즈메틱에서 내놓은 향수인 아르마니 프리베를 30만 원대에 사 대리만족할 수도 있다. 엘도노반은 구찌,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명품 업체에서 쓰는 악어가죽을 스마트폰 케이스에 접목해 소비자의 호평을 받고 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라고 규정했지만 어쩌면 인간은 소비하는 존재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작가 바바라 크루거가 작품에 쓴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처럼 로케팅족도 큰 한 방 대신 작은 것을 자주 소비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셈이니 말이다. 문득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직장인 사이의 명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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