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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fe in Hokkaido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2013. 10. 08

이번 여행을 통해 확인한 것은 삿포로에서 시라오이 초를 들러 아이누민속촌을 구경하고, 태평양을 바라보며 노보리베쓰에서 온천을 한 뒤, 도야코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는 1박2일이 매우 내실 있는 여행 코스라는 사실이다.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포로토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본 아이누민속촌.



홋카이도의 광활한 대지를 무대로 살아온 소수민족 아이누. 이번 여행은 아이누 문화의 발상지로 꼽히며 현재 아이누민속촌이 있는 시라오이(白老)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아이누’란 사람이란 뜻으로, 홋카이도뿐만 아니라 사할린 남부 및 쿠릴 열도에 걸쳐 옛날부터 살아온 선주민족이다. 자신들만의 언어인 아이누어와 ‘이요만테’라 불리는 곰의 영혼 전송의식 및 구전 이야기 등 독자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나, 메이지 시대에 일방적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되고 본토 일본인들이 대거 홋카이도로 이주해오면서 아이누족은 괴멸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선주민족으로서 아이누의 지위와 권리 회복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 문화 부흥의 거점으로서 ‘민족 공생의 상징이 되는 공간’을 2020년 하계 올림픽이 개막하는 7월 이전에 현재 아이누민속촌이 있는 시라오이 초 포로토 호반에 건설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국립박물관 및 전통 가옥과 공방 등의 시설을 갖추고 방문객이 아이누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아이누민속촌이 있는 시라오이 초는 삿포로 및 치토세 공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또 주변에 유명 온천과 아름다운 호수를 품고 있는 시코쓰도야국립공원(支笏洞爺國立公園)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차를 이용하면 시라오이 역이 있어서 편리하고, 자동차로 가더라도 고속도로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홋카이도 여행의 특징은 목적지 외에 주변에 볼거리가 널려 있다는 것. 그래서 두루 살펴보려면 자동차로 움직이는 것이 유리하다.
필자가 사는 나요로에서 아이누민속촌까지는 300km 정도 떨어져 있어 이른 오후에 도착해 민속촌을 둘러본 뒤 온천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쓰에서 여장을 풀 계획을 세우고 집을 나섰다. 평일이어서 고속도로는 오가는 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한산했다. 음악과 자연에 도취돼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문득 백미러를 본 순간 아뿔싸, 경찰차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자 경찰관이 다가와 속도위반이라고 했다. 시속 102km로 달렸는데 규정속도를 22km나 위반했다는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운전할 때는 각별히 속도에 주의해야 한다. 일반도로는 최고속도가 시속 50km인 곳이 많고, 고속도로조차 70km 나 80km로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텅 빈 4차선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를 넘기지 않고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성질 급한 한국인들에게 주의, 또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벌금 딱지를 받아들고 속도를 의식하며 달렸더니 민속촌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1 아이누민속촌 정경. 2 아이누어로 집이란 뜻의 ‘치세’와 포로토 호수.



‘큰 호수 옆 마을’에서 아이누 문화의 정수를 보다
시라오이 아이누민속촌 입구에 들어서자 관광객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늘어서 있는데 한글로 ‘어서오십시오’라고 써 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매표소 앞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에는 아이누족의 모습을 담은 아기자기한 액세서리가 놓여 있고, 그 옆에서 한 젊은이가 끌로 나무에 곰의 형태를 새기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누 전통 복장을 한 거대한 목조각이 서 있다. 오른편 숲 쪽으로는 ‘치세’라고 불리는 아이누 전통가옥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에는 포로토 호수가 펼쳐졌다. 그때 한국인 스님 10여 명이 ‘시라오이포로토코탄(白老ポロトコタン)’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민속박물관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국의 초가집을 떠올리게 하는 치세와 스님들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 문득 이들 문화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민속박물관에서 아이누 역사와 풍속에 대한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포로치세’(큰 집)라는 푯말이 걸려 있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에서는 아이누에 대해 소개하고 전통음악과 무용을 공연한다. 막 공연이 시작됐는지 관광객에게 ‘안녕하세요’의 아이누어인 ‘이란카라프테’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어 민속촌의 애칭 ‘포로토코탄’의 의미를 영어와 중국어로 설명했다. ‘포로’는 아이누어로 ‘크다, 넓다’, ‘토’는 ‘호수, 습지’, ‘코탄’은 ‘마을’을 가리킨다. ‘포로토코탄’이라는 애칭은 큰 호수 옆 마을을 뜻한다고. 홋카이도 지명의 90%는 아이누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1 아이누 민속무용 공연. 2 특별한 가사 없는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를 어르는 아이누족 여인.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3 ‘포로토코탄’으로 불리는 아이누 민속박물관 내부.



아이누족의 집(치세)은 마을의 규칙에 따라 모양과 방향이 정해진다. 시라오이에서는 동쪽을 신성한 방위로 여겨 동서로 길게 치세를 건축했다고 했다. 사회자가 천장을 가리켜서 올려다보았더니 대들보에 연어가 걸려 있었다. 작년 가을에 잡은 것인데 겨우내 밖에서 냉동 건조시켰다가 봄이 되면 난로 위에 걸어 훈제한 것으로, 음식을 저장하는 선조들의 지혜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또 아이누족 여성들은 미용이나 액막이 용으로 손과 입 주위에 문신을 새겼으나 지금은 이런 풍습이 사라졌다고 했다.
생활 풍습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공연이 이어졌다. 먼저 대나무로 만든 전통악기인 무쿠리를 연주했는데 바람, 비 , 새와 동물의 울음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악기로 표현했다. 또 곰과 같이 신성시한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고 전송하는 음악, 특정한 가사 없이 즉흥적으로 아기를 어르면서 부르는 자장가 등을 실연해주었다. 이어 한 남자가 나와 나쁜 신을 쫓아버리는 에무시림새라는 검무를 추었다. 동물을 신성시하고 자연을 경외한 아이누족의 정신이 배어나오는 춤과 음악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호숫가를 따라 민속촌 경내를 둘러본 뒤 차를 몰아 호수 반대편으로 갔다. 호수 저편 민속촌은 긴긴 역사를 심연에 담아놓은 듯 잠잠하기만 했고 여전히 평화로웠다. 이제 태평양을 왼쪽에 두고 자동차를 달려 다음 목적지이자 숙소가 있는 노보리베쓰로 향했다.

살아 있는 화산 시코쓰도야국립공원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1 윈저호텔에서 내려다 본 도야코 전경.



노보리베쓰는 홋카이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온천 관광지다. 특히 지옥계곡은 곳곳에서 뿜어져나오는 유황 연기와 냄새로 온천 마니아들을 흥분시킨다. 노보리베쓰는 여성동아 5월호에 소개한 바 있는데, 성수기가 아니라는 호텔 종업원의 설명이 실감 나지 않을 만큼 이날도 관광객으로 북적대고 있었다. 온천호텔에서 피로를 풀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야코(洞爺湖)로 출발했다.
도야코는 시코쓰도야국립공원의 하나로, 주변에는 살아 있는 화산이라 불릴 만큼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온천 관광지가 많으며 호수와 숲과 화산이 조화를 이룬 경관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차를 몰고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으면 모처럼의 여행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노보리베쓰에서 자동차로 도야코까지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노보리베쓰 온천지를 빠져나와 바로 숲으로 연결된 국도를 타고 가기를 권한다. 시간은 더 걸려도 구불구불 산속으로 난 숲길을 달리는 맛이 각별하다. 도로 양쪽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들이 만든 터널을 통과해 30여 분 정도 달리면 오로레프 고개가 나온다. 이곳에서 평탄한 고원지대의 시원스러운 정경을 만끽하고 내리막길을 달리다 산속 초등학교 건물 같은 카페 앞에서 멈춰 섰다. 마당에 무질서한 듯 조화롭게 피어 있는 꽃들 사이로 오래된 철로의 버팀목으로 만든 타원형 접근로를 따라 몇 발짝 들어가면 비로소 ‘농가 카페’라는 간판이 보인다.
홋카이도의 관광지 주변에는 전원카페를 꿈꾸며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적지 않다. 이날 만난 농가 카페의 주인은 운동선수로 활동하다 8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 그에게서 카페 건물 뒤 넓은 밭에 아스파라거스, 호박, 감자, 옥수수를 심고 유정란을 공급해주는 닭을 키우며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페를 나와 다시 길에 오르니 이번엔 진홍빛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과수원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홋카이도에서는 이국적이라 할 수 있는 풍경으로, 흔히 홋카이도의 겨울을 혹한이라 생각하지만 이 지역은 겨울에도 온화한 편이어서 과수 농사가 가능하다.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2 레이크 힐 팜의 목가적인 풍경.



최종 목적지 도야코의 초원에서
이윽고 최종 목적지인 도야코가 시야에 들어왔다. 도야코도 이미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일본 100대 경관 중 하나이자 홋카이도 3대 경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을 통한 큰 수확이라면 삿포로에서 시라오이 초를 들러 아이누민속촌을 구경하고, 태평양을 바라보며 노보리베쓰에서 온천을 한 뒤 도야코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는 1박2일이 매우 내실 있는 여행 코스라는 사실의 발견이다. 여행의 마지막은 도야코에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 주위를 빙 두른 산의 경관을 바라보거나, 2008년 8개국 정상이 모여 ‘도야코 서밋’이 열린 윈저호텔을 찾아가 보는 선택지가 있다. 나는 윈저호텔이 있는 산 정상에 올라가 태평양과 호수를 한눈에 바라보는 쪽으로 여행의 피날레를 택했다. 호텔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흰 염소와 푸른 초원,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줄기들이 자아내는 목가적인 풍경의 카페 ‘레이크 힐 팜(Lake Hill Farm)’이 또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카페에서는 초원을 배경으로 원추형 활화산 요테이잔(羊蹄山)과 호주인 마을로 유명한 니세코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다. 카페에서 직접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도 인기 메뉴다.
얼마 전 누구보다 사랑했던 모친을 영원히 떠나 보낸 탓일까. 초원 위에 내리쬐는 가을 햇빛의 따스함보다 한 줄기 바람이 유달리 가슴을 시리게 파고들었다. ‘다음에’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일수록 애절하고 간절하다는 것을, 상실을 통해서야 경험하는 것이 인생일까? 이 의문에 수긍하듯 가을바람을 타고 ‘저는 그래요’라는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쉬이 ‘다음에’라고 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아이누 문화의 정수 시라오이&홋카이도 3대 경관 도야코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도쿄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사업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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