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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철이 오빠 박철

10년 만의 인터뷰

글·진혜린 | 사진·이기욱 기자

입력 2013.09.17 09:26:00

딱 10년 만이라고 했다.
드라마 출연도, 기자와 마주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MBC 에브리원 시트콤 ‘무작정 패밀리3’로 오랜만에 반가운 모습을 내비친 박철이 큰맘 먹고 꺼내놓은 이야기.
돌아온 철이 오빠 박철


박철(45)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달 남짓. 인터뷰 요청을 위해 첫 통화를 했을 때부터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가 성사될 때까지 오히려 차갑고 예민한 편에 속했다. 그럼에도 그의 차가운 태도가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자를 유난히도 경계하던 모습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받은 상처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그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대하는 게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박철 특유의 직설 화법과 거침없는 표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직선으로 파고드는 그의 말들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따뜻한 말로 꾸밀 줄은 몰라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밑바닥에 깔아두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투박한 말투였지만 기자에게 나이를 묻고, 지나온 인생을 묻고, 가족의 안부를 묻던 박철. 장대비 속에서의 운전을 걱정하며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이미 정겨운 진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행복을 과시한 대가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박철이 1년 동안 매일같이 출근해온 경기방송이 훤히 보였다. 그가 진행하는 경기방송 박철의‘라디오 카페’의 한 청취자가 DJ와 제작진을 위해 특별 주문했다는 10인분짜리 팥빙수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 동네 사는 분들이 방송을 많이 들으세요. 가끔 이렇게 선물도 보내 주시고요. 언제든 와서 먹으라고 방송국 앞에까지 오셔서 미리 계산해 놓았다는데, 며칠을 벼르다가 오늘에서야 왔네요.”
‘라디오 카페’의 김현아 PD와 장혜진 작가, 박철과 기자가 다 먹기에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포장해 방송국으로 들려 보내는 박철의 표정이 좋아 보였다. 청취자의 사랑만큼 DJ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지역 라디오 방송의 위력을 짐작조차 못했는데, 의외로 생방송 도중 실시간으로 청취자가 보내는 문자가 수백 통이 넘을 만큼 열혈 청취자를 둔 알짜배기 방송이다.
‘철이 오빠, 오늘도 두 시간 동안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즐거운 식사 시간, 맛있게 드시고 남은 시간도 행복하세요. 충성! 안전운전 하시고 조심히 가세요.’
청취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에도 애정이 철철 넘친다.
그의 방송을 듣고 있으면 1998년 SBS 파워 FM ‘박철의 두시탈출’ 때가 떠오른다. 파격적이고 과감한 폭탄 발언으로 여러 차례 ‘방송 징계’를 받을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만큼 인기는 대단했다. ‘박철의 두시탈출’의 계보를 잇는 지금의 ‘두시탈출 컬투 쇼’와 비교하는 게 서운할 정도다.
박철이 생방송 중 “지금 마포대교에 있는 차량들 전조등 켜세요”라고 하면 마포대교 전체가 전조등 물결을 이뤘다는 전설 같은 실화도 전해진다. 청취율이 어마어마했으니까. 라디오 프로그램이 대박을 치면서 그를 찾는 방송도 많았다. 일주일에 출연하는 프로그램만 예닐곱 개가 넘었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박철의 두시탈출’은 2002년 갑작스럽게 DJ 박철이 퇴출된 후 새 DJ를 맞았다. 이후 박철은 2003년부터 경인방송 ‘두시폭탄’을 진행하며 방송사의 사활을 좌지우지할 만큼 ‘박철의 두시탈출’의 인기를 이어갔다. 그 뒤로도 TBS ‘박철의 4시 탈출’, 경기방송 ‘박철의 굿모닝 코리아’, KBS 해피 FM ‘박철의 대한민국 유행가’ 그리고 지금의 ‘라디오 카페’까지 방송국을 옮겨 갈 때마다 잠깐의 공백을 제외하면 16년간을 DJ로 살았다. 그래서 라디오는 그의 일상이나 다름없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그런 일상이 그를 힘들게 하던 때가 있었다.
“길 건너, 주차장 입구 보이시죠? 바로 저기였어요. 2008년이었죠. 그때도 경기방송에서 라디오를 진행했는데, 어느 날 방송국에서 나오다가 어떤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쳤어요. 아주머니는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죠. 눈이 마주쳤으니 당연히 인사를 했죠. 그런데 그분이 다짜고짜 ‘야!’ 하고 소리를 치더니 ‘너, 아이들 교육에 안 좋으니까 방송에 나오지 마!’ 하며 욕을 하는 거예요. 또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면 ‘속 좋다’고 해요. 이혼이다, 소송이다 그런 거 하면서 속 편하게 운동하고 있다고 비웃고요. 나는 속이 복잡해서 운동하면서 잊어보려는 건데…. 그런 일을 겪으면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됐던 것 같아요.”
박철은 2007년 전처인 옥소리와 이혼과 소송 공방을 치르면서 많은 상처를 끌어안았다. 그는 자신의 이력서에 ‘금이 갔다’고 표현했다. 모든 것이 떳떳하고 당당하던 그에게 이혼은, 그리고 또 그 과정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됐으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팬들의 실망, 그것이 유죄다
“제게 ‘박철의 두시탈출’ 녹음테이프가 있거든요. 그걸 전부 녹음해서 보내준 팬이 있었어요. 그걸 지금 들어보면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교만한지 몰라요. 겸손이라는 게 없는 거야. 아주 거침없이 했더라고요.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호해주고, 항상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때는 그런 배려가 적었던 것 같아요. 내 생각만 하고 정신없이 즐겁게만 산 거죠. 남들이 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내가 행복한 걸 너무 많이 표현해도 그게 죄가 되는 것 같아요. 미안한 거더라고요. 내가 행복해도 담담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삶을 과다하게 노출하고 행복을 과시해서 많은 시기를 산 것 같아요.”
그는 맹자의 말을 들어 ‘나에게서 나온 것은 언젠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심코 던지는 상처의 말들도 모두 자신에게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방송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 수많은 오해와 소문들. ‘진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항거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그런 오해의 소지를 만든 것도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쉬쉬하면서 조용히 (이혼)할 수도 있지만, 어떤 특이한 상황에서는 부끄러운 게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대중에게 오해의 소지를 준 건 나거든요. 내 탓인 거죠. 사람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아니, 그렇게 잘못 판단하게끔 내가 행동했다. 그게 배우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 사람이 아닌 것이 배우(俳優)다. 배우의 우도 벗 우(友)가 아니라 사람 인(人)에 근심 우(憂)를 쓴다. 그는 배우를 사람도 아닌 것이 근심을 잊게 만드는 존재라고 해석했다. 어떤 이유로든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배우는 팬들에게 죄인과 다름없다고 했다.
“나를 무형으로 유형으로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상처를 준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유죄예요. 그게 우리나라의 정서니까. ‘나는 죄가 없다’고 소리친들 뭐하겠어요. 이제 일반인으로 살아온 시절보다 배우로 살아온 삶이 더 긴데, 배우의 천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는 헌법에는 없는, 공인으로서의 죄목을 읊어나갔다. 행복을 너무 과시한 죄, 겸손하지 못한 죄, 팬들을 실망시킨 죄. 그래서 여전히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더 큰일을 치른 연예인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방송에 출연하지만 본인은 그게 안 되더란다.
“그래도 활동은 꾸준히 해왔어요. 라디오도 그렇고 ‘박철쇼’도 하고 케이블 방송에는 많이 출연했으니까. 그런데 아주 소극적이었죠. 이력서에 금이 가고 나니까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특히 청취자가 이성 간의 고민을 보내오면 아무 말도 못 하겠는 거야. 지금은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도 전혀 안 하잖아. 그런데 방송에서는 말을 많이 해야 돈을 주거든(웃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는 게 뻔뻔한 건 줄 알았는데, 뻔뻔한 거랑 당당한 거랑은 다른 거더라고. 당당하면서도 겸손해야 하는 거지. 그동안 혼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니까 깨달은 교훈을 외우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죠.”

가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돌아온 철이 오빠 박철

매주 화요일 방송되는 MBC 에브리원 ‘무작정 패밀리3’ 기자간담회에서 다시 만난 박철. 후덕하고 편안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던 박철.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이 커지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릴 때도 있었다.
“자살을 생각해봤죠.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분노였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지? 내 가족은 어떻게 되지? 그때 결국 내가 기댈 수 있는 가족이 보였어요. 그리고 그 기댈 수 있는 곳을 찾는 감각이 살아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 밤하늘이 깜깜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별 하나가 반짝이는 거예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 별이 무수히 많더라고요. 그게 내게는 희망이었던 거죠.”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가족은 그에게 튼튼한 울타리가 돼주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 하나밖에 없는 딸.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었다. 그리고 최근 결혼한 아내가 그가 기댈 가장 편안한 언덕이 돼주고 있다.
“아내는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대요. 단 한 번도.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같이 마음 아파하고, 많이 위로를 해줬어요. 부모님이 아내를 보고 웃는 방법을 어디서 배워온 것 같다고 하실 만큼 늘 웃고 긍정적이어서 그런 모습이 제게 힘이 되죠.”
그는 왜 장윤정의 ‘초혼’이라는 노래는 있는데, ‘재혼’ ‘삼혼’이라는 노래는 없냐고 진심 어린 농을 던진다. 재혼도, 삼혼도 아름다운 사랑일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요즘에는 재혼이라는 말 대신 ‘새혼’이라는 단어를 쓴다고도 했다.
2009년 처음 알게 된 지금의 아내. 그즈음 선을 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방을 만나기도 전에 ‘이혼’을 ‘흠’으로 받아들이는 시선과 맞닥트릴 때가 많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할 필요를 못 느꼈고, 또 그렇게 결혼한들 행복할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아내는 오히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그게 미국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처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더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해도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다독거려주셨으니까.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냥 유전이더라고요. 우리의 결혼이 화제가 되니까 신기해하기도 했어요. 미국에 살면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거의 안 봤더라고요. 저를 아예 몰랐어요. 가끔 사극을 본 적은 있어서 최수종씨는 알더만…(웃음).”
그는 아내에 대한 말을 되도록 아꼈다. 일반인인 아내를 지켜주고 싶은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연애하면서 혈액형을 물어봤더니, 그걸 왜 물어보냐고 의아해하더라고요. 개인 신상 정보인데, 그걸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데, 내가 연예인이라 많이 불편할 거예요.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내도 나를 많이 존중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아내의 신상은 보호해 주고 싶어요.”
그는 한참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아주 잽싼 속도로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이 참 예뻤다. 지난 6월 말, 두 사람은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의 한 결혼식장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치렀다. 으리으리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의 마음을 아내가 이해해준 것이다.
“많은 걸 이해해주는 친구예요. 공부도 많이 했고…. 주립대학교 출신인데, 제가 고졸인 것도 개의치 않거든요(웃음). 제가 서울예술대학에서 영구 제적을 받아서 졸업을 못했어요(웃음). 아~ 모르셨구나. 2년제 대학을 5년 다니고도 졸업을 못했어요. 뭐 복잡한 이윤데, 그때 다른 친구들은 다 복학하고 나만 못했거든요.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 영구 제적이라고 써달라고 했더니 이미지상 안 된다네(웃음). 어쨌건 그런 식이에요. 아내는 겉으로 보이는 걸로 저를 평가하지 않거든요. 돈도 많이 벌어올 필요가 없대요. 모든 여자들이 다 브랜드 가방 들고 싶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먹고만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그러니 내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죠.”

돌아온 철이 오빠 박철


다시 찾아든 행복
모든 걸 ‘잔잔하게’ 받아들인다는 그의 아내가 깐깐하게 따지고 드는 건 오로지 건강 하나뿐이란다.
“아내는 내 몸이 침대 같아서 좋대(웃음). 침대에 누운 줄 알았는데, 침대 위에 또 침대가 있더라는 거지(웃음). 내가 이거 다 근육이라고 빡빡 우기죠. 근데 건강을 생각해서 몸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죠. 지난 7년간 제 건강이 상당히 안 좋아졌거든요. 특히 혈관 계통으로 좀 좋지 않아요. 그래서 아내가 신경을 가장 많이 쓰죠.”
지금도 아내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데, 아내가 집에 있을 때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현관문만 열면 순식간에 사라질 만큼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문을 열면 웃으면서 ‘오~ 허니~’ 한단 말이에요. 그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기분이 편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닭살스럽겠지만 자연스럽게 ‘오~ 베이베’가 튀어나온다니까. 그걸 아이가 보고 배우더라고요. 우리 아이 성격이 원래 좀 세거든요. 날 닮았을 수도 있는데…. 요즘에는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두 사람의 결혼을 누구보다 축복하는 것은 그의 딸이다. 아빠가 홀로 딸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도 학교로 딸을 데리러 가야 해요. 학교가 집에서 좀 멀거든요. 여름학기 중인데, 보충 수업을 받고 있죠. 공부 때문에 아주 고민이 많아요. 아이는 토끼가 아니라서 밥만 잘 먹인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아주 면밀하게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야 하죠. 더욱이 이제 조금씩 여자가 될 나이니까 그 또래 아이들이 관심 갖는 분야가 있잖아요. 예쁜 옷도 입고 싶고, 예쁜 구두도 신고 싶을 테고…. 그런 걸 지금껏 제가 다 해왔는데, 속옷이나 여성 물품을 사야 할 때는 당혹스러울 때도 있거든요. 다른 남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런 걸 살 때마다 꼭 설명을 해야 하더라고요.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고…. 그걸 누군가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은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아내와 딸. 함께 공부도 하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는 아이가 아내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감동적이었고 했다.
“호칭 문제에 대해서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어요. 미국식으로 부르다 보니까 그냥 이름을 불렀는데, 그래도 내버려 뒀죠. 그런데 어느 날 ‘엄마’라고 부르더라고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게 울컥 올라오대요. 아이한테도, 아내한테도 정말 고마웠어요.”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4개월도 안 된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겼던 것이나, 카메라가 뭔지도 모를 나이에 아이를 세상 사람들의 시선 속에 던져 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제가 실수한 거죠. 그때는 카메라가 침실까지 들어오고, 해외로 여행 간 것도 다 방송에 나오고 그랬죠.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우리의 삶을 모두 공개하고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아이의 동의 없이 아이를 세상에 공개한다는 게 아주 위험한 일이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못 알아보면 서운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의 삶도, 아내의 삶도 보호받아야 할 독립적인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더욱이 그 또한 옷 잘 차려입고, 탤런트 티를 내며 사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데뷔 23년 차. 연예인처럼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정말 지겹도록 해봤어요. 그런데 아주 피곤하고 불편해. 내가 차려입고 살려면 내 주변 누군가가 불편해지는 거거든요. 나는 나도, 주변 사람들도 털털하고 편안한 게 좋아요. 지금 제 이미지도 그렇잖아요. 살이 빠지면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보인대요. 그냥 지금이 좋아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10년 만의 드라마
‘다음에 꼭 인터뷰해요.’ 골백 번은 들어봤음직한 이 약속을 지킨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10년 동안 인터뷰를 안 했다는 그가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 응한 유일한 이유가 ‘약속했으니까’였으니 기자도 그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그와 헤어지면서 했던 7월 30일 오후 6시에 첫 방송되는 ‘무작정 패밀리3’를 꼭 챙겨 보겠다는 약속. 물리적으로 도저히 본방 사수가 불가능한지라 며칠 후 방영된 재방송을 챙겨 봤다.
2003년 MBC 일요 아침드라마 ‘기쁜 소식’이 그가 지상파에 출연했던 마지막 작품이었다. 2010년 한국경제 TV에서 ‘김과장·이대리’로 짧은 시트콤에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그에게 ‘무작정 패밀리3’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드라마 촬영은 시간이 참 오래 걸려요. 품도 많이 들고요. 2002년 대선 이후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많이 힘들었어요. 사실 돈 버는 데 급급했죠.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드라마보다는 쇼 프로그램을 많이 찾게 됐고요. 또 라디오도 일종의 연극이거든요. 데일리 모노드라마죠. 배우들이 연극에 한번 빠져들면 못 헤어나오는데, 저도 라디오라는 연극에 빠져든 거예요. 그래서 드라마보다 쇼나 라디오 방송을 더 많이 했죠. 그런데 이제는 다시 드라마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제 이야기가 아닌 주어진 대본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10년 만에 만난 드라마 속 박철. 방송 장면 중 박철이 조혜련을 피해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며 조혜련이 “옛날 거야, 너무 옛날 거야” 하던 애드리브가 빈말은 아니었다. 시트콤 웃음 코드만 치자면 아직 몸이 덜 풀린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질하고 능력 없는 가장으로 완벽하게 빙의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만난 박철은 ‘열심히 사는 남자’였는데 ‘무작정 패밀리3’의 박철을 보고나면 게으르고 무능력한 모습이 더 진실처럼 느껴지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서너 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 시간 동안 그는 갑자기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눈빛이 번쩍일 때가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그리고 다시 시작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를 때마다 어김없이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랜 인생 공부 끝에 다시 드라마로 돌아온 그에게 열정의 전류가 막힘없이 흘러, 원조 꽃남 ‘철이 오빠’가 멋지게 부활하기를 바란다.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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