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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With specialist | 김선영의 TV 읽기

결혼은 여자의 굴레인가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SBS 제공

입력 2013.09.04 11:07:00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은 여러모로 10여 년 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작품 ‘불꽃’을 연상시킨다. 유사성 논란보다 중요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은 여성과 결혼 제도에 따른 갈등이다.
결혼은 여자의 굴레인가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의 주인공 지혜(남상미)는 재벌 2세 태욱(김지훈)과의 결혼을 앞두고 여행지에서 운명처럼 마주친 현우(이상우)와 사랑에 빠진다. 갈등하다 태욱을 선택한 지혜는 이후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이 같은 이야기는 2000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SBS ‘불꽃’의 줄거리와 흡사하다. ‘불꽃’ 역시 주인공 지현(이영애)이 재벌 후계자 종혁(차인표)과 약혼한 상태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강욱(이경영)과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고 끝내는 종혁과의 결혼 생활마저 파탄에 이르는 내용을 그렸다.
하지만 두 작품의 유사성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표절 여부가 아니다. 그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여성과 결혼제도에 따른 갈등일 것이다. 두 작품에서 지혜와 지현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 성격을 띤다. 첫째는 미혼 시절 결혼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고민이고, 두 번째는 결혼 뒤 소위 ‘시월드’라 불리는 시댁과의 대립이다.
두 작품은 지혜와 지현처럼 똑똑한 전문직 여성들도 결혼 앞에서는 진취적이기보다 안정이라는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결혼의 여신’에서 지혜가 지선(조민수)에게 던진 “결혼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 게 맞을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 게 맞을까”라는 물음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질문이다. “하나만 고르라면 나를 사랑하는 남자하고 하는 게 좋다”는 지선의 말 역시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대답이다. 청혼의 주체가 대개 남성이듯, 결혼에서 남성의 의지와 결정권이 여성의 그것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건 감출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결혼이 ‘시집간다’는 말과 동의어인 것처럼,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여전히 결혼에 의해 지배됨을 두 작품은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실은 두 번째 유형의 갈등에서 더 잘 드러난다. 지혜와 지현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고된 시집살이에서 비롯된다. 두 작품은 이 갈등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극도로 보수적인 재벌가를 배경으로 선택했다. 두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시댁의 관습에 따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가사 노동에 시달리고 시부모와 남편을 공경하는 것을 제일의 의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평범한 서민 가정과 재벌 간의 계급적 위계가 곧 남녀 간의 젠더 위계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렇듯 ‘결혼의 여신’과 ‘불꽃’은 스토리의 유사성보다도 여성의 삶을 제한하는 결혼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결혼의 여신’은 지혜의 이야기로 ‘불꽃’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 또 다른 세 여성의 결혼 이야기로 그 문제의식을 좀 더 확장하려 한다. 직장 생활과 주부의 삶을 힘들게 병행하는 지선의 이야기에서는 워킹맘의 고충이, 남편에게 헌신하다가 무시당하고 배신당하는 은희(장영남)의 모습에는 전업주부에 대한 폄하의 시선이, 바바라 월터스 같은 언론인을 꿈꾸다 재벌가 며느리라는 신분 상승의 길을 선택한 혜정(이태란)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야망 실현과 사회적 성공이 요원한 현실이 드러난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성과 가부장적 사회와의 불화에 있다. 결혼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결혼의 여신’이 결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라는 것은 오해다. 그보다는 다양한 가치관과 직업을 지닌 개성적 존재에서, 결혼과 함께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제한된 존재에 머물게 되는 네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기혼 여성의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감상할 때 이 드라마는 더 흥미로워진다. 그래서 결말이 궁금하다. ‘불꽃’의 지현을 포함해 기혼 여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많은 문제작에서 주인공들은 이혼이나 독립으로 시스템을 탈출하는 ‘인형의 집’ 노라의 후예들에 가까웠다. 네 명의 ‘결혼의 여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보여줄까.

결혼은 여자의 굴레인가


김선영은…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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