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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익산·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

느릿느릿 걸어도 치유되는 길

글·권이지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2013. 09. 03

마음을 맑게 해주는 명상법으로 좌선(坐禪)을 먼저 떠올리지만, 여기에는 ‘행선(行禪)’도 있다. 발에 의식을 집중해 천천히 걸으면 마음이 맑아진다고 한다. 올가을에는 느릿느릿 순례길을 한번 걸어보자. 걸을수록 마음은 비우고 추억은 채우는 그 길을 말이다.

익산·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

순례길 6코스에 속하는 금산사 뒷길. ‘아름다운 순례길’은 강둑, 산, 마을을 돌아 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가톨릭 순례자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은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어느덧 종교를 넘어선 순례길이 됐다. 이 길은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도보 여행가 김남희 씨가 걸어서 우리에게도 알려졌다. 800km에 달하는 이 길을 사람들은 어리면 어린 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발에 물집이 잡혀가며 걷는다.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끝까지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결국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대화할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전라북도에서는 4가지 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전주, 완주, 익산, 김제 지역에 ‘아름다운 순례길’을 만들었다. 이 길은 특정 종교의 성지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간 경계를 넘어 소통과 상생을 추구하기 위해서 닦아놓았다. 총길이 240km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1코스부터 9코스까지 자연, 역사, 문화, 종교적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더위가 한풀 꺾여 걷기 좋은 가을, 이 길을 모두 걸어보면 좋겠지만 바쁜 삶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내기는 어렵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2박 3일 동안 ‘아름다운 순례길’을 상징하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마음까지 다스릴 수 있는 곳을 엄선했다.

Theme 01 | 4가지 종교와 함께 걷는 길

익산·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


김대건 신부가 첫발 디딘 축복의 땅 나바위성당
전북 익산 화산리에 위치한 나바위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가장 먼저 발을 디딘 땅이다. 이후 건립된 나바위성당은 1897년 초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1906년 신축 공사를 시작해 1907년에 완공했다. 그 뒤 10년 만에 흙벽은 양식 벽돌로 새로 세우고, 용마루 부분 종탑도 성당 입구에 벽돌을 붙여 신축했다.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았고, 목수 일은 중국인들이 했으며, 건축 양식은 명동성당과 달리 전통 한옥의 모양을 취했다. 그 때문인지 나바위성당에는 세 가지 문화가 혼재돼 있다. 성당 내부에는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의 좌석을 구분하려고 세운 칸막이 기둥이 남아 있다. 찾아가는 길 :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

익산·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

1 독특한 생김의 나바위성당. 뾰족한 첨탑은 유럽 고딕 양식, 기와는 한옥, 기와 아래 팔각 창문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2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금산사 대적광전. 금산사를 유명케 한 3층 높이의 미륵전은 현재 보존 공사 중이다. 3 ‘ㄱ’자 모양의 한옥으로 지은 금산교회는 유교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혼재된 1900년대를 보여준다.





미륵신앙의 성지 금산사
모악산 도립공원 아래 자리 잡은 금산사는 71개 말사를 거느리는 조계종 제17교구 본사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 가섭불을 모셨던 절터에 중창한 것으로 처음 문을 연 것은 백제 시대로 추정된다. 자세한 기록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돼 알 수 없다. 통일신라 진표 율사 때부터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미륵신앙이란 말세를 구제하러 미륵이 이 땅에 내려오기를 바라는 구세주 신앙이다. 절의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륵전은 3층 건물로 대자보전, 용자지회,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모두 미륵불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대적광전 사이 뒤편에는 방등계단이 있다. 방등계단은 계율의 정신이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의미를 지녔다. 자신을 미륵이라 칭했던 후백제의 견훤이 유폐됐던 절이기도 하다. 찾아가는 길 :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교회에서도 남녀칠세부동석 금산교회
1908년 지어진 한옥 교회인 김제의 금산교회는 익산의 두동교회와 마찬가지로 ㄱ자 형태다. 이는 한국 교회 초창기 모습으로 당시 유교 사회의 예법이었던 ‘남녀칠세부동석’을 지키기 위해서다. 여자석 쪽에는 가림막을 쳐 여자 신도들은 남자 신도들과 목사의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었다고 한다. 남자석에는 한문, 여자석에는 한글로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던 점도 독특하다. 예배당의 만질만질한 나무 바닥은 한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음을 보여준다. 한옥 건물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교회 앞 오래된 종탑도 변함없이 제 목소리를 낸다. 찾아가는 길 :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0-1

원불교 교리가 세상으로 퍼져나간 곳 익산성지
익산성지는 원불교 중앙총부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법을 전한 곳이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20여 년의 구도 끝에 1916년 4월 28일 깨달음을 얻은 후 원불교를 창시했다. 원기 4(1919)년 말부터 부안 변산에서 교법을 제정하고 창립 인연들을 결속한 뒤 원기 9(1924)년 창립 준비를 논의했다. 그해 6월 1일 전북 익산(당시 이리)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 총회를 열어 임시 교명으로 회상을 대내외에 공개하고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현 위치에 총부를 건설했다. 이곳에는 당시 예회, 대중 모임, 훈련, 공동 생활 등의 목적으로 세웠던 도치원, 공회당, 종법실, 대각전 등과 초창기 선진들의 사가가 있다. 교단을 주재하는 종법사를 비롯해 원불교의 교화, 행정, 교육, 문화, 복지, 산업의 중심 기관이 있는 교단의 심장부다. 찾아가는 길 : 전북 익산시 신룡동 344-2

익산·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

1 원불교 익산성지 입구. 2 익산성지 내에는 역사가 담긴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혼재돼 있다.



Theme 02 | 역사와 함께 걷는 길

익산·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


영광의 흔적 안고 스러진 미륵사지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에 의해 창건됐다. ‘삼국유사’ 무왕조에 따르면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던 중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 삼존이 출현했다. 이를 보고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무왕은 연못을 메운 후 법당과 탑, 회랑을 각각 세 곳에 세운 뒤 미륵사라 칭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17세기경 폐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2만여 점에 이른다. 대부분 기와와 토기, 자기로 이뤄져 있다. 창건 당시의 벽화 조각 및 녹유 연목 기와·막새·토기부터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조각·석등, 고려 시대 청동 제품, 조선 시대의 막새와 평기와까지 백제에서 조선에 이르는 기간의 유물이 출토됐다.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 역시 이곳에 있다. 찾아가는 길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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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례길 인근에 위치한 익산 웅포면 곰개나루에서 만난 낙조. 금강 아래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4 왕궁리 유적에 위치한 오층석탑. 5 왕궁리 유적전시관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다양한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백제 무왕의 꿈이 어린 왕궁리 유적
금마산에서 남으로 약 3km쯤 떨어진 전주행 국도변에 위치한 왕궁리 유적은 발굴 조사 결과 백제 무왕에 의해 천도 혹은 별도지로 운영된 궁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 결과에 따르면 남북의 길이는 약 450m, 동서의 폭이 약 230m로 반듯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궁성 내는 정무 공간, 생활 공간, 후원 공간(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이 과거 궁이었던 증거로 ‘수부(수도를 뜻하는 말)’라고 명기된 기와(인장와), 유리 및 금 제품 등의 출토를 들 수 있다. 왕궁리 유적에는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 유적전시관이 있다. 찾아가는 길 :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 80-1

일제 수탈의 역사와 아픔의 현장 춘포
처음에는 ‘대장(大場)’이라는 이름으로 익산과 전주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 역으로 시작한 춘포역은 1914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간이역이다. 당시 곡창지대였던 이곳에 농장이 세워지면서 이주해온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역이다. 즉, 춘포역은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으로 실어가고, 또 농사를 짓기 위해 각종 물자를 실어온 수탈의 역사 현장이다. 1996년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춘포역으로 이름을 바꿨고 전라선 복선화 공사로 고가 철도가 건설된 이후 폐쇄됐다. 인근 지역에 호소가와 농장 옛 터가 있는데, 이곳 주인은 전 일본 총리 호소가와 모리히로의 아버지였다. 농장 주인이 일본인 마름에게 내린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문화재로 지정돼 현재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된 정미소 건물도 남아 있다. 찾아가는 길 : 전북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 508(춘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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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제 수탈 역사의 시발점이 된 춘포역. 기차가 오가지 않아 적막이 감돈다. 7 춘포역 인근에 위치한 구 일본인 농장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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