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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 중국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 황금돼지띠의 부메랑

글&사진·이수진 중국 통신원

2013. 09. 02

중국에서는 요즘 9월 입학을 앞두고 “좋은 초등학교 보내기가 가오카오(대학입시)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평년보다 많은 아이들이 몰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바로 2007년 태어난 황금돼지띠들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 황금돼지띠의 부메랑


중국은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주요 이벤트에서 사주팔자와 풍수를 많이 고려한다. 집을 산다거나 이사를 할 때도 역학자의 조언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 양, 쥐 등 초식동물의 띠에 태어나면 자라서 풍족한 생활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여기는 반면 돼지, 호랑이, 용 등은 부의 상징이라 여겨 굉장히 선호한다.
특히 2007년은 돼지띠 가운데서도 재물복이 있는 황금돼지띠라 해서 출산 붐이 일었다. 통계에 따르면 그해 중국의 출생 인구는 1천5백94만 명으로 전년에 비해 10만 명이 증가했다. 2007년에 태어난 이 황금돼지띠들이 9월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맞아 전쟁을 치르고 있다.
황금돼지띠 아들을 둔 광저우 시의 장잉 씨는 2년 전 유명한 공립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려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여기저기 청탁을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립 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다. 유치원 때 실패를 교훈 삼아 초등학교만큼은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온 가족이 나섰다. 3곳의 성급, 시급 중점학교를 후보로 놓고 저울질하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시급 중점학교 한 곳을 목표로 4월부터 정보 수집과 인맥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씨 가족은 학비와 별도로 7만 위안(한화 약 1천2백70만원) 정도의 활동 비용도 각오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 황금돼지띠의 부메랑

초등학교 입학 원서를 내기 위해 밤새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중국의 부모들.



이 과정에서 장씨는 황금돼지띠의 경쟁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학교의 비공식적인 찬조금, 타 지역 학생들에게 부과되는 특별비용, 알음알음으로 힘써줄 사람을 찾느라 들어가는 소개비 등이 일제히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저우 시의 경우 2007년 광저우 호적 신생아가 전년 대비 8천 명, 광저우에서 태어난 타 지역 호적 유동 인구 신생아는 전년 대비 1만7천 명이나 많았다. 지역을 막론하고 해마다 명문학교 문턱이 높아지자 입학 2~3년 전부터 명문교 배정이 가능한 학교 부근의 집을 구입해 일찌감치 이사 가는 극성 부모들 때문에 집값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 오래다.
태어날 때부터 산부인과 침상을 다투던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 입학 경쟁을 시작으로 중·고교 진학, 대학 입시, 그리고 취직과 결혼 등 인생 고비마다 이어질 치열한 경쟁대오에 들어 선 것이다.
내년에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에 태어난 올림픽 베이비, 그 다음에는 2011년 흑룡띠 베이비붐에 태어난 아이들이 또 새로운 경쟁의 열차에 오르기 위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 경쟁 또 경쟁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통상 ‘13억+알파(α)’라 말하는 인구를 그저 통계상 수치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지금도 5년 전 중국에서의 첫 여행 때 기억이 생생하다. 국경절 연휴 중국 오악(五岳)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화산을 찾았을 때 일이다. 케이블카 5분을 타기 위해 5시간 30분 동안 줄을 서면서 ‘인산인해’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국경절에 여행을 가면 볼 수 있는 것은 앞사람 뒤통수뿐”이라던 중국 친구의 충고를 떠올리며 ‘차라리 그냥 산을 걸어 올라갈걸’ 하고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관광지에서는 그나마 줄을 서서 기다리면 언젠가 입장할 수 있다지만 입학, 취업 등 정원이 정해져 있는 일은 그렇지 않다. 한 중국 친구는 “중국에서의 출생은 태어나자마자 만원버스에 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앉을 자리는커녕 서서 가기도 벅차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중국의 시내버스에는 ‘0.125㎡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별도의 운임을 내야 한다’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이 말은 버스 요금을 내고 공식적으로 점유 가능한 자리는 0.125㎡, 즉 1㎡에 8명이라는 얘기다. 처음에는 주어진 공간이 너무 좁은 것이 놀랍고, 짐 좀 들었다고 추가 요금을 내라니 너무 야박한 소리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왕복 2~3시간 거리 사무실로 출퇴근하면서 내릴 수도 없고 탈 수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만원버스에 자기 몸의 2~3배 짐을 지고 비집고 오르는 승객들을 경험하면서 왜 그런 안내문이 붙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대중교통 수단도 비슷하다. 최근 베이징 시에서 지하철 설계 규범을 발표했는데 지하철 객실 ㎡당 수용 인원은 5명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이 실제 상황과 얼마나 동떨어진 이야기인지는 지하철을 몇 번만 타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묘지로 쓰일 땅이 부족해 묘지 비용이 급등하자 죽는 것도 쉽지 않다는 농담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되는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라 해도 무방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 황금돼지띠의 부메랑

풍수, 사주 등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아이를 낳을 때도 호랑이, 용, 돼지 띠 등을 선호해 이런 해에는 출산률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중국에서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문제에 대해 주변 지인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바로 “런 타이 (人太多·사람이 너무 많다)”다. 처음에는 문제를 회피하는 동문서답처럼 느껴졌는데 중국에서 5년째 살고 있는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실제로 유치원 입학난, 병원난부터 잠깐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끼어드는 새치기, 모든 것이 인맥으로 통하는 문화, 교통신호와 무관하게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면 떼를 지어 길을 건너는 ‘중국식 길 건너기’ 관습까지 많은 중국적 현상의 배후에는 큰 땅덩어리, 그리고 너무 많은 인구가 있다.
많은 인구 속에서 더욱 치열하기 마련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특유의 사회적 DNA로 각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난은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에 사는 중국인들의 치열한 경쟁 환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를 거쳐 CJ 중국법인 대외협력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중 2, 중 1 두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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