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임신부들은 똑똑하다. 병원에 오기 전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를 섭렵한 뒤 인터넷에서 좋다고 찍어주는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정말 그 의사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슬쩍 시험 삼아 질문하고, 자신과 궁합이 맞는 의사인지 아닌지 가늠해본다. 그 단계에서 믿을 만하다 싶으면 일단 진료를 보고 나와 미리 조회한 진료비와 실제 본인이 지불하게 된 진료비를 꼼꼼히 비교하고 외래·접수·수납 직원들 관상까지 봐가며 병원을 고른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임신을 하면 정기검진에서 분만 후 한 달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초음파실, 수술실, 분만실, 마취, 채혈, 병동, 신생아실 담당 의사와 간호사들, 심지어 주차관리원과 청소·식당 담당자까지 수십 번의 만남에서 흠이 하나라도 잡히면 바로 병원을 바꿔버린다.
하지만 때로는 아는 게 병이 된다. 특히 질병과 병원에 관한 인터넷 정보는 반만 믿는 게 좋다. 대표적으로 임산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굴욕 3종 세트’를 보자. 첫째 제모. 출산 시 회음 절개를 하게 되는 질구 아래 일부를 제모해야 하는데 ‘굴욕’이라 부르며 호들갑을 떤다. 미용 목적의 비키니 왁스나 겨드랑이 레이저 제모는 돈 들여 하면서 분만 시 제모는 죽어도 안 하겠다고 버티는 산모 앞에서 의사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관장. 산모는 진통 마지막 순간 배변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한다. 만약 관장을 안 하면 그 과정에서 실제 대변이 나올 수도 있어, 산모가 당황해서 힘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또 산도 바로 뒤에 있는 직장을 비워줘야 아기의 머리가 더 쉽게 내려온다. 산모가 관장을 안 해서 배에 힘을 줄 때마다 배설물이 나오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아기는 엄마의 항문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채 세상에 나오는데 이때 엄마 배설물이 아기의 코나 입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것이 더 큰 굴욕 아닌가.
마지막 회음 절개. 소위 많이 배웠다고 자부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외국에서 분만 경험이 있는 산모일수록 분만 시 회음 절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출산 경험이 있는 산모 가운데 아기가 크지 않고 골반이 넓고 회음부의 신축성이 좋으면 회음 절개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임신 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던 초산모가 골반마저 좁고 아기 머리 크기는 평균 이상이라면, 회음 절개를 안 하고 분만하는 건 엄청난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다. 수십 개로 조각난 회음의 자연 열상을 봉합해야 하는 의사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분만 후 자연 열상이 일어난 회음 부위는 의사가 봉합해줄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골반근이나 근막, 인대 파열은 봉합할 수 없다. 그래서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추후 심한 요실금, 변실금 등이 생기거나 간혹 요도와 질 사이에 난 미세 균열이 누공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과거 집에서 자연분만으로 자식을 7~10명씩 낳은 어머니들 상당수가 요실금, 변실금, 자궁탈출증 등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밖에도 임신 초기 질식 초음파를 꺼려 하다 자궁외임신된 나팔관이 복강 내에서 완전 파열돼 심한 복강내 출혈이 일어난 뒤에야 응급실을 찾은 환자, 배란일을 잘못 계산해준 앱에 의존해 1년 이상 엉뚱한 날짜에 임신 시도를 해온 환자, 아들을 낳겠다고 하루에 50알 이상 칼슘제를 들이켜다 콩팥에 돌이 생긴 환자 등등. 이들이 조금만 일찍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났더라면 응급수혈이나 나팔관 절제를 하지 않아도 됐고,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느라 마음 고생할 필요도 없이 지금쯤 아이 돌잔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인터넷 정보로 무장한 뒤 진료실에서 의사와 퀴즈 게임을 하려는 임신부들에게 충고한다. 인터넷이란 정보 창고에서 옥석을 가리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라고. 그리고 “인터넷으로 선택한 병원, 나중에 인터넷에 불평을 올리게 된다”는 말도 꼭 해준다.
이용주 아란태산부인과 소아과의원 원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5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직장맘이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밤낮으로 새 생명을 받으며, 올바른 산부인과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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