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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양쌤의 아이 맘 클리닉

요즘 대세 딸바보, 과연 좋기만 할까?

글·양소영 | 사진·REX 제공

2013. 08. 07

딸바보, 아들바보라 불릴 정도로 자상한 아빠가 늘어나는 이면에는 자녀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아빠도 있다. 자기 연민의 일환으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요즘 대세 딸바보, 과연 좋기만 할까?


“골프 좋아하는 사람이 매일 연습장 간다고 뭐라 하는 사람 없잖아요. 저는 제 아들을 보러 다니는 게 취미예요. 그래서 학교에 하루 3번씩 찾아가곤 해요. 아들 학교와 제 직장이 도보로 5분 거리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제가 가면 아들 친구들이 ‘와~ 유민이 아빠 왔다!’ 하고 부러워하고 아들도 좋아했는데, 2학년이 되면서부턴 예전처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그만 왔으면 하는 것 같네요.”
훤칠한 외모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아들 유민을 데리고 상담소를 찾아왔다. 아들이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한다는 것. 더 이상 자세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상담전문가가 선입견을 갖고 아들을 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란다. 유민이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상담 절차대로 놀이치료만 진행해달라고 했다. 대기실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듯했다.
요즘 자녀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아들바보, 딸바보 아빠가 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자기 연민의 일환으로 자녀에게 집착하는 아빠도 있다. 자기 연민이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의존 욕구가 강해서 약해진 자아를 강화시켜줄 수 있는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헤매고 그 대상을 만나면 조종하려 든다. 이때 눈앞에 나타난 것이 ‘자식’이다. ‘또 다른 나’인 자녀를 통해 내가 갖고 싶었던 것(돈, 권력, 지위, 학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자녀를 보면서 자기 연민을 느끼는 부모는 자녀를 통해서 자아 이상을 추구하므로 자녀의 “힘들어” “괴로워” “아빠, 이제 학교 그만 오면 좋겠어”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의 욕망 실현을 위한 도구일 뿐이어서, 그 도구가 나타내는 감정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민은 이렇게 아빠와 소통이 단절되면서 이상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자기 연민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하는 정서 반응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행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자기 연민에 빠지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가장 무서운 수위는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기 연민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외모와 행동은 평범하고 건전하다. 그렇지만 도덕적인 부분에서는 어려움을 겪는다. 보통 30분 정도 대화하면 조금은 눈치챌 수 있다. 아주 높은 수준의 교묘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무엇보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나 주위 환경과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인식을 하기 어렵다. 그런 부분을 인식하기에는 이미 자신의 불쌍함이 절대적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 연민은 삶의 무기가 되고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자녀의 고통에 마음 여는 부모 돼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빠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이들에겐 어떤 부모인지 돌아보고 그 후엔 자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 ‘가장 합리적인 가치 기준’을 만들고 부모 자신과 아이 모두에게 알맞도록 맞춰가야 한다.
합리적인 가치 기준이란 아빠의 성격과 자녀의 특성이 모두 조화롭게 반영된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가 잘나서도, 인성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여주고, 똥을 싸면 닦아주던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녀에겐 부모의 사랑을 잃는 것이 큰 고통이다. 부모의 사랑을 잃지 않으려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조건부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더 사랑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을 거두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부모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식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관념이기도 하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도구로 자녀를 이용한다고 하면 스스로 정당성을 잃게 되고 남들도 비난할 것이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나는 내 자식을 사랑해!”라고 소리친다. 하나를 감추려고 다른 하나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일 수 있다. 자식 또한 부모가 ‘나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겠지’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쉽게 저항하지 못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는 부모가 되기보다, 자녀를 사랑하기 위해 자녀의 고통에 마음을 열 수 있는 부모가 돼야 한다.

양소영 선생님은…
아동·청소년 상담 전문가. ‘청개구리 초등 심리학’저자. 네그루심리상담연구소장.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도와주면 어른이든 아이든 스스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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