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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fe in Hokkaido

세계자연유산이 된 시레토코 원시림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2013. 08. 02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자연유산, 문화유산, 문화와 자연이 복합된 것. 이 가운데 자연환경을 잘 보존한 1백60여 곳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받았는데, 일본에는 4곳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시레토코(知床)로, 2005년 일본에서는 세 번째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시레토코 원시림

1 ‘일본의 농촌경관 1백 선’에 뽑힌 기요사토의 전경. 사진·기요사토 초 제공.



홋카이도 지도를 보면 동쪽 끝에 위쪽 오호츠크 해와 아래쪽 태평양을 구분 짓듯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이 바로 시레토코다. 일본 사람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나 역시 시레토코는 홋카이도 기행 가운데 최장거리 코스의 여행이었다. 나요로 시에서 시레토코까지는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7~8시간이 걸리고, 삿포로에서는 비행기로 메만베쓰(女滿別) 시까지 가서 다시 자동차로 한두 시간 더 달려야 나온다. 이처럼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이기에 지금까지 원시 자연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레토코까지는 멀고 먼 여정이었지만, 항상 그렇듯 목적지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여행이라 생각하기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시레토코 인근 기요사토(淸里) 출신인 직장동료 이에무라 씨가 함께 여행 계획을 짜고 동행까지 해줘서 잘 맞춰진 퍼즐처럼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시레토코 원시림

2 바다에서 바라본 시레토코.



비 오늘 날의 수채화 같은 풍경
첫날 우리는 오호츠크 해를 따라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겨울에는 러시아에서 떠내려오는 유빙이 장관을 이루고, 여름에는 형형색색 원생식물들이 바다와 어우러져 비 오는 날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지역이다. 집을 나선 뒤 자동차로 한 시간쯤 달리자 오호츠크 해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부터는 왼편으로 바닷가를 곁눈질하면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가는 도중에 산호초가 있는 바닷가 언덕 위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을 구경했다.
이렇게 동진(東進)을 거듭해 우리는 오후에 접어들 즈음 시레토코 반도의 산록에 자리한 마을 기요사토 초(淸里町)에 도착했다. 기요사토는 ‘일본의 명산 1백 선’에 뽑힌 샤리다케(斜里岳)를 배경 삼아 넓게 감자밭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기요사토 역시 ‘일본의 농촌경관 1백 선’ 중 하나다. 참고로 홋카이도 내에는 샤리다케와 리시리후지(利尻富士) 두 군데가 일본의 명산 1백 선에 뽑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구름이 샤리다케를 감싸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구름 낀 샤리다케와 흑갈색 감자밭의 아름다운 풍경에 그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기요사토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청사로 안내받아, 한국으로 치면 면장쯤 되는 마을 대표와 관계자들을 만났다. 마을 대표는 시레토코 국립공원, 아칸(阿寒) 국립공원, 아바시리(網走) 국정공원, 샤리다케 도립자연공원이 위치한 기요사토의 매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고는 산란을 위해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이 장관이니 숲 속 강에 꼭 가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홋카이도 지자체들의 관광객 유치에 대한 열정은 남다른 데가 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사를 나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연못인 가미노코코(神の子湖)였다. 깊은 숲 속에 있어 그동안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연못은,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저녁뉴스를 통해 그 신비한 정경이 생방송되면서 일약 유명 관광지가 됐다. 이곳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투명한 코발트빛 연못에 감탄을 연발한다. 연못이 워낙 투명해서 육안으로 보면 얕은 것 같지만 실제 깊이는 5m나 된다고 한다.
이어서 마을 대표가 적극 추천한 연어들의 산란 쇼를 보러 강으로 갔다. 아직 본격적인 산란기가 아니었지만 이미 연어들이 두세 마리씩 짝을 지어 어림잡아 2m가량 되는 높이의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연어의 사투에도 아랑곳없이 폭포는 굉음을 울리며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도전이지만, 오직 후손을 남기려고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헤엄쳐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들에게 그 폭포는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마지막 장벽이었다. 이 무모한 도전 뒤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연어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의 사투를 ‘쇼’로 즐기려는 인간의 무심함이 안타까워 한참 동안 연어의 몸부림을 지켜보았다.
폭포에서 천연 음이온을 마음껏 섭취한 뒤, 감자소주로 각광받는 기요사토 직영의 감자소주공장에 들렀다. 일본에서 투명도 1위를 차지할 만큼 깨끗한 물과 혹한의 기후를 견뎌낸 비옥한 대지에서 생산된 감자로 만든 소주여서 그런지 뒷맛이 깔끔하다. 감자소주가 탄생한 배경을 듣고 시음을 한 뒤 역시 기요사토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는 온천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곳 온천수는 성분이 좋을 뿐 아니라 24시간 흐르는 물을 사용해 홋카이도 내 온천 가운데서도 특히 청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거리를 달려온 여행자들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시레토코 원시림

3 시레토코 8경 가운데 하나인 오신코신 폭포. 4 코발트빛으로 물든 신비의 연못 가미노코코.





세계자연유산 만들어 낸 시레토코 주민들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시레토코로 향했다. 감자밭과 잘 정돈된 방풍림이 연출하는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고, 도중에 박물관에 들러 시레토코의 자연과 그 안에서 서식하는 각종 동식물과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현재 시레토코에서는 주민들이 중심이 돼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도록 과학적이면서 실천적인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준비 사무실은 시내의 창고 같은 건물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작은 이랬다. 1964년 시레토코가 원시적 자연을 간직한 곳이라는 평가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자 일본 전역의 주목을 받게 됐다.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당시 불어닥친 ‘일본 열도 개조론’에 의한 땅 투기 붐이 이곳까지 밀려와 순식간에 100ha에 이르는 옛 개척지가 부동산업자들 손에 넘어갔다.
샤리 마을 주민들은 부동산업자들의 마구잡이식 매수가 난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고, 마을 대표를 중심으로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착안해 1977년 ‘시레토코 100평방미터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부동산업자에게 넘어간 땅을 재매입하고 나무를 심을 비용 등 자금을 마련하려고 모금운동에 나섰다. 곧 자연보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매스컴의 호응 속에 전국적으로 기부금이 답지했다. 1987년에는 이 운동 참가자의 이름을 영원히 기리고 운동을 더욱 확산하기 위해 ‘시레토코 100평방미터 운동하우스’도 건립했다. 드디어 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1997년 3월, 전국에서 연인원 약 4만5천 명에 달하는 참가자가 5억2천만 엔을 모금하면서 목표 금액을 초과 달성했다. 이를 계기로 보전된 시레토코의 토지는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도록 조례를 제정하고, 영구히 숲을 지켜나갈 것을 명시했다. 이 운동은 현재 ‘시레토코 100평방미터 운동의 숲·트러스트’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레토코에서 펼쳐진 이러한 자연보호운동은 일본의 환경보호운동사에서도 획기적인 일로, 이후 일본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수많은 시찰단 및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처럼 지역 주민이 주축이 된 시레토코의 환경보호운동이 지금의 세계자연유산 시레토코를 만든 셈이다.
그러나 시레토코의 자연보호운동은 한때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역민이 원시림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로 그 옆에서 정부가 국유림 벌채를 계획했던 것. 실제로 1987년 봄 임야청이 벌채를 강행하려다가 주민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결국 무릎을 꿇고, 벌채 예정지를 포함한 시레토코의 국유림을 삼림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힘입어 환경청과 홋카이도 도가 앞장서 국립공원 내 사유지를 적극적으로 매입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시레토코 원시림

1 멀리 바다에서 촬영한 시레토코의 곰 히구마. 2 호숫가에서 포착된 사슴.



원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대학원대학 설립 추진
오늘날 시레토코는 행복한 고민 한 가지를 안고 있다. 우거진 숲이 동물들 천국으로 변한 것. 예전에는 인기척만 나도 도망가던 동물들이 이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사람을 위협하거나 농산물에 피해를 주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특히 사슴 숫자가 너무 늘어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고 한다. 감소와 절멸을 걱정하던 상황이 역전됐으니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환경을 과학적으로 관리·운용하고 연구를 전담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데 주민들의 의견이 모아졌고, 이를 위해 대학원대학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학원대학 설립 추진은 1천여 개 객실을 보유한 시레토코다이이치호텔의 우에노 회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에노 회장을 만나러 호텔로 향했다. 바닷가를 따라 얼마간 달리자 오른편에 하얀 물줄기가 부지런히 흘러내리는 폭포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레토코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신코신 폭포였다. 잠시 머물면서 하늘과 맞닿은 폭포 끝을 올려다보지만, 어디서 저렇게 많은 물이 흘러내려오는지 근원을 알 수 없었다. 시레토코의 속살이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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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레토코에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 중인 우에노 시레토코다이이치호텔 회장.



우에노 회장은 “ 인간이 더 이상 파괴하기 전에 자연을 지키기 위한 교육과 연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양의 합리주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긴 안목으로 대학원대학의 설립을 추진해나갈 것이라는 결의를 다시금 피력했다. 학교 설립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시레토코 지역 주민의 환경의식이야말로 시레토코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만들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보호와 인간의 공존에 관한 지혜를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실천하려는 모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뿌듯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실제 시레토코의 자연을 접하니, 자연스레 단순한 감상이 아닌 경건한 마음 자세가 됐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 우선 소형 보트를 타고 나가 시레토코의 웅장한 전체 모습을 살펴보기로 했다. 구름이 끼었다 걷혔다를 반복하는 기복이 심한 날씨였지만 바다에서 바라본 시레토코의 기암절벽과 폭포, 우거진 나무숲은 감탄사만을 연발하게 했다. 무엇보다 보트에 승선한 관광객들을 감격하게 만든 것은, 보트가 바다 가운데 멈췄을 때 안내원이 가리키는 곳을 보는 순간 시야에 들어온 한 점이었다. 카메라 줌렌즈를 최대한 당겨서 보니, 렌즈에 들어온 물체는 ‘히구마’라 불리는 곰이었다.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듯 숨어 있는 듯 좀체 움직이지 않는 곰. 동물원 우리 안이 아닌 자연에서 살아가는 곰을 육안으로 본 것이다. 망원경이 없거나 카메라로도 잡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렵게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모두 감탄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짜릿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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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호수에서 바라본 시레토코 연산. 3 시레토코의 다섯 호수를 모두 볼 수 있는 시레토코 필드하우스.



풀 한 포기도 상처받지 않게 만든 산책로
이윽고 육지로 올라와 자동차로 시레토코 횡단도로를 달렸다. 겨우내 폐쇄됐다가 개통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한다. 자동차는 이 길을 따라 천천히 시레토코 내부를 관통했다. 숲 속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가에 쌓인 거대한 잔설 덩어리가 금세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막 푸른 잎을 달기 시작한 자작나무를 비롯해 이름 모를 나무들 사이로 졸졸졸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소리가 계곡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시레토코 고개에 이르자 일렬로 세워놓은 카메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레토코에서 서식하는 희귀한 새들을 촬영하려고 찾아온 사진작가들이란다. 여름이 다가오건만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머릿속을 씻어주는 듯 상쾌했다.
시레토코 고개를 한 바퀴 돌아보고 마지막 목적지인 시레토코 필드하우스로 향했다. 이곳은 시레토코의 다섯 개 호수를 보면서 산책할 수 있어 가장 인기가 많은 관광 코스라고 했다. 산책 코스는 두 개로, 그 가운데 하나가 풀 한 포기도 밟지 않고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고안된 ‘고가목도(高架木道)’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제1호수를 배경으로 병풍처럼 늘어선 시레토코 연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코스는 등록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숲 속을 걷는 ‘지상유보도(地上遊步道)’다. 5월부터 7월까지 히구마의 활동기여서 운이 좋으면 육안으로도 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코스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지상유보도 산책에는 참가할 수 없었지만 두 코스가 만나는 지점이 제1호수 옆이어서 가이드를 따라 돌아온 그룹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카메라 렌즈에 호수 저편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사슴 한 마리가 잡혔다.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시레토코의 숲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기 위해서일까. 고가목도 위에서 바라다보는 저녁 하늘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것은, 원시의 자연 속에 자연인으로서 내가 서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시레토코 원시림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도쿄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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