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야외 파티에서 즐기는 각종 게임.
지난해 말 MBC ‘무한도전’의 노홍철, 유재석이 싸이의 뉴욕 타임스퀘어 공연에 출연하러 뉴욕에 방문하기 전 일이다. ‘영철영어’로 유명한 개그맨 김영철이 노홍철, 유재석, 박명수, 하하를 앉혀놓고 ‘콩글리시 교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호텔방에서 쓰는 ‘모닝콜’을 ‘웨이크업 콜(wake-up call)’로, 연예인에게 요청하는 ‘사인’을 ‘시그너처(signature)’로 고쳐주는 식이다. 특히 연예인에게 사인을 요청할 때 “Can I have~”라는 구문을 써서 올바른 영어를 구사하라는 조언에 하하가 느닷없이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 있던 공책을 번쩍 들어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아이 앰 유어 팬!(I am your fan!)”
그렇다. 사인이 아니라 시그너처라는 것을 몰라도 팬이라는 단어만 알면 할리우드에서도 연예인에게 사인을 받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누군가에게 잘생겼다고 칭찬해주고 싶은데 ‘핸섬(handsome)’이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유어 페이스 넘버원”이라 해도 충분히 통한다. 난생 처음 미국 여행길에서 들른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물 한 잔을 주문하고 싶은데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어, 웨이터 앞에서 테이블에 놓인 물컵을 들고 밑바닥에 라이터로 불을 켜 보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감이다. 정확한 단어와 문법을 구사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 생활을 시작했던 정현이나 준용이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영어에 노출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익숙한 한국어 구조에 새로 알게 된 영어 단어를 끼워 넣는 것이다. 생후 15개월부터 영국에 살기 시작한 준용이는 이런 ‘짬뽕영어’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어느 영국 레스토랑에서의 일이다. 콘에 아이스크림을 떠 담는 엄마 옆에서 준용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주문했다.
“엄마! 비이익(big) 주세요. 마아니.”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big’이란 단어를 적절하게 끼워 넣긴 했지만 아직은 준용이 쓰는 말의 기본 바탕은 한국어임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가 좀 더 편안해지자 아이들은 다른 형태의 표현들을 선보였다.
엄마: 준용아, 엄마가 치약 짜 줄게.
준용: 괜찮아요. I can 짜.
준용이의 초기 영어는 주로 이런 형태로 시작됐다.
“Can you 잘라 this?”
“Can you 끼워 this?”
“Can you 안아줘 me now?”
“Are you going to 깔아 the 이불 now?”
“Can you not 발라 lotion for me this time?”
영어인지 우리말인지 구별하기도 어렵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다. 한국어와 영어가 혼재돼 있지만 언어 구조만 놓고 보면 완벽하게 영어식이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big 주세요’ 시절과는 정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당시 준용이의 영어는 ‘한국어 구조+영어 단어’ 형식을 취했지만 이제는 ‘영어 구조+한국어 단어’ 형태로 진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짬뽕영어’였다.
외국어 습득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중간언어’
코벤트리 외곽의 벅스웰에 있는 친구 집에서 열린 야외 파티.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동사의 시제까지 꼬박꼬박 표현했지만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교복을 가지런히 접어놓으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준용이는 꼭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I 접어ed my school uniform but 형아 didn’t.”
영어 동사에 ‘ed’를 붙이면 과거를 나타낸다는 것을 배운 뒤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형을 나타낼 때 무조건 ‘ed’를 붙였다. ‘사다(buy)’의 과거형인 ‘bought’ 대신 ‘buyed’를, ‘가다(go)’의 과거형인 ‘went’ 대신 ‘goed’를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비교급을 표현할 때는 무조건 단어 끝에 ‘er’을 붙였다. ‘worse’ 대신 ‘badder’, ‘better’ 대신 ‘gooder’ 등으로 말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현상이 외국인인 우리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또래 영국 아이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문법 지식에 익숙한 부모 세대는 아이들의 이런 영어가 ‘잘못된’ 것이니까 무조건 고쳐주려고 한다. 그러나 비영어권 아이들의 영어학습 패턴을 꾸준히 관찰해온 언어학자들에게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영어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모국어의 형태가 영어에 뒤섞여 나타나거나 영어에서 새롭게 습득한 지식을 아무 데나 적용하는 시도, 이른바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ation)가 나타나는 시점의 언어를 ‘중간언어(interlanguage)’라고 부른다. 중간언어란 배우고자 하는 목표 언어와 모국어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중간언어’ 단계에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영어 문법이나 의미 등을 간소화해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 체계를 만들어간다. 준용이의 ‘짬뽕영어’가 바로 그런 사례다.
물론 ‘짬뽕영어’는 문법에 맞지 않고 체계가 정확하게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준용이의 머릿속에서만큼은 매우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언어체계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호에서 이야기했던 ‘침묵 기간’을 벗어나 아이들이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반드시 이 ‘중간언어’ 단계를 거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중간언어’를 말하는 단계에서 아이들은 나름대로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나 문법구조를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만 끙끙거릴 때 아이들이 별것도 아닌 단어를 가지고 척척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떠오르는 단어가 없을 때에는 ‘thing’과 같은 단어만 가지고도 문장을 만든다.
영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한국인 이웃으로부터 떡 만드는 법을 배워 집에서 직접 떡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찹쌀가루를 찌고 팥고물을 묻히고 떡을 자르는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준용이에게 엄마가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떡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준용이는 떡을 먹고 싶을 때마다 ‘fingy-wingy-thingy’를 해달라고 졸랐다. 이게 무슨 말인가. 물론 나는 ‘손가락으로 어쩌고 저쩌고 한 것’이 대충 ‘떡을 먹고 싶다’라는 뜻으로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fingy-wingy-thingy’라는 말은 물론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fingy’는 ‘finger’에서, ‘thingy’는 ‘thing’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wingy’는 뭘까? 결론은 말을 더 리드미컬하게 만들고자 집어넣은 무의미한 말이다.
당시 준용이 즐겨 부르던 영국 동요 중 ‘Incy Wincy Spider’란 노래가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거미가 위를 향해 계속 올라가는 손동작을 보여주며 부르는 노래인데, 자기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일상의 대화에서 써먹은 것이었다. 이 밖도 준용이의 ‘thing’ 사랑은 계속 됐다. 기다란 가래떡은 ‘white-long-thing’으로 통했고, 음악이 나오는 장난감은 무엇이든 ‘music thing’이라 했다.
떡=duck? 엉뚱하고 창의적인 아이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의 엉뚱하고 창의적인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조립식 장난감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서 예상치 못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어느 날 준용이 오른손을 들어올리면서 “Is this a right hand?”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하자마자 바로 왼손을 들어올리며 “Is this a wrong hand?”라고 묻는다. ‘right’와 ‘wrong’의 관계는 알지만 ‘right’와 ‘left’의 관계는 아직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영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가 영국에 갓 온 다른 한국 아이에게 “Are you from South Korea, North Korea or East Korea?” 라고 물었던 일도 있다. 천진난만한 호기심과 창의력이 아니라면 누가 East Korea란 말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창의력과 엉뚱함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조립식 장난감에서 맞지 않는 레고 블록을 떼어내듯 ‘wrong’이나 ‘east’ 같은 잘못 쓰인 말들을 스스로 찾아낸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방식이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은 엄마나 아빠가 하는 한국말을 비슷한 발음의 영어단어로 이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머릿속엔 한국말과 영어가 하나의 그릇 속에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준용이에게 전래동화 ‘해님 달님’을 읽어주다가 호랑이의 명대사인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란 대목에서 슬쩍 물었다. “준용이도 떡 좋아하지?” 그러자 두 눈을 반짝이며 돌아온 대답은 “I like a duck”이었다.
아이에게 ‘심청전’과 같은 고전을 이해시키는 것은 난공불락 수준이었다. 공양미 3백 석을 설명하려면 쌀가마니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한다.
“가마니란 말 들어봤어? 쌀가마니?”
“가마니? (갑자기 부동자세를 취하며) 스틸(still)?”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한 종류의 해프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른들은 한국어 방식으로 말하고 아이들은 영어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빚어진 일들이다.
엄마: (침대 위에서 노는 준용이에게) 준용아! 뛰지 마, 먼지 나.
준용: (계속 뛰면서) I’m not running~, I’m jumping!
거실에서 마구 뛰 노는 아이들에게 “엄마 설거지하는 동안 식탁에 잠깐 앉아 있어”라고 했더니, 두 녀석이 정말 천연덕스럽게 (의자가 아닌) 식탁 위에 걸터앉아 눈을 껌벅거리고 있기도 했다.
영어로 뭔가 말하려는 것에 감사하라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단어를 구성할 때도 한국어와 영어를 뒤섞는다. 온 가족이 모여 한국어로 끝말잇기를 하는 중 벌어진 일이다.
(정현) 기차→(준용) 차비→(엄마) 비단→(아빠) 단소→(준용) 송아지!!!
“준용아, ‘소’로 시작해야지 ‘송’이 아니라.”
형이 지적하자 준용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송 안에 소가 있잖아요.”
영어로 끝말잇기를 할 경우, 예를 들어 ‘cat-train-news-snail…’등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송’이란 음절 안에 ‘소’라는 음소가 있으니 준용이 생각으론 ‘소금’이나 ‘소파’뿐만 아니라 ‘송아지’도 충분히 맞는 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례 또한 ‘짬뽕영어’ 단계에서 나타나는 아이들만의 독특한 창의성이 아닐까.
아이들의 타협적 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귀에 들리는 대로 따라 하고 본다는 것이다. 비슷한 발음이면 충분하다. 정확할 필요도 없고 굳이 철자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들리는 대로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1 영국 초등학교는 한 학기에 한번 꼴로 학부모를 초대해 발표회를 연다. 발표회 사회를 보고 있는 정현. 2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언어 주간’에 한국어 포스터가 등장했다. ‘결단력’이란 한국어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현. 3 초등학교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준용. 아이가 긴장할까봐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함께 지켜봐주는 교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정현이는 여러 가지 상황에 맞는 영국 사회의 에티켓을 배워왔다. 음식을 먹다가 트림을 하면 반드시 “Pardon me!”라고 주변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며칠 동안 형의 “Pardon me”를 유심히 지켜보던 준용이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트림을 ‘끄-윽’ 하더니 점잖게 한마디 했다. “Garden me!”
집집마다 정원이 없는 집이 없는 영국에서 준용이에게 ‘pardon’이란 단어보다 ‘garden’이란 단어가 훨씬 익숙했을 것이다.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일단 들리는 대로 타협해 ‘garden’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얼마 안 있어 준용이의 ‘Garden me’는 자연스럽게 ‘Pardon me’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아이들의 타협적 능력과 이로 인한 창의성은 한국에 와서 다시 한국말을 익힐 때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정현이는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 ‘곱배기’라는 말을 몰라 ‘자장면 골뱅이’를 달라고 우기기도 했다. 어느 날 준용이 일기에 방과 후 축구활동을 가리키는 ‘축구 방과 후’는 ‘축구 방가와’로 변해 있었다. 귀에 들리는 대로만 듣고 나름대로 축구 수업에 멋진 브랜드 명을 붙여놓은 것이다.
한술 더 뜬 일도 있다. 어느 날 선풍기에 적혀 있는 강풍-약풍-미풍 선택 버튼을 유심히 살펴보던 준용이 대단한 깨침이라도 얻은 듯 자신감에 넘쳐 말했다.
“엄마, 강풍은 강한 바람, 약풍은 약한 바람, 맞죠?”
여기까지는 좋았다.
“준용이 잘 아네. 그럼 미풍은 뭘까?”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준용이의 대답.
“응, 그건 미들(middle)!”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렇게 불완전한 언어 표현은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습득하는 어린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어린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보면 기초적 문법에도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영국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내 차례야”라는 표현을 “Me go!”라 하는 것을 듣고 의아한 적이 있다. “It’s my turn”이나 “My turn”도 아닌 “Me go”라니.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보다 했지만, 곧 아이들은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서 배우거나 외국어로서 배우거나 모두 불완전한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구사하는 이러한 ‘중간언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언어 습득의 초기 단계에선 ‘정확성(accuracy)’이 아닌, ‘자연스러움(fluency)’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확한’ 영어가 ‘자연스러운’ 영어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 학습의 시작은 백 퍼센트 정확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고쳐나갈 수 있다는 점만 인식한다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초기의 ‘불완전한’ 영어, 또는 ‘짬뽕영어’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마들이 짬뽕의 진한 국물 맛을 깨칠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더욱이 한국어와 영어를 뒤섞어 한다고 해서 시중에 널려 있는 ‘쉬운 영문법’이나 ‘어린이 영문법’ 책을 가져다 놓고 섣불리 가르치려고 시도하지도 마라. 엄마는 아이의 ‘불완전한 영어’에 관대해지고 무관심해질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아이가 ‘불완전’하지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는 것에 감사하라. 불완전한 영어가 현재 아이가 거쳐가는 단계에서 ‘체계적이고 완벽한 중간언어’라는 점을 기억하라.
오미경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 2005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6년, 다시 미국에서 1년을 살다 최근 귀국했다. 서강대와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각각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세 살과 한 살이던 두 아들은 열 살과 여덟 살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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