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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발랄할 순 없다! ‘꽃보다 할배’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호화여행도 모자랄 판에 배낭여행, 처음엔 ‘미쳤냐’고 했지만 또 가고 싶어…”

글·김명희 기자 | 사진·tvN 제공

입력 2013.07.24 15:09:00

평균 나이 76세의 노년 배우 4인방이 안방극장을 뒤집어놓았다.
유럽 배낭여행에 도전한 ‘꽃보다 할배’ 주인공들 이야기다. 이들은 50년간 쌓은 우정과 연륜을 무기로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장악한 예능계 접수에 나선 강호의 은둔 고수들처럼 거침이 없었다.
이보다 발랄할 순 없다! ‘꽃보다 할배’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1 배낭여행 이틀째 파리 민박집에서. 2 에펠탑 앞에 선 H4.




프롤로그 H4를 소개합니다
이순재(직진 순재)
1935년생. 팀의 맏형으로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임.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데다가 걸음도 빨라 여행 당시 제작진조차 따라잡기 힘들었다는 후문. 고스톱을 칠 때도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스타일. 유럽 여행 중 스태프와 여행 경비를 놓고 고스톱을 치던 중 앞뒤 살피지 않고 ‘쓰리고’를 외쳤다가 낭패를 당함.

신구(구요미·구야형)
1936년생. 과묵한 둘째 형이자 해결사. 인자함 뒤에 감춰진 엉뚱함이 매력. 파리 에펠탑 앞 잔디밭에 누워 ‘니들이 빠리(파리)를 알아?’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함. 이순재가 고스톱으로 여행 경비를 잃자 조용히 제작진과 협상을 시도.

박근형(로맨틱 가이)
1940년생. 드라마 ‘추적자’ 등에서 보여준 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여행 중 아내와 끊임없이 전화 통화를 하고, 하트 이모티콘을 섞어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함. 분위기 메이커로, 형들과 투정이 심한 막내 백일섭 사이에서 조율자 노릇을 함.

백일섭(섭섭이)
1944년생. 만으로는 아직 60대인데 70대 형들 사이에 끼어 같이 노인네 취급당하는 게 못마땅한 막내이자 문제적 인물. 파리 민박집에 도착해서는 “쉴 때는 촬영을 접자. 카메라를 끄지 않으면 발로 차겠다”고 어깃장을 놓아 천하의 나영석 PD가 촬영을 접게 만든 주인공.



# Scene 1
아무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나영석 PD와 배우 4인방이 한 카페에 모였다. 여행 일정과 프로그램 내용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나영석 : 유럽에 가서 열기구 한 번 타셔야죠?
백일섭 : 터져 죽으라고?
나영석 : (스카이다이빙 사진을 보여주며) 그럼 이건 어떠세요? 스카이다이빙은 힘드시겠죠?
이순재 : 관을 2~3개는 가지고 가야….
백일섭 : 나는 무거워서 안 돼.
이순재 : (진지한 말투로) 김병만 시키면 되겠네. 이런 건 김병만이 해야 해.

이보다 발랄할 순 없다! ‘꽃보다 할배’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3 내막도 모른 채 여행에 합류해 궂은 일을 도맡은 이서진.



백일섭이 ‘아! 글씨’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을 때, 신구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말로 CF계를 평정했을 때, 야동 순재가 시트콤에서 하이킥을 날릴 때, 박근형이 ‘추적자’에서 “욕보래이”라는 대사로 연기의 신에 등극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럼 예능은?
예능의 정석은 뭐니 뭐니 해도 복불복으로 대표되는 대결구도와 고행이다.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게임에서 져 망가지고 고생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영석 PD가 이들을 섭외해 9박10일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감동은 몰라도 재미에는 의문부호가 붙었다. 웃음은 고사하고, 자칫 ‘어르신들 모시기’에 급급해 불편한 예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할배들조차도 처음에는 “6·25전쟁 때 쌀자루 지고 피난갔던 일 이후로 배낭여행은 처음”이라며 걱정을 드러냈다.
7월 5일 tvN ‘꽃보다 할배’가 베일을 벗자 ‘역시 명불허전’이란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 등 할배 4인방(H4)은 카메라 앞에서 거칠 것이 없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고 엉뚱한 입담은 수시로 웃음 폭탄을 유발하는 지뢰 같았다. 짐꾼으로 동행한 이서진을 향해 “쟤가 아마 김정은이랑 사귀었지?” “정은이랑 공개 연애를 했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식이다. 황혼에 접어든 이들 앞엔 톱스타 이서진도 그냥 손자뻘 되는 까마득한 후배일 뿐이다. 인생 경험 70년에 연기 경력만 50년이다.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꽃보다 할배’ 첫 방송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멋지게 턱시도를 차려 입고 나온 배우들 얼굴엔 설렘이 감돌았다. 백일섭은 “영화 찍은 지도 오래됐고, 연기대상 시상식도 못 가본 지 한참 돼 옷을 차려 입을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턱시도를 입으니 기분이 새롭다”며 아이처럼 기쁜 표정을 지었다. 제작발표회에는 배우 4명과 이서진,나영석 PD가 참석했다. 이순재가 “제작발표회에 오기 전에 tvN 토크쇼 ‘택시(현장토크쇼 택시)’도 녹화했다. 나영석 PD가 요즘 우리를 여기저기 너무 많이 팔아먹는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 예능 프로그램 주인공으로 노배우들을 섭외한 이유는 무엇인가. ‘꽃보다 할배’ 탄생 과정이 궁금하다.
나영석 작가들과 프로그램 콘셉트에 관한 회의를 하다가 청춘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배낭여행에 연세 있으신 분들이 도전해보면 어떨까, 그들의 모험기를 담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분이 업계의 대가들이라 감히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송구스러웠는데, 이순재 선생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셔서 쉽게 풀렸다. 제작진은 배낭여행이란 틀만 제시하고 네 분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만 했는데, 예기치 못하게 웃긴 장면도 많고 짠하고 감동적인 부분도 많았다.
이순재 호화여행을 가도 모자랄 판에 나영석 PD가 덜컥 배낭여행을 가자고 하기에 처음엔 ‘우리가 미쳤다고 가느냐’고 말했다. 나 PD 전작인 ‘1박2일’을 봐도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 나 PD가 어떻게나 말을 잘하는지, 감언이설에 속아서 일단 길을 나섰다.
신구 50여 년 함께한 친구들과 여행을 보내준다고 하니 즐겁게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배낭여행이란 게 만만치 않더라. 특히 카메라가 내내 옆에 붙어 있는 게 어색했다. 나중엔 카메라가 있든 없든 신경도 안 썼지만.
박근형 젊은이들한테 나이 먹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막내로 백일섭까지 섭외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잘됐다 싶었다.

힘들거나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텐데.
이순재 계속 걸어 다녀야 하니까 처음 사흘은 다리도 아프고 힘들었다. 제작진이 우리도 모르게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찍으니까 그것도 힘들더라. (백)일섭이는 옷을 입은 채 잠을 못 자는데 잘 때도 카메라로 찍으니까 한 번은 카메라 끄라고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모습들이 방송에 많이 나갈 것 같은데, 시청자들이 주책이라고 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백일섭 결혼한 지 35년 됐는데 열흘간 집을 떠난 건 처음이다. 처음엔 집에 오고 싶어서 죽겠더라. 나는 무릎이 안 좋아서 걷고 서는 것도 힘든데 순재 형은 목적도 없이 앞으로 막 가는 스타일이다. 그것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여행하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는데, 침대가 작아서 고생했다. 그래도 돌아올 때가 되니까 섭섭하더라. 열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속으로 ‘나도 여행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H4는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다. 막내인 백일섭 씨가 외모 순위를 매겨달라.
백일섭 누구 싸움 시킬 일 있나? 싫은 말은 오래가는 법인데…(웃음). 내가 보기엔 근형이 형이 제일 잘생겼다. 오뚝한 매부리코에, 오늘 턱시도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 2등은 이순재 형…, (신구 눈치를 보다가), 3등은 신구 형, 내가 꼴찌를 하겠다.
신구 나 빼고는 다 거기서 거기다. 볼 거 뭐 있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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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2
짐꾼, 내비게이션, 통역사…‘신의 한 수’ 이서진
H4가 유럽 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 이서진도 싱글벙글하며 공항에 들어섰다. 소녀시대 써니, 포미닛 현아 등 걸그룹 멤버들과 여행을 떠나는 줄 알고 프로그램에 합류한 것. 그는 “써니와 현아 중 누구 때문에 더 힘들 것 같느냐”는 제작진의 유도 질문에 “아무래도 어린 친구(현아)가 힘들지 않을까”라고 진지하게 답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공항에서 H4를 만난 후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
‘꽃보다 할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나영석 PD의 히든카드 이서진이다. 출발 전부터 걸그룹과 떠나는 여행인 줄 알고 한껏 들떠 있는 모습부터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여행지에서 짐꾼, 통역사, 내비게이터, 매니저 등 H4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몸무게가 2kg이나 빠졌다고 한다. H4의 눈치를 살피느라 진땀을 빼고, 특히 파리 지하철역에서 백일섭이 무겁다며 집어던진 꽃과 장조림 통을 챙겨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
나영석 PD는 ‘젊은 짐꾼이 한 명 있으면 좋겠는데 누구를 데리고 갈까’ 고민하다가 이서진을 떠올렸다고 한다. 과거 ‘이산’ 촬영 당시 이순재의 매니저로부터 “젊은 배우들이 노배우와 함께 작품을 하면 처음에는 선배들 식사도 잘 챙기고 먼저 다가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소원해진다. 그런데 이서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선배들을 챙기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던 것. 미국 유학 경험 덕분에 영어가 유창하다는 점도 캐스팅 이유 중 하나. 여기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뜸한 이서진이 과거 나 PD가 연출한 ‘1박2일’에 게스트로 참여한 것도 인연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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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이 아닌, 선배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은.
이서진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져서 당황했다. 공항 로비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인사드릴 때까지만 해도 우연히 만난 거라고 생각했다. 제작진이 ‘진짜 선생님들과 여행가는 것’이라고 말했을 땐 몰래 카메라를 찍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걸그룹과 가는 건데, 선생님들을 모셔와 내 반응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어딘가에서 써니와 현아가 나타나지 않을까란 생각을 계속 했다. 파리 공항에 내려서야 내가 처한 상황이 실감났다. 그다음부터는 선생님들을 잘 모셔야겠다는 마음에 내내 긴장해서 다른 생각은 잘 못했다. 중압감이 너무 심해 나 혼자 국경을 넘을까, 어떻게 하면 도망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웃음).
이순재 우리를 처음 본 순간 ‘이게 어떻게 된 거야’란 표정이었다. 너무 고생해서 우리가 장가 보내줘야 할 것 같다(웃음).
백일섭 원래는 우리 네 명뿐이었다는데, 이서진이 없었더라면 막내인 내가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이서진을 보는 순간 ‘요놈, 잘 만났다’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여행을 다녀오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은.
백일섭 갈 때부터 많이 보고 느끼려고 했지,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브르박물관에 다녀와서도 서울 말죽거리 가구거리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행을 해보니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런 세월도 있구나’ 느꼈다. 일만 하느라 그런 재미를 몰랐으니 헛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스케줄이 된다면 또 한 번 여행을 가고 싶다.
이서진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이렇게 여행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순재 선생님은 함께 작품을 해서 많이 뵀는데도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운 면을 알게 됐고, 박근형 선생님은 무서워하던 분이었는데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좋은 분들과 유럽 곳곳을 둘러보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놀라고 긴장해서 초반 며칠간의 일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거다(웃음).
나영석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네 분이 앞으로 작품 출연하는 데 있어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걱정스럽고 부담된다. 이서진 씨한테는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짓궂게 장난친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번 프로그램 이후 이서진 씨와의 관계가 많이 어색해졌다(웃음). 관계 회복을 위해 두 번째 여행을 준비 중이다.


에필로그 후속 편 ‘꽃보다 할매’ 추천 멤버는?
‘꽃보다 할배’는 첫 방송 이후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흥행몰이 중이다. 이미 2탄 ‘대만’편 제작이 확정됐으며 H4의 스케줄 조정만 남은 상태다. 첫번째 여행에서도 ‘백년의 유산’에 출연 중이던 신구가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기 위해 일찍 죽는 설정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했다고 한다.
‘꽃보다 할배’의 멤버 구성은 제작진이 했다. 그렇다면 H4가 함께 여행하고 싶은 멤버는 누구일까. 이들은‘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꽃보다 할배’의 잠재적 멤버로 최불암, 송재호, 양택조, 변희봉 등을 꼽았다. MC들이 노주현은 어떤지 묻자 “좀 더 있다가”(이순재), “갠 70이 안 됐잖아”(백일섭) 등 멤버로 받아들이기엔 아직 어리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또한 ‘꽃보다 할배’가 흥행에 성공해 후속 편으로 ‘꽃보다 할매’가 제작된다면 추천하고 싶은 멤버로 김영옥, 강부자, 김용림, 나문희 등을 꼽았다.

여성동아 2013년 8월 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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