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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7개월 암투병 아내 곁에서 쓴 강한필의 ‘사랑’

글·김현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3.07.15 16:18:00

아내 정복숙 씨가 난소암 선고를 받은 2004년 1월 10일부터 66세로 세상을 떠난 2009년 8월 6일까지 5년 6개월 27일. 그사이 아내는 5번의 큰 수술, 50차례에 가까운 항암치료, 3일에 한 번꼴로 병원을 드나들며 1백 번에 가까운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했다. 남편 강한필 씨는 생사의 기로에서 암과 싸우는 아내 곁을 묵묵히 지켰다. 결혼생활 41년 동안 간병기간만큼 부부가 함께한 시기도 없었다. 간병일기 ‘사랑’은 그 결과물이다.
5년 7개월 암투병 아내 곁에서 쓴 강한필의 ‘사랑’


운명의 날이라고 해야 할까? 동네에 있는 내과의원에 갔다. 아내의 아랫배에서 만져지는 딱딱한 덩어리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를 찍었다. 주먹만큼 큰 덩어리가 잡혔다. 종양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했다. 양성일 수도 있고, 단순한 물혹일 수도 있지 않겠나. 애써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으나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2004년 1월 9일)
강한필(78) 씨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서울 강남성모병원을 찾아가 아내 정복숙 씨가 재검사를 한 결과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에 잡힌 주먹만 한 덩어리는 암이었다. 난소암. 생명의 근원인 난자를 생산하는 난소에서 발생하는 난소암은 부인 암 중 가장 치료가 어려운 고약한 암이란다. 벌써 10cm 이상 커진 난소암 3기. 수술 날짜를 잡고 입원을 했다. 기약 없는 투병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기도와 눈물과 통한을 뒤로하고 2009년 8월 6일 아내는 떠났다. 세상에는 이렇게 저렇게 암을 극복했다는 무수한 희망의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아내에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관하는 날, 비록 수의를 입었으나 깨끗하게 몸을 씻고 옅은 화장까지 마친 아내는 생전 외출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보, 금방 다녀올게요.”
당장이라도 그렇게 속삭일 것만 같은 아내가 영원히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장례식을 치르고 삼우제를 지내고 또 그로부터 3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했다.

매일 2백 명 가까이 암으로 죽는 현실
지난해 강한필 씨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늘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수첩을 펼치니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5년 7개월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경향신문 수습기자로 시작해 30년간 사회부장, 외신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두 차례나 편집국장을 역임한 평생 기자였다. 그 시절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냈고, 짬이 나면 동료, 친구들과 술 마시며 세상일을 논하느라 바빴다. 1968년에 결혼해 2남 2녀를 낳았지만 자녀교육과 살림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가족들 모두 그런 아내와 엄마의 존재를 당연히 여겼다.
하지만 2004년 1월 아내가 덜컥 암 선고를 받고 나니 모든 게 달라졌다. 그는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아내 곁을 지키며 그때부터 사소한 사실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습관처럼 메모했다. 병실 구석에서, 휴게실에서,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서 틈틈이 작은 수첩에 일기를 썼다.
그의 일기는 “새해 새 태양이 솟았다. 아내와 둘이서 집 앞 소실봉에 올라 첫해를 맞았다”(2004년 1월 1일)로 시작해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 했던가. 소중한 삶을 살고 떠나간 사랑하는 내 아내여, 이별 없고 고통 없는 그 세상에서 편히 쉬고 계시오. 나 이제 곧 그곳에 가리니”(2009년 8월 10일 삼우제를 지내고)로 끝난다.
일기에는 그때그때 상황과 심경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 무슨 수술을 했고, 몇 시 몇 분 장에서 가스가 나왔으며, 몇 cc의 항암제를 맞았고, 구토와 같은 부작용을 겪은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기는 언제인지까지 암 투병 과정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이처럼 깨알같이 적어놓은 메모를 토대로 그는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대충 정리한 게 2백자 원고지 7천여 장. 책으로 엮으면 네댓 권 분량이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이에요. 엄마가 마지막 삶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들려주고 싶었죠. 그런데 이 원고를 컴퓨터로 정리하는 작업을 도와주던 후배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네요.”

5년 7개월 암투병 아내 곁에서 쓴 강한필의 ‘사랑’

1 강한필 씨는 30년간 경향신문 기자로 있다 신문사를 떠난 뒤 불교방송 전무와 사장(직대) 등을 지냈다. 하지만 아내의 암 발병 후 모든 사회생활을 접고 오로지 아내 곁을 지켰다. 2 손바닥만 한 수첩에 매일 깨알같이 메모하는 습관 덕분에 2042일의 간병일기 ‘사랑’을 쓸 수 있었다.



그는 아내의 투병과정을 포함해 가족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나름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날마다 세 사람 중 한 명(약 2백 명)이 암으로 죽어가는 현실에서 암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그 아픔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는 그들에게 위로와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펴내기로 결심했다. 5백32쪽에 달하는 ‘사랑-원로 언론인 강한필의 아내 간병실록 2042일’(나남, 이하 ‘사랑’)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 후회



어느새 이렇게 커졌을까. 해마다 정밀검사를 받았고, 지난해 3월에도 검사를 받지 않았던가.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후회스럽다. 이제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 가슴을 치고 있을 뿐이다.(2004년 1월 16일)
강한필 씨에게 ‘사랑’을 쓰면서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주저 없이 ‘예방’과 ‘검진’이라고 답했다.
“암이 진행된 상황에서는 ‘완치’란 불가능하고 치료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고, 걸리더라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해야 하는데 아내는 그 시기를 놓쳤어요. 평소 너무 건강했기에 오히려 소홀했던 것이지요. 12월쯤 아랫배에 뭔가 잡힌다고 해서 1월에 정밀검사를 했더니 이미 ‘심각한(serious)’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내는 젊을 때 폐를 앓아 깡마른 남편에게 좋은 음식을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이려고만 안달했지, 정작 자신의 몸에서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는 지금 죽어도 괜찮은데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이 제일 걱정이라고 했어요. 내가 정말 바보거든. 기자라고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척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죠. 운전도 아내가 훨씬 잘했어요. 은행에서 돈 찾는 일도 못하고. 그러나 지금은 잘 찾아요.”
살림꾼이던 아내는 병실에 누워서도 장(醬) 걱정을 했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응급실로 오는 바람에 장을 달여야 할 날을 놓친 것.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그는 집으로 돌아가 장독에서 메주를 건져내고, 큰 솥 2개에 장을 옮겨담고 끓이고 식히며 ‘제발 아내가 돌아와 이 장으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을 수 있기’를 기원했지만 아내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갈 길이 촉박하다는 것을 예감했는지 아내는 남편에게 다 가르쳐주려 안간힘을 썼다. 저금통장과 도장은 장롱 안 몇째 서랍에 있고 비밀번호는 뭐고, 가족생일 등 기념일과 조상님 제삿날이 기록된 수첩을 알려주고, 그리고 또 무엇인가 긴 말을 꺼내려고 하면 남편은 그게 꼭 유언이 될 것만 같아 “왜 자꾸 이러느냐”고 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후회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실컷 하게 할 것을….

5년 7개월 암투병 아내 곁에서 쓴 강한필의 ‘사랑’

“암 투병을 하는 가족과 같이 보내다 보면 시간이 엄청나게 소중하죠. 처음에는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5년, 3년, 1년, 아니 단 며칠이라도… 절박하게 줄어들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어요.”



# 분노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겠습니다.” 오후 6시 30분 병실 밖 복도에서 김 교수가 괴로운 표정으로 조용히 이 말을 꺼냈다.(2009년 7월 8일)
두 달 전 큰 수술 때 암 덩어리를 모두 떼어내 최소한 2~3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던 주치의가 손을 들었다. 큰 수술과 그 후유증으로 항암치료를 제대로 못해 그사이 암이 간 등 여러 장기로 전이됐다는 설명이었다. 주치의는 이제 민간요법도 해보고, 환자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보라고도 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낼 것이라면 다섯 번의 큰 수술(사이버나이프 수술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 장류와 인공요관 시술, 50번에 가까운 항암주사와 방사선 치료까지 그토록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하게 했던가. 회한과 분노가 치솟았다.
“병원에서 환자는 결정권이 없어요. 의사가 이렇게 하랬다가 안 되면 저렇게 하고, 너무 쉽게 결정하고, 너무 쉽게 철회하고, 그사이 환자는 지치고 죽어가죠. 환자가 실험 대상인가 싶어 분노가 치밀지만 생명과 관계된 일이니 섣불리 항의할 수도 없어요. 요즘 의사들은 환자의 호소를 듣지 않아요. 환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의사는 모니터에 나타나는 영상자료만 보고 판단하고, 엉뚱한 처방을 하기도 하고. 의사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잖아요. 환자가 다 내 부모 형제라 생각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싶죠.”

# 행복
음력 1월 16일, 아내의 음력 생일(61세)이다. 생일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아이들과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우리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런 생일, 앞으로 10번만 더 맞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겨우 10번이냐고 할 정도로 작은 욕심이다. 그래 봐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니 말이다.(2004년 2월 6일)
“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난소암의 경우 첫 주 항암주사를 맞고 2주간 쉬었다가 다시 항암주사를 맞는 식으로 6번 치료하는 것을 한 텀(term)이라고 해요. 한 텀이 5~6개월씩 걸리는데 아내는 그렇게 8텀을 했어요. 항암주사를 맞으면 구토가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부작용이 심하지만 치료효과가 나타나 암 수치가 떨어지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죠. 석 달에서 넉 달, 길게는 여섯 달까지도 가죠. 그때가 암환자에게는 ‘반짝반짝하는 시간’이에요.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느냐가 중요하죠. 기력이 있는 한 일상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가며 즐겨야 해요.”
그 기간 부부는 열심히 텃밭을 가꾸고, 산에 오르고, 고향을 찾아가고,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로 부임한 큰딸 부부를 만나러 5년 만에 해외여행도 감행해 싱가포르에서 새해를 맞기도 했다. 반짝반짝하다 금세 꺼질 촛불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우리가 살면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르잖아요. 그러나 암 투병을 하는 가족과 같이 보내다 보면 시간이 엄청나게 소중하죠. 처음에는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5년, 3년, 1년, 아니 단 며칠이라도… 절박하게 줄어들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어요. 그 아까운 시간을 엄벙덤벙 보내지 말라고. 또 하나는 행복은 사소한 데 있다는 것이죠. 환자는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마시는 게 행복이고,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싶다, 잠 한 번 푹 자고 싶다고 소망하죠. 그것이 행복인 줄 깨닫는 순간 시간은 이미 없어요.”

여성동아 2013년 7월 5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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