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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철학자’ 셸리 케이건 죽음을 논하며 삶을 꿈꾼다

“지금 이 삶이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이라면…어떻게 살 것인가?”

글·진혜린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6.18 09:41:00

미국 예일대 철학과 교수가 질문을 던진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렵고 무거운 질문이지만 이 교수가 찾은 해답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작년 11월 한국에서 발간된 셸리 케이건 교수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15만 부가 팔려나갔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첫 강연회를 가졌다. ‘죽음’을 말하는 석학의 메시지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삶’을 찾고 있었다.
‘죽음의 철학자’ 셸리 케이건 죽음을 논하며 삶을 꿈꾼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물 빠진 청바지,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셸리 케이건 교수(59)는 예일대에서 17년 동안 동일한 주제로 강연을 해온 석학답게 준비된 원고도 없이 막힘 없는 강연을 펼쳐나갔다. 한국에 처음으로 방문해 짧은 일정 동안 네 번에 걸친 강연을 한 셸리 케이건 교수는 “시간이 있었다면 더 자세히 설명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자주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책인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자그마치 5백 쪽이 넘는다. 그러고도 책 속 프롤로그에 ‘이 책은 결론이 아닌 머리말에 가깝다’고 했다. 사실 ‘죽은 후’를 경험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다.
그런 미스터리한 일에 대해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놓기까지는 수많은 논리와 증거, 반박과 토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한 시간 남짓으로 요약한 강연으로는 그가 말하는 ‘죽음’에 대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실제 그의 강연을 들을 때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더 많이 떠올랐다. 케이건 교수는 ‘사후 세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에 앞서 ‘영혼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야 했고, ‘영혼이 없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해야 했다. 종합해보자면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고, 고도로 발달된 물체이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다. 이는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하며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이 끝날 즈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은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삶이 소중하다’는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후 세계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절망’이 아닌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왔다.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의 강연을 Q·A 형식으로 풀어봤다.

▼ 많은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몸이 죽어서 썩어버리면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영혼을 믿는다면 몸이 썩어도 영혼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 살아 있는 거죠.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도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에, 죽고 나서도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요?
“먼저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사람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몸과 그 이외의 것(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몸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혼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2주에 걸쳐 설명하고 토론해야 할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웃음).”
▼ 하지만 영혼이 있다고 믿어야만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사랑에 빠지는 일 같은 것이 영혼을 믿게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지금 여기 물병이 있습니다. 물병은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지만 휴대전화는 어떤가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처리해내는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컴퓨터가 ‘나’보다도 나은 생각의 기계이기도 합니다. 컴퓨터의 능력이 계속 늘어나면 어떤 범위 안에서는 생각하는 능력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단지 기계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육체라는 기계를 가진 거죠. 물론 그것은 낡은 기계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하고 능력을 가진 기계죠. 말을 할 수도 있고, 의견을 나눌 수도 있고,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사랑을 하고 시를 쓰고 무엇인가를 발명하고 철학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 예를 들자면요?
“웃음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웃음은 몸의 일부분일까요? 웃음은 이마에도 있고 눈에도 있고 입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와 눈과 입, 치아, 잇몸은 웃음이 아닙니다. 웃음은 우리의 몸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입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사랑하는 능력 말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능력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떨어져나와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웃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웃음은 능력일 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능력은 ‘웃음’처럼 육체가 가진 능력일 뿐이죠.”

‘죽음의 철학자’ 셸리 케이건 죽음을 논하며 삶을 꿈꾼다




▼ 그렇다면 사람에게 ‘죽음’의 현상은 어떤 것입니까?
“영혼을 믿는다면, 몸이 죽으면 영혼이 남겠지요. 그런데 물리주의적 관점(인간이 그저 육체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죽음’을 ‘우리의 몸이 능력을 잃었다’고 표현할 것입니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기계가 가진 본연의 능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이 죽어서 흙으로, 먼지로 돌아간다면 몸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는 것입니다. 육체라는 기계가 고장 나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면 더 이상의 경험은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죠.”
▼ 죽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삶이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구에서 살아 있는 지금 이 삶이 마지막 삶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 운이 좋다면 20년, 운이 더 좋다면 30년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지구에 살 수 있는 시간은 이게 끝입니다. 그게 전부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정말 소중하고 값진 선물입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죠. 그런데 우리는 바보 같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번 삶뿐이라면 우리는 그만큼 의미 있고 소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40, 50대 즈음이 되면 ‘내 인생에 최선을 다했을까? 다시 인생을 되돌아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고 나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죽으면 아무런 기회도 없습니다.”
▼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내와 아이들, 친구들에 대한 사랑, 이건 삶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죠. 현실이고 진짜 가치입니다. 비록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더라도 이런 것들이 삶을 값지게 하는 것이죠.”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할리우드 스타가 되고, 돈을 많이 벌게 되는 것처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경험기계가 있다고 생각합시다. 그 기계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실제 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을 경험기계에서 보내고 싶을까요? 아마도 그 경험기계에서 살면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기계 안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 실제 존재하지 않죠. 기계 안에서는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만 진짜 우정과 사랑은 진짜 경험해야 가치 있게 다가오는 거죠. 경험기계에서 수학 문제를 해결하고 훌륭한 비즈니스를 성공했더라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겁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경험하고, 실제로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겠죠. 사소한 듯 보여도 의미 있는 성취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은 미래의 가능성을 놓치는 일
▼ 인간이 하나의 육체에 지나지 않는다, 기계일 뿐이다라고 말하면 ‘죽음’ 또한 가볍게 선택할 수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인간으로서 내 존재의 끝입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내게 나쁜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죽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나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이 나쁜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줍니다.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죽음이 나쁘지 않다면, 자살은 어떨까요? 미래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고 좋은 것이 아니라면 ‘자살’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미래가 명확하게 나쁘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 자살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는 것이 더 좋은 삶이 존재할까요?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미래에 좋아질 가능성을 놓친 실수입니다. 젊을 때는 좋은 성적, 좋은 학교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죠. 이 때문에 자신의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명확하게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분명 나아집니다. 우리에게는 한정적인 시간밖에 없고 그것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 남은 시간이 하루뿐이라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지금 나는 한국에 와 있는데, 남은 시간이 하루뿐이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그러니 질문을 바꿔봅시다. 남은 시간이 3년밖에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전에 예일대 신입생 중 암에 걸려 3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학기에는 수업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학위를 받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자신의 마지막 해를 수업을 듣는 데 보낸 것이지요. 5년, 10년 뒤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여성동아 2013년 6월 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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